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24화 (424/648)

424장: 시스템이 나를 버렸나?

예상 선자가 냉랭하게 소리쳤다.

“정말, 당신들 때문에 치욕스럽기 그지없군요.

사존! 종주 폐하! 폐하가 듣고 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나타나지 않으실 겁니까?”

아무런 대답도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예상 선자가 다시 소리쳤다.

“영도현 종주! 영도현 폐하!”

“하아…….”

가벼운 한숨 소리와 함께 영도현의 모습이 모두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공기를 밟고 내려온 것처럼 신전 상공에 나타났다.

“종주 폐하께서 말씀해주십시오. 북명 선조의 뜻을 따라야 합니까? 두변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까?”

예상 선자가 묻자 영도현은 잠시 침묵한 뒤 입을 열었다.

“어떻게 구할 것이냐?”

“전력을 다하는 겁니다. 두변의 모든 생기와 기운이 여여해를 죽이는 그 순간 모두 소모됐습니다. 두변의 체내에 소모된 기운을 주입해서 일정한 평형 상태에 도달하면 어쩌면 살아날지도 모릅니다.”

영도현이 말했다.

“네 말은 다른 대종사들의 무도 수준을 손실 보게 하고 그것으로 두변 체내에 있는 그 구멍을 메꾸자는 것이냐?”

예상 선자가 말했다.

“그럼 또 어떻습니까? 제가 첫 번째로 그 일을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두변이 살아날 것이라고 어찌 믿느냐? 그는 지금 심장도, 호흡도 멈췄다. 심지어 뇌 영역도 멈춘 데다 고작 단전에 아주 조그마한 생기만 남았을 뿐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말하면 그는 사실 죽은 셈이다.”

“사존께서도 두변을 구하길 원하지 않으십니까? 선조의 사명을 따르길 원하지 않으십니까?”

영도현이 복잡한 눈빛으로 예상 선자를 힐끗 보더니 소리쳤다.

“모두 명령을 들으시오!”

그 순간 그곳에 있던 북명검파 대장로 수십 명이 전부 일어나서 허리를 굽혔다.

“종주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두변은 선조가 예언한 사람이자 사명의 주인이오. 예법에 따라 그를 선대 종주들처럼 세상의 균열 속에 묻으시오!”

“안 됩니다!”

예상 선자가 외쳤다.

세상의 균열이란 무엇인가? 세상의 균열은 어디에 있는 건가?

천여 년 전에 두 세계의 차원이 부딪혔고, 그 부딪힌 곳에 세상의 균열이 형성되었다. 즉 세상의 균열이라고 말하는 곳은 더할 나위 없이 무시무시한 기운으로 갈라진 입구를 말하는 것으로, 북명검파의 사명 자체가 동방세계의 갈라진 틈, 즉 세상의 균열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 사명을 집행하기 위해서 모든 세대의 북명검파 종주는 죽은 뒤 세계의 균열 속에 매장된다.

매장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균열 속에 던져놓는 것이다.

그 균열 속에 들어간 자의 결말은 단 하나, 거대한 기운이 그 시신을 찢어발기면서 연기로 사라진다는 것.

영도현의 명령은 몹시 단순했다. 두변은 이미 죽었지만 북명 선조가 예언한 사람이니, 선대 종주들과 동등한 영예를 누리도록 그들과 함께 세계의 균열에 던져놓으라는 것이었다.

“안 돼, 안 돼요! 그럴 수 없습니다!

북명검파는 선조의 취지를 배반하고 있습니다!”

예상 선자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그녀는 중상이 완쾌되지 않은 데다가, 은포 판결자들이 그녀를 단단히 제압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는 전혀 막을 수 없었다.

다른 은포 판결자 네 사람이 두변을 들고 해수면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은 해수면 위를 수백 리 걸어서 이 세계에서 최고로 신비한 장소에 도착했다.

세계의 틈, 북명검파가 천 년이나 지킨 거대한 틈이었다.

영도현이 두변을 복잡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손을 휘둘렀다.

“매장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은포 판결자 네 명이 손을 놓았다. 동시에 두변의 ‘시체’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세상의 균열로 내던져졌다.

이 세상의 균열은 어떤 모습일까?

끝도 없는 망망대해에 수만 미터의 균열이 생겨서, 바닷물이 세차게 흘러내려 한도 끝도 없이 깊은 폭포처럼 보이기도 했다.

갈라진 틈의 끝에서는 끊임없이 빛의 색이 바뀌면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귀가 큰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마법의 문 같기도 했다.

두변의 몸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떨어져 내렸다.

수만 미터나 떨어진 뒤, 결국에는 세상의 틈 끝의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두변이 추락하는 순간, 기이한 빛 네 가닥이 갑자기 두변의 몸에서 빠져나오더니 허공에서 다시 한데에 모였다.

녹색 빛이 말했다.

‘너무 위험했어. 너무 위험을 무릅썼다고.’

금색 빛이 말했다.

‘어떻게 보면 일은 이미 우리가 장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어. 숙주가 암흑 물질을 마시고 여여해를 죽인 그 순간부터, 오늘의 일이 발생할 운명이 된 거야. 세상의 균열에 가는 것 외에는 더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녹색 빛이 말했다.

‘너희는 너무 미쳐 날뛰는 것 같아. 숙주는 고작 스무 살짜리 어린 남자애에 불과해. 너희는 모가 늦게 자란다고 해서 모를 뽑아버리는 행동을 한 셈이야. 지난번에 절세 지하성에서 혈맥을 바꾸는 걸 반대했지만, 너희는 연달아 그를 죽음의 문턱까지 밀어 넣었잖아. 결국 그래서 마침내 오늘의 상황으로 발전하게 된 거라고.’

붉은색 빛이 말했다.

‘이럴 시간이 없잖아. 시간이 없으니 가장 빠르고 가장 위험한 노선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고.’

녹색 빛이 말했다.

‘지금 숙주는 이미 지옥에 한 걸음 들어간 셈이야. 우리가 없으면 숙주는 세상의 균열에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어.’

붉은색 빛이 말했다.

‘우리가 세상의 균열에 따라갈 수는 없어. 일단 가면 적에게 우리 종적을 발각당한다고. 그렇게 되면 숙주는 진짜로 죽게 된다고.’

녹색 빛이 물었다.

‘우리가 없으면, 앞으로는 어떻게 되지?’

금색 빛이 말했다.

‘설령 우리가 없이도 그가 여전히 총명한 사람이고, 하늘이 보살피는 사람이라는 걸 믿을 수밖에 없어. 게다가 언제가 그는 우리를 잃고 혼자서 길을 가야 할 때가 올 거야. 지금이 그때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자. 만약 그가 완전히 실패한다면, 그것도 하늘이 정해주신 운명이겠지.’

이어서 붉은색 빛이 말했다.

‘게다가 그는 세상의 균열에 결국 갈 수밖에 없는 처지야. 그건 숙명의 주인인 그의 사명이고.’

녹색 빛이 말했다.

‘기왕 가야 할 길인 건 맞지만 그건 그가 대단히 강해진 다음에 가야 할 길이라고. 지금은 아니지.’

금색 빛이 말했다.

‘어찌 되었든 우리의 첫 번째 숙주가 몹시 많은 준비를 해두었어. 두변을 위해 몹시 긴 길을 포석으로 깔아두었으니까.’

첫 번째 숙주? 북명 선조 얘기일까?

금색 빛이 말했다.

‘두변 숙주, 새로운 임무, 영생 얻기를 시작한다.

임무 목표 1: 숙주의 부활.

임무 목표 2: 숙주의 양기 수치가 100에 달해서 정상적인 남자로 회복된다.

임무 목표 3: 숙주가 북명대법을 익힌다.

임무 목표 4: 숙주의 무공 수준이 종사를 돌파한다!

임무 목표 5…….

임무 성공 확률은…….’

금색 빛이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했다.

‘두변 숙주, 나는 네가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설령 우리가 없어도 너는 여전히 천명(天命)의 주인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두변은 조용히 깨어났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호흡도, 심장 박동도, 신체에 아무런 온기도 없이, 걸어다니는 시체와 같다는 걸 발견했다.

걸을 수도 있고, 손발을 움직일 수도 있지만 몸이 완전히 죽어버린 것처럼 신체에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게다가 몹시 이상한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온 세계가 오직 빛으로 만들어진 데다가, 그 빛들이 끊임없이 일그러지고 뒤틀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의 기억은 영설 공주와 동방에서 화촉을 밝히려던 그 장면에서 뚝 끊겨 있었다.

쓰러진 뒤에 발생한 모든 일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 이곳은 어떤 곳인지 말이다.

두변은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생각했다.

그는 적어도 영설 공주와 동방을 치르는 일에 관해서는 시스템의 말이 맞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런 인륜대사는 확실히 순리에 따라야 했다.

게다가 한동안 그는 확실히 몹시 자기중심적이었다. 흥분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생각했다.

‘시스템, 당신과 얘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아무런 반응도 없었고, 본래 시스템의 빛이 있었던 곳이 완전히 어두웠다.

두변이 여러 번 불러도 시스템은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설마 시스템이 나를 버리고 간 건가?

그럴 리 없는데?

두변은 필사적으로 머릿속에 있는 모든 정보를 탐색했다.

이윽고 그는 자신의 정신세계의 한구석에서 편지를 하나 발견했다.

‘미안하다, 숙주. 우리가 미쳐 날뛰듯이 모험을 하면서 너를 죽게 만들었다.

네 혈맥을 개조하려고 시도했을 때부터,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었다.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미지의 영역이 가득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네 뜻대로 그 일을 이행하게 둘 수밖에 없었다.

너는 지금 세상의 균열 속에 있다. 우리는 너를 따라 이곳에 올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적에게 발각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미친 듯이 달려와서 너와 우리를 완전히 없애버리겠지.

그러니 이 지옥의 균열은 반드시 너 스스로 완성해야 한다.

이 여정에서 너는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게다가 너의 궁극적인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앞으로, 앞으로 가라!’

그 편지를 읽은 두변은 시스템이 말하고 싶지만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세상의 균열?

이곳이 세상의 균열이라고?

바로 북명검파가 대대로 지켜오던 곳? 세상의 입구라고 불리는 그 장소인가?

앞으로 가라고?

사실 그곳에는 앞으로 가는 길 한 갈래밖에 없었다.

그 동굴 같은 곳을 두변은 줄곧 앞으로, 앞으로 걸었다.

얼마나 오래 걸었을까.

갑자기 앞에 집 한 채, 돌로 만든 몹시 작은 집이 나타났다.

두변이 앞으로 가서 문을 가볍게 두드렸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다시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두변은 조금 힘을 주어서 문을 밀어젖혔다.

안에는 탁자 하나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촛불 한 개가 타오르고 있었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모두 새하얀 노인이 탁자 뒤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노인의 귀는 완전히 닫혀 있었고 귓불이 몹시 커서 눈까지 가려버렸다.

두변이 앞으로 가서 나직이 말했다.

“어르신.”

상대방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두변이 손을 뻗어서 노인을 살짝 흔들며 말했다.

“어르신.”

노인의 귓불이 펴지더니 정상적인 귀로 돌아왔다. 그런 뒤 두 눈을 뜬 노인은 의아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봤다.

“이상하구나, 이상해! 너는 어째서 몸이 있지? 이곳은 분명히 죽은 사람만이 올 수 있는 곳이라고!”

두변은 그 노인의 몸이 사실은 빛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단지 너무나 사실적이라서 얼핏 보면 진짜 육체 같아 보일 뿐이었다.

이어서 그 노인이 두변 몸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물었다.

“너도 이미 죽은 것 같은데?”

잠시 후, 노인의 안색이 급변했다.

“네가 바로 북명 선조께서 예언하신 그 사명의 주인이냐?”

두변이 깜짝 놀라는데, 그 노인이 소리쳤다.

“내가 바로 북명검파의 19대 종주, 임유천이다!”

‘이분이 바로 저번 대의 북명 종주 임유천이라고? 영도현, 기음음, 기엽엽 세 사람의 사존?’

노인의 신분을 논하지 않더라도, 단순히 이 사람이 영도현과 기음음이라는 두 제자를 가르쳤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대단한 사람이라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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