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12화 (412/648)

412장: 방계가 놀라다.

이사조가 마침내 휴가를 얻어서 집에 돌아와서는 급료로 받은 은자 열 냥을 아내에게 맡겼다.

“이렇게 많아요?”

아내가 놀라며 묻자 이사조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이게 뭐 별거라고 그래? 여자들은 식견이 없어서 돈만 본다니까. 전공에 비하면 돈이 뭐 대수겠어?”

이어서 이사조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이 속삭였다.

“내가 이번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잖아. 적군의 수급을 많이 베어서 그걸 군공으로 바꿀 수 있거든. 상관이 우리 제2군단을 대대적으로 확충한다는군. 내 지위가 올라갈지도 몰라. 곧바로 백호로 승진할 수도 있다고.”

“정말이에요?”

아내가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며 물었다.

“조용히 해. 조용히. 일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니, 당신은 나가서 마구 허세를 떨면 안 된다고.”

이어서 이사조가 조심스럽게 그림 한 폭을 꺼내는데, 그건 뜻밖에 두변의 초상화였다.

그는 두변의 초상화를 집 대청의 중앙에 붙여두었다.

“소관 이사조, 주군께서 만수무강하시기를 빕니다!”

이사조는 더할 나위 없이 정성스럽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아내와 연로한 부친은 한쪽에서 그 장면을 보며 당황했다. 예전에 이사조가 말끝마다 두변에게 불경한 말을 하지 않았나?

그런데 지금 조상에게 절을 드리는 것보다 더 공손하게 절을 해?

아내는 순간 마땅찮다는 듯이 물었다.

“당신, 관직에 마음이 홀려서 그래요? 두변 대인은 이런 수법 안 좋아하신다고요.”

이사조가 급히 아내의 입을 틀어막았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당신은 내가 주군께 알랑방귀 뀌는 줄 알아?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내가 알랑방귀 뀌어봤자 무슨 소용인데! 알려줄게. 우리 주군은 애초에 범인(凡人)이 아니라 신령이 세상에 내려오신 거라고. 알겠어? 내가 직접 본 거라고. 우리 몇만 명이 다 직접 봤다고.”

확실히 직접 본 게 맞았다. 두변이 파멸의 화살을 마구 쏴서 지옥의 꽃을 피워냈으니까.

그 순간부터 이사조는 두변의 다른 군대 병사들처럼, 두변의 열광적인 추종자가 되어버렸다.

경성.

이미 완전히 식량이 끊어져서 군대도 먹을 죽이 없었다.

황제는 이미 말라서 피골이 상접했다. 굶주림 탓에, 그는 몹시 특수한 정신 상태에 빠져들었다.

평온함, 절망적인 평온함이었다. 하지만 그건 또 몹시 지혜로운 평온함이었다.

태자는 얼굴이 붓기 시작했다.

태자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부황, 두변 쪽에서 아직 소식이 전해오지 않았습니다. 가장 새로운 소식은 선성후 육전과 원천조의 10여만 대군이 백색성을 포위하며 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변은 군대를 거느리고 황폐해진 지 오래인 대룡보로 물러났고, 위왕(僞王) 여여해는 직접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대룡보를 포위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백색성은 이미 함락당했고, 두변도 전멸했을지도 모릅니다.”

황제는 여전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경성의 연로한 백성들은 이미 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이 더 지나면 경성의 백성들이 대규모로 죽을 겁니다.”

태자의 말에 황제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부황께서는 방계와 타협하는 걸 원치 않으시고, 정녕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경성의 백만 백성들을 보전하려고 하시지만, 신 아들로서 어떻게 아버지가 희생하는 걸 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니 신이 자청해서 천진에 가서 방탁, 두회와 담판을 벌이겠습니다. 신은 태자 자리를 내놓길 원하며, 심지어 자결하기를 원합니다. 그런 뒤 부황께서 연왕을 아들로 거둬들이세요. 부황께서는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부황께서는 방계와 타협하시면 안 되지만 저는 죽어도 됩니다!”

황제가 몸을 흠칫 떨며 눈을 떴다.

“태자, 짐은 오래 살지 못한다. 내가 말했지 않으냐. 내가 죽은 뒤에 모든 걸 네 말대로 하면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두변의 소식을 기다리자꾸나. 내가 기다릴 자격이 없어질 때까지 계속 기다리자꾸나.”

황제가 기다릴 자격이 없어진다는 건 무슨 뜻일까?

경성의 백성들이 대규모로 굶어죽을 때, 황제는 기다릴 자격이 사라진다. 그때가 되면 그는 목숨을 내놓고 경성 백만 백성의 살길과 바꿔야 한다.

이런 상황은 정말이지 사람을 절망하게 만들었다.

지금 서남의 국면은, 이미 희망을 품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황제는 모든 걸 다 하늘에 맡겼다. 하늘이 그더러 죽으라고 하면 그는 바로 죽을 생각이었다.

갑자기 밖에서 비틀거리는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이연정이 전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는 너무 오래 굶은 탓에 곧바로 비틀거리면서 바닥에 넘어졌다.

그런 뒤 일어나지도 못했다. 굶어서 누렇게 뜬 얼굴에 흥분한 나머지 홍조가 가득했다.

이 노인은 흥분해서 말도 나오지 않고, 입술이 온통 떨렸다.

“폐하, 경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두변 백작이 서남에서 대승을 거둬서 위왕 여여해는 이미 죽고, 여씨는 완전히 투항했습니다. 위염 왕국의 거의 모든 반역자가 모조리 죽었다고 합니다.

반역자 선성후는 이미 패전해서, 이미 두변 백작에게 능지처참당했다고 합니다.

제국 서남부의 반란은 완전히 평정되었고, 서남 전체가 다시 제국의 판도에 들어왔습니다.”

황제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어서 재빨리 다가와서 이연정이 손에 든 밀서를 빼앗아갔다.

그렇다, 그건 두변의 친필 서신이었다.

이겼어?

이겼구나! 정말로 이겼구나!

황제의 얼굴이 눈물범벅이었다. 그는 온몸을 떨며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어서 황제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역대 조상들이시여, 이번에 선조께 물려받은 강산을 마침내 제 손에서 잃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맹세컨대 사실입니다. 하늘이 보우해주신 은혜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두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걸 막아준 큰 은혜에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네.”

태자와 영설 공주 두 사람도 놀라서 넋이 나가고 말았다.

두변이 정말로 그 일을 해냈다고?

그, 그가 대체 어떻게 해낸 거지?

전혀 상상이 안 되잖아?

그 사이에도 황제는 여전히 바닥에서 무릎 꿇고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태자와 영설 공주도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대녕 제국의 선조들에게 감사의 말을 드렸다.

원천조는 또다시 도망쳤다.

이번 백색성을 공격할 때는 선성후 육전이 나서서 전투를 도맡았고, 원천조의 대군은 대열의 맨 뒤에 섰을 뿐이었다.

만약 선성후가 정말로 백색성을 함락했다면 무슨 결과가 있었을까.

그럼 당연히 원천조가 곧바로 그에게서 병권을 뺏어간 뒤, 권한은 조금도 없으면서 작위는 높기만 한 공작 명분을 육전에게 던져주었을 것이다.

방계가 보기에 선성후 육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화살받이에 불과했다. 쓰고 나면 바로 버리는 희생양이었다.

하지만 교활한 원천조는 마지막 순간에도 병력을 보내 백색성을 공격하지 않았다. 도리어 두쟁의 손을 빌려서 자신의 군대를 끊임없이 선성후 육전에게 맡겼을 뿐이다.

그렇게 한 목적은 단 하나였다.

백색성을 공격해서 황제를 배반한 건 선성후와 조정의 공훈 귀족들이지, 방계와는 무관하다고 발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육전은 방계의 계획에서 전형적인 덤터기를 쓰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육전은 백만 냥에 가까운 돈과 공작 자리에 눈이 멀었다. 진정 이욕에 눈이 어두워져서 육씨 가문이 백 년간 모은 기반을 이번 전투에 쏟아붓고는 깨끗이 없애버렸다.

선성후 육전이 대패를 거두는 순간, 원천조는 자신이 본 장면이 믿기지 않았다.

설령 태양이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

두변은 반드시 죽을 상황이었잖아? 그런데 지금 살아있을 뿐 아니라, 대승까지 거뒀다고?

하지만 원천조는 대단히 충격을 받고 놀라워했음에도 가장 먼저 3만여 대군을 철수시켰다. 우선 쉴 새도 없이 남녕성까지 물러난 다음에, 남녕성에서 고작 하룻밤을 머무른 뒤, 속도를 올리며 철수해서 쭉 염주성까지 물러났다.

염주성은 바다를 등지고 있었다. 동방 연합 왕국 함대의 보호를 받게 되자, 원천조는 그제야 안전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 광서 순무 두강이 이미 염주부에서 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염주항 등대의 가장 높은 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천조가 등대 위로 올라가니, 두강이 그에게 밀서 한 통을 건넸다.

원천조가 받아서 펴보니, ‘여씨가 투항해서 15만에 가까운 대군이 두변에 충성을 바쳤다.’고 적혀 있었다.

원천조는 발밑이 휘청거리고, 조금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

원천조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놈이…… 대체 어떻게 해낸 거요? 대룡보 같은 괴상한 곳에서, 10년이나 버려졌던 곳 아니요? 대체 어떻게 한 거요?”

“성화교의 아포사라는 장수가 5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여해를 지원하러 갔는데 화포 200대를 가져갔었소. 그중 화포 70대가 두변 손에 떨어졌소.”

두강의 말에 원천조가 놀라 소리쳤다.

“성화교가 화포를 대녕 제국에 수입해준 꼴이 아니요? 우리 동방 연합 왕국과 성화교와의 밀약에 똑똑히 적혀 있소. 성화교는 군대를 보내서 여여해를 지원할 수 있지만 그 수가 10만이 넘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오. 특히 화포를 지원하는 것도, 특수한 기름 화유를 지원하는 것도 허락할 수 없다고 했거늘!”

그렇다. 여씨의 대염 왕국은 어떻게 보면 동방 연합 왕국과 성화교의 밀약 위에 지어진 것이다.

원천조가 분노하며 말을 이었다.

“그 당시 밀약에 똑똑히 적혀 있었소. 절대로 화포를 대녕 제국 땅에 가져와서는 안 되며, 대녕 세계의 사람들이 그런 세계를 보게 해서도 안 된다고 적었소. 그렇지 않으면 우리 동방 연합 왕국도 셀 수 없을 만큼의 화포를 가져왔을 거요.”

“대략 반년 전에 우리 함대와 성화교 세계의 함대가 인도양에서 크나큰 마찰이 발생했소. 종국에는 해전을 치르는 상황까지 되었소. 그게 바로 아포사가 화포를 가지고 대녕 제국에 진입한 연유요.”

두강의 대답에 원천조가 물었다.

“설령 두변이 화포 좀 얻었다고 해도…… 그래도 여여해의 30만 대군을 깨끗하게 죽여버릴 수 없지 않소? 그놈이 대체 어떻게 그 일을 해낸 거요?”

두강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이 세상엔 너무 터무니없는 일이 많소. 우리가 고충을 기르듯이 여씨가 강해지게 키워줬건만, 결국 두변만 좋은 일을 시키다니. 현재 그자는 이미 교룡이 되어서 당신과 내 힘으로는 제압할 수 없게 되었소.”

“우리 동방 연합 왕국의 힘을 빌리면, 지금이라도 두변을 여전히 손쉽게 없애버릴 수 있소. 우리는 당장 소군 전하께 글을 올려서 우리 동방 연합 왕국의 주력 대군을 즉시 상륙시켜 두변을 철저히 없애버립시다.”

“그건 이미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소군 전하의 전략은 대양의 수만 리를 가로질러서 동아(東亞) 전체에 있소. 전략 목표에는 선후가 있으니, 모든 수가 이미 기획되어 있소. 머리카락 한 올을 당기면 온몸이 움직이는 것처럼, 바둑 한 알을 건드리면 전체 판국이 흐트러지게 되오.”

광서 순무 두강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제 경성에서 있을 담판을 지켜봐야겠구려. 탁 옹(翁)과 두회 형님께서 황제와 어떻게 담판을 하는지 말이오. 두변, 그 소환관 놈이 우리 방계의 대국을 망치고, 당신과 나의 미래를 망쳤소. 그놈은 어째서 진작 죽지 않았지? 몇 년 전에 그놈을 멀리 보냈을 때, 내가 어째서 사람을 보내 길목에서 그놈을 죽여버릴 생각을 못했을까?”

원천조가 말했다.

“광서의 지금 상황이 당신과 내게 오점으로 남았소. 장래에 주군께서 동아 전체를 통일해서 가장 방대한 제국을 건립할 때, 당신이 내각에 들어가고, 내가 총지휘부에 들어가고 싶어도, 정적들이 이 오점을 우리의 약점으로 공격할 것이오.”

두강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오. 그 환관 놈은 왜 죽지 않는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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