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장: 어째서 이렇지?
왕태자 여담이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국왕의 위엄에 하늘마저 흔들려서, 뇌공(雷公)께서 큰비를 내리려나 봅니다.”
대염 왕국 성화교의 대사제가 말했다.
“큰비가 쏟아지면 두변의 화포는 쓸모없게 됩니다. 하늘마저 우리 편입니다. 하늘이 대왕을 보우해주시고, 대염 왕국을 보우해주고 계십니다. 대왕 만세, 만세, 만만세!”
왕태자 여담이 바닥에 무릎 꿇고 큰소리로 외쳤다.
“대왕 만세, 만세, 만만세!”
장군 수백 명도 일제히 바닥에 무릎 꿇고 외쳤다.
“하늘이 대왕을 보우해주고 계십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20여만 대군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고 놀라운 위세를 지닌 여여해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확실히 하늘이 여여해를 보우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얼마 전까지 하늘에 해도 보이고, 하늘도 몹시 파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여해가 검을 뽑아서 노성을 지르니 먹구름이 드리우고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여여해가 직접 출전한다고 하니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진다?
하늘이 여여해라는 대왕의 위엄을 지켜주려는 것만 같았다. 애초에 그가 나설 필요도 없이, 하늘이 두변의 화포 70대를 못 쓰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하늘마저 그들 대왕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니, 여씨 대군은 당연히 사기가 크게 고조되었다.
“대왕, 만세, 만세, 만만세!”
여씨 대군 20여만 명이 목청이 찢어져라 큰소리로 외쳤다.
여여해는 왕포를 입고 천천히 단 위로 걸어 올라갔다.
온몸에서 발산되는 강력한 기운에 빗방울도 그대로 흩어져 버리고, 아무리 폭우가 쏟아진다지만 그의 몸은 조금도 젖지 않았다.
이 순간 여여해는 온몸에 제왕의 패기가 충만했다.
그는 10여 미터 높이의 단 위로 올라가서 1,500미터 밖의 대룡보를 쳐다봤다.
어제의 전투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는 바로 저 화포 70대가 만들어냈으니, 그것들은 진정 전쟁의 신이라고 불릴 만했다. 저 화포 70대만 없으면 두변은 반드시 패배하여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여여해는 대룡보에 있는 두변을 힐끗 바라본 뒤, 자신의 20여만 대군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하늘이 우리 대염 왕국과 나 여여해를 보우해주고 계신다!
허니 오늘 반드시 대녕 제국의 백작 두변을 산산조각 내서 묻힐 곳도 없게 만들어버려라!
모든 대군은 돌격하라!
파멸시켜라, 대룡보를 평지로 밀어버려라!
두변의 군대를 한 명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버려라.”
여여해의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는 20여만 대군에게 똑똑히 들릴 뿐 아니라, 대룡보 안에 있는 두변까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두변의 몇만 대군도 분명히 들을 수 있었고, 심지어 고막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여씨의 20여만 대군은 대왕의 대단한 위세에 사기가 하늘을 찔러서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대왕 만세, 만세!”
“모든 대군, 돌격하라!”
“두변의 군대를 모조리 죽여버려라!”
명령이 떨어지자 천둥이 울려 퍼지고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여씨의 20여만 대군이 남김없이 총출동했다. 그들은 어두운 파도처럼, 진정 모든 걸 파멸시키는 힘이 충만한 모습으로 미친 듯이 두변의 대룡보로 달려들었다.
최후의 전투가 도래했다.
두변은 속절없이 하늘을 쳐다봤다.
‘오늘 하늘은 여여해의 편에 섰구나.’
어제는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먹구름이 가득했지만, 비 한 방울조차 떨어지지 않아서 화포들이 후련하게 적군을 참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 일찍, 분명히 날씨가 쾌청했었는데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폭우가 쏟아지면 화포 70대는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전쟁의 신이 효력을 잃게 된다.
쿵, 쿵, 쿵, 쿵.
폭우 속에서 여씨의 20여만 대군이 새까맣게 끝도 없이 펼쳐져서 미친 듯이 돌격했다. 순식간에 대룡보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부숴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보루 위에 서 있는 무사 1만 명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그에 비해 보루 아래에 있는 신병 1만 5천 명은 보루 밖의 경천동지할 정도의 함성과 요란한 천둥소리에 벌써 벌벌 떨기 시작했다.
두변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하아! 너무 아쉽군!
본래 화포 70대가 있으면 두변 자신은 쉬어도 될뿐더러, 대량 살상 무기를 쓰지 않고 아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하늘은 두변이 게으름 부리는 걸 원치 않으시나 보다. 자신더러 이번 전투에서 천지마저 파멸시킬 놀라운 공연을 펼치라 하시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내가 이번 전투를 종결시켜 보지.”
두변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린 뒤, 파멸의 화살 한 대를 뽑아서 암흑 물질 1밀리미터를 묻혔다. 그런 뒤 지옥불로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폭우가 화포의 울부짖음을 잠재울 수는 있지만 지옥불을 섬멸할 수는 없었다.
암흑 물질은 붉은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하얀색으로 변했다.
두변은 활시위를 당겨서 화살을 힘껏 쏘아냈다.
슈욱.
높은 곳에서 아래로 쏘니, 파멸의 화살이 폭우 속에서 아름다운 호선을 그리며 힘차게 500미터를 날아갔다.
그러더니 화살은 여씨 대군이 빼곡하게 가득 찬 군진 속에 외로이 떨어졌다.
정말로 빼곡했다. 20여만 명이 기세등등하게 돌진하고 있으니 놀라울 정도로 빼곡했다.
사람들은 두변이 어째서 화살을 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두변이 파멸의 화살을 쏘는 걸 본 적군은 이미 다 죽었으니 누가 알까.
그런데 1초 뒤.
펑!
선명한 녹색 화염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직경 100미터가 넘는 지옥의 불길이 힘차게 폭발하고, 8천 제곱미터 안의 모든 생명이 순식간에 재로 사라졌다.
여씨의 군대만이 아니라, 땅에 있는 모든 잡초까지 전부 사라졌다.
20여만 명이 돌진하는데 8천 제곱미터 면적 안에 사람이 얼마나 들어차 있었을까?
2, 3천 이상이 순식간에 재로 사라졌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전쟁의 신이자, 진정으로 천지마저 파멸시킬 힘이 아닌가.
두변은 멈추지 않았다.
슉, 슉, 슉, 슉, 슉.
예전에는 파멸의 화살을 줄곧 인색하게 사용했지만 지금은 한 대만 쏘는 게 아니라 미친 듯이 연사했다.
펑, 펑, 펑, 펑.
선명한 녹색의 아름다운 지옥불이 한 송이씩 연달아 피어났다. 게다가 모든 지옥의 꽃송이가 몹시 정확하게 피어났다.
이건 학살이라 부를 수도 없었다.
사신의 강림이자, 인간계에 지옥이 펼쳐졌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돌격하고 있던 여씨 대군이 한 조각, 한 조각 연달아 사라졌다.
천지마저 본래의 색을 잃었고, 땅 위에 핀 지옥의 불길이 하늘의 천둥과 번쩍이는 번개를 압도했다.
찰나에 낮밤이 뒤바뀐 것 같고,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가 땅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대결전은 끝나고 말았다.
파멸의 화살은 대염 왕국의 운명을 종결지어 버렸다.
백색 성벽에서는 전대미문의 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문회는 오늘 공성전을 펼치는 군대가 어제 군대보다 훨씬 뛰어남을 명확히 알아차렸다.
그건 선성후의 군대가 아니었다.
선성후의 군대는 이렇게 강하지 않을뿐더러, 장비도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 군대가 장착한 갑옷과 무기는 두변의 군대와 막상막하일 정도인 데다, 전투력이 극도로 강했다. 그건 방계 해외 제국의 군대였다.
이문회 휘하의 절세 지하성의 2군 무사들은 하룻강아지가 범을 무서워하지 않듯이 모두 용감하게 전진했다. 그들은 검을 휘두르며, 피로 목욕하듯이 격전을 치렀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나 어렸다.
그들은 절세 지하성의 미래였고, 평균 나이가 열아홉이 넘지 않았다.
대녕 제국의 군대라면 열아홉 살은 어쩌면 성숙한 병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절세 지하성에서 2군 무사들은 가장 먼저 몇 년간 군기와 진형을 갖추는 것, 자부심 등에 대해 학습했다. 정확히 말하면 병사로서의 사상과 행위의 토대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전투 기술과 무력으로 적을 참살하는 것들은 스무 살 이후에야 학습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절세 지하성의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수명이 몹시 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그들이 몹시 용감하더라도 여전히 방계 군대의 상대가 되지 못했고, 대규모로 사상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문회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문회는 이 아이들이 몹시 좋았고 감사했다. 모두가 용감할 뿐 아니라 정직하고, 긍지가 충만한 아이들이었다. 그들이 세뇌를 당했다고 해도 좋고, 미숙하고 천진하다고 해도 좋지만 그들은 분명히 미래가 밝은 젊은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이, 절세 지하성의 미래가, 지금 피를 흘리며 희생당하고 있었다.
이어서 어제 펼쳐진 그 장면이 또다시 펼쳐졌다.
막씨의 구세력에서 투항해온 군대가 사기가 무너져서는 또다시 뒤돌아서 도망치면서 다른 진형 속으로 흩어졌다.
한순간 북쪽 성벽 전체가 위태로워지고 곧 성벽이 뚫릴 것만 같았다.
“하하하!”
선성후 육전이 그 장면을 보면서 흥분해서 큰소리로 웃었다.
지금이 바로 백색성이 함락될 그 순간이로구나!
백색성을 함락시키기만 하면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그의 소유가 된다.
방계의 최신 정보에 의하면 두변은 막씨의 구세력에게서 천문학적인 돈과 물자를 노획했다고 했다.
이제 큰 횡재를 하는 순간이었다.
이제 선성후 육전은 광서 절반과 호남 일부를 얻게 될 뿐 아니라, 진정한 제후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죽여라, 죽여!
백색성을 함락시키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이를 모조리 죽여버려라! 그 안에 있는 수백만 냥을 뺏어라!”
선성후의 말에 대군은 더욱더 미친 듯이 성벽 위로 달려들어서 점점 더 많은 적군들이 백색 성벽으로 밀려들었다.
막씨의 구세력인 신병이 무너지고 흩어짐에 따라 방어선이 즉시 붕괴하기 직전이었다.
바로 그때, 기세 소성주가 절세 지하성의 무사 천 명을 거느리고 출동했다.
그들은 놀라운 전투력을 지닌 최정예 무사였다. 아주 잠시 동안 방어선을 안정시킨 뒤 적군을 한 걸음씩 몰아붙였다.
백색성 북쪽 성벽, 서로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병사들이 흘린 피가 사방에 가득했다.
대룡보의 전장.
이걸 전장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곳은 이미 지옥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적막한 지옥이었다.
슉, 슉, 슉, 슉.
두변은 여전히 미친 듯이 파멸의 화살을 발사하고 있었다.
파멸의 화살이 유성처럼 빼곡한 대군 사이로 내리쳤다.
콰광.
놀라운 녹색 화염이 치솟고, 수천 명이 이 세상에서 철저히 지워져 버렸다.
두변은 이미 사신의 화신이 되었고, 여씨 대군의 방진이 한 개씩 연달아서 인간계에서 증발했다.
왕태자 여담은 그 장면에 놀라서 얼이 빠져버렸다. 몸은 굳어버렸고, 머리는 텅 비어버렸다.
지금 그는 아무런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어제 화포가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을 완전히 전복시켜버렸다면, 오늘의 이 모든 것은 그의 세계관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렸다.
어째서 이렇지?
이곳은 어떤 세상이지?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저 놀라운 녹색 화염들은 애초에 이 세상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것들 아냐?
이 세상에 어째서 저런 무기가 있지?
게다가 그런 무기가 어째서 우리 여씨에게 주어지지 않고, 두변의 손에 나타나게 된 거지?
여담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그 파멸의 화살은 이 세상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것이 맞았다. 그건 이 세계에 속한 무기가 아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