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장: 선성후의 최후 二
여씨가 최후에 투항한 일은 몹시 예상 밖이었다.
여황은 분명히 자신을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도리어 조건 없이 투항한 뒤, 자신의 생사를 결정할 권한을 직접 두변 손에 넘겨주었다.
이게 바로 여씨 가문의 생존 철학인가?
물론 두변은 그런 수법에 속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씨 가문의 역사가 투항과 배신이란 두 단어로 귀결됨을 잘 알았다.
주인이 강할 때는 몸을 던져 의탁해서 가장 충성스러운 충견이 된다. 그러다 주인이 약해질 때 배반해서 매섭게 주인을 물어버린다.
지금 두변의 결정을 좌우할 수 있는 걸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바로 이익일 것이다.
여씨 일가를 죽이는 게 이익이 더 클까, 아니면 그들을 살려두는 게 이익이 더 클까?
대략 반 각 뒤.
두변이 보검을 거두어들이고 말했다.
“여황, 여담, 나는 당신들에게 단 하나만 요구하겠습니다.”
여황과 여담이 머리를 조아렸다.
“언젠가 내가 죽었다는 것이 확실해진 후 나를 배반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여황과 여담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예, 주인!”
“내가 혼절한 지 얼마나 됐죠?”
두변이 묻자 기세 소성주의 아내 부홍릉이 말했다.
“여섯 시진입니다.”
다행이었다. 두변의 예상보다 훨씬 짧은 시간이었다.
암흑 물질을 마시면 두려운 결과가 있을 것이라 확신하기는 했다. 기음음도 그걸 마신 후 완전히 휴면 상태에 빠지고 말았으니까.
본래는 자신도 며칠 밤낮, 심지어 몇 달이나 혼절 상태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상, 이도진, 기란정은 어떻게 됐습니까?”
두변이 묻자 부홍릉이 대답했다.
“이도진과 예상은 혼절해서 깨어나지 못했고, 기란정은 가장 경상을 입어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이미 이도진과 예상을 데리고 이곳을 떠나서 북명검파로 향했습니다. 예상이 몹시 중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제게 주군께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상황이 몹시 엄중하니, 주군이 가능한 한 빨리 북명검파로 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여여해의 부인 여황이 말했다.
“주인, 서남 토사 연맹의 모든 토사를 제가 전부 잡아서 이미 부홍릉 장군께 넘겼습니다. 제 남편 여여해가 패전했을 때, 그 토사들은 방계와 몰래 연락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주인께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이치대로라면 충견을 몇 마리 더 키운 뒤, 그들과 여씨가 서로 물어뜯게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쪽에는 감흥이 없었다.
“전부 죽이세요!”
“예!”
두변의 말에 부홍릉이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주인께서 명령을 내리셨다. 서남 토사 연맹의 모든 토사를 전부 참살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바깥에서 귀신이 우는 듯한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두변 대인, 살려주십시오. 두변 대인,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투항하겠습니다. 저희는 두변 대인께 투항하기를 원합니다!”
“여씨 가문은 제 명에 못 죽을 것이다, 처참하게 죽을 것이야!”
솩, 솩, 솩.
무사들의 칼이 떨어지자, 서남 토사 연맹의 모든 토사, 전 대염 왕국의 모든 공작, 후작이 전부 참수당했다.
두변이 천천히 궁전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는 천천히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는데, 왕궁에 있는 모든 대염 왕국 깃발이 전부 떼어진 후였다.
대염 왕성에서 여씨 가문과 관련된 모든 것, 대염 왕국과 관련된 깃발, 표기, 휘장(徽章)등이 전부 사라졌다.
그것들을 대신해서 대녕 제국의 용기(龍旗), 또 두변의 진서 백작 깃발이 걸려있었다.
바깥 광장에는 새빨간 피와 수급들이 가득했다. 수천 명 이상의 수급으로, 이제 보니 참살 당한 건 서남 토사 연맹의 모든 토사뿐 아니라 그들 가문의 모든 구성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어쨌든 여씨 가문을 제외하고 이번 대염 왕국의 모반과 반란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이 깨끗하게 참살당했다.
여씨는 저번에는 막씨 가문을 배반하더니, 이번에는 서남 토사 연맹 전체를 배반하고 중요한 순간에 서남 토사 연맹 전부를 두변에게 팔아넘겼다.
어떻게 보면 이 가문도 정말이지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적어도 지금, 여씨의 모반은 완전히 진압되었다.
장렬하게, 열광적으로 궐기했던 대염 왕국은 완전히 멸망했다.
진정 홀연히 흥성했다가, 홀연히 멸망해버렸다. 여씨 가문에게 그 200여 일은 하룻밤의 꿈 같았을 것이다.
두변에게도 이 모든 건 꿈에서 벌어진 일인 것만 같았다.
두변이 명령을 내렸다.
“부홍릉, 1만 5천 대군을 거느리고 문산성에 진수하고, 여씨의 투항한 군대를 재편성하세요. 여황 부인, 당신은 남아서 부홍릉 장군이 군대를 재편성하는 걸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여황이 말했다.
“존명!”
부홍릉과 임절진 소성주는 아직까지 한 분야를 독자적으로 맡아본 적이 없었기에, 두변의 이 명령은 비교적 위험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기세 소성주와 부홍빙 모두 여기에 없었다.
두변이 말했다.
“여담, 이도전, 당신들 두 사람은 나를 따라 군대를 거느리고 백색성에 구원하러 달려갑니다. 이번 전쟁을 완전히 종결짓고, 선성후 육전이라는 날뛰는 어릿광대를 없앱니다!”
여담과 이도전 두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존명!”
반 시진 뒤.
야생마를 탄 두변이 낭기병 300명, 기병 4천 명을 거느리고 쏜살같이 전 대염 왕성에서 출발했다.
가는 길에는 여씨 군대에 투항했던 모든 병사들이 전부 무장해제된 채, 갑옷을 벗고,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지어서 재편되는 걸 기다리는 장면이 보였다.
어둠이 짙게 드리웠지만 두변은 기병 수천 명을 거느리고 미친 듯이 백색성을 향해 질주했다.
백색성 대전은 이미 이레나 지속되고 있었다.
둘째 날이 되자, 이문회와 기세 소성주 모두 셋째 날부터는 백색성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백색성에는 4만 대군밖에 없는 데다가, 그중 막씨 구세력 도적놈들은 전투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뿐더러, 도리어 연달아 방어진형을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셋째 날이 되자, 이문회와 기세 소성주는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그건 바로 막씨의 구세력 1만여 명을 전부 무장해제 시키고 가두는 일이었다.
그러니 진정 성을 지키며 전투를 하는 건 고작 2만 명 정도였다.
반대로 선성후의 군대는 싸울수록 인원이 늘고 있었다.
그렇게 버티면서 스스로도 자신들이 사흘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이레나 버티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정말로 버틸 수 없었다.
절세 지하성의 2군 무사 2만 가운데 사상자가 절반이 넘었을 뿐 아니라, 이 외에 제삼군단 5, 6천 명에서도 사상자가 절반이 넘어갔다.
지금 성을 지키는 군대는 이미 1만도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레나 결전이 이어진 탓에,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고 모두 몸에 크든 작든 부상이 가득했다.
선성후 육전 쪽도 사상자가 몹시 많았다. 그의 7만 대군 중에 4만만 남고, 나머지 3만은 다 죽어버렸다.
하지만 방계가 그에게 2만 정예 부대를 지원해준 덕에, 그의 수중에는 아직도 6만 대군이 있었다.
백색성 성벽 위에서는 모든 물자가 바닥이 났다. 굴림 나무든 돌덩이든, 기름, 심지어 화살까지 다 써버렸다.
절세 지하성의 2군 무사 2만 명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그들은 몹시 젊었지만 도리어 계속 이를 악물고 지금까지 버틴 것이다.
이문회와 기세 소성주가 결단을 내려 막씨의 구세력을 전부 성벽에서 쫓아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백색성은 정말로 이미 함락당했을 것이다.
백색성 대전의 여드렛날 새벽녘.
선성후 육전이 말했다.
“오늘은 최후의 날이다. 오늘, 백색성은 함락될 것이다! 그 안에 두변의 몇백만 냥 은자가 있다. 상상만 해도 군침이 흐를 정도의 돈이다!”
두변의 여섯째 숙부 두쟁이 물었다.
“당신을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건 고작 은자뿐입니까?”
“옥진 군주를 말하는 거요? 그녀는 건드리기가 어렵소.”
“당신께 소식 하나를 알려드리지요. 진남공 송결은 아마, 곧 끝장날 겁니다.”
“옥진 군주를 건드려도 되는 거요?”
그 말에 두쟁이 냉소하며 말했다.
“황제마저 끝장날 판에 고작 군주가 별거겠습니까?”
“이제 시간이 어느 정도 된 것 같군. 오늘은 병력을 남겨두지 말고, 6만 대군이 성벽 네 면을 모두 공격해야겠소. 이문회가 1만만 남은 상태에서 물자까지 바닥났는데 어떻게 성을 지킬지 두고 봐야겠소.”
“대전이 발발할 때, 성안에서 어쩌면 기쁜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안의 막씨 구세력이 반란이라도 일으킨단 말이오? 이미 그들과 연락을 취했소?”
“백색성이 막씨 세력의 손에 있었을 때, 그들은 너무나 많은 비밀통로를 남겨두었었지요. 두변도 일부 알기는 하지만 그도 알지 못하고 일부 막씨 구세력만 알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어젯밤 누군가가 몰래 나오더니 암흑을 버리고 광명으로 돌아서길 원한다고 하더군요.”
선성후 육전이 그 말에 하하 큰소리로 웃었다.
“내외 협공이로군. 오늘은 한 시진도 안 돼서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겠구려. 백색성은 곧 함락될 것이요! 참, 두변 쪽 소식은 있소?”
“가장 새로운 소식은 두변이 대룡보에서 결전을 치르는 걸 선택했다고 합니다. 여여해가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두변의 4만여 명을 공격할 겁니다.”
육전이 큰소리로 웃었다.
“대룡보라? 10년이나 황폐해진 군영, 담장마저 곧 무너지려 하는 그 대룡보 말이오? 두변의 4만여 명이 여여해의 30만과 맞서 싸운다고 했소? 그놈은 미친 거요? 원래부터 머리가 이상했소?”
“지금쯤 두변은 이미 죽었을 겁니다. 우리는 백색성을 빨리 함락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곧 여여해를 상대해야지 않겠습니까.”
선성후 육전이 말했다.
“한 시진, 한 시진 안에 백색성을 함락시키겠소!”
온몸을 발가벗긴 잘생긴 사내 하나가 끌려 나왔다. 얼굴에 간단한 분장을 해서 두변과 5할에서 많이는 6할 정도는 비슷하게 만든 자였다.
게다가 아주 철저하게 거세당해서 두 다리 사이는 텅 비어 있었고, 목에 올가미가 묶여서 개처럼 선성후 육전의 손에 묶여 있었다.
사내의 가슴과 엉덩이에는 각각 두변이라는 두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있었다. 사실 선성후의 사내 창기였다.
얼굴을 두변처럼 분장한 사내 창기가 개처럼 끌려나와서 이문회와 기세 소성주, 옥진 군주, 백색성의 모든 수비군 앞에 나타났다.
“꿇어라!”
선성후 육전이 그를 힘껏 발로 걷어찼다.
발가벗은 사내 창기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면서 울부짖었다.
“나는 두변이다. 나는 엉덩이를 파는 환관이다! 난 너희에게 투항을 명령하겠다!”
그 장면을 본 이문회와 옥진 군주 등은 부아가 터질 것만 같았다.
선성후 육전이 채찍을 힘껏 내리치며 소리쳤다.
“엉덩이를 더 흔들어라.”
사내 창기가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나는 두변이다. 나는 엉덩이를 파는 환관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겠다. 투항하라, 투항해!”
선성후 육전이 성벽 위에 있는 이문회를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이문회 환관 놈아, 너에게 좋은 소식을 하나 알려주겠다. 두변은 이미 여여해 손에 죽었으니, 너희도 그를 따라가거라.”
이어서 육전이 크게 소리 지르며 명령을 내렸다.
“성을 공격하라. 두변 환관 놈의 군대를 모조리 죽이고 은자와 여자를 빼앗아라!”
명령이 떨어지자 그의 4만 대군, 방계의 2만 정예 대군, 총 6만 대군이 네 부분으로 나뉘어서 백색성의 성벽 네 방향으로 돌격했다.
그와 같은 시각, 백색성 안.
막씨의 구세력 1만여 명이 나무와 쇠로 만든 몽둥이를 들고서는 안절부절못하면서 모여 있었다.
“두변, 그 환관 놈은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어. 개, 돼지처럼 우리 일족을 도살했다고.”
“이제 두변이 끝장났으니 우리는 어둠을 버리고 밝은 쪽으로 나아가야 해. 방계에 의탁하자!”
“우리는 공을 세워야 해. 뛰쳐나가서 성안의 모든 사람을 죽여버리자!”
“반란을 일으켜서 두변 환관 놈 군대의 배후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거야!”
이어서 무장 해제된 상태의 막씨 구세력 1만여 명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와 같은 시각.
두변이 거느린 기병 5천 명은 부홍빙의 2만여 대군과 이미 합류한 상태였다.
두변은 쉬지도 잠도 자지 않고 행군해서, 백색성과 100여 리 남은 거리에서 부홍빙 부대를 따라잡았다.
지금 그는 3만 대군을 거느리고 휙휙 소리가 날 정도로 백색성을 향해 달렸다. 선성후 육전 대군의 등 뒤로 쳐들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육전, 이 날뛰는 어릿광대 놈아!
네 최후의 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