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장: 선성후의 최후 四
백색성 안.
호색한인 데다 탐욕스럽고 간덩이가 작은 도적들이 다수였기에, 거주민 구역으로 달려드는 막씨 도적들의 수는 점점 더 많아져서 종국에는 2, 3천 명에까지 달했다.
어차피 백색성 안에는 평민 가솔들이 만 채나 있었고, 집집마다 돈과 여인이 있었다. 겁탈할 여인이 모자를 걱정은 없었지만 나눌 돈이 적어질까 걱정이었다.
“돈을 뺏고, 여인을 뺏자!”
막씨의 도적 병사 2, 3천 명이 거주민 구역에 달려든 순간, 도리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자신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곳곳에 나무, 모래 포대, 큰 수레 등이 가득 쌓여서 가장 원시적인 방어선 역할을 구축하고 있었다.
1만여 집의 가솔들이니, 사람 수는 몇만이나 되었다. 물론 대부분 연로한 농민이고 평범한 부녀자들이었다.
그들은 두변에게 은혜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일뿐더러 이문회와 교분을 깊게 나눈 사람들이었다.
최근 며칠 동안 매번 대전이 끝나면 이문회는 여전히 사람들을 데리고 거주민 구역에 들어가서 끊임없이 두변의 승리를 선전했다.
모든 가솔들에게 두변 백작이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는 반면, 여씨 반란군이 연전연패를 거두고 있다고 알려줬다.
곧 있으면 두변 백작의 대군이 백색성으로 달려와서 성벽을 둘러싼 적군을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동창의 문관들이 이곳 거주 지역의 농민들과 부녀자들을 조직해서 가장 간단한 방어선을 만들어서 스스로를 지키기로 했다. 중년, 노년 사내 수천 명이 괭이 같은 것을 들었고, 여인 수천 명은 멜대를 들었다.
모든 길목 입구마다 돌과 나무들이 쌓여 있었고,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동창의 주부 진평이 맨 앞에 서 있고, 그의 곁에는 농민들과 부녀자들로 구성된 민병 수천 명이 있었다.
막씨의 도적들이 달려온 것을 본 주부 진평이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죽음을 자초하나? 모반을 하게?”
도적 병사 두목이 흉악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아직도 무슨 척을 하시나? 두변은 이미 죽었고 백색성은 곧 함락되는데? 너희 같은 평범한 자들이 우리를 막겠다? 돌진해서 저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전부 불태우고 약탈해라. 모든 여편네를 발가벗겨서 죽을 때까지 겁탈해라1”
이윽고 도적 병사 2, 3천 명이 미친 듯이 돌격했다.
주부 진평이 큰소리로 외쳤다.
“집과 아이, 여인을 지켜라!”
순식간에 농민 수천 명으로 구성된 민병들이 괭이를 휘두르면서 막씨 도적들과 한데 맞붙었다.
하지만 농민은 아무래도 농민에 불과했다. 도적 병사들은 두변의 정예 대군 앞에서는 차마 방귀도 한 번 끼지 못하면서 평범한 농민들을 상대로는 흉악하게 날뛰었다.
짧디짧은 찰나 사이에 습성대로 살육하면서 수십 내지 백 명을 참살했다.
그들은 즉시 민병들로 구성된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거주민 구역 안으로 뛰어들어 대규모로 살육, 간음, 약탈하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쿵, 쿵, 쿵, 쿵.
거리에 질서정연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든 도적 병사는 무기를 내려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가차 없이 사살하겠다!”
이윽고 완전무장한 무사 수백 명이 달려들었다.
용맹스러워 보였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그들은 온몸을 떨면서 비틀거리며 걷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전부 부상병들이었다.
또다른 연로한 도적들이 부상병 병영에 그들의 수급을 거두러 갔다가, 도리어 부상병들에게 목숨을 그대로 바치고 말았다.
1만여 부상병 중에 수백 내지는 천 명 정도는 그래도 다른 부상병들보다는 비교적 가벼운 상태였다. 그들이 즉시 방어조를 조직해서 부상병 병영에 달려든 도적 병사 수백 명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런 뒤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러운 몸을 억지로 참으며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채 거주민 구역으로 사람들을 구하러 달려온 것이다.
이게 바로 절세 지하성의 직업 무사들이었다. 이상과 절대적인 긍지가 충만해서 아무리 중상을 입어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섰다.
이들은 절세 지하성에서 아무리 흉악한 괴수 무리를 상대할 때도 겁을 내지 않던 자들이었다.
바로 그때, 성 밖에서 경천동지할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변의 기병이 돌격하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귀청이 떨어질 듯한 환호성이 전해졌다.
“주군을 위해!”
“대성주를 위해, 적군을 죽여라!”
절세 지하성의 2군 무사 부상병 수백 명이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군의 대군이 이미 돌아왔다. 도적들은 전부 무릎 꿇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도적 병사 수천 명은 놀라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두변, 두변 그 사신이, 그 폭군이 죽지 않았다고? 다시 돌아왔다고?’
그들은 모든 담력을 잃고 전부 질서정연하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감히 움직이지도 않았다.
두 시진 뒤.
백색성 밖의 대전은 이미 끝났다.
이건 두변이 서남 전장에서 치른 진정한 의미의 대규모 전투일 것이다.
그전에 부주성을 공격할 때나, 아포사 대군과 대치할 때나, 그것도 아니면 여여해의 30만 대군을 상대할 때, 화포나 파멸의 화살을 사용했었다. 양쪽 군대가 맞붙어 전투를 이룬 것 자체는 몹시 드물었다.
그런데 오늘 전투에는 화포도 없을뿐더러 파멸의 화살도 완전히 다 써서 없었다.
두 대군은 들고 있는 병기로 서로 목숨 바쳐 싸웠을 뿐이다. 그리고 두변이 또다시 대승을 거뒀고.
선성후의 4만 대군은 1만여 명이 참살당했고, 나머지 2만여 명은 전부 무릎 꿇고 투항했다.
방계의 정예 대군 2만은 사상자가 1만여 명이 난 뒤, 나머지 수천 명은 전부 투항했다.
그렇다. 방계의 정예 대군도 투항하기는 했지만 몹시 직업적인 투항이었다.
직업적인 투항이 무엇이냐면, 무기를 내려놓고, 갑옷을 벗고, 양손을 든다. 하지만 무릎은 꿇지 않고, 적군에게 의탁하지도 않은 채, 제 주인이 담판해서 자신들을 되사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선성후 육전, 두변의 여섯째 숙부이자 광서 순무 두강의 사자 두쟁은 극도로 교활해서 기회를 틈타서 이미 도망친 후였다.
여담이 기병 2천 명을 거느리고 그들을 추격했다.
두변은 거대 늑대를 타고 성 밖 거대한 공터를 천천히 걸었다.
사방이 시체가 즐비할 뿐 아니라 피가 낭자했다.
선성후의 병사 2만여 명은 질서정연하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방계의 정예 대군 1만여 명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서 있었다.
막씨 도적 병사 1만 명은 성 밖으로 쫓겨나서 질서정연하게 무릎 꿇었다.
포로가 5만 가까이인 셈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잠시 후, 급박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기병 한 무리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아직 수십 미터 거리가 남았을 때, 여담은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무능해서 선성후 육전만 붙잡고, 두쟁은 도망쳐버렸습니다. 주군께서 벌을 내려주십시오.”
이 대염 왕국의 전 태자는 몹시 필사적이었다.
그가 거느린 기병 3천여 명은 절세 지하성의 기병들만큼 뛰어나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금 전 전투에서 그가 세운 군공은 뜻밖에 부홍빙과 막상막하일 정도였다. 더군다나 그의 기병 3천여 명 가운데 사상자가 3분의 1이 넘을 정도였다.
대전이 끝나고 난 뒤, 그는 다시 자발적으로 군대를 거느리고 선성후 육전을 잡으러 갔는데 정말로 잡아버린 것이다.
두쟁이 도망쳐버린 건 그가 선성후와 두쟁, 둘 중 한 명을 골라서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여담이 선성후 육전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두변이 앞으로 가서 말했다.
“고생했습니다!”
여담이 즉시 이마를 땅에 붙이고서 자신이 최대한 공경을 표시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두변이 이도전과 이능어를 향해 말했다.
“당신들 가문의 장군을 부축해서 일으키세요.”
“주군, 감사합니다!”
여담은 차마 이도전과 이능어가 다가와 자신을 부축할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애써 일어선 뒤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선성후 육전은 말단 병사의 옷을 입은 채 위풍당당해 보이던 수염까지 직접 깎은 후였다.
수염을 깎으면서까지 수작을 부렸건만, 아쉽게도 여담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육전이 얼굴을 한바탕 실룩이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진서 백작, 축하하네. 완전히 여씨 반란군을 섬멸하는 불세출의 공을 세워서 서남의 패주가 됐군!”
이어서 육전은 과장된 동작으로 박수를 치며 말을 이었다.
“나 선성후 육전이 황제 폐하께 두변 대인의 관작을 올려달라고 상주서를 보내야겠어. 오늘부터 육전은 오직 두변 대인의 지휘만을 따르겠네!”
두변이 웃으며 물었다.
“육전, 당신은 투항하겠습니까?”
선성후 육전이 웃으며 답했다.
“자네와 나 모두 같은 왕조의 신하일뿐더러, 함께 폐하께 충성을 바치는데 무슨 투항을 논하나? 나는 두변 대인의 인품을 존경하기 때문에 지휘에 따르길 원하는 것이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두변이 비수를 꺼내서 선성후 육전의 두 다리 사이에 놓고 가볍게 그어버렸다.
“으악!”
처참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선성후 육전을 능지처참하라!
진정한 능지를 행해야 한다! 사흘 동안 천 번을 베어라. 천 번이 채워지기 전에 절대로 이자를 죽게 하면 안 된다!
전서구를 보내서 천하에 알리고, 폐하께 아뢰어라. 나 두변이 대승을 거두며 서남의 반란을 완전히 섬멸했다고!”
“내가 심각하게 틀린 거지.
막씨 토사가 멸망한 그 순간부터 너희는 이미 망했다. 너희가 악마의 열매를 심어서 돈으로 바꿨을 때부터 이미 망한 것이다. 너희가 도적처럼 변한 그 순간부터 이미 구제불능이 된 것이다.”
두변은 바닥에 빼곡하게 무릎 꿇고 있는 1만여 명을 바라봤다.
두변은 이들의 저열한 근성을 고치기 쉽지 않고 전장에서 제구실을 못 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절세 지하성과 성화교군에게 영향을 받으면 조금이라도 변해서 어느 정도 구실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두변 앞에서는 그의 손자라도 되듯이 공손히 말을 잘 듣다가, 두변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악랄하고 저열한 근성을 다시 그대로 내보였다.
이들은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었다. 10년 가까이 도적 생활을 한 나머지, 이미 짐승, 축생으로 전락해버렸다.
1만여 명이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머리를 땅에 박았다. 이 얼마나 가련해 보이는가.
“두변 대인, 이번만 용서해주십시오!”
“두변 대인, 저희가 이욕에 눈이 멀었었습니다.”
“두변 대인, 저는 남들의 선동에 당했습니다. 저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머리를 땅에 박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가슴을 치며 독하게 맹세했다.
어쨌든 그들은 말끝마다 자신의 잘못을 알겠다, 두변 대인께 용서를 구한다, 앞으로 반드시, 반드시 고치겠다고 했다.
다 같은 사람이라지만, 사람 간의 차이가 이토록 컸다.
“한 명도 남기지 말고 전부 죽여라.”
이윽고 절세 지하성의 무사 2천 명이 달려가서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섰다. 그런 뒤 그들의 손이 검과 함께 일제히 올라갔다가 일제히 아래로 떨어졌다.
솩, 솩, 솩, 솩, 솩.
아무리 참수를 할 때라도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은 한 사람처럼 동작이 질서정연했다.
손이 다시 올라가고, 검이 다시 떨어지면서 참수는 계속되었다.
그렇게 막씨의 옛 부하 1만여 명이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선성후 육전의 포로 2만 명은 놀라서 얼이 빠지고 안색이 창백해지면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
1만여 명씩이나 저렇게 모조리 죽여?
방계의 포로 1만 명도 얼굴색이 확 변했다.
두변이 물었다.
“여담, 당신은 이 포로 3만 명을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습니까?”
여담이 허리를 거의 90도로 꺾으며 말했다.
“신, 건의 드릴 것이 있습니다. 선성후 육전의 포로 2만 명 가운데 일부는 그의 병사가 된 시간이 짧아서 악질적인 병사들에게 악영향을 적게 받았으니, 아직 만회할 여지가 있을 겁니다. 젊고 순박한 병사들을 일부 골라서 주군의 군대에 채워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구제불능인 악질들과 방계의 포로 1만 명은 주군의 군대에 편입할 수 없습니다. 악질적인 병사들은 미꾸라지처럼 온 웅덩이를 흐려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 대염 왕국이 확장할 때는, 적지 않은 악질 병사들이든 쓰레기든 다 받아들였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한꺼번에 50만 대군을 확충할 수 없었을 텐데요?”
“저희 여씨의 대염 왕국은 대의가 모자랐기 때문에 허장성세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뿌리부터 건강하지 않은 군대였지만 주군은 다릅니다. 주군의 군대는 가장 좋은 밑바탕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주군에게는 대의가 있습니다. 그러니 주군께서는 정예 병사 전략을 이행해야 합니다.”
“그럼 방계의 포로 1만 명은 극도로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데 어째서 그들은 쓰지 말라는 겁니까?”
“그들은 주군께 충성을 바칠 수 없을 뿐 아니라, 방계의 해외 동방 연합 왕국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주군이 동방 연합 왕국보다 강해지지 않는 한, 저 포로들은 주군께 충성을 바칠 리가 없습니다.”
“그럼 당신은 저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견갑골을 뚫고, 족쇄를 채워서 광물과 정염을 캐러 보내는 겁니다. 주군의 대업을 위해 죽을 때까지 노역을 시키는 겁니다.”
“아, 기억났습니다. 당신 여씨에는 많은 비금 광산, 철 광산, 정염 광산이 있었죠.”
두변의 말에 여담이 곧바로 무릎을 꿇고 고했다.
“주군께서 그 많은 비금 광산, 철광, 정염 광산을 소유하신 겁니다. 그것들은 이제 저희 여씨와 무관합니다.”
두변이 여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자는 정말이지 인재로군. 그래서 여여해가 그토록 아꼈구나.
바로 그때, 옥진 군주가 걸어오면서 복잡한 눈빛으로 여담을 바라봤다.
어떻게 보면 여담은 옥진 군주에게 악몽 같은 존재 중 하나일 것이다.
길게는 몇 년이란 시간 동안, 여담은 옥진 군주를 자신의 것으로 간주했다. 여담이 처음부터 끝까지 첩실만 들일 뿐 처를 맞이하지 않은 것은, 반드시 옥진 군주를 처로 맞겠다고 선포했기 때문이었다.
진남공 송결도 당연히 옥진 군주를 여담에게 시집보내는 걸 원하지 않으면서, 옥군 군주의 혼사도 지체되고 말았다.
몇 년 전, 옥진 군주가 여담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여담이 독점욕이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었다.
그런데 지금, 여담은 옥진 군주가 이곳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곁눈질조차 하지 않았다. 여담의 눈에는 두변 한 사람만 있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이쪽은 옥진 군주입니다.”
두변의 말에 여담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예를 올렸다.
“여담, 옥진 군주를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