367장: 입성하라!
마을 입구에서 모두 각자 흩어졌다. 이사조는 백정의 집에 가서 고기 한 덩이를 달라고 한 뒤, 건들건들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밭에 나가 일을 하려던 참이었다.
“하는 일이 없이 빈둥거리고, 좋은 일은 하지도 않은데 하늘이 어째서 너 같은 망할 자식을 거두어가지 않는 거냐!”
부친은 아들의 모습을 보니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이사조가 부친에게 말했다.
“실컷 욕하세요. 욕할 줄만 알지. 제가 밖에서 애쓰지 않았으면 아버지께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나 있었겠어요?”
부친이 괭이를 냅다 던지면서 노발대발 소리쳤다.
“내가 너에게 술 한 병을 얻어먹었냐? 고기 한 덩이를 얻어먹었냐? 내가 먹는 건 다 나 스스로 농사지은 거다. 나는 네 검은돈이 필요 없다. 네가 사온 고기도 악취가 나!”
이사조가 급히 몸을 피했다. 아무리 무공을 할 줄 안다지만 부친에게는 얻어터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남자아이 하나와 여자아이 하나가 동동거리며 달려와서는 이사조의 허벅지를 한쪽씩 껴안았다.
부친도 손자와 손녀를 보더니 급히 괭이를 주워서는 식식거리며 밭일을 하러 갔다.
“얘들아, 집에서 착하게 있었어? 어머니 말은 잘 들었고?”
이사조가 두 아이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허벅지를 껴안은 아이들을 매달고서는 조심스레 집에 들어가서 바쁘게 움직이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달래듯이 말했다.
“어젯밤에 누가 다툼이 생겨서 나더러 중재해달라고 하지 뭐야? 그 사람이 고기 한 덩이를 선물해줬으니, 점심에 삶아서 아이들 먹이자고.”
아내가 냉랭한 얼굴로 그에게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사조가 물었다.
“또 왜 그래? 내가 나가서 다른 여자랑 놀아나는 줄 알아? 당신은 왜 매일 눈치를 주는 건데?”
아내가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이 한 일은 당신이 잘 알겠죠. 매일 마을에서 나와 시아버님을 손가락질받게 만들고, 남의 집 아이들이 우리 애들과 놀지도 못하잖아요. 다 당신이 한 짓 때문이에요!”
“내가 또 뭘 했다고 그래? 내가 매일 집에서 농사나 지으면 당신은 기쁘겠지만 내가 밖에서 애쓰지 않으면 우리 가족이 뭘 먹고 살겠어?”
아내가 뒤돌아서 말했다.
“집에 밭도 있고, 땅도 있는데 왜 먹을 게 없어요?”
이사조가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매일 먹을 흰쌀이 없어서 옥수수밥을 먹어야 하는데 당신은 그런 생활을 할 수 있겠어?”
“왜 그렇게 살 수 없어요? 다들 그렇게 산다고요!”
그런 뒤 그녀가 곧바로 고기를 던지며 큰소리로 외쳤다.
“당신이 가져온 고기는 안 먹어요. 당신이 죄를 지어서 번 돈은 쓰기 싫다고요.”
그때,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격렬하게 울려 퍼지더니, 곧 이어서 무사들이 쳐들어왔다. 선두에 있는 사람은 동창의 백호였다.
“본관은 백색부의 동창 백호 임계년이다. 네가 이사조인가?”
임계년이 냉랭하게 물었다.
이사조는 6품 무사라는 자부심이 있어서 주먹을 꽉 쥐고 손을 쓰려고 했지만 옆에 아내와 아이들을 보고는 그 마음을 접었다.
임계년이 일갈했다.
“이사조, 너는 마을에 해를 끼치고 민가를 습격하여 약탈했다. 본관은 백색 자작, 백색 지부, 백색 참장이신 두변 대인의 명을 받들어 향촌을 소탕하고 있다. 지금 전투가 임박했으니 너 같은 재난의 원흉은 심판받을 필요도 없이 즉시 사형에 처한다!”
말을 끝낸 뒤, 임계손이 손짓을 하자 무사들이 나와서 이사조를 잡으려 했다.
이사조가 무공을 쓸 새도 없이, 그의 아내가 곧바로 무릎을 꿇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대인,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제 부군은 비록 멍청한 일을 많이 했지만 한 번도 사람 목숨을 해친 적이 없습니다. 청컨대 대인께서 밝게 살펴주십시오…….”
임계년이 여인과 아이들을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죽기 싫으면 군에 들어와서 공을 세워 속죄해라!”
이사조의 아내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린 뒤 이사조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하겠습니다……. 부군, 빨리 무릎 꿇고, 대인께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드려야죠.”
“잡아라!”
임계년이 명령을 내리자 무사들이 나서서 곧바로 쇠사슬로 이사조를 묶었다.
그는 정말로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아이들과 아내가 옆에 있었다.
이때 백색부 전체, 심지어 광서성의 서부 전체에서 동일한 장면이 도처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미 이쪽으로는 손을 씻은 무사가 집에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호랑이나 늑대처럼 사나운 병사들이 집으로 들이닥쳐서 두말하지 않고 사람을 잡아갔다.
뒤에서 여인이 울며 외치는 소리만 들렸다.
사람들이 한 무더기씩 잡혀가서 백색성으로 압송되었다.
이게 바로 이문회가 주관하는 군대 확충 계획이었다. 향촌에 있는 도적과 패주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사방 수백 리 안에 있는 모든 향촌에서 대숙청을 진행해서 숨어있는 모든 방파 구성원을 일망타진하는 것.
순식간에 백색성 주변의 여러 부와 수십 개의 현에서 마을마다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반면, 또 마을마다 환호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들 은거하는 방파의 무사들이 애초에 마음잡고 농사일을 할 리가 있을까. 그들은 자신의 무공을 이용해서 부정하게 돈을 벌었으니,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원망을 사던 차였다.
물론 은거 무사들 중에는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자들도 있었다. 비록 그런 무사들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는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으니 전부 잡아갈 수밖에 없었다.
모든 길마다 갑옷을 입은 두변의 무사들이 종횡무진 달렸고, 수많은 백성들은 간담이 서늘해져서 길 양측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백색성으로 통하는 길에는 압송되는 죄수들의 대열이 용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두변은 성벽 위에 서서 죄수들의 대열이 연달아 성안으로 잡혀 들어오는 걸 바라봤다. 이들이 모두 무공을 어느 정도 할 줄 알지만, 이제부터 그들은 가장 잔혹하고 혹독한 훈련을 받을 것이다. 절세 지하성의 최정예 무사들이 인생에 회의가 들 정도로 조련시킬 게 분명했다.
많은 이의 몸에 핏자국이 가득할뿐더러 심지어 피범벅이 된 사람들도 있었다. 반항하다가 진압이 되었으리라.
뿐만 아니라, 백색성 밖의 길 양쪽에는 수급이 가득 걸려 있었다. 그들은 모두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목을 전부 베어 걸어서 나중에 오는 사람들을 겁먹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첫 번째 군대 확충 계획은 전부 의부 이문회 대인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이문회는 두변 앞에서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최고의 아버지겠으나, 또 다른 방면에서는 강경한 수단을 쓰는 동창의 지도자였다.
두변은 자신의 명령에 수많은 집에서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손님을 불러 식사를 하는 것처럼 고상할 수 없었다. 여유롭고 우아하며, 공손하고 양보하면서 사람을 모을 수는 없었다.
진평이 두변의 뒤에서 보고를 올렸다.
“주군, 군대 확충 계획의 첫 번째 단계가 몹시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지금까지 신병 4,935명이 가입했습니다.”
밑에 빼곡하게 모여있는 죄수, 즉 신병 대열을 보며 두변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변이 말했다.
“다음 단계, 저들의 부인와 자식을 집에 있는 모든 재산을 챙겨서 전부 성안으로 이주시켜라!”
쿵, 쿵, 쿵, 쿵.
바로 그때, 지면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남쪽 하늘가에서 방진(方陣)을 이룬 무사들이 나타났다.
젊은 무사 3천 명이 선명한 색상의 갑옷을 두른 채, 질서정연한 걸음으로 북상했다. 무사들은 이내 성벽 아래로 도착했고, 선두의 무사 한 명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성주를 뵙습니다!”
젊은 무사 3천 명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
“대성주를 뵙습니다!”
그들은 절세 지하성의 2군 무사들이었다.
두변은 눈가가 뜨거워지고,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진 느낌이 들었다.
젊은 무사들이 고개를 들어서 두변을 바라보는데, 그 눈빛이 풋풋하면서도 열광적이었다. 역시 젊은 사람들답게 패기가 있고 두려움이 없었다.
두변이 그들에게 손짓을 했다.
“입성하라!”
2군 무사 3천 명이 일어서서 질서정연한 발걸음으로 성안으로 진입했다.
두변이 중얼거렸다.
“내가 너희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희처럼 젊은이를 한창때에 죽도록 놔둘 수는 없다.”
경성.
원등 공작은 성지를 듣고 놀랐다. 당당한 공작인 자신더러 산해관을 지키라니, 남들 보기에 좋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줄서기를 하고 싶지 않으면 완전히 멀어지라는 의미였다.
잠시 후에 원등 공작이 말했다.
“신은 요동으로 가서 요동 총독을 맡을 수 있기를 청합니다.”
요동은 그의 기본 지반이었다. 요동 총독을 맡고 있다가 작년에 요양 차 경성에 돌아온 터였다. 지금도 요동 총독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라서 그가 곧바로 가서 그 자리를 맡아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지금 경성은 가장 투쟁이 격렬한 곳이 될 것이다. 황제와 방계가 용쟁호투를 벌이려고 하는데 지금 그는 한쪽에 줄서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경성에서 더 멀리 떨어지자 싶었다. 어차피 불똥이 그에게 튀지는 않을 것이다.
이연정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는 바로 돌아가서 폐하께 아뢸 것이니, 곧 성지가 내려질 겁니다. 대인께서는 여장(旅裝)을 꾸리셔도 됩니다.”
원등 공작은 역시 최대 군벌의 풍모를 견지할 생각이었다. 그는 한적한 뜰을 거닐면서 용쟁호투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이번에 앞장서서 황제를 압박하고 두변을 죽이라고 하고, 황제에게 죄기소를 작성하라고 한 사람은 전 태자 태부이자 내각의 차보(次輔) 소성박(蘇成薄)이었다.
그의 아들은 밖에서 관리를 하느라 집을 비웠다. 하지만 손자 셋은 전부 집에 있었다. 그중 손자 셋은 이미 진사에 급제해서 전부 경성에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한 명은 한림원, 한 명은 예부에 있었고, 가장 어린 손자는 국자감에서 공부를 했다.
소성박은 황제 셋을 모신 원로였다. 전 내각의 차보이자 황제의 스승이었고, 경력이 가장 오래됐을 뿐 아니라, 문하생과 오랜 친구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가 황제 코앞에서 삿대질을 하면서 욕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매번 황제는 아무런 말 없이 꾹 참기만 했다.
이번에 그가 또다시 나서자, 온 가족은 모두 그가 승리할 것이라 생각했다.
손자 셋은 모두 할아버지가 무엇을 하러 황궁으로 갔는지 알고 있었다.
그건 대단히 큰일이었지만 제국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세 명은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생각했다.
현재 조정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비밀이 없었다. 최고위층은 어쩌면 황제의 퇴위를 압박하는 일에 대해 서슴지 않고 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지만, 하위층 관원, 특히 국자감의 학생들은 진작 그 일에 대해 입이 닳도록 토론했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이들이 수없이 세뇌시킨 끝에, 모든 이는 황제가 소환관 두변을 총애할 뿐 아니라, 환관에게 작위를 책봉한 일이 그 환관이 황제의 목숨을 구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뿐 아니라 황제가 충언과 간언을 전혀 듣지도 않고, 반년 넘게 조회에 들지 않으며 정사를 돌보지 않지 않았나.
심지어 황제가 두변을 총애한 건 애초에 두변이 황제의 목숨을 구한 은혜 때문이 아니라, 두변이 잘생겼기 때문이며 두 사람 간에 말 못 할 일이 있다는 말도 나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