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98화 (398/648)

398장: 고작 30초

백색성 성벽 위.

이문회, 기세 소성주, 옥진 군주, 이릉은 각자 군대를 1만씩 거느리고 성벽을 한 면씩 지켜 섰다.

성안의 병사 수는 총 4만 2천여 명이었다.

하지만 진정 강한 전투력을 가진 병사는 절세 지하성의 무사 천 명 정도, 천마혈군 500명에 불과했다.

물론 절대적인 긍지와 군기, 나쁘지 않은 전투력을 가진 절세 지하성의 2군 무사 2만 명도 있었다.

또 6천 명은 동창 무사, 청룡회 무사, 계왕부의 기병, 진남공 군대 등으로 이루어졌는데 제법 괜찮은 전투력에, 충성도까지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 1만 5천 명은 막씨 구세력 포로였다. 전투력은 있지만 충성도는 가까스로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 다행히도 수성전이었으니, 이들이 도망치려고 해도 어디로 도망치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그 1만 5천 명은 여러 군대 속에 무작위로 보충되었으니, 설령 반란을 일으킨다고 해도 사람들을 선동할 정도의 두려운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벽 위에서 이문회가 선성후 육전을 향해 말했다.

“후작 대인, 원천조의 대군은 이미 60리 밖에서 멈춰 섰습니다. 병력이 있어야 난세에서 우두머리 행세를 할 수 있으니, 당신은 남에게 이용당해서 죽 쑤어 개 주는 일은 하지 마시지요.”

선성후 육전이 성벽 위에 있는 이문회를 쳐다보며 냉소했다.

“우리 육씨 가문은 대대로 조정에서 공을 세운 귀족 가문으로 백, 200년을 이어져 왔다. 너 이문회가 무슨 대수더냐? 제 불알을 거세해서 황제의 총애를 받고, 오랫동안 가난했다가 졸부가 된 것처럼 요행히 승급한 자에 불과하면서?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와 얘기를 하고, 거드름을 피우는 거냐?”

이것이 바로 공훈을 세운 절대 다수 귀족들의 공통점이었다.

고집스럽고, 오만할뿐더러, 절대적인 우월감에 가득 차 있었다. 공훈 귀족도 그나마 문관 세가는 존중해주는 편이었다. 그들 가문도 나름 역사가 있으니까.

하지만 엄당에 대해서는 철저한 멸시와 적의뿐이었다.

‘우리처럼 공훈을 세운 부귀한 사람들은 선조부터 전해져 내려와 누적된 역사가 있다. 한데 너희 쓰레기 같은 엄당이 10여 년 내지는 20년을 분투했다고 우리와 동등하게 굴려는 것이냐?

누가 너희에게 우리와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권력을 줬더냐? 다 노비에 불과한 것들이!’

선성후 육전이 소리쳤다.

“닥쳐라. 이문회, 너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죽을 때만을 기다려라. 두변, 그 환관 놈은 어디 있나? 성안에 없는 게 안타깝구나. 한데 스무 살도 안 된 말단 환관이 어떻게 백색 총병, 또 진서 백작 자리에 올랐는지 확인하고 싶구나. 사람 흉내나 내는 원숭아, 날뛰는 어릿광대야. 나와서 우리에게 네 얼굴을 보여주거라!”

선성후의 말에 그 뒤에 있는 수만 대군이 떠들썩하게 큰소리로 웃었다.

“형제들이여, 백색성 안에는 두변이 긁어모은 백성들의 고혈이 무려 500만 냥 이상이 가득 쌓여 있다. 쳐들어가서 그 500만 냥을 빼앗고, 모두 다 같이 부자가 되어보자!”

정말이지 빌어먹을 경우였다. 백색성에는 정말로 500만 냥 정도의 돈이 있었다. 두변이 막씨의 구세력에게서 얼마 전에 노획한 악마의 열매를 10년 가까이 판 부정한 돈 말이다.

이어서 선성후 육전은 7만 대군을 성벽 삼면 아래에 분산시켰다.

교활하고 간사한 그는 세 부대의 대군에게 함께 성을 공격하라고 하지 않았다. 고작 그중의 한 부대, 대략 2만 3천 대군에게 북쪽 성벽을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나머지 4만 6천 대군은 시종일관 또 다른 성벽 두 면에서 50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언제든지 진격할 수 있게 대기만 할 뿐 진격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머지 성벽을 지키는 수비군이 북쪽 성벽을 지원하러 올 수가 없었다.

게다가 500미터라는 거리는 성안에 설치된 투석기로 적을 공격하기가 어려운 거리였다.

선성후는 수천 리 먼 길을 행군하느라 투석기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전투에서는 서로에게 투석기를 마구 내던지는 과정이 생략되었다.

선성후가 명령을 내리자 그의 2만 3천 대군이 노련하게 분산된 진형으로 북쪽 성벽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다.

이문회는 아래에서 밀려 들어오는 대군을 바라본 뒤, 다시 성벽 위에 있는 수비군을 바라봤다. 그가 있는 성벽 쪽에는 수비군이 총 1만이 있었다. 절세 지하성의 2군 무사 5천 명은 전투욕에 가득 찼지만 막씨의 구세력으로 이뤄진 병사 4천 명은 이상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기세 소성주가 거느린 절세 지하성의 무사 천 명은 예비 부대로,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순간에만 출동하기로 했다.

“죽여라, 죽여!”

선성후의 2만 3천 대군이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면서 대단한 기세로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문회가 검을 들고 힘껏 외쳤다.

“강노 진형, 쏴라!”

명령이 떨어지자 그의 등 뒤에서 대형 강노 수백 대가 화살 수천 대를 힘차게 쏘아냈다. 수천 대의 화살들이 성벽 상공을 가르면서 날카로운 포물선을 그리며 선성후의 대군을 향해 내리꽂혔다.

슉, 슉, 슉, 슉, 슉.

처참한 비명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절세 지하성의 대형 강노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해서 손쉽게 평범한 갑옷을 꿰뚫을 수 있었다.

공성전에 나선 적군 수십 명이 처참하게 죽었다.

화살 수천 대가 수십 명을 쏴 죽였으니, 명중률이 조금 낮은 편이었다. 선성후의 군대가 너무 분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곧 적군이 200미터 안으로 돌진했다.

이문회가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궁수는 준비하고, 쏴라!”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고, 적군 백 명이 처참한 비명을 내며 땅에 쓰러졌다.

“준비, 쏴라!”

두 번째 화살비, 세 번째, 네 번째 화살비가 퍼부은 뒤, 화살로 적군을 쏴 죽일 수 있는 시간이 끝이 났다.

화살에 의해 죽거나 다친 적군은 500명 정도였다.

쿵, 쿵, 쿵, 쿵.

선성후의 대군 백 명이 공성전용 사다리를 매섭게 성벽 위에 걸쳤다.

그런 뒤 병사들이 방패를 들어 올린 채, 공성전용 사다리를 타고 빼곡하게 위로 기어올랐다.

쾅, 쾅, 쾅.

성벽 위에서는 돌덩어리가 미친 듯이 떨어지고, 굴림 나무와 끓는 기름이 필사적으로 떨어졌다.

전투를 시작한 지 반 시진도 안 돼서, 전투는 격렬하고 잔인한 단계에 진입했다.

백색성의 원시적인 전투와 비교하면 두변 쪽 대룡보 전투는 훨씬 화려하고 경이로워 보였다.

12방 화포는 4, 500미터 거리 내에서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화포에서 나온 포탄은 번개가 번쩍이는 것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여씨 대군 속으로 파고들어서 쟁기질이라도 한 듯이 피의 길을 그어버렸다.

포탄이 지나가는 곳마다 새빨간 피가 튀면서 부러진 사지가 날아다니고, 처참한 비명이 치솟았다.

이건 첫 번째 일제 포격이라서 명중률에 그다지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하지만 무려 30만 대군이 집결한 탓에, 진형이 지나치게 밀집되어 있었다.

만약 투석기로 석환을 던졌다면 낙하 지점을 사전에 판단해서 미리 피할 수도 있었다. 그에 비해 화포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서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하니 피할 수가 없었다.

두변의 군대가 화포 70대로 가한 첫 번째 일제 포격에서는 거의 50발 정도의 포탄이 명중했다.

촤악, 촤악.

그 포탄들이 피의 길을 연달아 한 줄씩 냈다.

게다가 가장 무서운 건 포탄이 땅에 떨어지면서 튀어오른다는 것이었다.

병사 하나가 포탄에 맞으면 그 사람이 무슨 갑옷을 입고 있든지, 곧바로 몸이 부러지거나 구멍이 뚫렸다.

심지어 포탄 세 발이 곧바로 여씨의 대형 투석기를 명중시키면서 순식간에 나무로 만들어진 투석기가 그대로 찢어지고 말았다.

두변의 화포 70대가 첫 번째 일제 포격을 가해서 적군에게 천 명의 사상자를 가져다줬을 뿐 아니라, 투석기 세 대까지 망가뜨렸다.

그 전적은 두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휘황찬란했다. 아포사의 6방 화포 130대로 일제 포격했을 때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도 없었다.

일전에 아포사의 6방포 130대가 일제 포격을 가했을 때도 경천동지할 정도로, 놀라운 위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때는 성벽에 쏘아졌을 뿐 아니라, 6방포를 4, 500미터의 거리에서 포격한 것이라, 위력이 12방포보다 훨씬 떨어졌다.

관건은 여씨의 대군이 너무 밀집된 데다 아무런 엄폐호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일제 포격이 이토록 휘황찬란한 전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담뿐 아니라 여여해까지, 그 장면에 완전히 놀라서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들이 화포에 대해 모르지는 않았다. 사실 그들은 아포사가 허세 떠는 말을 지겨울 정도로 들은 터였다. 하지만 그들이 아포사에게 시험 사격을 해서 자신들의 시야를 넓혀달라고 제안했을 때, 아포사는 화포는 전쟁의 신이라서 발포하면 반드시 시체가 산더미를 이루어야 한다고만 말했다.

그렇지만 아포사의 5만 대군이 부주성을 공격했지만 결과적으로 패배하지 않았나. 그자의 화포 100여 대는 애초에 아무런 작용도 발휘하지 못하지 않았나.

그러니 여씨는 본능적으로 화포의 위력은 별것 아닌데, 단지 아포사가 동방세계를 이해하지 못해서 허세를 떨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아직도 투석기가 화포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투석기는 한꺼번에 백여 근짜리 돌을 던지는 데에 비해, 화포가 쏘는 쇠공은 열 근에 불과하니까.

그런데 그 화포들이 두변의 수중에 들어가니 이토록 놀라운 파괴력을 발휘할 줄이야.

첫 번째 포격에 천 명의 사상자를 낼 줄이야.

아무리 경상이어도 병사들의 팔다리가 날아갈 정도였으니, 화포의 놀라운 위력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그에 비해 여씨의 대형 투석기 2백여 대의 첫 번째 공격의 성과는 어떨까?

투석기의 명중률은 종잡을 수 없다고 할 수밖에.

대룡보가 지세가 비교적 높기 때문에, 투석기를 발사하는 사람들이 계산을 잘못했고, 석환의 8할이 대룡보 보루 앞의 공터에 떨어졌다.

그 외 1할이 넘는 석환이 대룡보 안 공터에 떨어지거나 민가 십여 채를 부숴버렸다.

그런데 석환 세 개가 대룡보 목채에 떨어지면서 벽을 부수고 말았다.

비록 석환의 착지 지점을 예측해서 보루의 목채 위에 있던 무사들은 제때 후퇴했지만, 사상자 수십 명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대룡보 목채에 거대한 구멍 세 개가 나고 말았다. 그건 성벽이 아니라 나무와 진흙으로 쌓아서 만든 담장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콰과광.

그 당시 석환 세 개가 목채를 내려치는 장면은 몹시 전율적이었다.

겉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는 목채가 곧바로 거대하게 균열이 생기면서 뚫려 버렸다.

높은 곳에 서 있던 왕태자 여담은 그 장면을 보고 속으로 기뻐했다.

심지어 그는 내심 첫 번째 투석기와 화포의 대치 포격에서 여씨의 투석기가 패배하지 않았을뿐더러, 도리어 화포에게 승리를 거뒀다고까지 생각했다.

왜냐하면 공격하는 쪽에서는 상대방의 병사가 얼마나 죽었는지 신경 쓰는 건 둘째였고, 관건은 성벽을 부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작 첫 번째 투석기 포격으로 대룡보 목채에 구멍이 세 개나 났으니 이건 당연히 크나큰 승리였다.

하지만 두변에게는 그런 건 전혀 다른 전쟁 철학이었다.

높은 단 위의 왕태자 여담이 큰소리로 외쳤다.

“투석기는 계속 포격해서 대룡보 목채를 완전히 찢어버려라. 대녕 제국 환관 놈의 군대를 숨을 곳이 없게 만들어버려!”

이어서 여씨의 투석기 2백여 대를 또다시 복잡하게 조작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첫 번째 조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투석기의 방위를 조정해서 다시 조준을 해야 한다. 이어서 투석기의 길고 두꺼운 지레 부분을 전력을 다해 끌어내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백 근이 넘는 무게의 석환을 투척구에 올려놓았다.

모든 과정을 끝내려면 8, 9분 정도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두변의 12방 화포는 다음 번 사격까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30여 초, 고작 30여 초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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