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장: 어사망파(魚死網破)
바로 그때, 밖에서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냐?”
그런 뒤 어떤 노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바로 그들이 반드시 죽을 거라고 말하던 이연정이었다.
방탁은 그 순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해서는 이연정을 쳐다봤다.
‘북명검파가 이미 나섰으니, 이연정은 죽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방검지는 순간 낯빛이 새파랗게 질려서 얼굴에 핏기를 모두 잃었다.
대종사인 이연정이 들어오면서 주변의 공기가 죄다 응고라도 한 듯, 숨이 막히고 냉랭해졌다.
이연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수보 대인, 장사지가 자백을 했습니다.”
수보 방탁의 몸이 살짝 움찔했다.
무엇을 자백했다는 걸까? 당연히 이번 역모 사건의 배후를 자백했을 것이다.
얘기하고 보니 너무나 가소로웠다.
이번 이른바 역모 사건은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애초에 무슨 음모를 꾸민 적도 없었고, 암암리에 역모를 벌인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몹시 솔직하게 황제에게 퇴위를 압박했는데, 그 탓에 이번 역모 사건에 또 이토록 확고한 증거를 내밀게 된 것이다.
이연정이 말했다.
“폐하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장사지가 극악한 죄를 지었으니, 일족을 죽여 없애되, 열다섯 살 이하의 아이들은 살 수 있다.’고요. 내일 목을 벨 것이니, 수보 대인이 참관하도록 모시고 가야겠습니다.”
그런 뒤 이연정이 청첩 하나를 건넸다.
다른 사람의 목이 떨어지는 걸 구경하라고 초대하고, 청첩까지 준다? 이런 행동은 아마도 이연정이 최초이리라. 이연정도 제법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연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내일 내각 대신 장사지의 참수가 황궁에서 진행됩니다. 모든 문무백관이 와서 참관하니, 백관의 우두머리이신 수보 대인께서는 절대로 빠지지 마십시오. 오시(午時)삼각(三刻)에 참수형에 처하니, 수보 대인께서는 늦지 않게 도착하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이연정은 그곳을 떠났다.
다른 한 집에 청첩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바로 내각 대신, 호부 상서인 두회에게 말이다.
대략 한 시진 뒤, 두회는 또다시 방탁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방탁이 말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북명검파가 실수해서 이연정이 죽지 않았소. 내일, 황제는 문무백관 앞에서 장사지를 참수하려고 하오. 게다가 장사지는 이미 자백을 했다고 하오.”
그건 무슨 뜻인가?
바로 장사지 입에서 이름이 나오는 사람들은 전부 죽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장사지는 어떤 이름을 자백했을까?
그건 모든 문무백관에게 치명적인 위험이었다. 시종일관 떨어지지 않는 다모클레스의 검이 그곳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았다.
방탁과 두회는 눈을 감더라도 내일의 국면을 예상할 수 있었다.
방계가 타협하지 않으면 장사지는 참수당한다.
이어서 이름들이 하나둘 불리며, 대신들이 연달아 단두대에 오를 것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황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를 성군이라고 외친 뒤, “신이 잘못했으니, 청컨대 폐하께서 용서해주십시오.”라고 말할 수밖에.
이어서 도살의 칼 아래서, 대신들에게 방계와 선을 명확하게 긋도록 압박할 것이고, 심지어 진상을 폭로하라는 압박을 받을 것이다.
그런 국면이 오게 되면 적어도 경성에서만큼은 황제의 철저한 승리가 된다. 수많은 대신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방계를 배반할 것이다.
황제는 ‘같이 손을 잡고 정적을 제거하자’, ‘자신을 따르면 살고, 자신을 거스르면 죽는다’라는 식의 수법을 쓸 것이다.
문무 대신들은 방계를 위해 황제와 죽기 살기로 싸울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부귀영화를 누리던 대신들은 하나같이 죽는 걸 두려워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조상까지 팔 자들이었다.
대녕 제국에 굽힐 줄 모르는 문신들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 많았지만 모두 방계에 의해 쫓겨나 버렸다.
굽힐 줄 모르는 청렴결백한 관리가 제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은자를 준다고 해도 싫다, 미녀를 준다고 해도 싫다, 그럼 그런 자를 내가 어찌 부패한 관리로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어찌 그런 자를 금은보화가 가득 실린 큰 배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그러니 내쫓을 수밖에.
방탁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이 바로 결전의 순간이군.”
“아버지, 어사망파(魚死網破: 물고기도 죽고 어망魚網도 터지다, 싸우는 쌍방이 함께 죽다.)격으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방검지의 말에 방탁이 물었다.
“네 말은 황제를 끌어내리고, 다른 사람을 황제로 세우란 말이냐?”
방검지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건 동의를 의미했다.
방탁이 다시 물었다.
“네 말은 군대를 통해 반란을 일으키자는 것이냐?”
방검지는 다시 묵인했다.
두회가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비록 지금 경성에 황제에 충성을 바치는 병력이 우리의 두 배를 넘지만 우리의 정예 병사만큼 뛰어나진 못하오. 일단 전투를 개시하면 우리 쪽 승산이 적지 않을 거요.”
방탁이 한참을 침묵했다.
황궁이 황제의 주무대인 만큼, 경성 또한 황제의 주무대였다. 그 점은 틀리지 않았다.
현재 경성 부근에서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병력은 6만 정도인 반면, 방계의 군대는 3만 정도였다.
군부 최대의 거물 원등은 이런 상황을 피해서 떠나면서 10여만 대군을 데리고 요동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일단 개전하면 방계에게 기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군대는 몹시 뛰어날 뿐 아니라, 병사들이 끊임없이 대녕 제국에 상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전을 한다는 건 아무리 듣기 좋게 말해도 진정한 모반이었다. 순조롭게 남의 둥지를 차지한다는 주군의 전략에는 부합되지 않았다.
방탁이 말했다.
“모든 군대에 명령을 내려라. 오늘 밤 갑주를 벗지 말고, 도검, 활과 화살을 준비해서 언제든지 전투를 개시할 수 있게 준비하라. 그중 군대 절반은 계획적으로 황궁에 접근시켜라.”
방검지가 떨리는 목소리가 답했다.
“예.”
두회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설령 움직인다 해도 반드시 군주 측근에 있는 간신을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해야 하오. 모든 죄를 이연정에게 뒤집어씌워야 하지, 직접 모반을 해서 황제를 죽여서는 안 되오.”
방탁도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과 나 두 사람은 전투를 개시할 권한이 없소. 검은 매를 날려 보내서 전하께 여쭤봐야 하오. 시간이 너무 긴박하긴 하군. 제때 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야겠소.”
검은 매는 더할 나위 없이 진귀한데 해외의 방계 제국이 공들여서 키운 것이라,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 동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밤.
더할 나위 없이 빠른 검은 매 한 마리가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동남 방향을 향해 날았다. 지구상의 모든 조류의 속도를 능가할 정도로 빨라서, 비행 속도는 시간당 600리가 넘었다.
쾅, 쾅, 쾅.
경성의 남문(南門)이 갑자기 열렸다.
그런 뒤 급박한 말발굽 소리가 어두운 밤의 고요함을 찢어놓았다. 그리고는 대군 한 무리가 끝도 없이 늘어져 경성에 진입했다.
영설 공주가 대군을 거느리고 경성에 입성한 것이다.
어두운 밤, 경성의 거리에는 정예 군대가 한 무리씩 연달아서 들어와서, 느리면서도 계획적으로 황궁 방향을 향해 모여들었다.
폭풍우가 오려고 하고 있었다.
경성의 어두운 밤공기가 답답하게 내리깔려서 숨도 쉴 수도 없을 정도였다.
내일이 바로 방계와 황제가 경성에서 결전을 벌이는 날이었다. 방계가 타협하든가, 아니면 바로 전쟁이 시작되면서 경성은 핏물이 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수많은 경성의 백성들은 또다시 이불 속에 몸을 숨기고 부들부들 떨었다.
황궁 안.
태자와 영설 공주가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황제가 말했다.
“내일의 국면은 몹시 험악할 것이고 거의 도박과도 같을 것이다. 방계가 이번 투쟁에서 실패하는 게 내키지 않는다면 곧바로 병력을 일으켜서 황궁을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군주의 측근에 있는 간신 엄당을 죽인다는 명분을 쓰겠지.”
태자가 갑옷 차림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 그런 상황이 되면, 아신, 반드시 피 흘려 싸워서 부황께서 안전하시도록 지켜드리겠습니다.”
영설은 아무 말 없이 보검을 움켜쥠으로써 자신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냈다.
황제가 말을 이었다.
“경성에 비록 우리의 병력이 더 많지만 방계의 해외 제국 함대가 시시각각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으니, 필요하다면 그들의 군대가 곧바로 천진(天津)으로 끊임없이 상륙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 개전하게 되면 우리의 승산이 크지 않다.”
영설은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황제가 방계와 악전고투하려고 하는데 군부의 거물은 한쪽으로 물러나 방관할 뿐이다.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대군은 너무 멀리 있어서, 애초에 제때 경성으로 돌아오지도 못한다.
그러니 내일 방계와 개전을 하면 몹시 험악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만약 그때가 되어서 우리가 정말로 진다면 태자, 너는 타협해야 한다. 너는 치욕을 견디더라도 황제에 등극해야 한다. 아무리 방계의 꼭두각시로 전락한다고 해도 말이다.”
“싫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못 하겠습니다! 아신, 반드시 부황과 생사를 함께 하겠습니다!”
“이건 짐의 뜻이다!”
태자가 곧바로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그럼 아신, 부황의 뜻을 거역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황께서는 아신에게 불충불효한 사람이 되라고 하지 마시옵소서. 적에게 타협하며 황제에 등극하는 일은 아신, 할 수 없습니다. 치욕을 견디는 일도, 아신은 할 수 없습니다.”
황제는 눈시울이 벌게져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끝까지 싸운다면 너도 죽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황위에 등극하는 건 다른 황족 구성원이 될 것이고. 분명 폐물이 황위에 오를 것이니, 그렇게 되면 우리 대녕 제국은 진정 멸망하는 셈이다.”
“만약 하늘이 대녕 제국을 멸망시키려 한다면 그럼 멸망하라고 하십시요. 부황의 말씀을 아신은 따를 수 없습니다.”
태자를 바라보는 황제의 눈빛은 자애로 가득 찼다.
이윽고 황제가 영설 공주를 향해 말했다.
“만약 정말로 전투에서 패하는 날이 오면 너는 나라를 따라 순국하지 말고, 백색성에 가서 두변을 찾아라.”
영설 공주가 머리를 조아렸다.
“아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녀는 생사를 함께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경성의 전투에서 패배한다면 이연정, 영종오 등은 황제와 태자, 황후를 데리고 함께 백색성으로 도망친다고 이미 결정한 상태였다. 그럴 필요가 있다면 심지어 곧바로 안남 왕국으로 들어갈 것이다.
황제가 자신의 아들 딸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다들 착한 아이들이로구나. 가서 자거라! 내일이면 바로 상대방의 패를 보게 될 것이다. 악전고투가 될 테니, 정신을 잘 가다듬어야 한다!”
방탁의 방부(方府) 안.
잘생기긴 했지만 안색이 창백한 청년 하나가 금황색 왕포를 입고 있었다.
그가 바로 연왕(燕王) 영충윤(寧充鋆)으로, 올해 스물셋이었다.
연왕의 봉지는 경성 부근으로, 몸이 허약한 조카를 아낀 천윤제가 대부분의 시간 동안 경성에서 요양을 하도록 했다.
선대 연왕도 천윤제와 몹시 가까운 관계였다. 하지만 고작 서른 살도 안 돼서 선대 연왕은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러니 황제가 더욱 영충윤을 총애해서, 한동안 영충윤이 입궁해서 황제를 만난 횟수가 태자보다 더 많을 정도였다.
지금, 그 연왕이 방부에 불려들어갔다는 것은 그 뜻이 자명했다.
정말로 전쟁이 시작되어서 방계가 이기면 천윤제를 살려둘 수 없었다. 태자가 만약 타협하는 걸 원한다면 그를 황제에 등극시키면 그만이지만, 태자가 타협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면 눈앞의 연왕이 등극하도록 지지하겠다는 게 방계의 뜻이었다.
방탁은 지나치게 잘생긴 연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연왕 전하께서는 저희가 당신을 찾아온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연왕이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으니, 탁 옹은 안심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