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4장: 흥정
그에 비해 남은 2만 명은 여러 왕국에서 소집해 온 용병군으로, 모든 투지를 잃고 전부 바닥에 무릎 꿇고 투항했다.
투항을 하는 동시에, 고통스럽게 머리를 흔들었다.
용병 군대에게 투항은 가장 정상적인 일이었다. 주장 아포사도 죽은 마당에, 그들이 아직도 목숨을 걸 이유가 남아있겠는가?
두변이 거대 늑대를 타고 만부장 앞에 섰다.
“너는 저들의 수장인가?”
두변이 파사어(波斯语: 페르시아어)로 물었다.
그는 당연히 파사어를 할 줄 몰랐지만 시스템을 따라 앵무새처럼 물었을 뿐이다.
그 만부장이 말했다.
“화신이 굽어살펴주시는군요! 대인께서 뜻밖에 파사어를 할 줄 알다니, 너무나 잘됐습니다. 저는 달로기라고 합니다. 용병군 가운데 한 무리의 수장입니다. 제 수하는 2천 명인데, 만부장 자리는 아포사 주장이 임명해준 겁니다.”
“너희들 5만 대군 중에 성화교군은 얼마나 되고 용병 군대는 얼마나 되지?”
만부장 달로기가 답했다.
“성화교군 2만 5천에, 용병 군대가 2만 5천입니다. 성화교군은 모두 몹시 용감해서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에 비해 저희 용병 군대는 아직 2만 정도가 남았습니다.”
“아포사가 돈을 얼마나 주고 당신들을 고용했나?”
두변이 묻자 만부장 달로기가 답했다.
“평균 한 사람당 한 달에 은화 세 개입니다. 1년을 고용했고, 출병하기 전에 절반을 지불했습니다. 바로 은화 45만 냥입니다.”
“이제 그가 죽었으니 당신들은 나머지 절반의 돈을 가지지 못하겠군.”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어서 달로기의 눈이 환해지며 말했다.
“한데 장군 대인, 당신이 저희를 고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변이 성화교군의 군복을 입은 용병 군대 2만 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당신들을 고용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하지?”
만부장 달로기가 말했다.
“당신은 황인종입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우리 세계에서 동방 황인종은 모두 낙후, 야만의 대명사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용병 군대 쪽에서 제가 황인종을 위해 목숨 바쳐 일했다는 걸 알면 다들 저를 비웃을 겁니다. 게다가 당신은 거세까지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허니 제가 당신을 위해 일한다면 제 악명이 제 고향에 자자하게 될 겁니다.”
지금 이 만부장 달로기는 군관이 아니라 상인처럼 보였다.
“바로 말해라. 너희를 고용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지?”
두변의 말에 만부장 달로기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저희 용병 군대 2만 명 중에는 파사인도 있고, 심지어 나마인(로마인)도 있습니다. 다들 고귀한 종족들이지요. 저희를 고용하는 건 당신에게 크나큰 영광을 가져다줄 겁니다. 허니 한 사람당 평균 한 달에 은화 아홉 개에, 고용 시간은 반년 이상, 100분의 70을 선지불해주셔야 합니다.”
“그 말은 당신들을 고용하고 싶으면 내가 단번에 금화 75만 6천 냥을 지불해야 한다는 소리군. 아포사가 너희를 고용한 가격보다 배는 더 많은 돈을 내놔야 한다는 말이지?”
두변의 말에 달로기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자는 고귀한 성화족 사람이지 뭡니까. 그에 비해 당신은…… 비천한 황인종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거세까지 당했고요. 허니 반드시 돈을 더 줘야만 저희의 손실된 영광을 메꿀 수 있습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군.”
“그럼 승낙한 겁니까? 당신은 지혜로운 결정을 한 겁니다. 저희 같은 고귀한 인종으로 구성된 용병 군대는 당신의 적군에 크나큰 충격을 가져다줄 겁니다.”
두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단지 너희가 돈을 얼마나 지녔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만부장 달로기의 낯빛이 바뀌며 말했다.
“다, 당신 그건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흥정을 받지 않을 겁니다.”
“나는 너희를 고용할 뜻이 전혀 없다. 내 목적은 단 하나, 너희가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 그런 뒤 너희를 모조리 죽이고, 너희 돈을 빼앗아 갈 뿐이다!”
만부장 달로기가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의 용병 군대 2만은 이미 완전히 포위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미 투항했습니다. 이미 투항했다고요! 당신들이 감히 포로를 죽이면 성화 세계 전체의 분노를 유발할 겁니다. 수십 개의 왕국, 수억의 인구, 천만 군대의 진노를 사게 될 겁니다.”
두변이 도룡검을 들고 힘차게 휘둘러 베었다.
순식간에 만부장 달로기가 곧바로 두 동강이 나버렸다.
“전부, 모조리 죽여버려라!”
두변이 명령을 내리자, 기병 4천 명이 미친 듯이 돌진했다.
한순간 처참한 비명이 연달아 울려 퍼지면서, 새빨간 피가 하늘로 치솟았다.
한 시진 뒤, 전투는 완전히 종료되었다.
성화교군 옷을 입은 용병 군대 2만 명은 거의 다 죽어버렸으나 수천 명은 달아나버렸다.
모든 이의 몸에 걸친 쇄자갑과 방화 군포는 전부 벗겨지고, 몸에 지니고 있던 금화와 은화까지 탈탈 털려버렸다.
사실 두변은 용병 군대 2만 명에게 투항을 권유할 생각이었다. 이미 포로가 되었으니, 자신을 위해 반년 동안 목숨 바쳐 일하면 자유롭게 풀어주려고 했다. 또 한 달에 은화 2냥을 급료로 지급하려고 했다.
하지만 만부장 달로기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이 말하는 데다, 사람을 호구 취급하며 가격을 부르니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2만 명을 모조리 죽여버린 뒤, 그들의 모든 돈과 장비를 빼앗아버린다는 선택 말이다.
이로써 아포사가 거느린 원정군 5만은 전멸하다시피 했다.
부홍빙은 기병 수천 명을 거느리고 도망간 수천 명을 향해 최후의 추격을 진행했다.
“보고합니다! 백색성에서 긴급한 군사 정보입니다!”
갑자기 병사 하나가 쏜살같이 두변 앞까지 달려와서 곧바로 투구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의부 이문회의 심복 백호였다.
심복 백호가 곧바로 무릎 꿇고 말했다.
“대인께 보고드립니다. 백색성에 긴급한 군사 상황이 있습니다.”
이윽고 심복 백호가 두 손으로 의부 이문회가 보낸 밀서를 바쳤다.
두변이 그걸 펴보는 순간, 눈매가 가늘어졌다.
‘선성후 육전의 7만 대군이 남하해서 백색성과 고작 300리 거리에 있다.’
‘원천조의 5만 대군이 서진해서 백색성과 고작 300리 거리를 남겨두었다.’
대단히 다급한 군사 정보였다.
역시나 최악의 국면이 벌어졌다. 선성후 육전은 애초에 자기 일족의 생사 따윈 돌보지도 않고, 방계가 내민 떡을 받아 먹어버렸다. 뭇 사람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곧바로 백색성을 공격하려 했다.
그렇게 되면 백색성의 4만여 군대가 상대할 건 원천조의 정예 군대 5만뿐 아니라, 선성후 육전의 7만 대군도 포함된다.
4만 대 12만!
절세 지하성의 정예라면, 심지어 성화군의 정예 병사들까지 있다면, 견고한 성을 두고 방어를 하는 쪽이니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패배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백색성에 있는 2만은 절세 지하성의 2군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아직 젊은 데다 아직 능숙하지 못했다.
그 외에 2만여 명 가운데 1만 5천은 막씨의 구세력에서 투항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비적이었으니 전투력이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만약 원천조의 5만 대군만 상대해야 한다면 보름 이상을 굳게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12만 대군을 상대한다면? 정말이지 몹시 위급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그럼 두변은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군대를 거느리고 백색성으로 돌아갈까?
그런 뒤 여여해의 40만 대군과 원천조와 선성후 육전의 12만 대군이 공격하러 오는 걸 가만히 기다려야 할까?
그렇게 되면 한두 달 뒤에나 전투가 끝나니, 단 한 가지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된다. 경성의 백성 수십만 명이 굶어 죽는 결과 말이다.
황제가 수십만 백성이 아사하는 걸 좌시할 리 없을 테고, 그는 자진할 것이다. 그런 뒤 태자가 황위에 등극해서 방계에게 완전히 타협한다?
두변이 어째서 먼저 출격했던가? 바로 전쟁 시간을 단축해서 경성의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시간과 경주하기 위해서였다.
두변이 군대를 거느리고 백색성으로 돌아가서 여씨 정벌을 멈춘다는 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는 걸 의미했다.
그러니 두변은 반드시 전쟁의 발걸음을 재촉해야만 했다.
가장 짧은 시간에 여씨를 철저히 섬멸해야 했다.
그런 뒤 회군해서 선성후 육전과 원천조의 대군을 모조리 죽여야 했다.
부주성 밖의 공터에 백성 수만 명이 빼곡하게 서 있었다.
두변이 큰소리로 외쳤다.
“방금 전투가 벌어질 때, 누가 거리로 뛰어나왔나? 누가 방화를 하고, 누가 우리 식량 창고를 공격했지?”
백성 수만 명은 제자리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고 냉담하게 저항했다.
그들은 군령(軍令)을 어긴 폭도들이니 반드시 처결해야 했다.
“진상을 고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
두변의 말에 부주성의 백성 수만 명은 계속 냉담하게 저항했다.
식량 창고에 뛰어들어 불을 지른 폭도들은 지금 사람들 틈에 숨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도 그들을 고발할 뜻이 전혀 없어 보였다.
“불을 지르고 내 군대를 공격한 폭도들은 일어서라.”
두변이 큰소리로 외쳤지만 부주성 사람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발하는 자에게는 포상을 줄 것이다.”
두변의 말에도 여전히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비웃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여씨의 백성이라서 워낙에 사나워서 말이지. 설령 두변 네가 전투에서 이겼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너를 향해 무릎 꿇고 굽신거리지 않을 것이다.’
두변은 민심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는 것을 절절히 알고 있었다. 그도 자신의 대군이 가는 곳마다 민심을 얻고, 모든 백성의 지지를 얻기를 갈망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렇게 노골적이었다.
지금 그는 뜻밖에 부주성의 백성 수만 명에 의해 ‘막다른 길’로 내몰렸다.
식량 창고로 뛰어들어서 방화하고 그의 군대를 공격한 폭도들은 반드시 처벌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변의 위엄을 어찌 세울 수 있을까.
하지만 백성을 상대로 살육할 수는 없었다. 그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선이었다.
두변이 물었다.
‘시스템, 당신은 우리 군대를 방화하고 약탈을 가한 폭도를 분명히 찾을 수 있죠?’
꿈속 시스템이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숙주, 앞으로도 너는 이런 일을 또 겪게 될 것이다. 너는 반드시 스스로 선택을 해야 한다. 완벽한 통솔자이자 완벽한 군주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천하에 군림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번 관문을 거쳐야 한다. 이 세계는 줄곧 이렇게 대단히 복잡하고 잔혹하며 혼돈스러워서 흑 아니면 백이라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게다가 가소로운 점은 너는 저들을 대녕 제국의 백성으로 간주하지만 저들은 도리어 자신들을 여씨의 대염 왕국의 백성으로 여기고 있다. 너 혼자서 정을 주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자신들을 제국의 백성으로 여기지 않는다. 바로 네가 그들을 약탈하지 않고, 심지어 그들에게 물을 길러다주고, 식량을 주었기 때문에, 그들이 내심 너를 무시하는 일을 초래하게 된 거다. 적을 상대할 때는 두려움을 주지 않으면 적대시하게 된다. 저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지 않았으니, 자연히 저들이 너를 적대시하는 것이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누가 적인가 알아야 한다는 거군요.’
이윽고 두변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주성에서 대략 열아홉부터 마흔까지 된 장정을 전부 체포해라. 그들을 참수해서 효시하겠다!
폭도가 얼마나 됐지?
3천 명?
그럼 3천 명을 죽인 뒤 칼을 멈춰라!”
그 명령이 떨어지자 두변의 군대가 매섭게 사람들 틈에 뛰어들어서 장정들을 체포했다.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저는 무고합니다. 저는 무고합니다. 어째서 저를 죽입니까? 무슨 근거로?”
두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 헌데 이 세상에 무고한 사람은 없다!”
솩, 솩, 솩, 솩.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석양마저 핏빛으로 물들었다.
진정한 전쟁은 역시 두변의 예상과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