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23화 (423/648)

423장: 끝장이다

본능적으로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려던 이연정은 순간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공주 전하, 제가 곧 들어가겠습니다.”

영설 공주는 그제야 제가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는 급히 옷을 걸쳤다.

잠시 후, 이연정이 방으로 뛰어 들어와서는 눈앞의 장면을 보고는, 순식간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발이 휘청이면서 눈앞이 어지러워져 쓰러질 것만 같았다.

이어서 그도 빨리 두변의 호흡과 심장 소리를 살폈으나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끝장이로구나, 끝장이야…….”

한 세대의 대종사인 이연정이 곧바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데, 그의 늙은 얼굴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어떻게 문회에게 이 일을 말해야 하나…….”

이어서 바로, 영종오와 북명검파의 기란정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마침내 황제가 들어와서 그 장면을 보더니,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영종오가 단약을 황제에게 먹인 뒤, 향을 태워서 황제의 코 밑에 놓고 냄새를 맡게 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깨어난 황제는 비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짐의 기쁨이 극에 달해서 비극이 생기는 걸까? 하늘이 우리를 없애려고 하시는 걸까?

짐은 이미 늙어서 곧 관에 들어갈 사람인데, 하늘은 어째서 나를 죽게 하지 않으시는 거지?”

황제는 눈물도 나오지 않아서 쉰 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하늘은 이런 젊은이를 데려가시는 거냐? 어째서 나를 죽게 두지 않으시고?”

이어서 황제가 벌떡 일어나 앉으면서 지시했다.

“이연정, 가서…… 태자를 잡아라. 그리고 오늘 밤 연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전부 통제해라.”

이연정이 즉시 달려나갔다.

그때 태자는 술을 몇 잔 마셔서 살짝 취기가 오른 채 태자부로 돌아가려던 중이었다.

“태자 전하, 잠시만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이연정의 말에 태자뿐 아니라, 그의 곁에 있던 시위들까지 놀라고 말았다.

평소에 태자를 대할 때 몹시 공손하던 이연정이 오늘은 어째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걸까?

“좋소. 이 공공이 길 안내를 하시오.”

태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혼자서 이연정을 따라 어떤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 공공, 지금은 우리 둘뿐이오. 공공의 얼굴에 슬픈 기색이 보이는데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요?”

태자가 묻자 이연정도 더는 버틸 수가 없어서 이를 악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두변이…… 합환주를 마시고 난 뒤 끊임없이 피를 토했습니다. 지금은, 이미 숨이 끊어졌습니다.”

“뭐라고?”

태자는 몸이 후들거렸지만 바로 탁자를 잡고 버텼다. 의자에 앉으려 했지만 여러 차례 미끄러지며 앉을 수도 없었다.

정신이 나간 것처럼 온몸이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도 어지럽고 입 안이 말라왔다.

‘침착해야 한다. 침착해야 해.’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어서 머리를 다시 침착하게 만들려고 했다.

“끝장이야, 끝났어…. 우리 대녕 제국의 강산이 이대로 무너지는 건가.”

태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이연정에게 물었다.

“이 공공, 부황께서 나를 남겨두라고 하신 건가?”

이연정이 그 말에 묵인하자, 태자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흠칫 떨렸다.

그는 부황이 두변을 독살한 범인으로 자신을 의심한다는 걸 알았다. 심장을 칼로 베는 것처럼 아파왔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그 일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멍청한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두변은 이미 제국 서남부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버렸다. 원등 공작, 선화 공작이 어째서 다시 황실의 발아래에 부복하게 됐는가? 첫째는 방계가 그들을 버렸기 때문이고, 둘째는 두변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두변이 없으면 태자인 자신이 황위를 계승한다 해도 그 자리는 안정되지 않는다.

북방의 결전이 머지않아 일어나면 두변의 서남부는 적군과 대치하는 후방이 되면서 가장 큰 퇴로가 될 것이다.

북방에서 패전을 거둔다면 연왕이 남경에서 등극할 가능성이 커지니, 그렇게 되면 태자는 서남으로 가서 황제에 즉위해야 했다.

얼마나 우둔해야만 지금 같은 때에 두변을 해칠 수 있을까.

‘부황, 부황은 저를 그토록 우둔하게 보시는 겁니까. 사람을 용납할 도량도 없는 사람으로요?

부황께서는 모르십니까? 낮에 두변이 그 밀서를 꺼내서 내심 기쁘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건 두변의 충심을 증명하니까요. 저는 정말로 그를 탓할 뜻이 없습니다. 정말로 없었습니다!’

태자가 속으로 고통스럽게 외친다 한들 누구도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지금 두변이 경성에서 죽는다면 서남은 반드시 역모를 꾀할 것이며 적어도 황실과의 관계가 결렬될 것이고, 이문회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서남의 20여만 군대가 두변을 신처럼 생각하는데, 그런 두변이 죽었으니 천지가 갈라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하늘이시여, 저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한데 저는 지금 진심으로 당신께 기도드리겠습니다. 두변을 죽이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모든 게 끝장납니다.’

동방 안.

갑자기 기란정이 입을 열었다.

“두변은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습니다. 호흡과 심장 박동은 멈췄지만 단전 안에 아직 아주 조금 생기가 남아있습니다.”

황제와 영설 공주가 그 말에 놀라서 기란정을 바라봤다.

영설 공주의 아름다운 눈이 기란정을 향하며 말했다.

“기 선생, 두변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어떤 대가든 치르겠습니다.”

“이건 두변이 자초한 겁니다. 일전에 두변은 여여해를 없애기 위해 몹시 무시무시한 암흑 물질을 마셨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무도 수준이 한순간 대단히 폭증해서 여여해를 한 번에 죽일 수 있었던 겁니다. 한데 그 때문에 그의 생기와 기운이 과도하게 사용된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여해를 죽인 후, 두변은 갑자기 혼절해서 인사불성이 되는 경우가 생겼고 그 빈도가 점점 빈번해졌습니다. 그 일은 저를 제외하면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계표표가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에 기란정이 말했다.

“정말 두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겁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와서는 북명검파에 가지 않고 먼저 경성에 들어가겠다고 고집했으니, 완전히 죽음을 자초한 겁니다.”

“기 선생, 어찌 되었든 귀파에서 나서서 두변을 구해줘야 하네.”

황제가 기란정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절을 올리자, 기란정이 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북명검파가 속세을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대녕 제국의 황제는 천하의 군주였다.

기란정이 말했다.

“우선 제가 두변을 북명검파로 데리고 가겠습니다. 북명검파에서 두변을 구해주기를 원할지는 제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북명 대장로회의 대부분 구성원이 다들 두변이 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그의 단전에 남은 고작 한 가닥 생기만으로 그를 살릴 수 있을지는 완전히 미지수입니다.

일단 바로 그를 데리고 북명검파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럼 이만!”

기란정이 단번에 두변을 어깨에 메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잠시 후, 황제는 연금된 태자를 만나러 갔다.

“두변이 암흑 물질을 삼킨 탓이라고 한다. 지금은 이미 북명검파에서 데리고 갔으나 살릴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하늘의 뜻에 달렸다…….”

황제의 말을 듣고 태자는 무릎을 꿇고 소리내어 통곡했다.

“네가 억울한 일을 당했구나.”

황제의 말에 태자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부황, 저는 더 많은 걸 얻고 싶은 만큼, 생각도 더 복잡합니다. 하지만 부황과 제국에 대한 제 마음은 영설 누이와 똑같습니다. 똑같습니다!”

태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거의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울었다.

북명검파의 장로회는 이 세계에서 최고의 무도 권력을 가진 기구일 것이다. 하지만 상상하는 것처럼 화려한 곳이 아니라, 외딴 섬에 불과했다.

그 외딴 섬에 돌로 이뤄진 신전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좌석이 천 개나 자리하고 있었다. 모든 좌석이 전부 돌을 다듬어 만든 것으로 몹시 조잡하기만 했다.

게다가 신전의 거대한 원기둥은 반쯤 무너진 상태였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북명검파의 장로회가 이토록 소박하고 원시적일 줄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이 동방세계에서 최고의 무도 권력을 가진 장소라는 게 변하지는 않는다.

“두변이 죽은 건 하늘의 뜻인데, 어째서 그를 구해야 하오?”

“그렇소. 그를 구해서 무엇을 할 것이오? 장래에 우리 북명검파를 종결시키라고 구하는 거요?”

“일전에 장로회의 은포 판결자가 이연정과 두변을 죽이러 갔는데, 결국 이도진이 배반을 했고, 기음음이 발광한 탓에 우리 대종사급 고수를 네 명이나 손해를 봐야 했소. 그 후에 우리가 두변을 죽이러 사람을 계속 보내지 않은 것도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만든 결과였소. 한데 지금 우리더러 두변을 구하기까지 하라니, 꿈도 야무지지 않소.”

예상 선자가 여전히 조금 허약해 보이긴 했지만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우리 북명검파는 세속을 벗어났다고 하면서, 언제 남의 사냥개로 전락해서 황제의 심복을 죽이러 간 겁니까?”

북명검파 대장로가 말했다.

“예상, 너에게 엄중히 경고하겠다. 동방 연합 왕국은 우리 북명검파에게 가장 중요한 맹우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야.”

“맹우라고요? 그들의 사냥개가 아니었던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당당한 은포 판결자가 어째서 살수로 전락한 겁니까?”

그 말이 나오자 장로회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이곳은 신성하고 강대하고 위엄이 있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엉망진창인 곳이기도 했다. 이곳의 모두가 무공이 몹시 높은 데다, 놀라운 권력을 장악하고 있지만, 매번 회의를 할 때면 시끄럽게 싸우면서 탁자를 내리치고 의자를 발로 찼다.

물론 나서서 몸싸움을 하지는 않았다. 싸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들의 무공이 너무 고강하기 때문에, 한번 싸웠다 하면 수습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예상 선자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북명 선조께서 북명검파를 만든 건, 세상의 균열을 지키기 위해서, 온 세계의 신성한 사명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도 아니고,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의 권력욕을 위해서도 아니란 말입니다. 북명 선조께서 하셨던 예언은 이미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두변이 예언 속의 그 사람, 천명을 받은 주인입니다. 한데 여러분 중 일부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북명검파의 사명을 제쳐두고 돌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두변이 죽도록 내버려둘 뿐 아니라, 여러 번이나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일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북명이 문파를 창립한 사명을 돌보지 않을 겁니까?

일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북명 선조의 초심을 아랑곳하지 않을 겁니까?”

예상 선자가 냉랭하게 물었다.

다들 대꾸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이렇게 생각들 했다.

‘예상, 너는 최고의 도덕을 고수하며 서 있으면 힘들지 않냐? 등허리가 시큰거리지 않아?’

‘북명 선조는 입으로 존경한다고 말하면 그만이지, 그의 말을 진리로 여겨서 천 년이나 지속해야 하냐?’

‘천 년이나 이어지는 진리가 어디 있다고?’

‘대녕 제국의 태조 황제도 그렇게 많은 법도를 세웠지만 결국 딴판으로 바뀌지 않은 법도가 어디 있더냐?’

‘선조에게서 받은 법도? 그런 게 어딨어?’

‘북명의 선조가 몹시 위대하기는 하지만 그 말을 진짜로 여기면서 매일 외우지 않아도 된단다. 그러면 재미는 있냐?’

‘초심을 잊지 말아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고? 그런 건 다 거짓말이지! 임기응변하면서 추세에 따르는 것이야말로 진리라고.’

물론 북명검파의 장로들은 이런 말을 마음속으로만 뱉었지, 절대로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북명 선조는 신과 같은 존재라서 그를 거역하는 말을 꺼내는 것도 모두 중죄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 건 다 상관없지 않나?

예상 선자가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

“두변은 북명 선조께서 예언하신 사명을 받은 주인이니, 반드시 구해야 합니다. 두변을 구하는 데 동의하는 분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이윽고 예상 선자가 손을 높이 들어올렸지만 그녀와 뜻이 맞는 건 고작 몇 사람뿐이었다. 그곳에 있는 수십 명 가운데 두변을 구하는 데 동의하며 손을 든 사람은 1할도 되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 선자는 더할 나위 없이 실망하고 말았다.

북명검파는 이미 철저하게 변질되어서 더 이상 세속을 벗어났다고 할 수가 없었다. 이 장로들은 완전히 권력욕에 썩어버렸다.

이들은 제 손에 쥐어진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북명검파의 사명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결국 북명검파 장로회에서는 두변을 구하지 않고, 그가 죽도록 내버려 두자는 결론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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