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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무제-388화 (388/648)

388장: 이욕에 눈이 멀어

그날 밤, 긴 여정에 지친 영설 공주가 영주부에 진입해서 선성후 육전을 찾아갔다.

육전은 거짓 웃음을 지은 채, 영설 공주를 보며 아무런 예를 행할 뜻을 보이지 않았다.

“공주 전하께서는 제가 진짜로 병이 났는지 보러 오셨습니까?”

선성후 육전은 냉소할 뿐, 아픈 척을 하는 것도 귀찮아했다.

“그것도 아니면 제 가족이 아직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고 싶으신 겁니까?”

영설 공주는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후배 된 사람으로서의 예를 갖춘 뒤 말했다.

“영설이 선성후를 뵙습니다.”

선성후가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십시오. 한데 말씀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첫 번째, 지금 선성후가 남하해서 두변을 지원하게 만들기란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기왕 당신이 이미 병이 났다고 했으니, 그럼 끝까지 병이 난 척을 하시지요. 절대로 남에게 충동질 당하지 말고, 이익에 눈이 가려서 이용당하며 남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일을 하지 마세요. 하늘에서는 공연히 떡이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선성후 육전이 서늘해진 눈빛으로 말했다.

“공주 전하,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도 떡을 하나 먹지 않았습니까? 무려 30만 냥이나 되는 떡입니다.”

얼마나 악랄한 말인가.

그 30만 냥은 황제가 주머니를 턴 돈이었다. 심지어 영설 공주가 거느린 신군의 군비까지 빼돌려서 만들어준 돈이었다.

그 돈을 그대로 꿀꺽 했으면서, 이렇게 황제를 비꼬는 말까지 내뱉을 줄이야.

선성후가 비웃었다.

“정말이지 혼군이로군요. 내 가족을 잡으면 나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까? 대장부가 어찌 아내와 자식을 못 얻을까 걱정하겠습니까?”

영설 공주가 냉랭하게 말했다.

“이욕에 눈이 멀었군요. 선성후에게 경고하겠습니다. 당신이 정말 남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군대를 거느리고 백색성을 공격한다면 그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손님을 배웅해라!”

선성후가 냉랭한 목소리로 영설 공주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이윽고 그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영설 공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네가 지나치게 무공이 고강하지 않았다면, 방검지가 너를 눈독 들이지 않았다면, 이 몸이 오늘 너를 강제로 잡아둬서 무참히 맛을 보았을 것이다. 황제의 딸이자 천하제일 미녀라고 불리는 너를 보고 천하에 어떤 영웅호걸이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을까?’

다음 날, 선성후 육전이 두쟁을 찾아가서 물었다.

“어째서 원천조 제독의 대군이 백색성을 공격하러 가지 않는 거요?”

두쟁이 선성후 육전을 바라보며 냉랭하게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인 것 같습니까?”

선성후 육전이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원천조는 이미 살이 쪘습니다. 우리 두가는 그가 더 살찌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선성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두가 수중에 군대가 없어서 그 때문에 당신을 고른 겁니다. 당신이 원하면 공격하러 가고, 원치 않으면 내가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셈 치면 그만입니다.”

선성후가 한순간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반나절 뒤, 이욕에 눈이 먼 선성후가 대군을 출동시켜서 남하했다. 영주부에서 광서 경내로 진입한 다음, 백색성을 향해 전진했다.

부주성(富州城).

이곳은 백색성과 300여 리, 대염 왕성과 400리 거리에 있으니, 마침 두 성의 중간에 있었다.

몇 달 전, 여완완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백색성을 공격했다가 대패를 거두고 돌아가야 했다. 여여룡 부대의 3만 대군은 전멸하다시피 했으며, 최후에 흩어진 병사들을 모았는데 5, 6천 명도 안 되는 인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필경 여여해의 친동생이자 대염 왕국의 국공(國公)이었다.

여여해는 여여룡에 대한 처벌로, 태형 백 대를 내리고 국공에서 군공(郡公)으로 작위를 낮추며, 3만 대군을 거느리고 부주성에 진수하라고 명했다.

부주성은 백색성과 대염 왕성 사이에 자리한 탓에, 전략적으로 몹시 중요한 위치였다. 하지만 주둔하는 병사 수는 고작 3만 대군이었다. 모든 이가 두변이 애초에 백색성에서 진격해서 대염 왕국의 영지를 공격할 여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설령 두변의 대군이 병력을 총동원한다 해도 부주성의 3만 대군은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충분히 며칠을 버틸 수 있었다.

부주성을 지키는 관직으로 강등된 뒤, 여여룡은 매일 폭음하고 툭하면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두변, 이 환관 놈아. 두고 봐라, 두고 봐!”

“대왕은 언제 출병하는 거냐? 난 이런 개 같은 곳에서 웅크리며 있고 싶지 않다! 나는 병사들을 데리고 싸우러 갈 것이야. 나는 두변을 없애러 갈 거라고!”

“대왕께서는 계속 뭘 기다리는 거냐. 40여만 대군이 이미 집결했는데 어째서 아직도 두변, 그 환관 놈을 없애러 출병하지 않는 거냐고!”

“참으로 원망스럽구나. 언제쯤이 되어서야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두변, 그 환관 놈을 천 번, 만 번 찌르며, 능지처참을 할 수 있냐고!”

여여룡은 욕지거리를 하는 동시에 미친 듯이 술을 따랐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밖에서 스산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여룡은 깜짝 놀랐다.

‘저 종소리는 적군이 기습하러 올 때만 울리는 종소리잖아. 지금 무슨 적이 있다고? 두변, 그 환관 놈은 아직도 소굴 안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을 텐데?’

“어떤 놈이 함부로 종을 치느냐? 그놈을 쳐라.”

여여룡이 크게 소리 질렀다.

바로 그때, 무사 하나가 쏜살같이 달려 들어와서 큰소리로 외쳤다.

“대원수! 두변이 군대를 거느리고 부주성을 공격하러 왔습니다.”

여여룡은 그 말을 듣자 놀라서 얼이 빠졌다.

‘두변, 이놈이 미쳤나? 그놈에게 군대가 얼마나 있다고?

백색성에서 성을 굳게 지키지 않고 먼저 출격했다고?

그놈이 죽기를 자초한 건가? 머리가 이상해졌어?’

이어서 여여룡이 대단히 기뻐하며 말했다.

“북을 쳐서 장수들을 소집해라. 오늘 내가 성을 굳게 지키면서 두변, 환관 놈과 생사를 건 사투를 벌여서 일전의 치욕을 설욕하겠다.”

쾅, 쾅, 쾅, 쾅.

순식간에 부주성 안에서 전투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3만 대군이 집결하기 시작해서 성벽 위로 올랐다. 돌덩이, 굴림 나무, 끓는 기름 등 모든 물자를 준비해서 두변이 공성전을 펼치는 걸 맞이하려고 했다.

꼬박 한 시진 뒤.

두변의 5만 대군이 그제야 부주성 밑에 도착했다.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대군이 부주성을 사방으로 포위했다.

여여룡이 그걸 보더니 미친 듯이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하하! 두변, 이 멍청한 놈아. 이 배움도 없고, 재주도 없는 소환관 놈 같으니라고. 네가 병법이란 걸 아냐? 20만도 아니고, 30만도 아닌 겨우 군대 5만을 데리고 와? 우리 여씨는 일전에 10만 대군을 이끌고서도 백색성을 차마 포위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면 도리어 병력을 분산시킨단 말이다. 한데 너는 꼴랑 5만 대군을 가지고 우리 부주성을 사방으로 포위해?

네 포위망이 너무 성겨서 코끼리도 파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멍청한 두변 놈아, 너처럼 싸우는 전투도 있더냐?”

여여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부주성은 비록 크지 않지만 둘레가 십여 리나 되었다. 두변의 고작 5만 군대로 온 성을 사방에서 포위하면 병사 간의 간격이 몹시 성길 수밖에 없게 된다.

아주 모자란 장군만이 이런 포위망을 이용할 것이다.

머리를 좀 쓰는 장군이라면 병력을 모아서 성벽 한 면이나 두 면에 공격을 가할 것이다.

여여해는 여전히 취기에서 깨지 못한 상태로, 두변의 성긴 포위 진형을 보고서는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다. 그러다가 방광이 찬 느낌이 들자 바지를 열고 물건을 꺼낸 뒤, 두변이 있는 방향으로 겨누고 오줌을 갈겼다. 그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두변, 너처럼 성긴 포위망이면 이 몸이 오줌 한 번만 싸도 무너지겠구나!

이 몸이 맹세하마. 닷새 안에 네가 내 부주성의 성벽 하나라도 함락시킬 수 있으면 이 몸이 네 손자다.

물론 닷새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길어야 사흘이면 대왕의 기병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때 네 대군이 전멸당할 일만을 기다리거라!

두변, 너무 가소로워서 죽을 지경이구나. 넌 네 불알이 거세되면서 설마 머리까지 거세되어 버린 게냐?”

여여룡이 큰소리로 웃자, 성벽 위의 수만 대군 역시 그를 따라 웃었다.

그들이 보기에 두변은 확실히 몹시 가소로워 보였다. 고작 몇만 명만으로 자발적으로 여씨 대염 왕국의 4, 50만 대군을 공격하려고 하다니.

게다가 5만 군대를 가지고 뜻밖에 포위 전술을 쓸 줄이야.

술에 취한 여여룡이 큰소리로 웃었다.

“형제들이여, 다들 물건을 꺼내라. 우리가 오줌으로 두변 대인의 포위망을 무너뜨리자꾸나.”

그 말을 듣자, 성벽 위에 있던 여씨의 3만 대군이 일제히 허리띠를 풀고, 물건을 꺼내서 성벽 아래를 대고 오줌을 갈겼다.

그 장면은 확실히 장관이었다.

물줄기 몇만 개가 정말로 두변의 포위망을 무너뜨릴 기세였다.

관건은 두변이 성을 공격하려고 하면서도 뜻밖에 투석기 한 대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너희가 정말 성을 공격하러 온 거 맞냐? 아니면 장난치러 온 거냐?’

여여룡이 두변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웃었다.

“두변, 이제 성을 공격할 때가 되지 않았냐? 와라, 이 할아비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그때 두변이 파멸의 화살 한 대를 꺼내서 그 안에 암흑 물질 1밀리미터를 담았다.

지옥불로 화살에 불을 붙이자, 몇 초 뒤에 암흑 물질은 색깔이 변해서 붉은색이 된 뒤, 다시 흰색으로 변했다.

슉.

두변이 힘차게 활을 쏘았다.

날카로운 화살이 우아하게 호선을 그리면서 성벽 위를 향해 날아갔다.

장장 450미터 거리로, 두변 같은 고수가 비금 활을 사용해서 쏘아야만 다다를 수 있는 거리였다.

여여룡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화살 한 자루를 본 순간, 큰소리로 웃었다.

“네가 뜻밖에 화살로 성을 공격하겠다고? 왜, 네가 이 몸 여여룡에게 큰 웃음을 준 뒤에 내 첩실 자리라도 차지하려는 속셈이냐?”

퍽!

두변의 화살이 여여룡의 전방 3미터에 떨어지더니 성벽의 벽돌에 박혀 버렸다.

여여룡은 바지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서, 필사적으로 오줌 몇 방울을 짜내 두변의 화살을 적시려고 했다.

째깍째깍!

하지만 여여룡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위기감을 느끼고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펑!

하늘을 찌를 듯한 지옥의 불길이 확 타올랐다.

그런 뒤, 모든 게 재가 되어 사라졌다.

모든 게 너무나 빨리 일어나서 여여룡은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곧바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녹색 지옥 불길이 터지는 순간, 직경 100미터 안의 모든 것이 전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여여룡과 함께 여씨의 병사 천 명 가까이가 사라졌다.

그 장면에 모든 이가 경악하고 말았다. 두변의 대군을 포함해서 말이다.

사실 두변이 부주성 전체를 포위하라고 명령을 내릴 때, 그의 휘하 많은 병사가 마음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그중에는 말단 군관이 된 이사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병법은 몰랐지만 이렇게 성글게 포위망을 구축해봤자 전혀 소용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는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명령을 수행하면서도 속으로는 투덜거렸다.

‘이 두변 대인이 머저리는 아니겠지? 뜻밖에 저렇게 저급한 잘못을 하나? 설마 나만도 못한 사람이 아닐까? 장수가 무능하면 천군을 연루해서 죽게 만든다고 하는데, 저자가 겉만 번드르르하고 속은 형편없는 사람이라서 이 몸을 죽게 만들면 안 된다고.’

하지만 두변은 놀라운 화살을 쏘았고, 그런 뒤 그 화살에서 놀라운 녹색 화염이 터져 나왔다.

그 장면을 본 순간, 이사조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털썩 무릎을 꿇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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