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00화 (400/648)

400장: 장대비

그런데 바로 그때.

콰과과광.

지옥의 소리와도 같은 굉음이 또다시 울려 퍼지고, 폭풍우 같은 탄환이 또다시 미친 듯이 그들의 목숨을 거두어가려고 했다.

또다시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마구 튀면서 여씨의 군대가 한 무더기씩 쓰러졌다.

“달려라, 달려!”

그럼에도 그들은 미친 듯이 돌격했다. 목숨을 걸고 달렸다.

마침내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 바로 목채가 보였다. 5미터 높이도 안 되는 담장이라서 공성전용 사다리도 필요 없이 갈고리 밧줄만 쓰면 바로 기어오를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담장에 아홉 군데나 구멍이 나 있었다.

여씨 대군 중 일부는 일제히 갈고리 밧줄을 던져서 필사적으로 위로 기어올랐고, 나머지 대부분은 구멍 난 부분으로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두변의 군대는 일제히 검을 뽑아서 직접 밧줄을 끊었고, 화살을 쏘았다.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은 불과 4, 5미터 정도의 거리에서는, 활쏘기의 명중률이 놀라울 정도였다. 평균 화살 두 자루만으로 적군 한 명을 죽일 수 있었다.

여씨의 군대도 일제히 활을 꺼내서 반격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두변의 모든 군대는 전부 절세 지하성에서 가져온 뛰어난 갑옷으로 전신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화살로는 가렵지도 않았다.

그에 비해 여씨의 수십만 대군은 최정예 병사만이 철갑옷을 입은 반면, 대부분은 포갑(布甲: 옷 위에 구멍이 뚫린 쇳조각을 대고 꿰매는 가장 초보적인 방식의 갑옷)이나 지갑(紙甲: 종이를 여러 겹 접어서 미늘을 만들어 제작한 갑옷의 일종)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포갑이나 지갑이라고 얕봐서는 안 되는 것이, 그것들도 방어력이 강한 편이라서 심지어 화살을 상당 부분 막아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은 활 솜씨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데다, 활도 힘이 극도로 세서 대녕 제국의 다른 군대들을 훨씬 뛰어넘었다. 때문에,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활을 쏘니 포갑과 지갑으로는 전혀 화살을 막을 수 없었다.

1분도 안 되는 시간마다 화포 70대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대룡보 목채의 아홉 개 구멍으로 달려든 병사들에게는 더 끔찍한 참극이 발생했다.

구멍 주변에 있는 화포 두 개가 바로 구멍을 조준하고 있었다. 한 대는 쇠공 포탄을 사용했고, 한 대는 산탄을 사용했다.

콰과광.

화포가 힘차게 발사했다.

가장 피비린내 나는 장면이었다.

몇 미터 거리에서 쇠공 포탄의 기세는 놀라울 정도였다.

순식간에 수십 미터의 사람들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렇다, 말 그대로 꿰뚫고 지나갔다.

구멍이 있는 곳마다 여씨의 병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는데, 쇠공 포탄 한 발이 그들을 그대로 꿰뚫고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또 다른 화포에서 산탄이 급격하게 쏘아지면서 순식간에 구멍 밖에 빼곡하게 모여 있는 병사들을 전부 쓰러졌다.

고작 포탄 두 발로 수백 명이 죽여버렸다.

심지어 시체 수백 구가 담장의 구멍을 메워버렸다.

콰과과광.

12방 화포 70대가 미친 듯이 포격을 계속 가하고, 동시에 두변의 무사 수만 명도 화살비를 마구 쏘아냈다.

8리 길이의 목채가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5미터 높이도 되지 않은 담장이, 얼핏 보면 그토록 약해 보이는 담장이, 지금은 도리어 함락하기 어려운 천연의 요새처럼 그곳에 놓여 있었다.

공성전에 나선 여씨 대염 왕국의 첫 번째 군대는 족히 10만이었다.

엄청난 사상자가 나는 걸 견디며 담장 앞까지 달려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담장 아래까지 달려가니 뜻밖에 이곳을 돌파하는 게 하늘에 오르기보다 더 어려웠다.

두변 휘하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은 활 솜씨가 너무 좋았을뿐더러, 화포 70대의 위력은 지나치게 놀라웠다.

매번 포격을 가할 때마다 천 명 이상의 목숨을 가져가 버렸다.

고작 2각 뒤, 담장 아래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시체가 가득 쌓였다.

대룡보를 공격하러 간 첫 번째 여씨의 10만 대군 가운데 절반도 안 되는 인원만 남았다.

나머지 5만도 되지 않은 대군은 완전히 사기가 무너져서 필사적으로 뒤돌아서 도망쳤다.

왕태자 여담이 본능적으로 “후퇴하는 자는 가차 없이 사살한다.”고 외친 뒤, 도망친 병사들을 참살하라 명령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국왕 여여해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병사를 거두어들여라!”

땡, 땡, 땡, 땡, 땡.

귀를 찢을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수하라, 철수하라!”

대룡보를 공격하던 첫 번째 군대에서 살아남은 5만여 명은 울음이 터질 뻔했다.

이제야 병력을 물리는구나!

이윽고 이 5만여 명은 필사적으로 철수하며 도망쳤다.

콰과광.

두변의 화포 70대는 여전히 미친 듯이 일제 포격을 가하면서, 적군의 목숨을 계속 거두어들였다.

수만 대군도 여전히 끊임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대략 일각 뒤.

여씨 대염 왕국의 살아남은 대군 4만여 명이 마침내 전부 본영 안으로 철수했다.

하지만 지금 전투를 할 수 있는 병사는 고작 3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여씨 대염 왕국의 첫 번째 대룡보 공격은 완전히 실패했다. 10만 명이 출동해서 돌아온 건 고작 4만여 명, 사상자는 6만여 명이 넘어갔다.

“전군, 2리 뒤로 물러나서 그 자리에 주둔하고, 대룡보를 포위한다.”

여여해가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여씨의 나머지 20여만 대군이 거대한 짐승처럼 뒤로 물러났다.

쿵, 쿵, 쿵, 쿵.

대군은 천 미터 정도 후퇴한 뒤, 그 자리에서 집결했다.

이윽고 여여해는 몇만 대군을 보내 군영을 세우게 했다.

첫 번째 날의 전투는 여씨의 대패로 종결되었다.

그날 밤.

여여해 국왕의 군영에는 더할 나위 없이 답답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30만 대군이 두변을 토벌하러 왔고, 게다가 두변이 지키는 곳은 견고한 성이 아니라 10년 가까이 방치된 보루였다.

모든 이는 파죽지세로 나아가서 적군을 깔아뭉개는 식으로 파멸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토록 참패를 겪게 될 줄이야.

전투를 시작한 지 두 시진도 안 돼서 여씨 쪽에 사상자가 총 7만이 넘다니. 게다가 그 작디작은 담벼락을 시종일관 한 걸음도 돌파하지 못하다니.

관건은 두변의 군대에는 사상자가 극도로 미미하다는 점이었다.

왕태자 여담은 이제 완전히 침착해져서 입을 열었다.

“관건은 두변의 화포 70대입니다. 오늘 우리 쪽 사상자 7만 명 가운데 5만 가까이가 화포의 포격에 죽은 겁니다.”

대염 왕국의 대사제가 말했다.

“반드시 두변의 화포 70대를 망가뜨릴 방법을 생각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전쟁에서 이길 방도가 없습니다.”

왕태자 여담이 말했다.

“모든 무도 고수를 동원해서 두변의 화포 70대를 때려 부수면 어떻습니까?”

예전이라면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성화교에는 본래 고수가 많았고, 서역 성화교에서 무도 고수들을 한 무리나 지원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몹시 안타깝게도 여완완이 두변을 암살하러 갈 때, 두변의 계략에 의해 무도 고수가 스무 명 가까이 죽었었다.

그 뒤로 성화교군에 또다시 배신자들이 나와서 성화교군 3천 명이 두변에게 의탁했다. 그들 중에 무도 고수가 수십 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여씨의 대염 왕국에는 아직도 절정 고수가 한 명 있었다. 현대의 말로 하자면 핵폭탄급 고수일 것이다.

그건 바로 국왕 여여해였다.

그런데…… 정말로 당당한 국왕인 그가 나서서 그 화포들을 때려 부숴야 한단 말인가?

백색성.

어둠이 드리우자 오늘의 격전이 마침내 끝이 났다.

오늘 이문회는 군대를 거느리고 선성후의 공격을 다섯 번이나 격퇴시켰다.

하지만 그의 전적은 두변 쪽에 비할 바는 못되었다. 이문회가 선성후에게 5천여 명의 사상자를 가져다줬지만, 아군의 사상자도 2천 정도에 달했다.

이 전적은 얼핏 보면 제법 괜찮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문회 부대는 수성전을 펼치는 쪽이라서 적군에게 사상자를 가져다준 건 대부분 나무, 돌덩이, 끓는 기름, 대형 강노 등이었다.

이건 투항한 막씨의 구세력이 전투력이든, 전투를 치르고자 하는 의지이든 모두 약하다는 걸 증명했다.

적군이 성벽으로 달려들 때 그들은 아무리 완전 무장을 했더라도, 곧바로 뒤돌아 도망쳐서 하마터면 성벽 위 수비군의 진형을 어지럽힐 뻔했다.

이문회는 격노한 나머지 막씨의 구세력 수백 명을 참살했다. 이것이 바로 백색성 쪽에서 사상자가 2천 명이나 난 이유였다.

총병부 안에서 이문회, 기세 소성주, 옥진 군주, 이릉 네 사람은 몹시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옥진 군주가 말했다.

“우리에게 비록 4만여 대군이 있다고 하나, 실제로는 2만여 명에 불과한 셈입니다. 막씨의 구세력들은 도적 노릇을 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완전히 못 쓸 정도입니다.”

기세 소성주가 말했다.

“막씨의 구세력에서 데려온 병사 1만여 명은 투항한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반 년 정도라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들을 정예 부대로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한데 지금으로서는 그들의 전투력이 몹시 떨어지는 데다가, 심지어 전장에서 다른 병사들을 방해할 정도입니다. 아무런 긍지도 투지도 없으며, 적군이 달려오는 걸 보면 가장 먼저 도망칠 생각을 합니다.”

이문회가 말했다.

“기세 장군, 당신은 우리 힘으로 백색성을 얼마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기세 소성주가 대답했다.

“선성후의 군대는 장기간 북달족과 격전을 치렀습니다. 비록 장비가 좋은 편은 아니나 전투력은 확실히 약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자의 7만 대군뿐이라면 우리가 열흘을 지키는 것도 문제없습니다. 한데 원천조의 5만 대군이 수십 리 밖에 있으니, 언제든지 이곳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력 대군은 절세 지하성의 2군 무사 2만 명입니다. 그들은 긍지가 가득할뿐더러 몹시 용감하기도 하지만 너무 젊은 데다 아직 성숙한 전사가 아닙니다. 그에 비해 원천조의 5만 대군은 극도로 뛰어나니, 그들마저 백색성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위험해집니다.”

선성후 육전의 군영 안.

그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오늘 공성전에 그의 군대에서 사상자가 5천 명이나 났는데 그건 대군의 1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백색성 수비군의 강인함과 뛰어남은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이대로 병사들을 소모한다면 자신은 확실히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하고 남에게 이용만 당하는 꼴이 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두쟁이 다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멀지 않은 곳에서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쿵, 쿵!

두쟁이 1만 대군을 데려온 것이다.

두변의 여섯째 숙부 두쟁이 웃으며 말했다.

“선성후, 우리는 벗을 함정에 빠뜨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오늘 군대 5천을 손실 봤으니, 제가 1만을 보충해드리겠습니다! 더군다나 이들은 우리 방계 해외 제국의 정예 대군입니다. 이분은 여기 1만 대군의 만호 장군인 축천화입니다.”

건장하고 용맹스러운 만호 장군이 투구를 벗으며 말했다.

“선성후를 뵙습니다.”

두쟁이 말했다.

“선성후, 여기 1만 정예 병사들을 당신에게 배정하겠습니다.”

선성후가 큰소리로 웃었다.

“이 1만 정예병이 생긴 건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격이오. 내가 보증하건대 닷새 안에 백색성을 함락시키겠소!”

대룡보 전장에 새로운 하루가 밝았다.

오늘, 여씨의 전략은 몹시 뚜렷했다. 모든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두변의 화포 70대를 부숴버리는 것.

필요하다면 절정 고수 여여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지금 여여해는 여전히 왕포를 입었으나 손에 암흑색 검을 들은 데다가, 온몸에 대단한 전의가 충만했다.

그는 한 자루 검처럼 예리할 뿐 아니라, 산 하나가 우뚝 서 있는 것처럼 굳건해 보였다.

여여해는 전 숙주의 내력 수준을 집어삼킨 나머지, 무공이 대단하게 올라서 아무리 전성기 시절의 영종오 대종사와 심지어 이연정 대종사까지 가세하더라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왕인 그가 화포들을 망가뜨리러 직접 나서게 될 줄이야.

“오늘, 과인이 나설 테니 두변의 모든 화포는 전부 망가질 것이다. 하지만 모두 기억하라. 과인에게 수십만 대군이 있는데도 직접 나서야 하는 건, 너희에게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지를 말이다!”

국왕 여여해가 화를 내며 말하자, 왕태자 여담과 성화교의 사제, 또 장군 수백 명이 전부 바닥에 무릎 꿇었다.

국왕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 그건 그들에게 치욕적인 일이었다.

“너희는 영원히 오늘을 기억하라. 주군이 모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음으로써 충성을 바쳐야 한다!”

여여해가 노성을 지르자, 그의 목소리가 천둥이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런 뒤, 그는 손에 검을 쥔 채, 군대를 거느리고 대룡보를 향해 돌격해서, 직접 화포 70대를 부숴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쿠르르르릉.

하늘에서 큰소리가 울려 퍼지고, 천둥소리와 함께 먹구름이 짙게 드리운 뒤,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찰나 간에 빗방울은 세차게 내리는 장대비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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