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19화 (419/648)

419장: 확실한 말을 해주거라

지금 두변은 동방 연합 왕국의 그 소군 전하라는 자가 더할 나위 없이 거대한 판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두변이 말했다.

“내일, 나는 바로 경성에 들어가서 폐하를 알현하겠습니다. 내가 부재중일 때, 모든 정무는 의부 이문회를 중심으로 처리하시고, 군무 권한은 여담이 첫째, 부홍빙이 둘째, 기세가 셋째 서열로 처리하세요.”

여담의 몸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는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몸이 갑자기 굳어버리는 바람에 몸의 긴장을 풀려고 하는데 두 손까지 주먹 쥔 채 굳어있음을 깨달았다.

이윽고 여담이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할 뿐 아니라 전심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날 오후.

대종사급 고수 이연정이 염주부에 들어왔다.

이연정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네가 곧 경성에 입경할 텐데, 네 안전이 마음에 놓이지 않는다고 특별히 너를 보호하라고 나를 보내셨다.”

두변이 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손자, 의조부를 뵙습니다.”

기쁜 얼굴의 이문회도 즉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 의부를 뵙습니다.”

이연정이 두변을 굳게 잡고서 그가 무릎을 꿇지 못하게 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로구나. 두변 백작, 내 아들 문회의 환관으로서의 길이 너 때문에 끊어져 버렸구나!”

다음날 이른 아침, 두변은 이연정 및 궁중 고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야생마를 타고 염주부를 떠나 북상해서 경성으로 향했다.

본래 배를 타고 가는 게 더 빠르겠지만, 지금 대녕 제국은 이미 해상에 대한 통제권이 없었다.

염주부에서 떠나자마자, 이연정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어떤 대종사 분이오? 나와서 모습을 보여주시오!”

멀지 않은 곳에서 기란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을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와 두변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복잡한 국면이긴 하지만, 나는 두변이 북상하는 길을 호위하기 위해 왔습니다. 두변, 현재 국면이 당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니 당신은 반드시 꼭 북명검파에 가야 합니다.”

이윽고 두변은 전광석화처럼 달려서 쉬지도 자지도 않고 북상해서 경성으로 들어갔다.

경성으로 들어간 뒤에도 모습을 정돈할 겨를도 없이 먼지투성이인 모습으로 그대로 황궁으로 들어갔다.

방계가 경성에 대한 봉쇄를 해제하고 조운을 재개함에 따라, 경성은 이미 생기를 되찾은 상태였다.

하지만 번화다고 하기에는 멀었고, 고요하기만 했다.

“진서 변진 독사(督師) 두변 백작이 폐하를 알현하러 입성했소. 전방의 모든 백성은 즉시 길에서 물러나시오!”

“비키시오!”

병사 수천 명이 즉시 길을 봉쇄하고 통행 금지령을 내렸고, 수많은 백성이 길 양쪽에 서서 두변을 가리키며 흥분해서 소리쳤다.

“저분이 바로 두변 대인이시구나.”

“두변 대인! 참으로 위풍당당하십니다!”

“두변 대인! 대대손손 공작과 제후로 길이 남으실 겁니다!”

두변이 황궁으로 가는 길에, 수많은 백성이 길 양쪽에서 서서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두변은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경성에서 이렇게 좋은 명성을 누리게 될 줄이야. 서남에서는 그저 악명만 자자했었는데.

두변은 자신의 명성이 황제의 선전 때문임을 알지 못했다. 이번에 적의 봉쇄를 해제하고, 경성의 백만 백성들이 살 수 있게 된 건 전적으로 두변이 세운 공로와 그가 베푼 은혜 덕분이라는 선전 말이다.

입궁한 뒤, 두변은 서재 밖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신, 두변,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서재 안에서 누군가가 멈칫하는데, 숨을 쉬는 것마저 잠시 멈춘 듯했다.

그런 뒤 누군가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왔다.

다음 순간, 두변은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섰다.

고작 1년 못 봤을 뿐인데 황제는 정말 많이 늙어 있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고, 머리카락은 완전히 새하얘졌을 뿐 아니라 숱도 많이 준 모양이었다.

황제가 두변의 팔을 부축하고는 그의 얼굴을 오래도록 쳐다봤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뒤에야 입을 열었다.

“얘야, 1년을 못 봤을 뿐인데, 네가, 너무 많이 자란 것 같구나.”

두변은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한순간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황제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어째서 네 작위를 더 올리지 않았는지, 너를 왜 변진 총독으로 올리지 않았는지 몹시 궁금해하진 않았느냐?”

“운주, 성지를 작성해라. 두변을 진서 후작, 진서 변진의 총독으로 책봉한다.”

“운주, 성지를 작성해라. 고정에게서 양광 총독의 직위를 면하고, 그를 민월(閩粵: 지금의 복건福建) 총독에 책봉한다.”

“운주, 성지를 작성해라. 호남 총독부를 새로 만들어서 내각 대신 왕건속이 요령(遙領)총독 직위에 오른다! 두변이 당분간 호남의 군정 요무(要務)를 대신 맡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두변은 놀라고 말았다.

변진의 독사일 뿐 아니라, 군정의 대권까지 단숨에 움켜쥔다고?

예전에는 세 성(省)의 군무만 맡았으나 지금은 호광(湖廣)의 정무까지 맡는다고?

그건 아마도 대녕 제국 전체에서 권한이 가장 큰 봉강대리가 아닐까.

그런데 황제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다.

“두변, 영종오에게서 너는 진정한 환관이라 할 수 없고 정상적인 남자로 회복할 가능성이 있으며, 지금 이미 몇 할이나 남자의 양기를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 말대로인가?”

설마, 이번에 황제가 정말 혼인을 내리려는 걸까.

두변은 이 문제를 혈관음에게 말한 적이 있었고 심지어 옥진 군주에게도 아주 염치없이 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황제에게 그렇게 말한다고?

웃어른인 남자에게 그런 문제를 얘기한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긴 했다.

“영종오는 들어오거라.”

황제의 부름에 대종사 영종오가 서재로 들어왔다.

“영사!”

두변이 그를 보며 허리를 굽히자, 영종오가 놀리듯이 말했다.

“두변 백작, 아니지. 이제는 두변 후작이시군.”

“영종오, 자네가 말을 하게.”

황제의 말에 영종오가 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말했다.

“두변 같은 선천적인 고자는 실제로는 신낭(腎囊)이 없는 게 아니라 배 속에 감추어져 내려오지 않은 겁니다.”

신낭이란 바로 고환의 별칭이었다.

대종사 영종오가 말을 이었다.

“실제로 선천적인 고자는 대개 오래 살지 못합니다. 소수만 예외로 오래 삽니다. 한데 두변의 상황은 더욱더 특수합니다. 저는 두변의 기운을 뚜렷이 감응할 수 있는데, 양기가 점차 짙어져서 지금은 정상 남자의 절반에 도달했습니다. 이런 상태로 가면 오래되지 않아서 온전한 남자가 될 겁니다.”

“그럼 나중에 자식을 낳을 수 있는가?”

“아마 가능할 겁니다. 제가 점술사가 아니라서 아주 조금만 알 뿐이지만, 두변은 자손을 많이 볼 상입니다.”

황제가 그 말에 큰소리로 웃었다.

이어서 황제가 물었다.

“그 아이는 왔느냐?”

영종오가 아뢰었다.

“아직입니다. 조금 더 있어야 올 겁니다.”

황제가 앉으라는 말에 세 사람 모두 자리에 앉았다.

“방계가 북방에서 완전히 물러났고, 심지어 선화 공작 난오와 진북 공작 원등까지 포기했다. 영하(寧夏)의 평삭(平朔) 공작은 줄곧 그다지 방계를 아랑곳하지 않았고, 물론 그는 짐도 마찬가지로 아랑곳하지 않고 있지.”

대녕 제국의 4대 공작이 제국의 최고 군사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다.

영하 변진의 평삭 공작, 선화 변진의 난오 공작, 진남 공작 송결, 요동 변진의 진북 공작 원등이었다.

영하 변진의 평삭 공작은 절반쯤은 제후(諸候)여서 조정과는 왕래가 많지 않았다. 돈황(敦煌)에서 가욕관(嘉峪關)까지, 또 장예(張掖)에서 난주(蘭州)까지가 다 그의 수비 구역이었다. 그의 10여만 대군은 주로 막강한 준격이칸국을 방어하고 있었다.

황제가 말했다.

“지금 요동 변진의 원등 공작, 선화 변진의 난오 공작이 모두 경성에 있고, 두변 너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두변이 말했다.

“방계는 남경에서 별도로 조정을 구축하고 있는 데다가 연왕을 데려갔습니다. 그는 여진 제국을 이용해서 북쪽 전체를 멸망시키려 하는 겁니다. 폐하와 태자 전하께서 모두 여진 제국의 손에 사망하면 남쪽의 연왕은 떳떳한 명분으로 황위에 등극할 수 있을 테니, 그때 남경의 대녕 제국은 자동으로 조정의 정통성을 가지게 되겠지요.”

황제는 상세하면서도 거대한 지도 앞에 섰다. 그 지도 역시 두변이 그려준 것이었다.

황제가 말했다.

“본래 몽고의 황금 제국이 네 개의 칸국(汗國)으로 분열되었으나 여진에게 하나가 멸망 당했고, 준격이에게 하나가 멸망 당했다. 현재 북쪽의 북격이칸국과 와나칸국은 맹렬하게 전투하고 있다. 여진 제국의 다음 전쟁의 불길은 와나칸국을 불태울까, 아니면 우리 대녕 제국을 불태울까?”

(또다른 지구의 역사에서는 준격이칸국은 아직 궐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계는 성화교 세력의 번성으로 수십 년을 앞당겨 나라를 세우며 궐기했다.)

두변이 대답했다.

“만약 이번 전쟁의 배후에 성화교와 동방 연합 왕국이 있다면 여진 제국은 곧 와나칸국에 군대를 동원한 뒤에, 준격이칸국과 와나 전체를 반으로 나눌 겁니다.”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때가 되면 여진 제국은 10만에 가까운 기병을 또 보유하게 되겠구나.”

이 세계는 또 다른 지구의 역사와 완전히 달라서, 후금(後金)은 훨씬 강했고 모든 것이 또 다른 지구에서보다 훨씬 앞당겨져 일어났다.

그런데 이상한 건 또 다른 지구 역사상 이 시기에 이미 여진에 함락된 심양(沈陽)이나 요양(遼陽)이 이 세계에서는 도리어 아직도 함락되지 않았다.

많은 일이 당연한 이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진 제국의 패주도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무언가 두변처럼 부정행위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여진 제국이 여씨와 밀무역을 했을 때, 가장 주종을 이루는 물건이 무엇인지 예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건 유지(油脂), 그것도 고래기름이었다.

만약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언제부터 여진 제국이 대녕 제국보다 더 빨리 바다를 포용하고, 바다를 개척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지구의 역사와 대조해보면 모든 게 딴판으로 변한 셈이었다.

다른 지구에서는 청나라와 명나라의 전쟁은 4, 50년이나 지속되면서, 여러 차례 일진일퇴의 싸움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는 무도의 궐기로 인해, 강력한 세력의 간섭으로 인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세상이었다.

여진 제국과 대녕 제국 간의 전쟁은 단 한 번의 결전으로 모든 게 결정될 가능성이 컸다.

황제가 말했다.

“원등 공작의 예측에 따르면 우리와 여진 제국의 대결전은 대략 반년 뒤에 발생할 것 같다고 하더군.

이번 대결전에 우리는 북방의 병력을 모두 쏟아부을 것이다. 대략 50만 대군이 되겠지. 그에 비해 여진 제국은 원등 공작의 예측에 따르면 군대 35만 정도를 동원한다고 하더군.”

“대전이 발생할 때, 영설 공주의 신군도 출전해야 합니까?”

두변이 묻자 황제가 말했다.

“그런 상황이 되지 않길 바라지만 공주가 출전할 확률이 몹시 크구나.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그건 국운이 달린 전쟁이라서 단숨에 모든 걸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이 최정예 부대를 북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이 화포를 가지고, 영설 공주의 신군과 합류하겠습니다.”

황제가 말했다.

“대전이 일어나면, 네가 있는 서남이 더욱더 위험해질 것이다. 북방과 서남은 반드시 둘 중 하나라도 보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망국이 될 수 있으니, 너는 힘을 분산시키지 말거라.”

“어렴풋하긴 하지만, 이번 대전에서 동방 연합 왕국은 양광에 상륙하거나 제가 있는 서남을 곧바로 공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소군이라는 자에게 서남의 전략적인 위치는 대녕 제국의 북부만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그때 환관 하나가 황제의 귓가에 나직이 고했다.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서재 문이 열리더니 황후가 어떤 여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두변은 첫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저 여인이 저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경국지색의 미모는 예상 선자와 필적할 정도였다. 게다가 고귀하고, 대범한 데다, 황실의 기품이 충만했다.

여완완은 절세미녀이긴 했지만 지나치게 요염했다.

막한도 절세미녀지만 너무 무뚝뚝하고 냉랭했다.

그에 비해 눈앞의 이 여인은 가늘고 유연해 보이는 몸매에, 대범하면서도 부드러운 자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기세등등하지도 않았다.

대략 2초 뒤에야 두변은 그 여인이 누군지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다.

영설 공주였다!

생전 화장이라고는 하지 않던 여인이 오늘은 화장을 했다.

예전에 그저 무난하게 옷을 입던 여인은 화려한 치마를 입었을 뿐 아니라, 구름처럼 단장한 머리카락에는 여러 가지 황금이나 백옥 장신구 등으로 단장했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듯한 절세의 아름다움이 완전히 딴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영설도 천하제일의 미녀로 불리기는 했지만, 그 천하제일의 미녀가 화장을 하고 단장을 하니, 그녀의 아름다움에 숨이 멎을 정도였다.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두변, 너는 지금 짐에게 확실한 말을 해주거라. 네가 앞으로 정상적인 남자로 돌아갈 수 있을지와 자녀를 낳아 키울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 말에 황후가 나무라듯이 흘겨보았고, 영설 공주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물론 그다지 부끄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두변이 이곳에 있는 사람 중 가장 수줍어하고 있을 것이다. 두변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다시 물었다.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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