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07화 (407/648)

407장: 선성후의 최후 一

“안 돼!”

한 부인이 갑자기 달려 나오는데, 바로 여여해의 아내인 여황(厲凰)이었다.

여황의 성씨가 여여해와 같은 것은, 여여해의 수양 동생이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여인이야말로 여여해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여여해가 직접 정벌전에 나서서 두변을 공격할 때 여황이 남아서 왕성을 지키기도 했다.

이 여인이 평소에 얼굴을 드러내는 경우는 몹시 드물었지만 아마도 여여해의 참모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항상 얼굴 절반을 덮은 가면을 착용해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얼굴의 절반만 드러냈다. 가면 속에 숨겨진 절반은 어떤 모습일지, 외부인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오늘 여여해는 그녀에게 왕궁을 떠나라 했고 그녀는 바로 떠났다. 왕성에서 근 10만 대군을 통솔하며 두변의 공격을 막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여해가 무도를 사용해서 두변 등 네 사람과 생사를 건 결전을 벌인다는 제안에도 그녀는 전적으로 따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남편을 절대적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는 남편이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왕궁의 염룡대전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지진이 난 것처럼 지면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두려울 정도로 불안감이 솟구친 그녀는 결국 군대도 내팽개치고 왕궁까지 달려온 것이다.

그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충격적인 장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무시무시하게 거대한 암흑의 왕이 여여해를 향해 걸어가더니, 단칼에 내려쳤다.

대염 국왕 여여해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검을 들면서, 두 검이 매섭게 한 곳에서 부딪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화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듯한 끔찍한 폭발 같은 건 없었다.

여여해의 몸이 흔들리기만 하고 그의 수중에 있던 검이 가루가 되어버렸을 뿐이다.

여여해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심지어 입안이든, 눈이나 귀에도 피 같은 것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무사한 것처럼 보였지만 여황은 그녀의 남편이 죽었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았다.

그녀는 처참한 비명을 지르면서 남편에게 맹렬히 달려갔다.

여여해의 2미터에 가까운 몸이 여전히 더할 나위 없이 위풍당당하게 그곳에 꼿꼿이 서 있었다.

심지어 얼굴 표정도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였고, 입모양도 여전히 ‘젠장’이란 두 글자를 뱉고 있는 듯했다.

왕후 여황은 차마 남편을 만질 수 없었다. 만져서는 안 됐기 때문이다.

여여해의 온몸에 수많은 바늘구멍 같은 게 나타나더니, 새빨간 피가 솟구쳐 나왔다. 그런 뒤, 그의 몸이 와르르 무너졌다.

피가 그의 온몸 모든 곳에서 마구 뿜어져 나왔다. 입에서는 새빨간 피만이 아니라 내장 파편까지 솟구쳤다.

방금 전에 그의 겉으로 보이는 신체는 무탈해 보였을지 몰라도 오장육부는 이미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유언을 남길 시간도 없었다.

“악! 오라버니! 안 돼, 안 돼!”

여황은 여여해의 시신을 껴안고 싶었지만 차마 건드릴 수가 없었다. 닿기만 해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제 심장이 완전히 부서지는 심정으로, 필사적으로 목 놓아 울 수밖에 없었다.

끝도 없는 고통과 끝도 없는 어둠이 미친 듯이 엄습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여씨 가문에서 자랐다. 그녀의 친부모는 여씨에게 죽임을 당한 토사였으니, 그를 원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그녀가 아직 갓난아이였을 때 일어났다. 게다가 그녀도 갓난아이일 당시, 반쪽 얼굴이 불에 뎄다.

그래서 그녀는 얼굴의 절반은 선녀처럼 아름다운 반면 또다른 절반은 역귀처럼 추했다.

여씨 가문의 양녀가 된 그녀는, 줄곧 반쪽 추한 얼굴 때문에 온갖 괴롭힘을 당했지만 수양 오라비인 여여해가 그녀를 줄곧 보호해주었다.

이치대로 따지면 여씨는 그녀의 원수일 것이다. 그녀의 가문을 없앴을뿐더러, 그녀의 부모를 죽였으니 그녀는 복수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토사 연맹이 궐기하고 또 멸망하는 건 정상적인 운명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멸망 당하거든 자신이 약함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아직 어린 탓에 원한이 쌓일 틈도 없었다.

조금 자란 뒤로는 열등감과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물론 남모르는 짝사랑도 있었다. 수양 오라비인 여여해에 대한 짝사랑이었다.

여여해는 다른 권세가의 귀족 청년들처럼 첫사랑이자 짝사랑에는 몹시 진지했는지 모르지만 첫사랑이 지나간 뒤로 절세미녀를 보면 욕망만 들 뿐, 좋아하는 감정이 생기는 일은 드물었다.

여여해가 스물여덟이 돼서 북명검파를 떠날 때가 되자, 그의 부모가 그를 위해 혼사를 준비하려고 했다.

그 당시의 서남 토사 연맹은 막씨가 몹시 강했고, 여씨가 그 다음이었다.

그러니 여여해의 부모는 막씨에게 구혼하려고 했고, 막영이 여여해와 혼담이 오갔다.

그때 막영은 견사 대사를 좋아하고 있어서, 워낙에 거만한 태도를 취했고 덕분에 여여해의 존엄성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모든 이가 앞에서 여여해에게 수모를 주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나중에 여씨가 배반해서 막씨를 없애버리는 일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집에 돌아온 여여해는 즉시 확고하게 주관을 내세워 아주 오랫동안 자신을 짝사랑하고, 또 자신도 아주 오랫동안 보호해줬던 수양 동생인 여황을 아내로 맞았다.

사실 그는 수양 동생인 여황에게 오누이의 감정만 있을 뿐, 남녀의 감정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여인에게는 일말의 감정조차 없었다.

여황의 반쪽 얼굴이 역귀처럼 추하지만 그런들 또 어떤가? 이미 온갖 미녀와 온갖 잠자리를 해봤고,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 없는데?

여러 가지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여황은 거절하는 게 마땅했다.

많은 여자가 그럴 것이다.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잖아요. 당신은 단지 날 동정해서 나를 아내로 맞으려는 거겠죠.’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황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몹시 기쁘게, 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여여해와 혼인했다.

이 여인은 사내들이란 욕정에 헤프다는 걸 잘 알았다. 사내들은 일생 동안 많은 여인에게 매료되어서 누구에게도 바지를 벗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내들은 순정적이었다. 사내들은 종국에는 집에 있는 아내와 평생을 함께 할 테니, 아내를 제외한 바깥 여인들은 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사실이 그러했다.

혼인 후, 여황은 여여해의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신임하는 여인이 되었다.

아무리 그가 천하의 수많은 절세미인을 첩실로 얻었다지만 누구도 여황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었다.

여황에게 여여해는 그녀의 전부였다.

물론 그녀의 아들 여담도 있었다.

여완완과 여천천은 그녀가 직접 낳은 딸이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다른 첩이 낳은 아이들이었다.

이 쌍둥이 딸을 낳은 뒤, 그 여인은 바로 죽었다. 난산으로 인해 사망했다고 했지만 대체 그 여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여황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여해는 남다른 생각을 했는지 여천천을 여황이 키우도록 맡겼다. 또 줄곧 그 아이를 여황의 소생이자 여씨의 적녀(嫡女)라고 선포했다.

어찌 됐든, 이제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인 여여해가 죽었으니, 그녀의 심장도 정말로 텅 비어버렸다.

여여해의 시신이 쓰러지는 순간에는 두 눈을 뜨고 있었지만 곧 점차 눈을 감았다. 그는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못했지만 눈을 편히 감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여황은 남편이 눈을 감기 직전, 그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나 여여해는 끝내 왕궁 안에서, 왕좌 위에서 죽었다. 아무리 그 왕좌가 이미 부서졌지만 말이다.’

하루만 왕위에 오르더라도 평생 왕으로 살다 간다고 했다.

이제 왕후 여황은 그제야 두변이 떠올랐다.

방금 전에 두변은 무언가를 마신 뒤, 순식간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시각적인 충격을 주었었다.

왕후 여황은 뒤를 돌아 거인 두변을 바라봤다.

하지만 1초 뒤, 두변은 거대한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그런 뒤 거인 같던 몸이 쏜살같이 줄어들면서 곧 본래의 두변으로 돌아왔는데,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았다.

가늘고 긴 몸이 심지어 조금 연약해 보일 정도였다. 몹시 잘생긴 남자아이였다.

게다가 두 눈을 굳게 감고 인사불성이 된 데다, 손에 든 도룡검마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이럴 때, 왕후 여황이 두변을 죽여서 남편의 복수를 하려고만 한다면 너무 손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두변은 눈을 뜨고 깨어났다.

그는 대염 왕국의 궁전 안, 화려하고 큰 침상 위에 누워 있었고, 황금빛 휘장 너머로 바닥에 몇 명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게 보였다.

두변이 몸을 일으켰다.

“주인을 뵙습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말했다.

두 사람이 바깥에 서 있었는데 한 명은 기세 소성주의 부인이자 부홍빙의 동생 부홍릉(傅紅淩)이고, 또 한 명은 절세 지하성 임족(林族)의 소성주인 임절진(林絕塵)이었다.

휘장을 젖히자,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보였다. 한 명은 반쪽짜리 가면을 착용한 여인이며, 전 대염 왕국의 태자 여담, 홍하상회의 주인 여여지, 전 대염 왕국의 공작 이도전, 전 대염 왕국의 군주 이능어였다.

여황은 본래 쉽게 두변을 죽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예전에 그녀의 가문이 여씨에게 멸망당했을 때도 그녀는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 여여해가 두변 손에 죽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다. 여여해는 그녀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자, 그녀의 목숨 전부라고 해도 말이다.

권력를 다투는 전쟁에서는 승자가 살아남고, 패자가 죽는 건 몹시 정상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두변은 정당하게 여씨를 쓰러뜨렸다. 거기엔 아무런 음모나 비열한 일 따위는 없었다.

여여해는 왕위에 올랐던 사람이라서 투항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씨 가문은 계속 이어져야 하니, 남편인 여여해는 두변에게 의탁하는 걸 선택했다. 그렇다면 여황은 남편의 의지에 전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두변이 침상에서 일어나자, 왕궁 전체가 이미 절세 지하성 무사들의 손에 넘어갔음을 깨달았다. 심지어 대염 왕성까지 이미 두변의 손에 떨어진 후였다.

여황이 거느린 최후의 10만에 가까운 군대도 조건 없이 투항했다.

왕후였던 여황이 황금 보검 한 자루를 받쳐 올리며 말했다.

“주인이시여, 당신은 이곳에 있는 저희 모두를 다 죽일 수 있습니다. 저를 죽여도 되고, 여담을 죽여도 되고, 여여지를 죽여도 됩니다. 하지만 청컨대 여씨의 핏줄이 끊이지 않고 이어질 수 있도록 남겨주십시오.”

이어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아이 셋을 들어 올렸다.

여담의 아들 총 세 명으로, 가장 큰 아이는 세 살, 가장 어린 아이는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

이윽고 여황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황금 보검을 높이 들어 올리며 두변의 심판을 기다렸다.

두변이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니 그곳에 도검 선반에 자신의 도룡검이 놓여 있었다.

두변은 걸어가서 도룡검을 들어서 여황과 여담 앞에 섰다. 그리고 검을 여담의 어깨에 올린 채 망설임에 빠졌다.

죽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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