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90화 (390/648)

390장: 존엄?

두변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포로 1만 5천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포로는 병기를 내려놓아라.”

병기를 곧 바닥에 내려놓은 후 죄다 몰수해갔다.

두변이 또 말했다.

“모든 포로는 갑옷을 벗어라.”

여씨의 포로 1만 5천 명이 갑옷을 전부 벗어서 나란히 바닥에 두었다.

“모든 포로는 입고 있는 모든 옷을 벗어라.”

그 말에 포로 1만여 명이 화들짝 놀랐다.

이건 무슨 뜻이지?

이건 너무 인격을 모독하는 거 아냐?

두변이 말했다.

“나는 너희를 모욕할 뜻이 없다. 전투가 곧 다시 시작될 텐데, 너희가 우리 등 뒤에서 일격을 가할까 봐 걱정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마 너희 전부를 죽이지 못하겠으니, 너희의 옷을 벗기는 것이다. 아무래도 엉덩이를 내놓게 되면 내심 치욕스러움과 열등감에, 전투를 하려는 욕구가 약해지니 말이다.”

그 순간 군관 하나가 물었다.

“두변 대인, 우리가 이미 투항했는데 왜 우리에게 수모를 주시는 겁니까?”

슉.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즉시 화살 한 자루가 날아와서 군관의 머리를 꿰뚫었다.

“내가 수 셋을 거꾸로 세겠다. 전부 알아서 발가벗은 뒤 바닥에 무릎 꿇어라. 그렇지 않으면 가차 없이 죽여버리겠다!”

“셋, 둘, 하나…….”

순식간에 포로 1만 5천 명이 더할 나위 없이 수치스럽게 자신의 옷을 벗었다.

존엄?

전장에서는 존엄성 같은 건 없었다.

잠시 후, 광장에 포로 1만여 명이 전부 발가벗은 채, 내심 원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두변의 명령에 모든 옷은 이미 옮겨놓은 뒤였다.

두변이 말했다.

“내게 충성을 바치고 싶은 사람은 일어서라.”

아무도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두변이 기적을 펼치며 파멸의 화살을 쏘았지만 포로들은 내심 그 화살은 확실히 한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여여해 대왕에게는 수십만 대군이 있고 영토 또한 넓으니, 두변이 잠시 이번 전투에서 이겼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전투에서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당연히 투항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처음부터 여씨의 병사들이었고, 여씨가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실패자의 편에 서고 싶지 않았고, 하물며 옷을 벗기는 수모를 주었으니 더욱더 두변에게 원한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두변이 말했다.

“곧 나는 서남 전체를 쓸어버려서 여여해를 없애버릴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빠르든 늦든 다 내게 충성을 바쳐야 되겠지. 그리고 성 안에 있는 백성들이여, 너희가 여씨의 백성이 된 지 오래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너희도 미래에 나 두변의 백성이 될 운명이고, 여씨는 멸망할 운명이다. 지금 나는 너희에게 다른 요구는 없다. 온 성의 백성들이 우리 군대가 전투하는 걸 방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너희의 양식과 물자를 빼앗지도 않을 것이고, 너희에게 참전하라고 압박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서로가 각자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주성의 백성들은 조용히 제 집 안에서 담장과 벽을 사이에 두고 두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두변이 계속 큰소리로 말했다.

“부주성의 백성들이여, 너희에게 요구는 단 하나뿐이다. 며칠 동안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오지 말아라. 나는 매일 병사들을 시켜 큰 물통을 너희 집 문 입구에 하나씩 놓아둘 것이다. 만약 식량이 끊겼다면 문밖에 패(牌) 하나를 걸어두고, 그 위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라. 사람을 보내 집 안을 조사한 후 식량이 끊긴 게 확실하다면 양식을 보내줄 것이다.

우리 군대가 입성할 때, 너희더러 북을 치며 환호하거나 거리 양쪽에서 대군을 맞이하라고 하지 않겠다. 하지만 너희가 우리 군대가 작업하는 것을 절대로 방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사람이든 절대로 문밖으로 한 걸음도 나서서는 안 된다. 여씨의 멸망은 예정되어 있고, 너희가 내 백성들이 되는 것도 예정되어 있으니, 우리가 평온하게 이 시기를 보내기를 바란다.”

“퉤!”

갑자기 침 뱉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민가 안에서 들린 젊은이의 소리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겠지만 무공이 낮지 않은 사람들 귀에는 뚜렷하게 들려왔다.

두변은 그 소리에 놀랐다.

내 요구사항이 크다고?

양식을 뺏지도 않고, 여인을 뺏지도 않고, 백성들의 이익은 조금도 침해하지도 않을 것이며, 단 하나의 요구가 있다면 당분간 문밖을 나서지 말라는 것인데, 그 요구가 크다고?

침까지 뱉을 정도로?

두변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여씨의 포로 1만 5천 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는? 투항을 원하는 사람은 일어서라. 나는 그들을 치안대로 조직해서 성 안 치안을 맡길 것이다. 특히 포로의 치안을 다룰 테고, 급료를 받는다.”

하지만 포로 1만 5천 명은 미동도 하지 않고 고개 숙여 바닥만 보았다.

그저 언짢음이 가득한 원망을 느낄 뿐이었다. ‘우리 여여해 대왕의 대군이 오시면, 두변 너희는 모조리 죽일 것이다!’ 하는 원망.

“좋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이어서 두변이 소리가 난 민가를 가리키며 명령을 내렸다.

“침을 뱉은 사람을 잡아와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사들이 사납게 집 안으로 들어가서 열일곱 소년을 잡아왔다.

그 소년을 따라 가족도 함께 달려 나와서는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이 애를 놔주십시오. 이 애는 겨우 열일곱입니다.”

무사들이 그 소년을 바닥에 눌러놓았는데 소년은 여전히 고집스럽게 이를 악물었다.

“너는 어째서 내게 침을 뱉었지?”

“너는 득의양양하지 말아라. 대왕께서 조만간 쳐들어와서 네 군대를 모조리 죽여버릴 거다. 그때 나도 군대에 가입해서 너희 대녕 개새끼들을 전부 죽여버릴 거다!”

솩!

두변이 검을 한 번 베어서 그 소년의 목을 잘랐다.

“일가를 모두 죽여라.”

두변의 명령이 떨어지고, 소년의 일가 모두가 참수당했다.

두변이 다시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너희에게 묻겠다. 내게 충성을 바치길 원하는 사람이 있나? 치안대의 일원이 되어서 성안의 질서를 유지하고, 포로들을 관리할 사람이 있나? 내 군대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너희 포로 1만여 명을 관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포로들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게다가 내심 원한이 가득 차서, 여여해의 수십만 대군이 나를 천 번, 만 번 찢어버리고, 내 군대를 모조리 죽여버리기를 기대한다?

심지어 너희는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겠지. 여여해의 수십만 대군이 나와 결전을 벌일 때, 등 뒤에서 내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해서, 오늘 너희에게 수모를 준 원한을 갚겠다고 말이야?”

포로 1만여 명은 여전히 지면을 바라보며 냉담하게 반항했다.

그러했다. 그건 정말로 그들의 생각이었다. 무릎 꿇고 투항해서 살아남긴 했지만, 살아남아서 다행이라는 마음은 잠시, 이어서 수치심과 원망이 치솟았다.

두변이 포로 1만 5천 명을 보며 말했다.

“나는 너희를 보호하고 싶지만 그보다 먼저 내 군대를 보호해야 한다. 곧 여씨 수십만 대군과 결전을 치러야 하는데, 너희 포로들이 전투가 벌어질 때 난동을 벌이고 배후에서 내 군대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까봐 걱정된다.

그러니 미안하구나. 나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 나는 정말로 너희 목숨을 보전하고 싶었지만 성공하지 못했구나!”

두변의 온화한 목소리에 포로 1만 5천 명이 창백해진 얼굴로 온몸을 덜덜 떨었다.

“군대의 포로를 전부 죽여버려라!”

말을 끝낸 뒤, 두변은 거대 늑대를 타고 그 자리를 떠났다.

순식간에 뒤에서 큰소리로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포로들이 통곡의 눈물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두변 대인, 용서해주십시오. 용서해주십시오.”

“투항하길 원합니다!”

“대인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하지만 두변의 등 뒤로 핏빛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절세 지하성 군단과 성화군단은 여씨 포로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이것은 전쟁이니, 자신들에게는 인자하게 굴 권한조차 없었다.

여씨의 대염 왕성.

국왕 여여해는 서역 성화교군의 통솔자 아포사를 접대하고 있었다.

여여해가 말했다.

“장군, 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오는 길은 순조로웠소?”

성화교 5만 명의 통솔자 아포사가 말했다.

“반년 전, 당신이 병력을 일으키며 모반을 했을 때, 교주 폐하께서는 이미 원정군을 조직해서 당신의 위대한 사업을 지원하기로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보름의 시간 동안 3만 명을 집결시켜서 1만여 리를 행군하며, 여러 왕국을 지나온 끝에 전부 우리의 영토가 됐습니다. 충분한 보급도 얻고 병사도 2만이나 보충했지요. 유일하게 남은 면(緬) 왕국도 차마 우리 병력의 기세를 막지 못했으니, 오는 길은 몹시 순조로웠습니다.”

아포사는 여여해를 공경하는 모습 대신, 곧바로 동등한 자격으로 대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여해와 똑같이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다가, 나중에는 칼 하나를 달라고 하더니 곧바로 고기를 잘라서 먹었다.

여여해는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저자가 끌고 온 5만 대군은 중서아(中西亞) 각 왕국에서 병사들을 소집해서 만든 것이라는 의민데?

아포사가 말을 이었다.

“국왕, 당신의 적은 비천한 거세자라고 들었습니다. 우리 쪽에서 거세자는 불길하고 더럽습니다. 주인이 식사를 할 때 그런 자들은 심지어 탁자 옆에 서 있을 자격도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여여해 곁에 있던 환관 하나가 본능적으로 반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여여해가 말했다.

“그렇소. 게다가 그자는 어린 환관이오. 뛰어난 군대를 얻게 된 뒤 성 하나를 점령했소.”

“그 성은 당신의 왕성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대략 내 왕성의 4분의 1에 불과하오.”

“그 두변이란 이름의 비천한 거세자는 군대를 얼마나 보유했습니까?”

“8, 9만 정도요. 그중 6만은 신병이오.”

아포사가 포도주를 들고 벌컥 마시며 말했다.

“맙소사. 그런 적을 상대하는데 40만 대군이나 집결한 겁니까? 동방세계는 그 정도로 약한 겁니까? 황인종의 군대는 그 정도로 가소롭습니까? 당신들 동방세계의 황인종은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본 지가 너무 오래된 나머지, 곧 전 세계의 선진 문명에 버림받을 겁니다. 국왕, 다행히도 내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으니, 당신은 이제야 선진 문명 세계의 군대와 전투 방식을 보게 될 겁니다.”

여여해는 얼굴을 크게 실룩였다.

성화교의 세력이 지나치게 방대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많이 지원해주는 곳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아포사를 참수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아포사가 말했다.

“국왕, 동방세계는 애초에 무엇이 전쟁인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너무 낙후되었습니다.”

술 한잔을 벌컥 마신 아포사가 말을 이었다.

“국왕, 전쟁의 형식이 이미 바뀌었습니다. 당신들은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지금 전쟁의 승부를 결정짓는 건 더 이상 활이나 도검, 심지어 기병도 아니고, 육중하기만 할 뿐 정확도가 없는 투석기도 아닙니다. 화포(火砲)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전쟁의 신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의 3분의 1에 달하는 힘을 거느리고 서방 세계와 수십 년이나 전투를 벌였습니다. 당신들은 완전히 낙후된 데다, 어리석습니다.

국왕, 당신이 말한 그 두변이라는 이름의 비천한 거세자는 8, 9만 대군을 보유했는데 신병이 6만이라고 했지요? 중급 규모의 성을 보유하고 있고요. 맞습니까?”

아포사가 묻자 여여해는 도리어 담담하게 오만한 표정의 그를 바라보며 대꾸했다.

“맞소.”

“그럼 당신네 40만 대군은 쉬어도 됩니다. 내 5만 대군이 손쉽게 두변, 그 비천한 거세자의 9만 대군을 밀어버릴 수 있습니다. 아니, 1만 명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바로 그때, 여여해의 심복 무사 한 명이 재빨리 달려와서 그에게 밀서 한 통을 건넸다.

대염 국왕 여여해가 그 밀서를 펼쳐서 보니, 그 밀서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두변 대군이 부주성을 공격. 양쪽에 처참한 사상자.’

여여해는 자신이 읽은 걸 믿을 수 없었다.

두변이 미친 거지? 돈 거지?

애초에 훈련할 시간도 없는 신병 6만 명을 가지고 감히 병력까지 나누어서 자발적으로 먼저 공격했다고?

게다가 밀서에는 격전을 벌여서 양쪽에 처참한 사상자가 났다고 똑똑히 적혀있었다.

부주성에는 여여룡, 여홍 사령관이 둘이나 있고 3만 대군이 있을뿐더러, 물자가 충분해서 며칠 버티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잠시 후, 밀서 한 통이 또 도착했다. 이번에는 여홍의 아들 여여견이 보낸 밀서로 내용은 똑같았다.

여여해는 속으로 냉소했다.

두변, 네가 정말로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지금 대염 왕성 주변에 40만 대군이 이미 집결했거늘.

어린 호랑이일 때 전력을 다해서 그놈을 죽여버려야 해.

저번 전투에서 요행으로 이겨놓고 완전히 흥분해서 이성을 잃은 나머지, 자진해서 출격해버린 것이겠지.

그런데 어째서 여여룡의 아들과 여홍의 아들이 구원 요청 서신을 쓰고, 여여룡과 여홍의 구원 요청 서신은 없을까?

여여해는 전적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두 대장군은 두변의 공성전을 막을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텐데 직접 구원 요청을 하는 건 너무 창피하니, 아들에게 구원 요청 편지를 쓰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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