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399화 (399/648)

399장: 투석기는 끝났다.

그들 포사수 수백 명은 가장 전문적인 자들이었다. 가장 빠른 속도로 포강(砲腔)을 청소한 뒤, 화약 꾸러미를 곧바로 포신에 밀어넣고, 다시 포탄을 밀어넣은 다음에 마지막으로 불을 붙여서 발사했다.

그 화약 꾸러미는 전부 비단으로 만든 데다, 기름을 적신 것이라서 불이 붙어서 폭발할 때에 몹시 확실하게 폭발할뿐더러, 찌꺼기가 적게 남았다.

8분과 30여 초라는 시간은 천양지차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여씨 대군이 첫 번째 포격 이후 아직 멍하고 있는 사이, 콰과과광, 하고 12방포의 두 번째 일제 포격이 다시 시작됐다.

또다시 경천동지할 만한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탄 70발이 또다시 검은 번개가 번쩍이듯이 휙휙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첫 번째 일제 포격에서 포탄 70발 중 50발이 명중했고, 나머지 20발이 여씨 대군의 방진 사이 공터에 떨어졌다.

그런데 이번 두 번째 일제 사격은 조정을 거친 뒤, 명중률이 대대적으로 향상되었다.

퍽, 퍽, 퍽, 퍽.

피비린내 나는 잔인한 장면이 또다시 연출되었다.

쾌속 비행하는 쇠공이 또다시 쟁기질하듯 혈로를 뚫었다.

수많은 여씨 병사가 또다시 귀신처럼 울부짖는 와중에, 그들의 팔다리가 마구 날아다녔다.

사납게 튕기는 포탄은 아무런 규칙도 없이 사람들 틈에서 좌충우돌 마구 부딪쳤고, 그것이 지나는 곳마다 시체가 바닥에 가득 쌓였다.

물론 이번 포격의 목표는 사실 적의 투석기를 명중시키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 일제 포격은 명중률이 100분의 100으로 향상되었고, 곧바로 적의 대형 투석기 여섯 대에 명중했다.

또다시 썩은 나무가 꺾이듯이 매섭게 투석기들이 찢어져 버렸다.

“이렇게나 빨리?”

여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본능적으로 아버지 여여해를 바라봤다.

여여해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는 왕태자 여담이 대군에게 곧바로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싶어 하는 걸 알았다. 왜냐하면 두변 쪽 화포가 발사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투석기는 반 각이 지나야 한 차례 포격을 가할 수 있는 반면, 그 시간에 두변의 화포는 십여 차례나 포격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여씨의 대군이 완전히 수동적으로 얻어터지는 국면이 펼쳐지게 된다.

하지만 왕태자는 장래에 군주가 될 자로, 그가 이미 투석기로 대룡보 군영의 목채를 포격하겠다고 말한 이상 투석기로 두 번째 포격을 반드시 끝내야 했다. 군주가 허언을 할 수는 없었다.

콰과광.

콰과광.

콰과광.

두변의 화포가 연달아 울부짖었다.

포격을 가할수록 명중률은 점차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홱, 홱, 홱, 홱.

그 짧디짧은 반 각이 왕태자 여담에게는 1년처럼 길 수밖에 없었다.

반 각 동안 그의 군대에 점점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뿐 아니라, 군대의 사기도 끝모르게 점점 더 낮아졌다.

그는 정말로 두 번째 투석기 포격을 기다리지 않고, 병사들에게 돌격하라고 명령을 내리고 싶었다.

하지만 부왕이 입을 열지 않으니, 자신도 그런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다.

부왕 여여해는 정녕 사상자가 아무리 많이 나더라도 왕태자가 동요하지 않은 채, 군주가 허언을 하지 않는 모습을 유지하기를 바랐다.

그러니 여담도 이를 악물고 그 장면을 바라볼 수밖에.

두변의 화포 70대가 더할 나위 없이 방자하게, 잠깐의 간격을 두고 요란스럽게 울리며 연달아 일제 포격을 가했다.

매번 경천동지할 정도의 소리가 나면서, 자신들의 투석기를 몇 대씩 부숴버렸다. 또 매번 여씨 대군 병사들의 목숨을 수백 내지는 천 명씩 거두어갔다.

이미 수많은 여씨 병사의 얼굴에 공포가 가득했다. 꼼짝없이 얻어맞을 뿐, 반격할 힘이 전혀 없었다.

그때 여여해와 여담은 내심 동시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투석기는 이미 끝장났구나. 철저히 도태되어 버렸다.

화포가 미래의 전쟁에서 절대적인 주력이 되겠구나.

이제 보니 아포사가 정말로 허세를 떤 게 아니라, 화포야말로 진정 전쟁의 신이었구나.

다행히도 그들은 성화교와 맹우 관계였다. 두변을 없애버리고 난 뒤, 서역의 성화교에게 화포 수백 대와 포수 수천 명을 사올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여씨 대군이 대녕 제국 전체를 석권해버릴 것이다.

마침내, 장장 반 각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여씨의 대염 왕국은 모든 투석기 준비가 완료되었다.

지금 그들은 이미 두변 쪽 화포의 열세 번째 포격을 견뎌낸 상태였다.

투석기 200여 대 중에 80대가 망가져 버렸을뿐더러, 최전방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여씨 대군의 방진은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사상자는 만 명이 넘어섰다.

‘마침내 내가 위세를 부릴 차례가 됐구나!’

왕태자 여담이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모든 투석기, 목채를 찢어놓아라!”

휙, 휙, 휙, 휙.

나머지 투석기 백여 대가 또다시 미친 듯이 포효했다.

그와 동시에 두변의 12방 화포 70대가 열네 번째 일제 포격을 뿜어냈다.

콰과과광.

이번에는 대형 투석기가 무려 10여 대나 무참히 찢어져 버렸다.

몇 초가 지난 뒤, 여씨의 투석기에서 던진 석환 백여 개가 그제야 대룡보 목채 위로 매섭게 떨어졌다.

퍽, 퍽, 퍽, 퍽.

이번에는 제법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순식간에 대룡보 목채에 구멍 여섯 개를 만들어버렸을뿐더러, 병사 백여 명을 죽여버렸다.

“잘했다!”

왕태자 여담이 큰소리로 외쳤다.

‘두변, 네가 꽤 오랫동안 날뛰었더구나.

이제 너에게는 죽을 길밖에 남지 않았다!’

왕태자 여담은 이번 전쟁은 자신들이 이미 이겼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두변은 견고한 성을 두고 수성전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니라, 폐허가 된 군영 보루를 두고 수성전을 펼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보루의 목채에 구멍이 아홉 개나 나버렸으니까.

만 명이라는 사상자가 났다지만 자신들에게는 아직도 30만 대군이 버티고 있었다.

성벽도 없는 상황에서 여씨의 30만 대군이 두변의 4만여 대군과 싸운다?

아무리 화포가 있다고 해도 자신들이 질 방법이 없었다.

왕태자 여담이 힘껏 보검을 뽑고, 큰소리로 목청이 찢어져라 외쳤다.

“대군은 돌격해서 대룡보를 평지로 밀어버려라. 대녕 환관 두변의 군대를 모조리 죽여버려라!”

명령이 떨어지자, 수많은 대군이 두변의 대룡보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대지가 격렬하게 떨렸다.

여씨 대군은 어두운 파도처럼 보이는 데 반해, 두변의 대룡보는 종이로 세워진 성루마냥 순식간에 무너질 것만 같았다.

신병 1만 5천 명은 온몸이 떨리고,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이사조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적군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이 텅 비고 손발이 굳어버렸다.

끝이야, 끝장났다고! 이번에는 반드시 질 거야. 분명히 죽을 거라고.

이사조야, 이사조 이놈아. 네가 이득에 눈이 멀었구나. 정말로 두변을 믿어버리다니. 이제 여기에서 죽겠구나!

두변 대인! 당신이 우리를 속여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이가 보기에 두변은 이번 전투에서 반드시 패배할뿐더러, 그가 맞을 유일한 결말은 대군의 전멸이라고 생각했다.

화포 70대는 몹시 대단해서 일각도 안 되는 시간에 적군 1만 명을 죽일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더는 화포를 쏠 겨를이 없었다. 여씨의 수십만 대군이 곧 달려들 텐데, 목채는 이미 여기저기 구멍이 생겨버려서 공성전용 사다리를 쓸 필요도 없는데!

여씨의 수십만 대군이 무너진 목채로 달려들어서는 그 화포들을 노획해버릴 테고, 4만여 명은 어떻게 싸워도 30만에 가까운 병사들을 이기지 못할 텐데!

하지만 두변은 파도처럼 밀려드는 여씨 대군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외쳤다.

“산탄(霰彈)으로 바꿔라!”

포사수 수백 명이 질서정연한 동작으로 빠른 속도로 포강을 청소한 뒤, 화약 꾸러미를 집어넣고, 새로운 산탄을 밀어 넣었다.

물론 지금의 산탄은 현대의 것과는 달리, 긴 통처럼 생긴 포탄을 집어넣으면 그만이었다. 화포에 넣는 시간이 아주 조금 더 길 뿐이었다.

그리고 산탄의 중량은 쇠공 포탄보다 무거워서 13근 내지는 15근에 달했다.

모든 산탄이 전부 장착 완료되었다.

12방포가 쇠공 포탄을 발사하면 사거리는 2천 미터에 달하고, 유효 사거리는 1천 미터에 달한다.

그에 비해 산탄을 발사한다면 사거리는 500미터도 되지 않을뿐더러, 유효 사거리도 300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여씨 대군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두변이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궁수는 준비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보루 뒤에 있던 병사 4만여 명이 전부 활시위를 당겼다.

적군이 점차 더 가까워져서 400미터, 350미터, 300미터, 어느덧 250미터를 남겨두었다.

그때 두변이 갑자기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쏴라!”

콰과과광.

12방포 70대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포구에서 맹렬한 불길을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4만여 대군이 화살비를 일제히 퍼부었다.

쏴아아, 쏴아아.

순식간에 금속 탄환 수만 개가 폭풍우가 내려치듯이, 부채꼴 모양으로 힘차게 뿜어지듯 분사되었다.

찰나 간에 더할 나위 없이 공포스러운 장면이 나타났다.

최전방에서 돌격하던 여씨 대군이 보릿대처럼 한 무더기씩 쓰러졌다.

끔찍한 광란의 도살이 다시 시작되었다.

산탄 탄환 수만 개의 위력은 심지어 총탄의 위력을 넘어설 정도였다.

탄환 한 개에 10그램 정도라서 18세기의 산탄 탄환보다 더 작지만, 그럼에도 평범한 총탄의 탄두 중량을 넘어섰다.

탄환이 폭우처럼 마구 쏘아지자, 여씨 대군의 갑옷으로는 막을 길 없이 곧바로 관통되어버렸다.

몸뚱이에 맞아도 죽음이요, 머리에 맞아도 죽음이었다.

다리에 맞으면 다리에 구멍이 나면서 다리가 부러진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니 최전방에서 돌격하던 여씨 대군은 파도가 암초에 호되게 부딪히듯이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한순간 바닥에 쓰러진 사상자는 최소 2천여 명을 넘어섰다.

화포로 쏜 포탄 외에 화살비 수만 대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신군 1만 5천 명은 논외로 하고, 절세 지하성과 성화교군 모두 활 솜씨가 일류였다.

순식간에 여씨 대군의 돌격 기세가 바로 꺾어 버렸다.

왕태자 여담은 자신이 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화포가 몹시 대단하다는 건 알지만 방금 전까지 두변의 십여 차례의 포격은 1만 명 정도의 사상자를 가져다준 데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단 한 차례 포격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탄환을 내뿜을 뿐 아니라, 거기에 화살비 몇만 대까지 합쳐져서 병사 수천 명을 목숨을 가져가 버렸다.

최전방에서 돌진하던 병사들은 순식간에 넋이 나갔다.

순식간에 제 주위로 수많은 동료들이 그대로 쓰러져서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왕태자 여담이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돌격하라, 돌격하라! 감히 겁을 먹고 후퇴하는 자는 가차 없이 사살하겠다.”

이윽고 최전방의 병사들은 방패를 높이 들고 그 안에 머리를 파묻고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고작 30여 초가 지난 뒤.

콰과과과광.

지옥과도 같은 굉음이 또다시 울려 퍼지고, 대룡보에서 화살비 수만 대가 또다시 마구 날아왔다.

홱, 홱, 홱, 홱.

수많은 탄환이 또다시 폭우처럼 쏘아졌다.

“아아악!”

또다시 미친 듯이 목숨들을 거두어갔다.

밀집한 채 돌진하던 병사들의 대열이 우박에 맞은 보릿대처럼 또다시 우수수 쓰러졌다.

병사 수천 명이 또다시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왕태자 여담이 충혈된 눈으로 소리를 질렀다.

“돌격하라, 돌격하라!”

“아아악!”

돌격하는 여씨의 군대는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저 보루의 목채는 분명히 코앞에 있는 것인데, 하늘 끝에 있는 것처럼 다가가기 몹시 어려웠다.

저 목채는 분명히 종이처럼 쉽게 무너질 듯하고, 이미 구멍이 여러 개나 나버려서 한번 달려들기만 하면 함락될 것 같았다.

저기까지 달려가기만 하면 이긴다!

여씨 병사들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속 머리를 방패에 묻고 필사적으로 달려갔다.

곧이야, 곧 도착해!

목채까지 수십 미터도 남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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