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05화 (405/648)

405장: 여여해의 죽음 一

이도진은 조금 창백한 안색인데, 그 탓인지 그녀의 절세 미모가 더욱더 빼어나 보였다.

그녀는 두변을 보자 미간을 펴고 싱긋 웃었고, 두변도 그녀를 보고 씨익 웃어줬다.

대전 안으로 걸어가서 두변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여후를 뵙습니다.”

대녕 제국 입장에서 여여해라는 대염 왕국은 거짓 왕조이기 때문에, 제국의 대신인 두변으로서는 당연히 국왕이란 호칭을 인정할 리 없었다.

여여해는 온몸을 휘감은 전의가 조금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왜 그러냐? 곧바로 싸우지 않고, 먼저 얘기라도 나눌 테냐?”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럼 이야기하거라.”

“여후께서는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셨습니까?”

“두변, 나에게도 선택이 있더냐?”

하긴, 여여해에게는 선택권이 없다시피 했다.

대염 왕국은 돌연 흥성한 것처럼 멸망도 갑작스러웠다.

병력을 일으켜 모반을 한 뒤, 고작 반년도 안 돼서 광서의 절반, 운남성과 귀주성 전체를 손에 넣었다. 병력도 4, 50만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이런 확장은 비정상적이었다. 사천을 함락시키기 전까지 대염 왕국은 시종일관 온전할 수 없었고, 이전에 거둔 성과를 소화시킬 겨를이 없었다.

사실 여완완의 10만 대군이 전멸하다시피 했을 때, 대염 왕국의 토대도 절반이나 사라진 셈이었다. 전적으로 방계가 대염 왕국의 기운을 가까스로 지탱해주고 있었다.

며칠 전, 여여해의 30만 대군이 전멸하다시피 했을 때, 대염 왕국의 토대는 전부 사라져 버렸다. 두변이 대염 왕성을 함락시키고, 대염 왕국을 없애버리는 건 시간 문제에 불과했다.

“두변, 너는 천하의 삼대 패주를 아느냐?”

여여해가 묻자 두변이 답했다.

“서방 세계, 성화교 세계, 동방 세계입니다.”

“그렇다. 그게 바로 세계의 삼대 패주이다. 백여 년 전에 동방 세계는 바로 대녕 제국의 주도하는 동아(東亞) 세계였다. 한데 백여 년 전에 서방 세계의 문명이 부흥하고 궐기했고, 수십 년 전에 성화교 세계의 문명이 부흥하고 궐기했다. 그에 비해 대녕 제국은 끊임없이 위축되고 쇠미해졌다.”

두변도 알고 있는 바였다.

심지어 성화교 세계가 궐기한 건 꿈속 시스템과 전 숙주 때문이었다.

“아무리 대녕 제국이 위축됐다고 해도 세계 삼대 패주는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동방의 패주는 더 이상 대녕 제국이 아니라 동방 연합 왕국이 되었지. 바로 네가 해외 방계 제국이라고 말하는 곳 말이다.”

여여해의 말에 두변이 몹시 놀랐다.

“동방 연합 왕국이라고 했습니까?”

두변으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호칭이었다. 게다가 그 이름은 고대에서 부르는 이름 같지 않게 몹시 이상했다.

“동방 연합 왕국은 바로 네가 말한 방계 제국이다. 그들은 이미 과와 군도, 여송 군도, 마래아 군도, 또 멀리 있는 대륙 여러 개를 손에 넣었다. 지금은 완씨의 안남 왕국 등을 동방 연합 왕국에 가입시키려 압박하고 있지. 인구로 따지면 대녕 제국만 못하지만 토지로 따지면 대녕 제국을 넘어설 것이다.”

정말 빌어먹을 경우였다.

이 방계 해외 제국, 정확히 말하면 동방 연합 왕국의 주인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렇게 대단할 줄이야, 그 주인은 몇 개의 국가만 제외하면 거의 동남아 전체를 통일하다시피 했다. 게다가 오주(澳洲)도 벌써 손에 넣었으니, 미주(美洲) 대륙에 상륙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여여해가 말했다.

“너도 알 거다. 이문회가 광서의 모든 탐관오리를 죽여버린 뒤에, 우리 여씨는 거래 상대를 잃고, 무역권도 잃어버렸지. 허니 결국 대염 왕국의 모든 해상 무역 권한을 방계 해외 제국에 넘겨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어쩌면 동방 연합 왕국의 함대가 얼마나 강대한지 모르겠구나. 그들은 세계 삼대 해상권을 가진 패주 가운데 하나다.”

“이제 이해했습니다. 이른바 대염 왕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방계 해외 제국, 성화교와 담판과 타협해서 나온 산물에 불과하단 말이로군요.”

여여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 두변, 너는 확실히 전략적인 안목이 좋구나. 성화교는 더할 나위 없이 강한 데다, 야심만만해서 항상 동방 세계에 침입할 생각뿐이지. 한데 방계의 해외 제국은 시종일관 동방 세계 전체를 자기 것인 양 생각했지. 이윽고 내 대염 왕국이 나타나서 두 강한 권력을 완충하게 된 거다.”

대염 왕국은 동방 세계의 왕국이라고 할 수도 있고, 성화교의 세력이라고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두변이 말했다.

“한데 세계 삼대 패주라는 이름은 여전히 서방 세계, 성화교 세계, 대녕 제국이 거느리는 동방 세계가 가지고 있습니다. 방계의 해외 제국, 정확히 말하면 동방 연합 제국은 대녕 제국을 손에 넣지 못하는 한, 진정한 동방 세계의 지도자가 될 수 없을뿐더러, 진정 성화교 세계, 서방 세계와 대등한 입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지.”

“한데 이 방계 해외 제국은 해상 무역으로 번창했기 때문에 해군을 중시하고, 육군을 경시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강한 해군 세력을 보유했더라도 군함이 육지로 올라올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육군 세력은 해군처럼 강하지 않으니, 동부 세계 전체를 석권할 수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 한데 그들의 육군 세력이 비약적으로 팽창하며 발전하는 중이다. 특히 그들의 새로운 군대는 예전의 천마혈군보다 더 강해. 이 군대는 전부 잡아온 곤륜(昆侖)의 노비로 구성되어서 더할 나위 없이 강인하며, 아픔도, 두려움도 모르지. 이 최정예 대군이 만들어지면 방계 해외 제국의 육군은 충분히 동방 전체를 석권할 수 있을 거다.”

“한데 현재 그 동방 연합 왕국의 주인은 대녕 제국을 결코 없애고 싶지 않은 것 같고, 남의 둥지를 차지해서 그 자리를 대신하고 싶어하는 걸로 보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어쩌면 대녕 제국이라는 허울이 너무 귀중해서일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면…… 더 중요한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지도 모르지.”

“여후가 마음속으로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아마도 그들이야말로 기사(棋士)이고, 자신이 바둑알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여여해가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맞다. 다른 이가 기사고, 나는 바둑알이지. 나는 내 계획보다 앞당겨서 모반을 일으켜서 대염 왕국을 세웠을 뿐 아니라, 심지어 내 즉위 날짜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너는 내 즉위일에 수십 개 국가의 사자들이 축하하고, 증인이 되려고 찾아왔다는 걸 아느냐? 대녕 제국의 황제가 큰일을 치러도 그렇게 많은 사자가 꼭 오지는 않는다. 그야말로 대단히 보기 좋고, 시끌벅적했지. 한데 그 국가들의 배후의 주인은 모두 다 성화교와 동방 연합 왕국이다.

나는 내가 더할 나위 없이 강대한 무력을 장악하고, 수십만 대군을 장악하면 나도 기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성화교와 방계 해외 제국에도 반항해 보았지. 하지만 결국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러웠어. 성화교가 파견한 사자 중에 가장 높은 직위가 고작 아포사였기 때문이다. 너는 그의 신분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릅니다.”

“그는 파사 제국에 있는 일개 성(省)의 총독에 불과하다. 그에 비해 방계 해외 제국이 나에게 파견한 사자 중에 가장 높은 관직을 가진 건 광서 순무 두강이었지. 나는 양광 총독 고정의 얼굴도 본 적이 없다.”

그건 정말이지 막대한 치욕이었다.

여여해도 어쨌든 대염의 국왕인데 성화교든 동방 연합 왕국이든 고작 일개 성의 장관을 파견했을 뿐이다. 그들이 보기에 여여해는 일개 성의 고위 관리와 왕래를 하는 게 충분하다고 여긴 것이다.

게다가 여씨는 전적으로 정염, 납포, 비금 무역을 하는데 그 무역들은 전부 방계가 장악하고 있었다.

진정 그들이 기사였고, 여여해는 바둑알에 불과했다.

“너희 넷과 무도로 생사를 건 결전을 벌인 후 내가 이긴다면, 난 사천을 함락시킨 뒤 전쟁을 중지시킬 것이다. 그런 뒤 문을 닫아걸고 발전에 매진하기 시작하고, 심지어 대녕 제국과 관계가 완화될 것이다. 성화교와 동방 연합 왕국의 통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바둑알에서 기사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내가 죽으면 모든 건 중단된다.”

여여해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죽어도 되지만 우리 여씨 가문은 멸망해서는 안 되고,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한다. 그러니 내게는 세 가지 선택밖에 없다. 첫째, 여씨가 성화교에 의탁하는 것. 둘째, 여씨가 동방 연합 왕국에 의탁하는 것. 셋째, 여씨가…… 두변 너에게 의탁하는 것!”

“대단한 영광입니다. 제가 뜻밖에 동방 연합 왕국, 성화교와 나란히 논해지다니요.”

“나는 줄곧 천명(天命)을 믿지 않았고, 여완완도 믿으려 하지 않았지. 하지만 줄곧 어떤 소리가 들리고, 두려운 현실이 내게 일깨워주더구나. 너는 천명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여완완은 줄곧 어떤 꿈을 꾸었는데 더할 나위 없이 복잡한 꿈나라가 펼쳐졌지. 꿈속에서 여러 가지 결과가 나왔단다. 그 애의 꿈속에서 네가 연기로 사라지기도 했고, 세상의 주인이 되어서 모두를 겁난에서 구하기도 했지. 네가 그 애를 죽이기도 했고, 그 애가 시집가서 네 아내가 되기도 했지. 매일 그 애는 그런 꿈을 꾸었다.”

어쩐지, 그래서 여완완이 지옥불에 불타면서 본능적으로 ‘부군, 살려줘요!’라고 외쳤구나.

“나는 네 배후에 신비하고도 강대한 힘이 지탱해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여완완의 스승처럼 말이야. 그 사람은 성화교의 전 부교주이자, 성화교가 세상에 궐기하게 된 제일 공신이었다. 한데 나는 줄곧 이렇게 생각했다. 그자는 성화교를 세상에 궐기시켜서 서방 세계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막았다. 하지만 종국에는 여전히 낭패를 보고 끝장이 났고, 걸어다니는 시체가 되며 상당 부분의 무공을 내게 집어삼켜지게 됐다. 이런 상황이니 두변 네가 설령 천명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들 또 어떻단 말이냐?”

그 사람은 숙주였고, 자신도 숙주다.

하지만 조금 다른 건 전 숙주는 절반쯤은 시스템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가, 최후에는 말살되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아마도 절반쯤은 주재자일지도 모르지 않나.

여여해가 말했다.

“한데 최근에 발생한 일들로 인해, 나는 천명이란 게 존재한다는 걸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광서 전체에 대녕 제국의 세력이 전부 없어지고, 너라는 천호가 제국의 최고 관원이 되어버렸다. 분명히 개미처럼 하찮아서 내 손가락 하나만으로 눌러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네가 뜻밖에 미친 듯이 궐기해서 여완완의 10만 대군을 없애버렸을 뿐 아니라, 아포사의 성화교 대군이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온 게 결과적으로 너에게 화포를 선물한 셈이었다니. 가장 중요한 건 너는 전대미문의 이세계 기운을 사용해서 내 30만 대군을 파멸시켰다. 그 점에 나는 천명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여여해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동방 연합 왕국에 비하면 너는 몹시 약소하다. 한데…… 너도 기사다. 나는 줄곧 열정적인 데다 위험을 무릅쓸 용기도 있다. 그러니 이번에 또 한 번 모험을 해보는 것이다. 내가 진다면 나는 너라는 천명을 받은 사람에게 남은 판돈을 전부 걸어버리겠다. 내가 도박에서 지면 여씨 가문은 자연히 멸망한다. 만약 내 도박이 이기면 여씨 가문은 휘황찬란함을 다시 맞이할 것이다.”

여씨 가문의 전통은 무엇일까?

남에게 의탁했다가 배신하는 것!

수백 년 전에 그들은 황금 제국에 의탁해서 백 년 가까이 충견 노릇을 했다.

이후에 다시 대녕 제국에 의탁해서 백 년간 충견 노릇을 했다.

하지만 주인이 약해지면 그들은 즉시 주인을 물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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