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장: 진정한 전쟁의 신
“국왕,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서역 성화교군의 주장 아포사가 물었다.
“두변, 그 소환관 놈이 완전히 미쳐버렸소. 뜻밖에 몇만 대군을 거느리고 먼저 내 성을 공격했다니 말이오.”
아포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과장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맙소사! 당신들 동방세계 사람들은 그 정도로 어리석은 겁니까? 조금이라도 머리가 있다면 즉시 도망쳐야 하고, 머리가 없다고 해도 자신의 성이나 굳게 지켜야 하거늘, 국왕의 성을 공격하러 왔다고요? 한정적인 병사를 끌고 공성전을 벌이는 데 소모시킨 겁니까? 화신이시여!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얼마나 어리석고 쓰레기 같은 적입니까?”
여여해가 갑자기 물었다.
“아포사 장군, 당신의 군대는 믿음이 어떻소? 이 환관 두변은 연기를 잘해서 사람들이 그를 불사의 몸을 가진 화신이 강림했다고 믿고 있소. 그로 인해 성화교군이 변절했고.”
아포사가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 나는 그 점이 조금도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들 동방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건 이상한 수작을 부리는 게 아닙니까? 거세당한 자들은 국왕을 모시는 것 외에 대부분이 곡예단에서 어릿광대 노릇을 하니, 연극에 가장 능하겠죠.
우리 군대의 믿음이요? 말씀드리죠. 백 년 전이라면 이 병사들은 화신이 강림했다는 연극을 보면 바닥에 무릎을 꿇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다 변했습니다. 모든 이가 당연히 화신을 믿지만 우리는 또 한 가지를 믿습니다. 바로 힘 말입니다!”
아포사가 물었다.
“국왕, 당신의 40만 대군은 며칠이나 더 준비해야 합니까?”
“이레 정도요.”
“기왕 그렇다면 그냥 가만히 있으십시오. 우리에게 맡기세요. 당신에게, 아니 동방세계에 새로운 전쟁 방식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당신들에게 진정한 문명의 빛과 진정한 전쟁의 신이 뭔지를 느끼게 해드리겠습니다.
내 5만 대군을 거느리고 부주성을 지원하러 가겠습니다. 당신은 길 안내할 사람만 보내주면 됩니다.
당신은 곧 전대미문의 전쟁을 보게 될 겁니다. 그 두변이라는 이름의 비천한 거세자도 무엇이 문명의 징벌인지 확실히 알게 될 겁니다.
그런데 국왕, 이 점은 반드시 밝혀야겠습니다.
난 일단 전쟁을 시작하면 더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고작 몇 시간 만에 나는 두변 거세자의 군대를 전멸시키고 이후 며칠이 지나면 그 성도 폐허로 만들어버리고, 그자의 백성들과 군대가 전부 내 발 아래에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벌벌 떨 겁니다. 당신의 40만 대군은 무력을 내보일 시간도 없을 테니, 차라리 이대로 해산하는 게 어떻습니까?”
여여해가 냉소했다.
“그렇게 되면 더할 나위 없겠소.”
아포사가 잔에 든 포도주를 단숨에 마셔버린 뒤 말했다.
“당신들 같은 어리석은 동방 황인종에게 무엇이 진정한 전쟁인지 보여줄 순간이 왔군요.”
다음날.
여여호는 기병 2천 명을 거느리고 길 안내를 맡기로 했고, 아포사는 서역 성화 대군 5만 명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하게 대염 왕성을 떠나서 부주성으로 출발했다.
그들과 함께 화포 2백여 대도 출발했다. 물론 그것들은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검은색 천에 가려 있었다.
그 밖에 가장 놀랄 만한 건 이 5만 대군에 특이하게 생긴 사람이 3천 명이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키가 몹시 커서 대략 260센티미터가 넘어 보였고, 게다가 극도로 건장해서 거인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들은 어깨에 6, 7백 근이 넘어 보이는 큰 상자를 하나씩 짊어지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들은 정상적으로 태어나고 자란 게 아니라 특수하게 배양시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화포의 시대에 진입하는 한편, 무도와 힘의 길에서도 매우 앞서 나가고 있었다.
거대한 사나이 3천 명 이외에도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낙타 3천 마리 이상이 있었다.
그 낙타들은 현대 지구의 것과 달라서, 키도 클뿐더러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 성화교군 5만 명이 몸에 착용한 군장도 조금 이상했다. 그들은 투구 외에도 쇄자갑으로 얼굴을 포함해서 거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쇄자갑 밖에 특수한 색깔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그건 성화교의 자랑으로, 그들이 제작한 방화(防火) 군포(軍袍)였다.
군포에 불이 붙지 않으니, 불타는 전장에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아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장비와 화포, 물자, 또 천문학적인 수량의 기름이 있기 때문에 주장 아포사가 그토록 오만하게 굴 수 있을뿐더러, 동방세계를 그토록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아포사는 자신의 군대가 동방에 비해 두 시대 이상 앞서 있다고 생각했다.
닷새 뒤.
아포사의 성화교군 5만 명은 마침내 부주성 밖에 도착했다. 물론 아포사 주장이 억지로 강행군을 한 결과로, 아직 대규모 운반 부대는 백여 리 밖에 있었다.
아포사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이 이번 전투를 치러서 우매한 동방 인종에게 무엇이 진정한 전쟁인지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화포 2백 대 중 130대는 구경이 비교적 작은 화포였다. 아포사는 그것들을 전부 앞에 가져다 두었고, 나머지 구경이 큰 화포 70대는 운반 부대를 따라서 백여 리 뒤에 있었다.
부주성과 아직 백여 리 거리일 때, 여여호는 부주성을 정찰하라고 척후병들을 보냈다. 그런 뒤 척후병은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다.
부주성에 도착한 여여호는 성벽 위에 대녕 제국 깃발이 펄럭이는 걸 보고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부주성이 함락된 거야?
겨우 닷새, 엿새밖에 되지 않았는데? 여여룡과 여홍 두 대장군이 3만 대군을 거느렸는데 닷새도 버티지 못하고, 두변에게 함락당했다고?
여여호가 앞으로 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성벽 위에 있는 건 두변인가?”
두변이 얼굴을 드러내며 그렇다고 소리쳤다.
“여여룡은? 여홍은?”
“죽었다.”
“그럼 성 안에 있는 수비군 3만은 어떻게 되었나?”
“죽었다.”
여여호는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여여룡의 아들과 여홍의 아들이 보낸 구원 요청 밀서에는 분명히 격전을 벌이고 있으며, 양쪽에 처참한 사상자가 났다고 했는데?
그런데 고작 닷새, 엿새만에 부주성이 함락되고, 3만 대군이 전멸했다고?
두변이 대체 무슨 계략을 쓰는 거지?’
그렇지만 그가 몰랐던 건 부주성이 닷새, 엿새 만에 함락된 게 아니라 반나절만에 함락됐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때, 전형적인 파사인(波斯人)이 새하얀 낙타를 타고 앞으로 나와서 어색한 한어(漢語)로 물었다.
“네가 바로 그 비천한 거세자 두변이냐?”
두변은 성 밑에 있는 군대를 바라봤다.
역시나 서역 성화교 군단이었다. 대략 이틀 전, 그는 이 군대가 부주성으로 몹시 이상한 물자를 가지고 쳐들어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포사는 두변을 오만과 무시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거세자! 너처럼 생긴 환관은 파격달(巴格达: 바그다드)에서든, 이사탄포이(伊斯坦布尔: 이스탄불)에서든, 그것도 아니면 이사법한(伊斯法罕: 이스파한)에서든 어디서든지 볼 수 있다. 은화 하나면 그들에게 어떤 자세든 취하게 만들 수 있지. 허니 두변, 너는 직업을 잘못 선택했구나. 너는 그렇게 예쁜 얼굴을 가진 데다 거세까지 했으니, 네 몸으로 돈을 버는 게 마땅하다. 이토록 능력도 없는 일, 예를 들면 한 성의 지도자가 되거나 군단의 장관이 되는 것 말고 말이다. 만약 네가 기루에 가서 일하기를 원하면, 너에게 좋은 곳을 소개시켜줄 뿐 아니라 종종 너에게 들러주겠다.”
아포사는 태생적인 오만함, 태생적인 우월감으로 가득한 자였다. 문명의 격차가 있는 만큼, 그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두변도 그 점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포사가 정말 일부러 두변에게 수모를 주려고 한 게 아니라, 그는 성화교를 대표해서, 세계 3대 패주 가운데 하나인 문명 세력으로서 동방세계 전체를 무시했다.
아포사가 주는 수모를 견디며 두변이 냉랭하게 말했다.
“내가 너를 죽이기 전에 어쩌면 네 혓바닥을 먼저 잘라서 대체 얼마나 길어서 그런 소리를 지껄이는지 확인해야겠다!”
“하하하하!”
아포사가 미친 듯이 큰소리로 웃은 뒤, 성벽 위에 있는 두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천한 거세자, 우매하고 낙후된 동방인, 너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느냐? 너희는 너무 오랜 시간 봉쇄된 나머지, 애초에 자신들의 세계가 얼마나 오래 낙후되었는지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보기에 너희는 다시 퇴화해서 원숭이가 된 것 같구나. 세상은 이미 변했고, 전쟁도 이미 바뀌었다.”
이어서 아포사가 힘차게 명령을 내렸다.
“진형을 갖춰라!”
그의 5만 대군이 순식간에 성 밖에서 진형을 갖추었다.
30분 뒤, 서역 성화교의 5만 대군이 스물다섯 개 방진을 이루어 질서정연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진형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어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데 더욱더 놀라운 일은 그 뒤였다.
아포사가 성난 목소리로 일갈했다.
“벗겨라!”
명령이 떨어지자, 무사 수백 명이 힘차게 천을 당겨서 까맣고 번지르르 한 화포 130대를 드러냈다.
두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두변으로서도 그 장면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두변이 쉰 소리로 물었다.
‘시스템, 서역 성화교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저들은 본래 신을 믿는 세력이 아닙니까? 어째서 과학을 포용한 겁니까?’
꿈속 시스템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백 년 전에 서방세계에서 과학 기술이 대폭발했다. 수십 년 전에 서방세계와 성화교가 통제하는 왕국 수십 개에서 놀라운 전쟁이 일어났고, 성화교가 번번이 패퇴했지. 그 역사적인 순간에 너의 전 숙주가 성화교에 발전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 말은 성화교가 과학을 받아들여서 열병기를 발전시킨 게 전 숙주가 연 길이란 말입니까?’
‘그자는…… 바로 그것을 사용해서 성화교에서 궐기했다. 물론 최후에 그는 여전히 실패했다. 그자가 실패하는 과정은 몹시 복잡하다.’
‘빌어먹을! 당신들은 정말로 무슨 방법이든 죄다 시험해봤군요. 어쩐지 당신들이 내게 화포나 화약을 만들라고 하지 않은 이유가 그거였군요. 이제 보니 이미 그 길을 갔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건…… 그자 한 사람만 그 길을 간 게 아니다. 그 길도 통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네게 이세계의 에너지라는 길을 선택해준 것이다.’
그때 서역 성화교군의 주장 아포사가 말했다.
“비천한 거세자, 보았나? 이게 무엇인지 알고 있나? 이건 전쟁의 신, 화포다. 너희 말로 표현하면, 이건 일단 쏘게 되면 천지가 흔들리고, 천지마저 파멸해버리지. 이건 진정한 전쟁의 신이다. 너희는 이미 낙후되었고 우매하다! 오늘, 나는 문명의 징벌을 거세자인 너의 군대에 떨어뜨릴 것이니, 파멸되는 걸 영광으로 알 거라. 거세자, 두변아!”
“포구를 조정하라!”
아포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포수 수백 명이 앞으로 나와서 화포의 방향을 조정하고, 부주성 성벽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이건 아마도 또 다른 지구의 18세기 무렵의 화포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화포도 지금 대녕 제국의 군대를 맞닥뜨리게 된 이상, 문명의 격차가 워낙에 벌어진 탓에 파멸적인 힘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화포의 구경이 비록 작다고 하더라도 부주성의 방어를 허물기에는 충분했다.
투석기에서 화포에 이르기까지, 혁명적인 발전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건 원시적인 화포가 아니라 또 다른 세계의 나폴레옹 시대에 해당하는 화포였다.
그 화포 백여 대가 일제 사격을 가한다면 확실히 경천동지할 위력을 발휘할 게 분명했다.
아포사의 이 군대는 대단히 강했다. 화포 백여 대만 가지고 있다면 대녕 제국의 어떤 군대든 없애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변을 만난 건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두변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화포 백여 대로 전쟁의 신이라고 자칭한다고? 나야말로 너에게 무엇이야말로 진정한 전쟁의 신인지 알려주겠다. 나, 두변이야말로 진정한 전쟁의 신이라는 걸 말이다!”
이 화포 130대는 모두 6방포(六磅炮: 6파운드 대포)였다.
그 화포는 구경이 상대적으로 작고, 포신이 짧으며, 중량도 비교적 가벼워서 천여 근밖에 안 되기 때문에 비교적 운반하기 편했다.
12방포는 포가(砲架: 포신을 올려놓는 받침틀)까지 합치면 3천 근이 넘기 때문에, 지금도 천천히 운반되고 있었다.
그런데 6방포 130대도 전쟁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화포 백여 대만으로 두변의 부주성을 고개도 들지 못할 만큼 난타할 수 있었다.
화포는 투석기와 달랐다.
투석기는 명중률을 종잡을 수 없어서 웬만해서는 같은 곳을 계속해서 맞히지를 못한다.
그에 비해 화포의 명중률은 수학이나 기하학과도 같아서, 어쩌면 처음 몇 차례의 시험 사격 때는 명중률이 몹시 낮을 수 있지만 몇 차례 조정을 거치면 화포는 점점 더 명중률이 높아지게 된다.
그때가 되면 성벽 위에는 사람이 서 있을 수도 없이 바로 도살당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