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70화 (370/648)

370장: 두변의 의조부

방탁과 두회가 그 소식을 듣고는 완전히 넋이 나가고 말았다.

‘황제가 미친 건가?’

‘장사지까지 잡아?’

‘설마 그는 정말로 방계가 모반을 하도록 압박하려는 건가?’

방계는 경성 주위에 무려 정예군 3만을 가지고 있었다.

두회가 말했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군대를 일으켜서 모반을 해서는 안 되오. 경성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이 펼쳐질 것이오. 허면 주군의 뜻을 거스르게 되고, 심지어 곧바로 대녕 제국이라는 허울을 깨뜨릴 수 있소.”

방탁이 말했다.

“만약 황제가 장사지를 죽이게 된다면…… 그건 크나큰 일이 벌어진 거요. 천하의 모든 관리가 우리를 어찌 보겠소? 비록 그들은 모두 방계 쪽에서 돈을 벌지만 그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오. 확신하건대 장사지의 수급이 땅이 떨어지면 수많은 관원들이 일제히 황궁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그를 성군이라고 외칠 것이오. 다들 죽음을 두려워하오!”

황제는 ‘나를 따르면 살고, 나를 거스르는 자 죽는다.’는 식의 연극을 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두회가 말했다.

“기다립시다! 곧이오, 곧……. 이연정과 두변이라는 두 칼이 곧 부러질 것이오!”

“나는 권신(權臣: 권세를 잡은 신하) 같은 게 아니다. 그저 날카로운 검 한 자루일 뿐이다.”

어둠이 물든 정원에서 이연정이 검법을 수련중이었다.

그는 대종사, 그것도 천하 최고의 고수였다. 하지만 그가 지금 수련하는 검법에 대단한 기세가 보이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평범한 검법처럼 보였다.

이연정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폐하께서 누굴 죽이라고 하시면 나는 그 사람을 죽이면 될 뿐. 폐하께서 누굴 죽이라고 하지 않으셨지만 속으로는 그를 죽이고 싶어 하시면 나는 그 사람도 죽일 것이다. 심지어 그분께서 속으로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아 하셔도 폐하의 이익을 위해서 죽여야 할 사람이 있다면 난 그 사람도 죽일 것이다!”

솩, 솩, 솩.

마지막으로 검을 세 번 연이어 휘두른 뒤, 검을 거두어들인 그가 네 사람의 이름을 읊었다.

“폐하를 위해, 문회를 위해, 이원을 위해, 두변을 위해.”

이연정은 네 사람을 부름으로써 마음속 마라(魔羅: 수도, 수행을 방해하는 마귀 등을 가리키는 말)를 억눌렀다.

그는 성인도 아니며 철인도 아니었다. 매일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는데 아무리 그라도 아무런 느낌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러니 가장 가까운 네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마음을 안정시킬 수밖에.

그런데 바로 그때.

한 줄기 바람이 불고 지나간 뒤, 정원 안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비길 데 없이 강한 대종사급 고수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신비한 은빛 장포를 입은 사람, 또 한 명은 비길 데 없이 아름답고 요염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겉보기에는 서른 살이 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절세 미녀였다.

‘은포 판결자?’

이연정은 깜짝 놀랐다. 자신을 처리하기 위해서 은포 판결자가 나타난 건가?

북명검파의 은포 판결자가 천천히 말했다.

“이연정, 나는 북명검파 장로회의 명령을 받들어서 너에게 사형을 선고하려고 왔다!”

대은구도에서 사람을 죽이려면 어쨌든 죄명을 붙였지만 북명검파 장로회에서 사람을 파견할 정도에 이르면 죄목을 붙일 필요도 없었다.

이윽고 대종사급 은포 판결자가 힘차게 검을 뽑았다.

대종사급 고수 이도진도 마찬가지로 검을 뽑았다.

솩!

대종사급 고수 두 명이 이연정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도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연정? 저 사람은…… 두변의 의조부인 것 같은데?”

이연정은 대략 전성기 때의 영종오와 비슷할 정도로 무공이 높았다.

하지만 북명검파의 은포 판결자도 무공이 대단히 고강한 데다, 마찬가지로 강한 이도진까지 함께 있었다.

1 대 2로 대종사 두 명을 상대해야 하는 이연정으로서는 웬만해서는 이길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절정 고수들 간의 전투는 웬만해서는 일 초(招)에 승부가, 또 일 초에 생사가 정해진다.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찰나에, 망설이거나 저울질할 어떠한 시간도 없이 본능에 맡길 수밖에 없게 된다.

‘이연정은 두변의 의조부인데?’

그걸 확인한 순간, 이도진은 본능적으로 은포 판결자를 향해 검을 찔렀다.

그와 동시에 이연정의 혼신의 일격이 은포 판결자를 베었다.

이연정의 전력을 쏟은 일격이 전부 은포 판결자의 몸에 쏟아졌다.

이연정은 자신이 동시에 대종사 두 명을 공격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설령 죽더라도 그중 한 명과 함께 죽을 생각이었다. 그가 이도진이 아니라 은포 판결자를 같이 죽자고 끌어들인 건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젊어서였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젊은 천재를 아끼는 마음이 생기곤 한다. 아무리 그게 적이라도 말이다.

덕분에, 이연정의 놀라운 일격과 이도진의 놀라운 일검이 동시에 앞뒤로 은포 판결자를 공격했다.

은포 판결자로서는 아무런 방비도 없이 이도진의 검에 찔린 셈이었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상황이야…….”

쾅!

판결자가 입을 여는 순간, 몸이 갑자기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완전히 가루가 되어서 온전한 몸 한 조각도 남기지 않았다.

두 대종사의 내력 현기가 판결자의 몸에서 충돌하면서 무시무시한 폭발을 유발했던 것이다.

이연정도 얼이 빠지긴 마찬가지였다.

‘이, 이건 무슨 상황이지?’

이연정이 고개를 들어서 눈앞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은 여인을 바라보는데, 아주 조금 눈에 익은 듯하기도 했다.

이 여인은 분명히 북명검파 사람일 텐데, 은포 판결자와 함께 자신을 죽이러 왔다가, 어째서 중요한 순간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오히려 은포 판결자를 죽여버린 걸까? 이 여인은 설마 이 일이 북명검파에 최대의 배신행위이며 엄중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걸 모르는 걸까?

사실, 이도진도 바닥에 흥건한 붉은 피를 보고 잠시 넋을 잃었다.

죽여야 할 사람이 두변의 의조부란 걸 알게 된 이상, 당연히 이연정에게 손을 쓸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녀에게 1초 정도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녀는 은포 판결자에게 손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북명검파를 배반할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북명검파가 너무너무 강하기 때문에.

북명검파를 배반하면 웬만해서는 반드시 죽기 때문에.

게다가 지금 그녀의 행실은 여마두 막추처럼 악랄하니, 북명검파는 반드시 온 천하에 그녀의 지명수배를 내릴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모든 게 너무나 빨리 일어나서 애초에 생각할 시간도 없이 본능적으로 손이 나가고 말았다.

은포 판결자를 죽인 뒤에야, 그녀는 머리가 쭈뼛 서면서 온몸이 덜덜 떨렸다.

“낭자, 실례지만…….”

이연정은 한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놀라울 정도로 요염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어째서 나서서 그를 구해줬을까?

이도진도 한순간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 예전에 이연정을 만난 적이 있었지만 지금 그녀는 너무 많이 변했다. 많이 아름다워졌고 더 젊어지기까지 한 데다 그와 만난 시간이 너무 오래되어서 이연정이 그녀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리라.

그녀는 자신이 이도진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자신이 당신을 구한 건 당신이 내가 사랑하는 두변의 의조부이기 때문이라고 말을 한다고?

그, 그건 너무 창피하지 않나!

“저, 저는 가겠습니다…….”

이도진은 그 말을 한 뒤 곧바로 뒤돌아서 떠나려고 했다.

대문 입구까지 걸어갔을 때 이도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르신, 두변은 지금 백색성에 있습니까?”

“그곳에 있소.”

이연정은 본능적으로 대답했고, 이도진은 그렇게 떠났다.

그녀는 북명검파를 가장 악랄하게 배신한 배신자가 된 셈이니, 급히 길을 떠나야 했다.

백색성 안.

어떤 중년 환관이 황제의 성지를 낭독하고 있었다.

“황제가 명하노라, 두변을 백색 총병, 여경사의 우제독에 책봉하노라!”

두변이 놀라서는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신, 주군의 융은(隆恩)에 감사드립니다.”

두변도 자신에게 백색 총병이라는 직위를 내리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께서 동창은 언급하지도 않고 그를 여경사의 우제독으로 책봉할 줄이야.

황제는 정말로 그에게서 환관의 신분을 씻어내려고 질주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 중년 환관이 또다른 성지를 꺼내서 읽었다.

“황제가 명하노라, 두변을 진서 백작에 책봉한다!”

두변은 또다시 경악했다.

최근 1년간 자신의 관직과 작위가 오르는 속도가 로켓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보다 더 빠르지 않은가.

황제는 애초에 작위를 천천히 올리는 도리 같은 건 알지 못한 것처럼 1년 만에 두변의 작위를 평민에서 백작까지 올렸다.

혹시 대녕 제국의 작위가 값어치 없는 게 아닐까? 당연히 아니다. 내각 수보 방탁과 내각 대신 두회는 지금까지 작위가 조금도 오르지 않았다.

10년 동안 황제가 내린 작위는 다섯 개를 넘지 않았다.

황제가 두변의 관직과 작위를 올려주는 건 단 한 가지 이유, 두변에게 그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관직과 작위가 충분해야만 서남 전체의 군대를 이끌 자격이 생기면서 여씨와 대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직이 너무 낮으면 병사를 모집하는 것도 어려웠다.

게다가 그를 여경사의 우도독으로 봉하는 데는 좀더 주도면밀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었다. 두변은 반년에서 1년 뒤에 그 자리가 어떻게 작용할지 알아차렸다.

이 황제 폐하는 정말 제멋대로 움직여서 조금도 황제 같지 않았다.

두변은 또다시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신, 주군의 융은에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이문회에게 주는 세 번째 성지가 있었다.

“황제가 명하노라, 이문회를 동창 부도독에 봉한다!”

이문회가 머리를 조아렸다.

“신, 주군의 융은에 감사드립니다. 황상 만세, 만세, 만만세!”

경성, 수보 방탁의 저택.

방탁이 길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제 곧이오. 북명검파에서 대종사 두 명을 출동시켰으니, 이연정 그 늙은 개는 반드시 죽을 테고, 두변도 곧 끝장날 것이요. 북명검파에서는 그 소환관 놈에게도 뜻밖에 대종사를 두 명이나 보냈소!”

방탁은 이연정과 수십 년 묵은 앙숙이었다.

그렇다면 이연정와 암암리에 수십 년을 싸웠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이연정은 정치적인 수단이 기껏해야 평범할 정도였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연정 그자는 자신의 저택 안에만 있었고, 모든 일은 의자(義子)몇 명과 자신의 직계에게 맡길 뿐이었다.

하지만 방탁은 이연정이 몹시 골치 아팠고, 심지어 그를 조금 두려워했다.

이연정이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로운 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너무나 고지식해서 타협하거나 물러설 줄을 몰랐다.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1년 364일 동안 그는 항상 침묵하고 말수가 적으며,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머지 하루 동안 그가 누군가의 일가를 죽이겠다고 말한다면 조금도 여지를 주지 않고 반드시 그 일가를 죽였다.

그를 매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위협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

차라리 그를 죽이거나 그에게 멈추라고 명하는 황제의 성지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연정을 죽일 방법을 찾기 위해서, 심지어 소주(少主) 전하를 귀찮게 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주 전하 자신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이, 사자(使者) 한 명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북명검파 장로회에서 이연정을 죽일 대종사를 두 명이나 보내지 않았던가.

이번에 이연정을 죽이는 일은 만에 하나라도 실패할 리는 없었다. 그 늙은 개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이연정이 죽기만 한다면 사례감의 병필 태감, 동창 대도독 풍보보라는 미친개를 묶어놓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황제는 경성에서 휘두를 칼이 없어지게 되고.

방검지가 갑자기 물었다.

“아버지, 이연정의 수급을 저에게 주실 수 있습니까?”

방탁이 냉랭하게 물었다.

“그 수급을 가지고 뭘 하려고?”

“그 수급을 황제의 침상 머리맡에 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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