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16화 (416/648)

416장: 두강의 치욕

광서 순무 두강이 전대미문의 치욕을 겪는 순간이었다.

두변이 여경사 무사 복장을 입힌 무리를 고작 수십 명 보냈을 뿐이며, 자신의 코앞에서, 광서 순무 관아의 모든 이의 코앞에서 제 아내를 데려가려고 했다.

만약 제 아내 강씨를 데려가게 둔다면 광서 순무의 체면은 바닥에 철저히 떨어질 것이다.

만약 나서서 제지하고, 두변이 보낸 사람들의 팔다리를 전부 부러뜨리고 심지어 모조리 죽여버린다면?

그 일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사실 두강의 곁에는 늘 고수 한 무리가 있을뿐더러, 이 광서 순무 관아에만 해도 무사가 천 명은 있었다.

그러니 두변이 보낸 수십 명을 손쉽게 죽여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죽인 뒤에는?

사흘이 지나지 않아서 두변의 대군이 성 밑까지 쳐들어와서 역모를 꾀했다는 명분으로 두강을 체포할 것이다.

두변에겐 상방보검이 있는 데다, 세 성(省)의 군무 권한을 장악하고 있고, 여경사 우제독을 맡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 했다.

가장 관건은 황제는 항상 두변을 위해 성지를 내리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두변이 하는 모든 행위는 국법에 합치된 일로 변한다는 것.

게다가 두변은 지금 성지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황제가 두변에게 광서를 낱낱이 조사하고, 서남의 문관들 전체가 여씨와 결탁한 일을 조사하여 형편에 따라 처리하라는 내용이었다.

때문에, 지금 두변을 막고, 심지어 무참히 그를 때려죽일 방법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동방 연합 왕국의 수십만 대군이 상륙해서 곧바로 두변을 섬멸하는 것.

하지만 해외 동방 연합 왕국은 자신만의 전략적 안배가 있는지라 하나를 건드리면 전체를 움직여야 했다. 소군 전하의 포석이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

때문에, 두강은 무표정한 얼굴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부인 강씨가 냉랭하게 말했다.

“너희는 아직도 무엇을 하느냐? 어서 손을 써라! 두변의 주구들을 모조리 죽여버려!”

무사 백 명의 시선이 일제히 광서 순무 두강에게로 향했다.

그렇지만 두강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강씨는 그제야 반응을 하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남편을 쳐다봤다.

“두강, 당신 이건 무슨 뜻이에요? 당신 처가 잡혀가려는데 당신은 여전히 조금도 동요하지 않나요?”

두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때야 강씨도 알아차렸다. 제 남편이 정말로 나 몰라라 하면서 자신이 두변에게 잡혀가도록 내버려 두려 한다는 것을.

강씨는 자신이 본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내게 그토록 다정했던 남편이란 말이야?’

두강이라는 자는 평소 그녀를 몹시 아끼며 위했고, 깊은 감정을 가진 것처럼 대했다. 거의 모든 일에 그녀의 뜻을 따르지 않는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오늘 이토록 무정한 모습을 보이는 걸까?

강씨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두강, 당신…… 이건 무슨 뜻이죠? 다, 당신은 내가 저 두변 몹쓸 놈에게 잡혀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겠다고요?”

광서 순무 두강이 뒤를 돌아서서는 움직이지 않았다.

강씨는 몸을 흠칫 떨더니, 절망감에 빠져서 온몸이 차가워졌다.

“두강, 이 위선자 같으니. 당신도 제명에 죽지 못할 거야!”

강씨가 고통스러운 듯이 소리쳤다.

계청주의 둘째 제자 사무도가 앞으로 나와 강씨를 잡고 손목에 쇠사슬을 채우려 하자, 강씨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나를 건드리지 말아라. 너희 같은 비천한 놈들이 더러운 손으로 건드릴 몸이 아니다……!”

사무도가 앞으로 나서더니 두말하지 않고 그녀의 두 팔뼈를 비틀어버렸다.

그리고 두꺼운 쇠사슬로 된 가쇄(枷鎖)를 강씨의 목에 채우고, 무거운 족쇄를 그녀의 두 발에 채웠다.

사무도가 강씨의 등 뒤를 걷어차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걸어라. 스스로 걷지 않으면 곧바로 두 발 근맥을 파내고 절단하겠다.”

수많은 이의 경악스러운 시선 속에서 광서 순무 두강 부인 강씨는 더할 나위 없이 치욕스럽게 가쇄와 족쇄를 차고 순무 관아를 나섰다.

사무도가 허리를 굽혀 말했다.

“두강 대인,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됐다, 나 대신 두변 제독께 안부 전해라.”

순무 관아를 나서는 순간, 그녀를 맞이하는 건 수많은 손가락질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쇄를 찬 강씨를 가리키며 수군댔다.

“맙소사! 저건 순무 부인 아냐? 어째서 잡혀가는 거지?”

“하늘이시여,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아내가 잡혀간 뒤, 두강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무사 수천 명의 호위를 받으며, 우선 오주부를 향했다가, 나중에는 곧바로 광주부로 가서 양광 총독 고정의 군영으로 들어갔다. 왜냐하면 광동에 동방 연합 왕국의 수만 대군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쿵, 쿵, 쿵, 쿵.

12방 화포 40대를 운반해야 해서, 부홍빙의 5만여 대군의 행군 속도는 빠르지 못했다.

장장 아흐레 뒤에야 백색성에서 출발한 대군은 남녕부에 진입할 수 있었고, 또 닷새가 지나서야 흠주부에 도착했다. 또 나흘이 지나서 마침내 염주성에 도달해서 성 밑에 이르렀다.

염주성에는 원천조의 3만 대군이 전면적으로 방어진을 배치한 상태였다.

완전 무장을 한 정예 무사들이 염주성 성벽 위에 못이라도 박힌 듯이 서 있었다.

사실 이것 자체가 크나큰 치욕이었다. 이 염주성은 본래 진남공의 봉토였다. 그런데 지금 진남 공작부가 원천조의 저택이 되어버린 것이다.

부홍빙이 명령을 내렸다.

“화포 진지를 구축하라!”

이윽고 성화교의 거한들이 죽을힘으로 12방 화포 40대를 밀어서 성벽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진지를 구축했다.

포사수 백여 명이 화포의 앙각(仰角: 포구가 위로 향했을 경우, 수평면과 포신이 이루는 각)을 측정하면서 위치를 조정했다.

원천조는 성벽 위에 서서 조각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기억을 떠올렸다.

작년에 그가 군대를 거느리고 광서에 진입했을 때, 황제에게 자신을 광서 제독에 봉해달라고 압박했었다.

그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광서에 있는 엄당의 모든 무사를 참살했을 뿐 아니라, 동창 무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진남공 세자의 핏줄을 없애버렸을뿐더러, 계왕의 두 다리를 망가뜨린 것도 본인이었다. 두변의 황금 40만 냥을 빼앗아갔을 뿐 아니라, 광서에서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세력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때 얼마나 즐거웠고 얼마나 흥분되었던가.

그런데 지금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어버렸다.

그는 진심으로 저 두변 놈들과 전투를 치르고 싶었다. 게다가 지금 그는 수성전을 펼치는 쪽인 데다, 동방 연합 왕국의 강대한 함대를 등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소군의 밀지에는 단 한마디가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퇴각.’

어쩌면 두변도 진작 그 점을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두변 놈이 직접 온 게 아니라, 부홍빙을 보냈을 것이고.

원천조가 냉랭하게 말했다.

“부홍빙, 네가 두변에게 전해라. 언젠가 내가 돌아올 것이다. 한데 내가 다시 돌아올 때는 3만도, 5만 대군도 아니라, 10만, 20만, 30만을 데려올 것이다! 그때, 이 동방의 땅에는 두변이 발붙일 곳이 더는 없을 테고, 그는 산산조각이 나며 죽게 될 것이다. 아무도 역사의 수레바퀴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우리 동방 연합 왕국의 국운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퇴각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원천조의 3만 대군이 빠른 속도로 질서정연하게 철수하기 했다.

3만 대군은 성벽 위에서 물러나서 진형을 지은 뒤, 남문을 통해 성을 나간 다음 가장 빠른 속도로 항구로 향했다.

“대군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말아라.”

명령을 내린 부홍빙은 낭기병 백 명을 거느리고 항구까지 돌격했다.

염주항 밖의 해상에는 거함이 산처럼 우뚝 솟아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군함에 까맣고 반지르르한 화포가 빼곡하게 장착되어 있었다. 그런 전함 한 척에 화포가 80대나 있는데, 거의 모든 화포가 부홍빙이 가져온 화포처럼 크기가 컸다.

그렇다, 80대였다.

고작 전함 한 척에 12방포가 80대나 있었다.

이렇게 큰 산과 같은 크기의 전함이 염주항 밖에만 네 척이 있었다.

그 순간, 부홍빙은 확실히 두변 주군의 그 말이 와닿았다.

‘눈을 뜨고 이 세계를 보고, 문명의 격차를 느껴보세요.’

그 순간, 부홍빙은 정말로 질식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성화교의 아포사가 화포 200대를 가져왔다는 걸 알게 된 뒤로, 동방 연합 왕국도 마침내 방자하고도 대담하게 자신들의 강대한 포함을 대녕 제국의 항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목적은 상대방을 질식하게 만들고, 절망적인 힘을 느껴보라는 의도였다.

쿵, 쿵, 쿵, 쿵.

원천조의 대군이 질서정연하게 함선에 올랐다.

대군이 장장 한 시진에 걸쳐 함선에 오른 뒤, 이윽고 호각이 울려 퍼졌다.

거대한 산처럼 큰 전함 네 척은 그제야 천천히 항구를 떠났다. 전함 네 척은 동남 방향을 향해 멀어졌고, 이내 부홍빙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 저들의 전함이 육지에 오르지 못했음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저런 전함이 다시 나타난다면, 안남 왕국과 대녕 제국은 이 구역의 해상권을 완전히 잃어버릴 것이다.

어떠면 해상 무역이 모두 철저히 봉쇄될 것이다.

부홍빙은 군대로 돌아가는 즉시 제1군단에게 병력을 나누라고 명령했다.

2만 명은 염주부를 지키고, 2만 대군은 오주부로 향하고, 1만 대군은 계림부로 향하게 했다.

두강은 계림에서 멀리 달아났고, 원천조는 군대를 거느리고 해외로 철수했다.

계림부, 염주부, 남녕부, 유주부, 오주부 등 중요한 주부(州府)가 점령됐다는 것은 두변의 대군이 광서성 전역을 수복했다는 걸 의미했다.

이로써 방계의 세력은 광서성에서 전면적으로 철수한 뒤, 모든 육지 병력을 광동성에 집결시켰다.

여담의 대군이 호남에 들어섰지만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다.

대군은 파죽지세로 공세를 펼쳤고, 각 주부(州府)에서는 일제히 경성을 구하기 위해, 경성으로 양도를 통하게 만드는 걸 마다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각 주부의 관원들뿐 아니라, 향신(鄕紳)들까지 일제히 식량이나 돈을 내놓으면서 여담에게 말했다.

“장군, 군무가 긴급하니 곧바로 가시면 됩니다. 저희 호남은 문제없으니 바로 호북으로 진입하세요. 경성과 거리가 더 가까워질 겁니다.”

하지만 여담은 대군이 지쳤다고 이야기하면서, 이곳에서 경성까지 먼 길이고 경성에 식량을 보내야 하는데 당신들이 준 식량으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마차와 수레가 수없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이윽고 여담의 대군은 호남 주부와 향신들에게서 마차니 수레니 식량 등등을 필사적으로 긁어모았다.

우리는 이걸 우리 소유로 갖는 게 아니라 경성으로 호송해서 황제 폐하게 드리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성의 백성이 대규모로 굶어 죽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말이다.

여담, 전 대염 왕국의 태자는 착취의 절대 고수였다. 어느 주부에 가든 온갖 수를 써가며 물자들을 긁어모은 탓에, 각 지방의 권세가 있거나 돈이 있는 자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민심을 매수하기 위해서 여담은 매번 긁어모은 식량과 물자의 2할을 현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줬다.

뿐만 아니라, 여담의 2만 대군은 도착하는 곳마다 백성들과 친밀하게 구는 장면을 연출했다.

사람들에게 물을 길어다 주고, 살뜰히 보살펴주고, 악질 토호를 처벌해주었다. 밭일이 바쁠 것 같으면 심지어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농민들의 밭에 가서 일을 하라고 했다. 일이 끝난 뒤에는 동전 한 푼 받지 않았을뿐더러, 물 한 그릇, 죽 한 그릇도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되니, 호남에서 두변과 여담에 대한 백성들의 목소리가 극도로 양분되었다.

권력가나 대부호 눈에 두변은 악귀였고, 두변의 껍질을 벗기고 힘줄을 뽑지 못하는 게 한이 될 정도였다.

그에 반해 가난한 백성들 눈에 두변은 살아있는 보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