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장: 난제
두변은 거한 천 명을 바라보았다. 모두 키가 이미 2미터 60이 넘고 몸무게가 5백 근이나 될 정도로 힘이 셌다.
두변은 거한들이 야수처럼 몹시 사나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틀렸다. 이 거한들은 몹시 온순한 데다, 지능은 고작 몇 살짜리 아이의 수준이었다.
“나를 따르면 밥과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그러겠나?”
두변이 묻자 거한들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밥을 먹고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그러겠습니다!”
낙타 대열에 있는 노예 수천 명은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본래 아포사의 노예였다. 이제 아포사가 두변에게 패배해서 죽었으니, 그들 노예 수천 명도 자연히 두변의 재산이 되어버렸다.
그 노예 수천 명은 거한들보다도 더 온순했다. 전부 바닥에 엎드려서 무릎 꿇고 두려운 눈으로 두변을 바라보는데 뜻밖에 아이가 부모를 바라보는 눈과도 같았다.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숙주, 절대로 저들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말하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저들은 죽을 것이다. 저 노예들은 태어날 때부터 노예라서 주인의 명령과 인도 없이는 애초에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네가 저들에게 자유를 주면, 저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어서 죽을 것이다.’
두변이 놀라며 말했다.
‘정말로 병적인 생각이군요.’
두변은 바닥에 빼곡하게 무릎 꿇고 있는 노예 수천 명을 보며 했다.
“오늘부터 나는 너희의 새로운 주인이다.”
노예 수천 명은 기쁜 기색을 눈빛에 드러내며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당신의 뜻이 저희에게 최고의 사명입니다. 화신이 당신을 찬미하십니다. 저의 가장 위대한 주인이시여.”
이어서 두변은 본능적으로 그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수송 부대에게 부주성으로 향하라고 명령을 내리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척후병 한 무리가 재빨리 서쪽에서 달려와서 두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주군께 아룁니다. 여씨의 대군을 발견했습니다. 저희와 고작 110리 거리에 있습니다.”
여씨가 출병했다고?
두변은 긴장한 나머지 머리가 아파왔다.
“얼마나 되지?”
척후병이 대답했다.
“한도 끝도 없이 펼쳐져서 수십 리나 이어졌습니다.”
수십 리나 이어져 있다고?
그렇다면 여씨의 주력 부대, 수십만 대군일 것이다.
몹시 명백한 점은 아포사의 대군이 전멸했기 때문에 여여해가 병사들을 보낸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사실 여씨는 애초에 아포사의 대군이 전멸한 일을 아직 몰랐을뿐더러, 심지어 부주성이 함락한 사실도 알지 못할 것이다.
여여해는 아포사의 대군이 지금쯤 두변의 대군과 전투를 개시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승리의 열매를 거두러 오는 것일 뿐이었다.
여여해로서는 두변을 없앤 공로를 외부인인 아포사에게 줄 리가 없었다. 그는 아포사를 화살받이로 쓸 생각뿐이었다.
이곳에서 110리 거리에 있다는 건 여씨가 이틀 전에 이미 출병했다는 뜻이었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무리의 척후병들이 도착했다.
그들이 보고하는 소식은 점점 더 상세해졌다.
여씨의 주력 대군이 쳐들어왔다.
모든 것을 가려버릴 정도이니, 아마도 30만 정도일 것이다.
30만 대군이라니!
두변과 여씨 대염 왕국이 대결전을 벌일 순간이 마침내 도래했다.
전대미문의 대결전이 곧 시작할 것이다.
이어서 두변은 한 가지 난제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 수송 부대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곳은 부주성과 무려 170리 거리였고, 수송 부대가 운반하는 물자를 다 합치면 천만 근에 육박했다.
“이 수송 부대는 170리를 빠르면 며칠 안에 도착할 수 있지?”
두변이 묻자 노예 수장이 답했다.
“이레가 넘게 걸립니다. 저희 12방 화포가 대단히 무겁습니다.”
어쩐지, 그래서 아포사가 곧바로 이 수송 부대를 뒤로 제쳐두고 6방포만 가지고 먼저 부주성으로 돌진했구나.
이레라.
여씨의 30만 대군이 이곳과 고작 100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물론 30만 대군이 행군하는 것도 몹시 느리겠지만, 어쨌든 이 수송 부대보다는 조금 더 빠를 것이다.
더군다나 대군의 선봉대는 좀더 빠른 속도로 돌진할 것이고, 기병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여해에게 기병이 최소 1, 2만이 있을 것이며, 하물며 여씨가 이끄는 일부 만족에는 코끼리를 탄 기병도 있었다.
그러니 이 수송 부대는 반드시 여씨의 기병들에게 따라잡힐 수밖에 없었다.
이 화포와 수송 부대의 물자들을 포기해야 할까?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그럼 군대를 얼마나 파견해서 이 화포들과 수송 부대 물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1만? 2만? 지금 총 5만밖에 없는데.
여씨의 30만 대군 가운데 광속처럼 빠른 선봉군이 5만이 넘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이 화포와 운송 물자를 순조롭게 부주성으로 옮겨놓는다는 건 사실 불가능했다.
게다가 가장 관건은 원천조와 선성후 육전의 대군이 백색성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여씨의 수십만 대군이 부주성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 뒤, 대결전을 치르면, 설령 두변이 대승을 거두어서 군대를 이끌고 백색성을 구원하러 돌아간다고 해도 적어도 보름이나 걸릴 것이다.
원천조와 선성후 육전의 12만 대군이 그에게 보름의 시간을 줄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하루, 이틀이라도 더 빨리 전쟁을 끝내야만 백색성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었다.
두변이 눈을 감고 물었다.
‘시스템, 내가 이 수송 부대를 이끌고 전속력을 다해 부주성으로 돌아가면 이 화포들을 보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너는 여씨의 선봉대와 결전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건 네게 몹시 불리해. 이 화포들을 보전할 확률은 대략 6할이지만 대신 다른 물자들은 손실이 막대할 것이다.’
‘내가 부주성에서 여씨의 30만 주력 대군과 결전을 벌이면 백색성으로 지원하러 갈 시간이 있겠습니까?’
‘영에 가깝지. 결전을 앞당겨야 한다. 그래야 백색성을 구할 기회가 생길 뿐 아니라, 황제를 구하고, 경성의 수십만 백성을 구할 수 있다. 경성은 이제 곧 식량이 끊긴다.’
경성의 백만 백성들과 황제는 지금 매일 한 끼만 먹었다. 그것도 죽으로.
심지어 성안의 군대도 매일 죽을 두 끼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수로와 해상 운송이 끊긴 지 이미 석 달이나 됐고, 방계가 경성을 봉쇄한 지도 이미 석 달이 넘었다.
두변이 영설 공주에게 어찌 되었든 버텨야 한다는 말을 황제에게 전해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경성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황제는 지금쯤 이미 자진했을 것이다.
결전을 앞당기려면 여씨의 30만 대군이 부주성을 공격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반드시 부주성과 현재 여씨의 주력 대군 사이에서 결전의 장소를 찾아야 했다.
두변은 눈을 감고 가장 상세한 지형도를 찾아냈다. 결전을 치를 적합한 지점을 찾아내야 했다.
그 지점은 반드시 단단히 방비할 수 있는 성채(城寨)가 있어야 했다. 야전으로 전투를 치를 수는 없었다.
여씨는 30만 대군을 가지고 있는 반면, 두변은 5만뿐이었다. 설령 화포와 파멸의 화살이 있다고 해도, 양쪽 군사력이 너무 현저해서 두변 쪽에 사상자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곧 두변은 한 지점을 찾아냈다.
아마 이곳이 이 부근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일 것이다.
대룡보(大龍堡)!
운남은 고원 지형이라서 큰 산이 매우 많고, 평지가 비교적 적었다.
고원 위의 평지를 패자(壩子: 제방. 높은 곳의 평평한 모습이 제방과 비슷하다고 해서 불리는 이름)라고 부르는데, 운남성에 유명한 패자가 열 곳 정도 있고, 면적이 1백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패자도 4, 50곳 정도가 있었다.
대룡보는 그중 하나의 패자 위에 지어진 곳으로, 대염 왕성과 200여 리 거리에 있을 뿐 아니라, 부주성과 150리 거리, 두변의 수송 부대와는 고작 30여 리, 여씨의 30만 주력 대군과는 140리 거리에 있었다.
만약 이곳에서 여씨와 대결전을 벌인다면 시간을 나흘 이상이나 앞당길 수 있었다.
눈을 뜬 두변이 이를 힘껏 악물며 말했다.
“부주성에 돌아가지 않고, 앞당겨서 여씨와 결전을 치른다!”
부홍빙이 놀라 물었다.
“여씨의 30만 대군과 앞당겨서 결전을 치른다고요? 어디에서 치릅니까?”
두변이 지도를 꺼내며 말했다.
“대룡보, 이곳에서 30여 리 거리에 있습니다.”
이윽고 두변은 기병 천 명을 거느리고 빠른 속도로 30여 리 밖에 있는 대룡보로 답사를 갔다.
대룡보.
이곳은 막씨 토사가 지은 대형 군사 보루 겸 군영이었다.
막씨 토사가 모반을 할 때, 최대 8만이 넘는 대군이 대룡보에 주둔했었다.
그 당시 대룡보를 지은 건, 북으로는 귀주를 공격할 수 있고, 서쪽으로는 곤명부를 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진남공 송결도 바로 이 대룡보에서 전투를 한 번 치른 적이 있었다.
송결의 5만 대군은 공격하는 쪽이었고, 막씨의 3만 대군은 방어하는 쪽이었다. 결국 이레의 시간이 지난 뒤, 진남공은 대룡보를 함락시켰다.
현재 이 군영 보루는 폐허가 된 지 10년이 넘은 상태였다.
30여 분 뒤, 두변은 폐허가 된 대룡보에 도착했다.
대룡보에 들어선 순간, 두변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군영 보루는 충분히 커서 4, 5천 묘가 넘었고, 심지어 웬만한 작은 성곽을 넘어서는 크기였다. 아무래도 이곳에 최대 8만 대군이 주둔했던 곳다웠다.
하지만 몇 가지 불리한 부분이 있었다.
우선, 예전에 막씨가 대룡보를 지은 건 요충지를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다른 곳을 공격하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물자 중계 지점이었다. 그 이유 때문에 이 패자처럼 평평한 지점을 선택해서 보루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지세는 몹시 평탄하고 광활해서 심지어 부주성보다 더 광활했다.
그러니 이 지역은 대규모로 용병술을 펼치기에 몹시 적합했다. 여씨의 30만 대군은 부주성 밖에서는 진형을 펼치기가 몹시 힘들겠지만 이곳에서는 충분히 펼칠 수가 있었다. 그 점은 두변에게 다소 불리했다.
다음으로, 이 대룡보는 충분히 커서 두변의 5만 대군을 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겠지만, 이곳은 거대한 군영일 뿐, 성(城)은 아니었다
비록 군영에 목책(木柵)이 있지만 견고한 편은 아니었다. 그 담장은 진흙을 쌓아서 만든 뒤, 안팎에 두껍고 굵은 나무를 촘촘히 엮어 만든 것이었다. 그 담장의 두께는 성벽과 견줄 수는 없지만, 2, 3미터 정도는 되었다.
중요한 단점은 이 목책이 너무 낮았다. 부주성의 성벽은 8, 9미터 높이인데 이 대룡보의 목책은 고작 5미터 높이에 불과했다.
게다가 10년 가까이 방치되었었으니, 여러 곳이 파손된 상태였다.
어쨌든 이곳의 방어력은 부주성보다 훨씬 떨어졌다.
그런데 대룡보도 한 가지 장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큰 산을 등지고 있다는 점. 게다가 목채가 둥그런 궁형(弓形)이라서 한쪽 면만 방어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 모양 때문에 목채의 한쪽 면이 몹시 길어서 무려 8리 길이에 이르렀다.
또 다른 장점이 있다면 대룡보 전체가 산을 끼고 지어졌기 때문에 지세가 평지보다 조금 높았고, 그러니 높은 곳에서 적군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비록 여러 가지 불리한 정황이 있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나흘에서 닷새쯤 앞당겨 결전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다.
두변에게는 시간이 가장 중요했다. 하루 앞당겨 전투를 치르면 백색성의 운명을 바꿀 수 있고, 나흘에서 닷새를 앞당겨 전투를 치르면 수십만 명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다.
‘정했다. 결전의 장소는 바로 이 대룡보다!’
두변이 말채찍을 힘차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부홍빙에게 명령을 내린다. 기병 4천 명을 이끌고 수송 부대를 보호해서 대룡보로 와라. 그런 뒤 거한과 노예들에게 명령해서 서둘러서 대룡보를 수리하고, 대결전이 도래할 순간을 맞이해야 한다.”
“예!”
거대 늑대를 탄 척후병이 명을 받들고서 쏜살같이 달려갔고, 두변은 재빨리 부주성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