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21화 (421/648)

421장: 이원

영설 공주는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었다.

그 귀엽게 생긴 시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1년여 전에 우리가 봤던 그 소환관이 공주 전하의 부마가 되시다니요.”

이어서 그 시녀는 즉시 자신의 입을 탁, 하고 쳤다.

어찌 부마를 소환관이라고 부를까.

황제 폐하께서 두변 대인에게서 환관의 신분을 필사적으로 씻어내려고 하시는 중인데, 자신이 그렇게 부르면 황제 폐하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는가.

“누이, 네가 억울한 일을 겪게 되었구나.”

태자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자, 영설 공주는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얼굴로 싱긋 미소지었다.

“억울한 일이요? 내가 어째서 억울해요? 두변도 참 좋아요. 잘생긴 데다, 뛰어나고 재미도 있잖아요. 게다가 나보다 몇 살 어린데 내가 그에게 시집가는 게 안 좋을 게 뭐가 있겠어요?”

태자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멋쩍어할 뿐이었다.

두변은 몹시 괜찮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문무를 겸비한 인재였다.

하지만 환관인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영설 공주와 환관의 혼사 얘기가 퍼져나가면 영설은 분명히 온 제국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심지어 황제 스스로도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권신과 제후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자기 딸도 팔아먹는다면서.

영설 공주가 말했다.

“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의 즐거움을 어찌 알까(子非魚, 安知魚之樂- 장자莊子 ‘추수秋水’ 편)라는 말이 있죠. 예전에 사람들이 내가 이영도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모든 이는 내가 두변에게 시집가는 게 몹시 억울할 거라고 생각하죠. 왜냐하면 그자가 단순히 환관이기 때문이겠죠?”

바로 그때, 밖에서 어린 시녀가 고했다.

“공주 전하, 두변 대인께서 입궁하셨다고 합니다.”

영설 공주가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가자, 그 귀여운 시녀가 급히 말했다.

“공주 전하, 아직 머리를 다 빗지 않으셨습니다!”

두변이 궁을 나서자, 그 앞에 아름다운 그림자 하나가 그의 길을 막아섰다.

“이제 당신 소망이 절반은 이뤄졌겠네요?”

영설 공주가 웃으며 물었다.

두변은 잠시 놀랐다가 영설 공주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깨달았다.

예전에 견사 대사가 만든 정신 감옥 속에서 두변이 옥진 공주에게 영설 공주를 본처로, 옥진 군주를 첩으로 들이는 게 그의 소망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으니까.

나중에 옥진 군주가 그 말을 다시 영설 공주에게 전했을 것이다.

두변으로서는 민망하고 쑥스러웠다.

“참, 당신이 부황께 정상적인 남자로 변할 거라고 한 말은 진짠가요?”

영설 공주의 농에 두변은 다시 놀랐다.

사실 영설 공주가 이런 말을 입에 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가 아무리 의협심이 넘친다고 하더라도 남녀 일에 관해서 대담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두변에게 이런 농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이 혼인에 대해 아주 조금도 억울해하지 않아 하며, 심지어 두 사람의 장래의 혼인 생활에 대해 기대를 품고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어서 영설 공주는 두변의 팔짱을 끼고 연인처럼 산책하기 시작했다.

영설 공주가 물었다.

“귀염둥이,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요?”

두변은 지금 그녀보다 10센티미터나 컸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그가 여전히 어려 보이는 모양이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게 얘기해줄 수 있어요? 우리는 곧 부부가 될 테니, 당신과 나는 한 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영설 공주가 진지하게 물었지만 두변은 잠시 망설였다.

“두변, 나는 당신 아내인 동시에, 제국의 공주예요. 심지어 혼례를 한 뒤에도 나는 여전히 제국의 병사들을 통솔하며 전투를 치를 테고요. 물론 안심해요. 당신의 아내라는 내 신분이 대녕 제국의 공주라는 신분을 넘어서지는 못해요.”

두변이 몇 초쯤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폐하께 이미 말씀을 고했기 때문에, 이 일을 당신에게 알릴 권한이 내게는 없습니다.”

영설 공주는 두말하지 않고 두변을 끌고 황제를 찾아간 뒤, 황제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물었다.

황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일을 온전하게 알려주었다.

“제게 보여주세요.”

영설 공주의 말에 황제가 태자의 밀서를 건넸다.

“확실히 황형의 필적이네요. 하지만 정말로 황형이 이 밀서를 쓸 이유가 없어요. 이 일이 황형에게 정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아요.

부황, 어째서 태자를 들라 해서 분명히 얘기하라고 하지 않으시는 거죠?”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부황께서는 황형이 두변에게 원망하는 마음이 생길까봐 걱정하시는 건가요? 두변이 고자질했다고 생각할까 봐요?”

황제가 침묵하자 영설 공주가 말을 이었다.

“두변은 우선 부황이라는 황제께 충성을 바치고, 그 후에 태자에게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에요. 그가 이 밀서를 내놓아서 부황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했어요. 이 일은 반드시 확실히 알아봐야 해요. 그렇지 않고 오늘 마음에 아주 조금이라도 껄끄러움이 생기면 추후에 그게 두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겁니다.

부황, 제가 황형을 불러오겠습니다. 그런 뒤 영종오 대종사에게 부탁해서 태자 황형의 정신을 검사하면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만약 태자 황형이 쓴 밀서가 아니라면 모두 마음에 거리낄 게 없어요. 만약 태자 황형이 쓴 거라면 부황께서는 황형을 크게 질책하셔야 해요. 두변, 당신은 잠시 후에 그 밀서를 직접 태자 황형에게 건네줘야 해요. 알았죠?”

영설 공주는 역시 껄끄러운 일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할뿐더러, 모든 걸 떳떳하게 처리해야 했다.

잠시 후, 태자가 황제의 서재에 도착했다. 그는 두변과 영설 공주 모두 안에 있는 걸 발견하고는 조금 당황했다.

두변이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신이 며칠 전에 밀서 한 통을 받았는데 태자 전하의 낙관이 찍혀 있었습니다. 실례지만 전하께서 쓰신 겁니까?”

이윽고 두변이 두 손으로 그 밀서를 건넸다.

태자가 그 밀서를 보더니 눈매가 가늘어졌다.

“정말 내 필적과 똑같구나.”

이어서 태자는 즉시 서신을 햇빛 아래에 비춰 보더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용한 종이든 먹물이든 모두 내가 쓰는 것과 똑같아. 부황, 두변 후작, 나는 이 밀서에서 아무런 허점도 발견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뜻은 몹시 명백했다. 그가 쓴 적 없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그 밀서를 자신이 쓴 게 아니라는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영설 공주가 갑자기 책장을 뒤적이더니 상주서 여러 묶음을 찾아냈다.

지난 며칠간 태자가 황제를 대신해서 많은 상주서를 수정하고 평을 달아 놓은 것이었다.

영설 공주가 말했다.

“아니, 허점이 있어요. 이 밀서는 아마 한 달 전에 썼을 거예요. 그때, 부황과 태자 황형은 매일 미음만 먹으며 몹시 심하게 굶주려 있었죠. 허니 필적이 본능적으로 더 가늘뿐더러, 힘을 주지 않고 날리듯이 썼을 거예요. 그렇게 해야 힘을 더 아낄 수 있을 테니까요.”

두변이 상주서를 가져와서 서신과 대조해보았다.

역시 그러했다. 밀서에 쓴 글은 몹시 힘이 있는 반면, 상주서에 쓰인 글은 비교적 가는 데다가 조금 흘리듯이 썼다.

모든 이가 한시름을 놓았다.

진상이 명백해진 것이다.

황제가 물었다.

“태자, 두변을 원망하느냐?”

태자가 얼굴에 가득한 땀을 닦으며 말했다.

“두변 후작은 이 밀서를 꺼내면 제가 책망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한데 그럼에도 꺼냈다는 건 그의 충심을 더욱더 증명합니다. 제 도량이 부황만은 못하지만…… 그 정도를 용납할 만한 아량은 가지고 있습니다.”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니, 나도 몹시 기쁘고 위안이 되는구나.

하하하! 두변, 너는 후작부로 돌아가거라. 혼례는 오후에 시작되니 준비해야지.”

“예. 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두변이 물러가고, 잠시 후 태자도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서재 안에는 영종오와 영설 공주, 황제 세 사람만 남았다.

영종오가 말했다.

“태자 전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신 파동이 모든 게 정상입니다.”

“정말 공연히 놀랐구나.”

“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영종오가 떠난 뒤, 서재 안에는 황제와 영설 공주 두 사람만 남았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황제가 영설 공주에게 정석 관(管) 하나를 건넸다. 그건 특수한 방법으로 봉인된 관이었다.

황제가 말했다.

“영설, 이건 짐이 너에게 주는 밀지다. 가능하면 평생 이것을 보지 말았으면 한다. 한데 어느 날 네가 철저하게 절망을 느끼게 될 때, 이 밀지를 열어보면 아주 조금은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변이 다시 황궁에서 나서는데, 젊고 건장한 청년과 마주치게 되었다. 청년은 무장 복장을 입고 있었다.

청년은 두변을 보고는 우선 깜짝 놀랐다가, 곧 반색하며 물었다.

“두변 아우?”

그는 누구일까?

누구인데 두변을 아우라고 부를까.

곧 두변은 이 청년의 신분을 눈치챘다. 이제 보니 그는 이연정의 수양 손자 이원이었다. 두변과 엄당의 수장 자리를 놓고 경쟁할 상대.

정말 좋은 용모였다. 이토록 아름다운 동시에 위풍당당하고 늠름할 수 있다니!

두변이 물었다.

“이원 의형이십니까?”

이원이 다가와서 두변의 손을 잡고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래. 자네와 나 우리 형제가 드디어 만났군. 나도 내가 요동에서 제법 잘했다고 생각하고는 의기양양하고 있었지. 이번에는 두변 아우를 멀리 제쳤다고 말이야. 하지만 자네에 대한 얘기를 듣자마자 완전 얼이 빠졌네. 자네가 세운 그 공로는 내가 한평생이 아니라 열 번을 다시 태어나도 쫓아갈 수 없지 뭔가. 하하하!”

대단히 정열적인 분이로군. 이릉 형님처럼 감정을 안으로 끌어안는 성격이 아냐.

사실 이원도 몹시 오만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눈에 차지 않는 사람과는 한마디도 나눌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원이 두변의 어깨를 묵직하게 두드리며 말했다.

“이 형이 방금 전에 자네가 혼례를 치른다는 얘기를 들었지. 그것도 영설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다니. 맙소사! 자네는 이 형을 질투가 나게 만들어서 죽일 셈인가? 오늘 밤 자네를 만취하게 만들지 않으면, 내가 자네의 형이라고 할 수 없지! 자, 이 형이 폐하를 뵈러 가야겠으니, 오후에 보세. 아우의 혼례일인데 이 형이 오늘 중임을 짊어져야지. 반드시 아우 혼례를 보기 좋게 치르게 해주겠네.”

“그럼 저는 집에서 형님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윽고 이원은 그 자리를 떠나서 황제를 알현하러 갔다.

그런데 두변은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원 의형은 어째서 환관 복장을 입지 않고 무장 관복을 입고 있을까.

정오 무렵.

이원이 두변의 후작부에 방문했는데, 게다가 백 명을 이끌고서였다.

이원의 지휘 하에 두변 후작부 안에 있는 모든 종복이 총출동해서는, 단지 한 시진만에 저택 전체를 새롭게 바꿔놓았다.

곳곳에 등롱을 달고 오색 천을 둘렀으며, 곳곳에 희(喜)자를 붙여 놓아서 수백 묘의 저택 경사스러운 색채로 충만했다.

오후 무렵, 이원은 악대를 이끌고 북을 치면서 신부를 데리러 황궁으로 향했다.

저녁 무렵!

신부 영설 공주가 꽃가마에 올랐다. 영친(迎亲: 신랑 집에서 꽃가마와 악대를 신부측에 보냄) 대열과 송친(送亲: 신부 측 가족이 신부를 신랑 집으로 따라감) 대열이 합쳐지니, 그 수가 무려 천 명이나 되었다.

거기에 시집갈 때 가져가는 물품 수백 건이 합쳐지니, 순식간에 경성 전체가 들썩일 정도였다.

수많은 경성의 백성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행렬을 구경했다. 경성의 수많은 사람은 그제야 오늘이 영설 공주의 대혼일이며, 공주가 뜻밖에도 두변에게 시집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혼례가 이토록 급박하게 치러지는 첫째 이유는 두변이 바빴기 때문이고, 둘째는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방계에게 두변의 안전을 위협할 어떠한 기회도 주어서는 안 될뿐더러, 그들이 혼례를 망칠 기회를 줄 수 없었다.

“두변 대인, 공주 전하, 한평생 화목하게 사십시오.”

“두변 대인, 공주 전하, 하루빨리 득남하시길 바랍니다.”

“두변 대인, 대대손손 제후로 번창하실 겁니다!”

경성의 백성들이 축복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영설 공주가 탄 꽃가마는 황성을 작게 한 바퀴 돈 뒤에, 두변의 진서 후작부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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