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장: 이도진이 왜?
“하찮은 개미떼 같으니라고!”
여여해가 큰소리를 지르며 일장을 내리쳤다.
쏴아아아.
그의 앞이 곧바로 텅 비어버렸다.
성화교의 고수 수백 명이 마치 태풍이 불고 지나간 것처럼 전부 양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제는 절세 지하성의 무사 수백 명이 두변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하찮은 개미들 같으니.”
여여해가 또 일장을 내리쳤다.
쏴아아.
또다시 끔찍한 태풍이 불고 지나간 것처럼 절세 지하성의 무사 2백여 명은 지푸라기처럼 장풍에 맞아서 날아갔다.
저런 전투력이라니 놀라울 정도였다.
두변 앞이 순식간에 텅 비어버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지하성의 무사와 성화교군이 미친 듯이 달려와서 자신의 목숨으로 두변을 지키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으리라.
절정 고수 여여해가 바로 두변의 코 앞이었다.
여여해가 검을 잡아들고 소리쳤다.
“국왕인 내가 직접 나서야 하다니 크나큰 치욕이로구나!
나 강여해가 치욕을 견디며 나섰으니, 두변 너는 죽어도 영광스러울 것이다!
현재 천하에는 나와 일전을 벌일 수 있는 상대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서북 황금 제국의 자손 노이단, 동북 여진 제국의 금태길…….”
여여해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방계 해외제국에도 여여해 정도의 고수가 있고, 북명검파에도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천하에서 손에 꼽을 만한 절정의 고수였다.
“내 손에 죽는 건 너에게 최고의 영광일 것이다. 이제 으스러지거라, 두변!”
두변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여해가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지금, 두변 주변 수십 미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과 성화교의 무사들은 목숨을 바쳐 그를 구하러 달려오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두변이 여여해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그의 무공은 지나치게 고강했다. 두변이 교룡 혈맥의 기운을 가져서 도검에 찔려도 죽지 않는다지만, 여여해의 대단한 일검이라면 두변을 분골쇄신하기에 충분했다.
일단 몸이 산산조각이 나면 신선이 와도 그를 살리지 못한다.
그럼 두변은 여여해가 자신을 산산조각 내도록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일까?
당연히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구할 수 있었다.
지금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의 등 뒤엔 특수한 화유가 담긴 통이 하나 있었다.
여여해가 두변 곁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수십 미터 밖으로 날려 보내고 있을 때, 두변은 손아귀에 지옥불을 피어오르게 한 뒤 기름통 위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두변, 으스러지거라!”
여여해가 대단한 기세로 달려오는 그 순간, 두변 뒤에 있는 기름통이 갑자기 터져버리면서 순식간에 십여 미터의 맹렬한 백색 불길이 솟구쳤다.
두변의 온몸도 맹렬한 불길에 휩싸였다.
이 맹렬한 불길이 비록 지옥불은 아니지만 지옥불로 불을 붙인 만큼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고 누구라도 그 불길에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화염이 터지는 그 순간, 여여해가 미친 듯이 두변에게 돌진하는 그 순간, 절세미녀의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곧바로 여여해와 한데 뒤얽히며 두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를 해치면 안 돼!”
여인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피를 왈칵 뿜고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두변은 맹렬한 불길에 휩싸인 채 그 장면을 목격하고는 놀라서 얼이 빠졌다.
이도진이었다. 그녀가 달려와서 두변을 위해 여여해의 대단한 일격을 막은 것이다.
이 어리석은 여인은 경성을 떠난 뒤에 줄곧 두변 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북명검파의 최대의 배신자가 되었으니, 분명히 천하에 추살령이 내려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녀는 시종일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이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두변이 위험해질 테니까.
이 어리석은 여인은 두변이 이미 예상 선자와 모종의 협의를 마쳤다는 걸 알지 못했다.
두변이 어디에 가든 그녀도 따라갔지만, 두변이 그녀를 발견하지 못하게 시종일관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만족스럽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비록 같이 붙어 있을 수는 없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시시각각 두변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행복감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여여해가 두변을 죽이려고 하니, 더 이상 자신을 숨기고 있을 수가 없었다. 가장 빠른 속도로 달려와서 두변의 앞을 막고 서서 여여해의 놀라운 일격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이미 대종사 경지를 돌파했다지만, 여여해와 무도 수준 격차가 너무 크기에 그의 일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두변은 그 장면에 놀라서 넋이 나갔다.
‘이 어리석은 여인 같으니라고. 나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데 당신이 뛰쳐나와서 뭐 하자는 거야!’
여여해는 고개를 숙여 제 손바닥을 바라보고는, 다시 바닥에 쓰러진 이도진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한참을 당황했다.
이, 이 여인은 이도진인가?
하늘이시여, 저게 미친 겁니까?
이도진이 왜 이렇게 젊어졌지? 게다가 이렇게 절세미녀로 변한 거야?
너무나 낯선데도 익숙한 얼굴이로군.
여여해와 이도진은 인연이 있었다.
젊은 시절 여여해는 다른 권세가의 자제처럼 북명검파의 대은구도에 무공을 배우러 갔고, 그러니 이도진, 희민지와 사형, 사매 사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여여해는 외문(外門) 제자, 희민지와 이도진이야말로 내문(內門) 제자였다.
희민지와 이도진은 모두 대은구도의 유명한 대미녀였다. 다만 희민지는 담백하고 순수해서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멀리서만 바라보며 좋아했다. 그에 비해 이도진은 강렬한 개성과 불같은 성정 때문에 많은 남자 제자의 사랑을 받았다. 물론 그중에는 여여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도진은 여여해의 첫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몰래 한 짝사랑이었다. 그 당시 이도진은 안하무인이라서 애초에 여여해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여해도 순정파는 아니라서 한평생 많은 여인을 탐했지만, 첫사랑만큼은 그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니 북명검파를 떠난 뒤 자식을 낳고 기르고, 딸 여천천이 십여 세가 되었을 때 딸에게 이도진을 사부로 모시게 했었다.
이도진이 무도에 매료된 나머지 한평생 남자를 만나지 않는다는 사실에도 여여해는 흐뭇해했다.
대체적으로 이런 심리일 것이다. 내가 몰래 짝사랑하던 여인이 내게 시집올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평생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리? 한평생 연애를 하지 않으면서 항상 순결무구하길 바라는 마음?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도진은 뜻밖에 더 젊고 더 아름답게 변했다. 젊었을 때보다도 더 아름다워졌다.
가장 관건은 그녀가 뜻밖에 목숨까지 바치면서 두변을 위해 자신의 일격을 막은 것이다.
그, 그녀는 두변과 무슨 관계지?
이 둘은 철천지원수 아니었나?
여여해는 차마 두변과 이도진을 남녀 관계로 생각할 수 없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변은 일개 환관이 아닌가?
이도진이 뛰쳐나오는 걸 본 순간, 여여해는 본능적으로 힘을 일부나마 거두어들였다.
지난날 짝사랑하던 여인인데, 차마 일장에 쳐 죽일 수 없었다.
이어서 그의 시선이 다시 두변에게로 향했다. 그때 두변의 온몸과 주변에는 온통 끔찍한 백색 화염뿐이었다.
여여해가 냉랭하게 말했다.
“화염은 꺼지기 마련이다. 두변, 화염이 꺼지고 나면 너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때, 성화교의 무사들과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이 여여해를 겹겹이 에워쌌다.
여여해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소리쳤다.
“하찮은 개미떼 같으니!”
이윽고 여여해가 검을 움켜쥐고 한바탕 살계를 펼치려 할 때였다.
또 다른 절세미녀가 여씨 군영의 단 위에 나타났다.
북명검파의 제일미녀이자 천도맹의 수령인 예상 선자였다. 그녀는 수중에 인질까지 붙잡고 있는데, 바로 대염 왕국의 태자 여담, 여여해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었다.
예상 선자가 소리쳤다.
“여여해, 멈추십시오. 두변을 다치게 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의 아들을 죽이겠습니다.”
여여해의 낯빛이 확 바뀌었다. 그는 서자 여언이 죽는 건 개의치 않았고, 여완완이 사라진 것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여담은 그가 최고로 아끼는 자식이자 그의 후계자였다. 여담은 자신을 가장 닮은 데다 가장 신임하는 아들이었다.
여여해가 냉소하며 말했다.
“천도맹의 수령인 예상 선자가 설마 인질을 잡고 협박을 하기도 하시오?”
“내게 붙은 선자라는 호칭은 남들이 붙인 것일 뿐, 나 스스로는 선자라고 여겨본 적이 없습니다. 사명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해야지요.”
왕태자 여담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우리 부왕을 위협하지 말아라, 부왕을 위협하지 마!”
지금 여담의 모습은 오히려 광기에 휩싸인 듯했다. 여씨의 30만 대군이 전멸하다시피 했으니, 그는 아버지 여여해의 왕으로서의 위엄을 더욱더 신경 썼다.
여담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부왕, 두변을 죽이십시오!”
그런 뒤, 그는 예상 선자의 검날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가 뜻밖에 죽음을 자처할 줄이야!
여담은 정녕 자신이 죽더라도 예상 선자가 자신을 인질로 삼아서 부왕을 위협하지 못하게 해야 했다.
이 왕태자 여담은 두변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는 야심만만했지만 여언과 달랐고, 여완완과도 달랐다.
오죽했으면 여여해가 그토록 편애했을까.
하지만 예상 선자가 왕태자 여담의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쳤다.
여담은 눈앞이 새까매지더니 곧바로 혼절해버렸다.
대염 국왕 여여해는 이를 갈며 불 속에 있는 두변을 바라본 뒤, 또 왕태자 여담을 인질로 잡은 예상 선자를 바라봤다.
으아악!
세찬 포효성과 함께 그가 지면을 향해 일장을 내리쳤다.
순식간에 지면에 구덩이 하나가 생기고, 큰 구덩이 주변의 지면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끊임없이 갈라졌다.
이 사람의 무공은 정말로 하늘을 거스를 정도로 대단했다.
곧 여여해는 침착해져서 옆에서 큰 나무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그건 본래 포탄을 담았던 상자였다.
그는 이도진을 상자 안에 넣은 뒤 어깨에 둘러멨다.
여여해가 냉랭하게 말했다.
“두변, 나는 네가 이도진과 무슨 관계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너를 위해 죽으려고 했다면 분명 얕지 않은 관계이겠지. 너는 나를 완전히 섬멸하고 싶어하지 않았더냐? 나는 왕성에서, 왕궁에서 너를 기다리겠다.
너에게 닷새의 시간을 주마.
그 닷새 동안 나는 이도진의 손가락 하나도 더럽히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게다가 내 아내에게 그녀의 상처를 치료하라고 할 것이다.
닷새 안에 왕태자 여담을 데리고 왕성으로 와라. 그때 너와 내가 최후의 결말을 보자.
그때까지 네가 오지 않는다면, 미안하지만 이도진은 내가 예전부터 꿈에 그리던 여자라서, 너는 그녀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대종사의 경지도 내 것이 될 테고, 비길 때 없이 아름다운 몸도 내 것이 될 것이다!”
여여해는 나무 상자를 메고 훌쩍 뛰어서 두변 앞에서 사라졌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일 수밖에.
한 사람의 무공이 그 정도로 고강할 수 있다니. 비록 수천 명, 수만 명을 죽일 수는 없어도 그 많은 인원이 그를 붙잡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