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72화 (372/648)

372장: 무작위 참수

다음날, 날이 밝았다.

황궁 안에서 2만 대군이 적군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황궁 밖에서도 수만 대군이 빼곡하게 황궁을 둘러싸고 펼쳐져 있었다.

문무 대신이 끝도 없이 늘어서서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댕, 댕, 댕.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황제와 방계의 결전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이기면 황권이 궐기할 것이고, 지면 황제가 붕어하며 새로운 황제가 등극할 것이다.

날은 이미 밝았지만 경성의 거리에는 한가하게 길을 걷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현재 경성의 백성들은 너무 예민해서, 바람이 불어서 나는 풀 소리까지 즉시 알아차릴 정도였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잔뜩 경계하고 있는 작은 동물들 같다고나 할까.

광활한 거리에는 완전 무장한 병사들뿐이었고, 황궁 주변 곳곳에는 임시 방어선이 배치되어 있었다.

많은 집이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대문을 열면 그 안에 병사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병사들은 기본적으로 은색 갑옷을 입고, 붉은색 수건을 두르고 있었다.

방계에 충성을 바치는 병사들은 다들 이런저런 방법으로 경성에 침투해서는 완전 무장을 하고, 획일적으로 가면을 착용했으며, 갑옷도 검은색으로 칠했다.

한눈에 봐도 방계 군대가 한 차원 이상 뛰어남을 명확히 느낄 수 있었다.

양쪽 군대는 뚜렷하게 나뉘었다. 황궁을 경계로 한쪽은 동에, 한쪽은 서쪽에 자리 잡았다.

황궁 성벽 안.

이연정은 시위군을 거느리고 은색 갑옷을 입은 채 질서정연하게 황궁 성벽 위에 서 있었다. 손에 활을 든 채, 냉혹한 얼굴로 성 밖의 흑갑(黑甲) 대군을 노려봤다.

일촉즉발의 형세였다.

문무 대신 수백 명이 다리를 덜덜 떨면서 황궁 안으로 들어섰다.

지금 황제는 여전히 대전에 오지 않고 서재 안에 있었다.

“신, 두회, 폐하를 뵈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두회가 머리를 조아렸다.

황제는 두변의 아비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두 경, 어째서인가? 자네는 재능과 학문, 또 대단한 수단을 가고 있으니, 짐의 밑에서도 높은 자리에 앉은 신하가 될 수 있었다. 하물며 자네에게는 극도로 뛰어난 아들까지 있다. 대녕 제국에 충성을 바치면 너희 두씨 가문은 제국 제일의 권세가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자네는 방계 쪽에서 그런 지위를 누리지는 못하지 않나.”

두회가 땅에 머리를 찧으며 말했다.

“폐하, 승자는 왕이 되고 패자는 도적이 됩니다. 총명한 사람은 승리자 쪽에 서야 합니다.”

황제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두회가 말을 이었다.

“폐하께서는 바다에 가득한 함대를 보지 못하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군대를 보지 못하셨습니다. 또 산더미 같은 황금과 백은(白銀), 강철, 비금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폐하께서는 대녕 제국의 경내에 더할 나위 없이 진귀한 철이 있다는 걸 상상하실 수도 없을 겁니다. 한데 그 대륙에는 허리만 굽혀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대녕 제국에 철보다 더 귀한 황금이 있는 걸 상상하실 수 없을 겁니다. 한데 그곳의 땅에는 아무 곳에나 가도 두세 근이나 되는 금덩이를 볼 수 있습니다. 이건 역사의 수레바퀴라서 폐하께서는 막지 못할 겁니다.”

“기왕 그렇다면 자네의 그 주군은 어째서 머리를 감추고,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주군께서는 어쩌면 더 중요한 사명이 있으시겠지요. 하지만 늠름한 자태를 보이며, 천하에 위엄을 떨치는 소군의 모습만으로도 저희가 경모하여 부복하고, 평생 충성을 바치기에 충분합니다.”

“하하!”

황제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폐하, 포기하십시오!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가면 좋겠습니까? 이미 죽은 사람들은 죽은 셈 치고, 장사지는 풀어주십시오. 그런 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치면 좋지 않습니까.”

“짐은 여전히 꼭두각시가 되어서 조회에 들지도 못하며, 후궁 안에서만 머물고, 짐의 성지가 궁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말인가?”

“그렇게 하면 적어도 평화를 얻고, 제국이 그나마 온전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폐하, 저는 두변의 승리가 폐하께 크나큰 자신감을 가져다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의기소침해진 남자가 갑자기 극약 한 첩을 복용하고는 한순간 호랑이나 늑대처럼 사납게 변한 상황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 극약을 먹는 건 이후의 목숨을 대가로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황제는 여전히 대꾸를 하지 않았다.

“북명검파는 이미 대종사 두 명을 보내 두변을 처리하러 갔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담이 이미 20만 대군을 거느리고 개선해서 회군하고 있습니다. 곧 여여해는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친히 출정할 겁니다. 두변은 어떻게 해도 죽을 길밖에 없고, 멸망할 운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괘씸한 건 패배하는 게 아니라, 허구적인 승리입니다. 그런 승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을 파멸로 데리고 갈 뿐입니다.

두변이 저번에 대승을 거둔 건 심지어 회광반조(回光返照: 태양이 지기 직전에 잠시 빛나다, 죽을 무렵에 잠깐 정신이 맑아지다.)보다 더 고약할 뿐입니다.

폐하, 모험하지 마시고, 도박하지 마십시오. 폐하께서는 더는 저희를 압박하지 못하십니다. 저희의 한계를 넘으면 저희도 전쟁을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이기지 못하실 겁니다. 폐하, 황후, 태자, 공주까지 온전하지 못할 것이고 다른 황족이 황위에 등극할 겁니다. 그건 최악의 국면이니 저희도, 또 당신도 그런 상황을 보고 싶지 않을 겁니다.”

황제가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두회, 돌아가거라!”

두회가 벌떡 일어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폐하, 모험하지 마십시오. 두변은 파멸할 운명입니다. 게다가 오늘의 전투에서도 당신은 이기지 못하실 겁니다. 모험하지 마십시오! 일단 개전하고 검이 한 번 떨어지면 다시는 거두어들일 수 없습니다. 미리 일러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황제가 두회를 노려보며 말했다.

“짐은 죽는 게 두렵지 않으니, 너희는 죽음을 가지고 나를 위협하지 말아라. 제국을 위해서 두변도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황제인 내가 숨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

두회는 서늘해진 눈빛으로 황제를 노려보고는 말했다.

“폐하께서 알아서 하시지요!”

그리고는 바로 서재에서 물러났다.

대전 앞의 광장.

문무 대신 수백 명이 질서정연하게 광장에 가득 무릎 꿇고 있었다.

가장 앞에서 무릎 꿇고 있는 건 내각 대신 장사지의 일족 수백 명이었다.

거의 모든 대신이 모두 한 방향을 바라보며 두회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대신이 내심 기도하고 있었다.

‘황제 폐하, 빨리 타협하십시오. 빨리 타협해야 합니다.’

잠시 후, 내각 대신 두회가 나왔다.

모든 문무 대신이 부모를 본 아이처럼 즉시 목을 길게 빼서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온몸이 싸늘해졌다. 두회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한 걸 보니, 담판에 실패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때 이연정이 물었다.

“수보 방탁 대인은 어디 계십니까? 어째서 아직 안 오셨습니까?”

두회가 말했다.

“내가 있으면 되오!”

방탁의 아들 방검지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있어도 됩니다!”

그런 뒤 방검지가 갑자기 일어나서 계단을 하나씩 걸어 올라갔다. 그는 아래에 빼곡하게 꿇어앉아 있는 문무 대신을 보면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연정, 장사지 대인을 풀어주면 모든 걸 만회할 수 있소. 내가 책임을 지겠소. 하지만 당신이 감히 검으로 베어버리겠다면 그건 전쟁을 의미하고, 경성이 피로 강물을 이루는 걸 의미하오. 또한…….”

방검지는 말을 끝내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몹시 명확했다. 황제의 수급이 땅에 떨어진다는 것을.

방검지가 다시 한 번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이연정, 당신이 감히 장사지 대인을 죽인다면 그건 전쟁을…….”

촤락.

이연정의 손이 올라가는가 싶더니 곧 칼과 함께 떨어졌다.

내각 대신 장사지의 수급이 곧바로 굴러떨어지며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연정은 방검지를 향해 ‘네놈이 어쩔 테냐?’라는 듯이 손을 한번 펼쳐 보였다.

그 순간 방검지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

‘비, 빌어먹을 이연정,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을 죽여? 내 뺨을 이리 내려쳐?’

“이연정, 네가 감히!”

방검지가 목청이 찢어져라 외쳤다.

동시에 이연정이 힘차게 손을 휘저었다.

솩, 솩, 솩, 솩.

무사 수백 명의 손이 칼과 함께 올라갔고, 내각 대신 장사지의 일족이 모조리 죽어버렸다.

방검지는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이연정이 담담하게 말했다.

“전쟁을 한다고 하지 않았소?”

문무 대신 수백 명도 귀를 쫑긋 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맞아. 방검지가 말한 전쟁은? 왜 아무 소리도 안 들리지?’

이어서 이연정이 장사지의 자백서를 꺼내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내가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다 역모 사건에 참여한 자들이니, 자신이 자발적으로 일어나시오! 병부시랑, 도성윤!”

계단 아래에 무릎을 꿇은 대신 한 명이 순간 몸을 흠칫 떨더니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그는 두회를 쳐다보고, 또 방검지를 쳐다봤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전쟁을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눈짓을 보낼 겨를도 없었다.

늑대처럼 사나운 동창 무사 여러 명이 단숨에 그 병부시랑을 잡아끌었다.

“대리시경(大理寺卿),노문택!”

또 3품 고위 관원이었다. 그는 두회를 바라보고 또 방검지를 바라봤다.

‘당신들이 말한 전쟁은요? 빨리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고요!’

“감찰원(監察院) 우도어사(右都御史), 목천은!.”

그도 2품 고관이었다. 목천은이 거의 목청이 찢어질 듯한 소리로 방검지와 두회에게 소리쳤다.

“당신들이 말한 전쟁은 어디 있소? 어서 전쟁을…….”

하지만 조정의 고위 관리 세 명은 곧바로 끌려갔다.

이연정이 성지를 꺼내 읽었다.

“황제가 명하노라, 도성윤, 노문택, 목천은 등은 군주의 은혜를 저버리고, 법에 어긋나는 역모를 저질렀으니 즉각 참수에 처하라!”

이어서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동창 무사들이 그 세 명을 바닥에 눌러놓고 목을 베어버렸다.

솩, 솩, 솩.

또 수급 세 개가 땅에 굴러떨어지며 피를 마구 뿜었다.

그 순간 장내에 악취가 진동했다. 누군가가 놀라서 오줌을 지린 모양이었다.

이건 너무 공포스러웠다. 아무런 규칙도 없이 잡아다가 목을 치다니.

먼저 말단 관리를 죽인 다음 고위 관리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먼저 병부를 죽인 다음에 호부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무작위 아닌가.

그건 다음번에는 누구든 이름이 불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첫 번째 무리를 죽인 뒤, 이연정이 또다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무리는 대신 네 명인데, 여전히 규칙이라곤 없어서 1품부터 3품 관리까지 전부 들어있었다.

대신 네 명은 잡혀갈 때부터 온몸에 맥이 풀리면서 오줌까지 싸버렸다.

“죽여라.”

이연정의 손이 힘차게 떨어졌다.

솩, 솩, 솩.

“방탁, 이 몰염치한 늙은이야!”

어떤 중년 대신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이 몸이 곧 죽게 생겼는데도 아직까지 나타나지도 않아? 네가 말한 전쟁은?

“잠깐!”

이연정이 급히 멈추라고 소리쳤다.

망나니의 칼이 그 대신의 목덜미를 살짝 그으면서 무참히 멈춰버렸다.

이연정이 그 사람 앞에 가서 물었다.

“무엇이라 했소?”

그 중년 대신이 말했다.

“나, 나는 방탁 이 몰염치한 늙은이라고 말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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