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장: 칼을 부러뜨려라.
북명검파의 대은구도는 손님, 그것도 귀빈을 맞고 있었다.
대도주 하진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귀사(貴使)를 뵙니다.”
두변이 그곳에 있었다면 그 사람이 몹시 눈에 익었을 것이다. 바로 육맥신검을 훔쳐 갔을뿐더러, 계청주에게 독을 썼고, 막한을 구슬려서 떠나게 한 소목지였다.
두변은 아직까지도 그 사람에 대해 간파하지 못한 상태인데, 뜻밖에 대도주 하진이 그자에게 허리까지 굽히며 인사할 줄이야.
소목지가 말했다.
“전하께서 저를 보내신 건 두 가지 일 때문입니다.”
그가 말한 전하는 당연히 대녕 제국의 태자 전하가 아니라, 방계 해외 강대 제국의 전하였다.
대도주 하진이 말했다.
“말씀하시지요.”
소목지가 말했다.
“첫 번째, 이연정을 제거하십시오.”
대도주 하진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이연정도 절반쯤은 우리 북명의 제자인 셈이오.”
소목지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두 번째, 두변을 제거하십시오.”
대도주 하진이 말했다.
“두변은 천형을 견디고도 죽지 않았으니, 우리 대은구도는 그를 죽일 권한이 없소.”
“이건 전하의 뜻이니, 어떻게 행할지는 당신이 할 일입니다.”
“나도 위에 보고하겠소. 어떻게 할지는 위에서 결정할 것이오.”
소목지가 공손하게 예를 갖춰서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대도주 하진은 이 일을 북명검파 장로회에 보고했다.
고작 반나절만에 장로회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대은구도의 어떤 특수한 감옥 안.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울뿐더러 풍만하고 요염한 이도진이 그곳에 감금되어 있었다.
그녀의 죄는 단순했다. 흡성대법의 소식을 알게 된 뒤에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도리어 자신이 그 비급을 가지려고 했고, 최후에는 심지어 두변과 은밀히 비급을 주고받으려고 했다는 죄였다.
그러니 본래 그녀는 대은구도의 장로회에 들어가야 하지만 지금 도리어 이 특수한 감옥 안에 구금당한 상태였다.
대도주 하진이 감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은빛 장포를 입은 판결자가 뒤따랐다.
이도진은 흠칫 놀랐다. 설마 그녀의 일이 이토록 엄중해서 북명검파 판결자까지 나서야 한단 말인가?
은빛 장포의 판결자는 북명검파 장로회의 최고 무력으로, 최강의 적이 나타났을 때만 이 판결자가 나서곤 한다. 일반적인 일에는 대은구도의 사자가 출동하면 그만이었다.
수십 년 전에 천마교주 기음음을 섬멸하기 위해서 은빛 장포의 판결자가 나선 적이 있을 뿐이었다.
대도주 하진이 말했다.
“이도진, 너는 흡성대법이 북명대법의 몹시 중요한 일부라는 걸 알 것이다. 북명검파 문파의 보물이지. 너는 흡성대법의 행방을 알게 되었는데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도리어 사적으로 두변에게 그 행방을 넘겼다. 그건 죽을죄를 진 것이다!”
이도진은 침묵했다.
하진이 말했다.
“공을 세워 속죄해서 자유를 되찾고 싶은가?”
“그렇습니다.”
대도주 하진이 말했다.
“그럼 너는 대은구도를 대표해서 은포 판결자와 함께 한 사람을 죽여라.”
“누굴 죽입니까?”
“그건 물을 필요 없다. 곧바로 은포 판결자를 따라 함께 가면 된다. 그 사람을 만나면 네가 누굴 죽여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면 모든 죄가 전부 사라진다. 게다가 대은구도의 장로로 승진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반 시진 뒤, 대종사급 고수 이도진과 북명검파 장로회의 은포 판결자가 북명검파를 떠났다.
경성의 오문(午門: 궁궐 남쪽에 있는 정문).
관원 백 명이 수의(囚衣)를 입고 일제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여기 있는 관원들은 높은 관직은 4품, 낮은 관직은 7품이었다.
비록 높은 관직은 아니라 해도 중요한 위치의 관원들로, 육부의 관원이거나 한림원의 관원이었다.
전 태자 태부 소성박의 장손도 그 속에 있었다. 지금 그는 위축된 모습으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수보 대인, 살려주십시오!”
“두회 대인, 살려주십시오!”
“저는 방계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덕분에 오늘 같은 날을 초래했습니다. 한데 방계는 어째서 저를 구해주지 않는 겁니까?”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죽기 전에 무슨 말이든,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려 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아래에서 둘러싸고 참수 장면을 구경하러 왔다.
천윤제에 대한 그들의 감정은 복잡했다. 우선 모든 이가 천윤제가 인자한 군왕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최근 수많은 이가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천윤제가 혼군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 또다른 소식이 전해졌다. 두변이 패배하지 않았을뿐더러 도리어 대승을 거두었고, 반란자의 10만 대군을 모조리 죽여버렸다고. 그렇게 보면 황제가 또 현군 같기도 했다.
어쨌든 관리를 죽이는 건 늘 좋은 일이었다.
경성에 사는 백성들은 관리라고 한다면 누구 하나 탐관오리가 아닌 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전부 죽여버리면 그 속에는 분명히 억울한 자도 있겠지만, 띄엄띄엄 죽인다면 분명히 그물에서 빠져나온 물고기가 있을 것 아닌가. 그러니 죄다 죽여야지.
가장 중요한 건 떠들썩한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이연정이 아래에서 구경하는 인파를 차갑게 내려다봤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이들은 수보 방탁 대인의 심복과 두회 대인의 심복이었다.
황제가 사람들을 죽이는 건 어째서일까?
말을 안 듣는 군부를 놀라게 만들기 위해서였고, 세력을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해야 세력을 만들 수 있을까?
바닥 가득 사람들의 수급을 떨어뜨린 뒤, 방계에게 타협하고 물러나라고 압박해야 한다.
방계가 물러나겠다고 타협하면 군부의 수령들은 차마 황제의 성지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창 무사들이 성지를 가지고 그들을 잡으러 갈 때, 모반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게 된다.
“방탁 대인과 두회 대인은 이래도 자발적으로 황제 폐하를 알현하지 않을 텐가?”
이연정이 냉랭하게 말한 뒤, 손에 든 첨(簽: 나무나 대나무에 글자나 기호를 새긴 것. 참수하라고 명령을 내릴 때도 이걸 던져서 알린다.)을 던지며 소리쳤다.
“참수하라!”
그건 몹시 불합리한 일이었다. 형부의 대신이 감참관(監斬官: 죄인을 참수하는 걸 감독하는 관원)을 할 수는 있지만 이연정은 할 수 없었다. 하물며 그는 지금 동창 대도독 자리에서도 내려와서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관직은 시위내대신(侍衛內大臣)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망나니 백 명의 손에서 일제히 칼이 떨어졌다.
촤락!
관원 백여 명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며 새빨간 피가 솟구쳤다.
“악!”
수많은 백성 가운데 놀라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잘했다고 큰소리로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두회와 방탁의 심복들은 얼굴을 한 번 실룩일 뿐, 여전히 무표정했다.
이연정이 소리쳤다.
“다음!”
또 다른 사람들이 백 명씩 무더기 끌려 나왔다.
이들은 전부 황제에게 퇴위를 압박한 사직한 노신들의 가솔들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사람뿐 아니라 청장년도 있었고, 남자도, 여자도 있었다.
그 안에는 수보 방탁의 친가도 있었고, 두회 대인의 친척도 있었다.
“참수하라!”
이연정이 손짓하자, 또다시 망나니의 손에서 칼이 떨어지고 수급 백 개가 땅에 떨어졌다.
“다음!”
또 한 무리가 끌려왔다. 이번에도 백여 명이었다.
“참수하라!”
이연정이 손짓에 따라, 망나니 손에서 칼이 떨어지고 또 백여 명의 수급이 땅에 떨어졌다.
“다음!”
“다음!”
“다음!”
둘러싸고 구경하는 백성들은 차마 더 볼 수 없어서 전부 눈을 감았다.
방탁과 두회의 심복은 안색이 완전히 창백해졌다.
수보 방탁의 부 안.
“미쳤군, 미쳤어…….”
“이연정은 미쳤어. 그자는 더 살고 싶지 않나 보군……”
수보 방탁은 온몸을 떨고 있었다.
이연정은 오늘 무려 2천 명을 처결했다.
2천 명, 2천 명이라니!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게 얼마나 오랜만의 일인가?
태조는 수하 장군이 모반했을 때 한꺼번에 수만 명을 죽였다.
백여 년 전에 진왕(晋王)이 군영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켜서 황위를 찬탈한 뒤, 수만 명을 죽였다.
그렇지만 그 뒤로 이렇게 대규모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 없었다.
이연정이 그렇게 미친 듯이 사람을 죽여나가다간 방계의 위신이 끝도 없이 떨어질 터였다. 그들이 모두 방계 때문에 죽임을 당했지만 중요한 순간 방계가 나서서 그들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죽게 내버려 두다가는 그럼 앞으로 누가 감히 방계에 충성을 바칠까?
하물며 오늘 이연정이 죽인 2천 명 중에는 방가에서 시집 보낸 여인도 있었다.
황제는 바로 이런 수단으로 방계가 타협하도록 압박했다.
황권이 궐기했다는 표시를 어떤 방법으로 드러내야 할까? 당연히 적의 수급을 최대치로 떨궈서 짓밟는 것이다.
황제가 그렇게 하면 후환이 극도로 엄중해지며 제국이 순식간에 찢길 수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이제 더는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성지가 황궁 밖을 나가지 못할뿐더러, 방계의 군대가 이미 양광에 상륙했다. 적이 이미 자신의 대신 장양명을 죽이고 계왕을 죽였다고 밝혔는데, 황제는 계속 제국이 분열되는 걸 신경 써야겠는가?
하지만 이연정이 이대로 사람을 죽이게 내버려 둔다면 방계야 여전히 강하겠지만 방탁이라는 내각 수보는 끝장이 날 것이다.
두회가 담담하게 말했다.
“기다립시다. 계속 기다리는 거요. 이연정과 두변이라는 칼 두 자루가 곧 부러질 것이오. 그때가 되면 황제는 이빨과 발톱 빠진 호랑이가 되니, 우리에게 마음껏 짓밟힐 것이오.”
방검지가 냉소했다.
“게다가 황제가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할 정도로 죽여대지만 다 사직한 늙은 신하들이거나 일부 하층 관원들뿐입니다. 우리 방계의 직계 관원들에 대해서 차마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니 황제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약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함부로 입방정을 떨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내각의 대신, 예부 상서 장사지가 비분에 찬 마음으로 붓을 들어 글을 휘갈기는 중이었다.
상주서의 대상은 이미 두변에서 이연정으로 바뀐 후였지만 계속해서 황제를 질책하고 있었다.
‘황제가 어리석고 잔혹한 까닭에 엄당 이연정이 무고한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걸 용인해주었다. 억만의 백성은 이연정이라는 엄당 마두의 피를 마시지 못하는 게 한이 될 정도고, 하늘은 벼락을 내리쳐서 그를 때려죽이지 못해서 한이 될 정도다.’
그런데 바로 1분 뒤.
그가 상주서에서 천 번, 만 번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 한다고 썼던 바로 그 이연정이 그의 방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런 뒤 밖에서 귀신 우는 듯한 소리가 한 차례 들리더니, 동창 무사 천 명이 부 안으로 쳐들어왔다.
“내각 대신, 예부 상서 장사지는 역모 혐의가 있으니, 이연정은 그의 일족 모두를 체포한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각 대신 장사지는 완전 얼이 빠졌다.
황제가 이연정에게 닭을 죽여서 원숭이들을 겁먹게 하는 방법을 쓰고 있으니, 죽여야 할 건 닭인데, 어째서 원숭이인 자신이 죽는단 말인가?
일전에는 방계의 직계 관원들을 전부 건드리지 않았건만!
“체포하라.”
이연정이 명령을 내리자, 동창 무사 여러 명이 사납게 달려들어서 내각 대신 장사지를 체포했다.
그때, 젊은 무사 한 명이 갑자기 달려와서 성난 목소리로 포효했다.
“나는 북명검파의 장지봉(張之封)이다. 누가 감히 우리 할아버지를 잡아가려 하느냐?”
하지만 다음 순간, 이연정이 나설 필요도 없이 옆에 있는 천호가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가서 상대방의 검을 잡고 확 부러뜨려버렸다. 그는 손에 비금 장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푹.
부러진 검이 그 북명검파의 제자 장지봉의 목구멍을 찔러 들어갔다.
장사지는 자신의 손자가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자, 비틀거리며 거의 혼절할 뻔했다.
그렇게 내각 대신 장사지의 일족 수백 명이 전부 동창에 의해 체포당해서 하옥되었다.
경성은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
많은 고위 관원이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예전에 그들이 세운 결론에 따르면, 황제가 방계의 직계 고위 관원은 잡지 않고, 3품 이상의 관원은 잡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황제가 방계와 철저히 틀어진 게 아니라 허장성세에 불과하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내각 대신 장사지가 체포되면서 그 망상이 깨져버렸다.
그는 1품 고위 관원일뿐더러, 방계의 고위 관원들 중에 서열이 앞자리에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