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26화 (426/648)

426장: 변법

“허니 너는 이번 일이 충분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냐? 우리는 일전에도 하마터면 크나큰 잘못, 그것도 만회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를 뻔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마가 점점 더 교활해짐에 따라 그들이 쓰는 방법도 점점 더 고단수가 되더구나.

북명 선조께서 예언하신 그 사명의 주인으로 가장하는 건 아마도 그것들이 쓰는 최후의 수단일 것이다. 우리 종주들이 세상의 균열에 남는 것이 바로 선조께서 예언하신 그 사람을 기다리기 위해서니까 말이다. 헌데 그것이 예언 속의 사명의 주인으로 변신해서 북명대법을 배울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힘을 집어삼키고, 최후에는 우리 세계에 파고들어서 첩자가 된다면 무슨 결말을 맞을 것 같으냐?”

몸서리쳐질 정도로 두려운 결말을 맞을 것이다.

“허니 우리는 반드시 백분의 백, 너의 신분을 확신해야만 북명대법과 우리의 무도 수준을 전부 너에게 줄 수 있다.”

이제 두변은 그 점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선조께서 예언하신 그 사명의 주인은 두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하나는 지옥불을 내뿜는 것, 하나는 용의 비늘을 드러내는 것.”

하지만 두변은 현재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도 시전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 노인이 매마가 가짜 두변으로 변신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입장을 바꾼다면 두변이라도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균열 안에도 지옥불이 있습니까? 지옥불은 모든 걸 불태워서 연기로 사라지게 합니다. 한데 저는 지옥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지옥불을 완전히 집어삼킬 수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가진 유일무이한 기운이니, 사명의 주인이라는 제 신분을 증명할 수 있을 겁니다.”

임유천은 아주 오래 침묵했다.

“두변, 너는 세상의 균열이 우리 세계의 균열일 뿐 아니라, 또 다른 세계의 균열이라는 걸 알 것이다.”

두변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세상의 균열에도 지옥불은 있다. 한데 그곳은 또 다른 세상의 균열에 가까이 있지. 그건 무시무시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엇을 만날지 모르니 말이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어르신,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중에 지옥불에 서 있어도 불타지 않고, 도리어 지옥불을 집어삼키는 그 일만이 제 신분을 철저히 증명할 수 있습니다. 모든 건 당신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조금 기다려라.”

이윽고 노인이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허공에서 네 가닥 빛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숙주가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어. 이미 닷새의 시간이 지났는데.’

금색 빛이 말했다.

‘첫 번째 숙주인 북명 선조가 이미 안배해두었으니, 두변이 그 사람만 만나면 대부분의 위기는 해소할 수 있겠지.’

녹색 빛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도 그 세상의 균열이라는 곳에는 가보지 않아서 그 안이 대체 어쩔지는 전혀 알 수 없잖아. 왠지 우리 숙주가 전대미문의 시련을 겪을 거라는 예감이 드는데.’

파란색 빛이 말했다.

‘게다가 이번에 그는 우리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붉은색 빛이 말했다.

‘나는 이런 예감이 들어. 숙주가 겪게 될 일은 우리 계획과 전혀 다른, 심지어 우리의 세계관이 완전히 전복될 만한 일이 될 거라고 말이야.’

대녕 제국의 서남부.

두변이 그곳을 떠난 지 이미 이십여 일이 지난 후였다.

그럼에도 두변의 세력은 그가 떠났다고 해서 정체되지 않았고 오히려 한 단계씩 발전 단계에 진입하고 있었다.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의 실험실이 미친 듯이 확장되고 있었다.

현재 그는 이미 천 명 이상의 술사(術士)들을 끌어모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들은 바로 성화교의 그 포수들이었다.

제국 서남부의 대규모 광산에는 노예 수만 명이 유입되어서 가지각색의 광석을 끊임없이 발굴했다.

그와 동시에 제국의 서남부와 절세 지하성 사이의 통로가 활짝 열리게 되었다. 덕분에 절세 지하성에서 물자뿐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경금(輕金)을 끊임없이 운반할 수 있게 되었다.

제국의 서남보다도 절세 지하성의 광산물이 더욱더 풍부하고 귀중했다. 수백 년 동안 발굴을 했더라도 아직 10분의 1 정도만 발굴되어 아직도 많은 양이 남아 있었다.

예전에 절세 지하성에서는 발굴한 천문학적인 양의 경금으로 갑옷 십만 개와 활, 화살 등등을 만들었었다. 그러고도 경금 백만 근을 저장해뒀기 때문에 채굴이 필요하지 않아서 광갱을 봉쇄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이제 두변의 세력이 미친 듯이 확장함에 따라 봉쇄했던 광갱을 다시 열었고, 수만 명이 다시 그곳에 투입돼서 경금을 제련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왜냐하면 두변의 군대에 갑옷 2, 30만 개와 그보다 더 많은 양의 도검과 활, 화살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더 많은 양의 화포가 필요했다. 12방 화포뿐 아니라, 18방, 심지어 24방 화포가 필요했다.

성화교에서 강철을 다루는 수준이 비교적 높아서 화포를 주조하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화포는 너무 무거웠다.

그러니 지금 술사들은 경금으로 화포를 주조할 계획이었다. 그걸로 화포를 만들면 중량이 몹시 가벼워지는 데다, 인성(靭性)도 더 좋아지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공엽의 술사들은 심지어 후장포(後裝砲: 탄알을 포신의 뒤쪽에서 장전하도록 만든 포)와 화포의 강선(腔綫: 총신·포신 내부에 나선형으로 판 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화승총은 어떨까?

또 다른 지구에서는 이 시기에 화승총이 이미 나타난 데다가, 서방세계에서 점차 전쟁을 치를 때 사용하는 주력 병기가 된다.

그렇지만 두변 휘하 세력의 연구 계획에서는 화승총이라는 부분은 몹시 적은 부분을 차지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 세계는 활과 화살의 위력이 너무나 강해서 당분간 화승총을 연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두변이 그곳을 떠난 시간 동안 절세 지하성의 관원 수백 명이 초안을 잡은 발전 강령이 정식으로 체계화되었다.

그건 몹시 상고시대적이면서도 동시에 현대적인 강령이었다.

우선 많은 규정이 진(秦) 나라의 법과 유사해서 몹시 가혹할뿐더러 계급과 계층이 몹시 분명하게 나뉘었다.

하지만 또 현대의 토지 혁명이 더해졌다. 곧바로 군대를 동원해서 가장 손쉬우면서도 거친 방법으로 대규모 토지를 수습한 뒤 대다수의 농민에게 농지를 나누어줬다.

물론 그 토지들은 곧바로 몰수한 건 아니고 돈을 주고 산 다음 농민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다만 매입 가격이 몹시 낮았을 뿐.

그러니 서남 세 성의 대지주와 사대부 가문에서는 두변을 뼈에 사무칠 정도로 원망하면서 두변을 자신들을 괴롭히는 자로 규정지었다.

게다가 구호까지 정해서 외쳤다. “서생이라면 누구든 두변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서생의 수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변에게는 그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곧바로 절세 지하성에서 관원 수천 명을 데리고 와서 세 성의 관리 조직에 채워 넣었다.

현령 이상의 관리는 어떻게 했을까?

대부분은 본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야말로 두변을 위해 목숨 바쳐 일하겠다는 구호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관리를 할 수 있다면 어떤 구호든 외칠 수 있었고 어떤 규칙이라도 따를 수 있었다.

게다가 두변의 계획에서는 병기소, 방직소, 제련소 등이 가장 중요시되었다.

수많은 인력과 돈이 더해지니, 그런 기구가 세워질 장소까지 다 구상이 끝나서 곧 공사와 건설이 시작될 차였다.

모든 게 계획경제의 기운이 충만했다.

유일하게 아쉬운 건 바로 조선소였다.

인재가 없는 게 아니었다. 혈교방과 안남 왕국에서 이미 대량의 조선공(造船工)을 두변의 영지로 보낼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동방 세계는 너무 오랫동안 봉쇄되어 있던 탓에 그들이 만들어낸 배는 아직도 한참이나 뒤떨어졌다.

이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조선소는 동방 연합 왕국과 성화교 세계, 서방세계에 있었다.

하지만 두변의 계획에서 동방 연합 왕국과 결전을 벌이는 건 아마도 초대형 해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강한 함선이 없으면 대녕 제국은 해상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수동적으로 얻어터질 수밖에 없게 된다. 게다가 동방 연합 왕국의 핵심 구역들을 영영 함락시킬 수 없을 것이다.

두변의 대군과 관원들이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나가면서 서남 세 성도 점점 안정화되어 가고 있었다.

두변이 부재중인 탓에 이문회가 서남 세 성의 수장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면 진남공 부인과 세자가 귀환했다.

두강은 광서 순무 자리를 사직하고 복건의 순무를 맡게 되었다.

두변이 주청을 드려서, 진남공 송결의 인척이자, 본래 광서 학정(學政)을 맡았던 오삼석이 새로운 광서 순무가 되었다.

이 새로운 순무 대인은 여전히 험난하게 직무를 소화하고 있는 중이었다. 본래 전문적으로 교육 행정을 맡고 있었던 터라 지금 민정을 담당하는 관리가 되려니 너무나 힘겨웠다.

오삼석은 두변이 제시한 정책들을 그다지 찬성하지 않았다. 너무 거칠고 가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의 성지가 내려지니 그는 이해할 수 없어도 완벽하게 집행하면서 동시에 그 정책들을 배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새로운 순무 오삼석이 한마디를 했다.

“두변은 변법(變法)을 하려는 거로구나.”

결국 그렇게 ‘두변 변법’이라는 단어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또 다른 지구의 역사에서는 상앙(商鞅) 변법, 왕안석 변법, 장거정(張居正) 변법, 무술(戊戌) 변법 등이 있었다.

(※상앙 변법: 전국 시대에 상앙商鞅의 주도로 진秦에서 시행된 개혁 정책. 연좌제와 군공수작제를 실시했으며, 지방 행정 구역을 개편하고 도량형 등을 통일했다.)

하지만 상앙 변법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다 실패했고, 장거정은 가까스로 3할 정도를 성공한 셈일까?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변법이 성공하기만 하면 분명히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런데 어째서 상앙 변법만 성공했을까? 왜냐하면 군주가 절대적인 의지를 가지고 모든 이익 집단이 반격하는 걸 제압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왕은 그럴 수 있었지만 송의 황제는 그게 안 됐고, 장거정도 하지 못했다. 광서제(光緖帝)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고.

그럼 두변은 할 수 있을까? 모든 이익 집단의 반격을 제압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서남 세 성의 이익 집단은 이문회에게 죽임을 당한 뒤, 또 방계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런 뒤 다시 여여해가 나머지를 죽여버렸고, 마지막으로 두변이 모조리 소탕해버렸다.

그러니 지금 서남 세 성의 이익 집단은 백지보다 깨끗한 상태였다.

그러니 이른바 두변 변법이 아무리 기형적이고 불합리하다 해도, 이 세 성의 지리 환경이 아무리 형편없더라도, 단시간 안에 놀라운 성과가 터져나오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 두변이 없어도 서남 세 성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었다. 조만간 반년만 지나면 크나큰 변화를 맞을 것이다.

세상의 균열, 비현실적인 돌집 안.

북명검파의 전 종주 임유천이 눈을 뜨고 두변을 바라봤다.

“따라오너라. 이 일은 나 혼자 결정하지 못하니, 모든 종주가 함께 표결을 해야겠구나.”

“알겠습니다.”

이윽고 임유천은 두변을 데리고 자신의 돌집을 출발해서 앞으로 아주 먼 길을 걸어서 어떤 갈림길에 접어들었다.

앞에 나무로 된 집이 보이는데, 임유천은 집 안으로 들어갔고 두변은 밖에서 기다렸다.

대략 반 시진 뒤, 임유천이 어떤 노인과 함께 나왔다.

임유천이 그를 소개하며 말했다.

“이쪽은 내 사부이자 북명검파의 18대 종주, 언불멸이시다.”

언불멸 종주는 몹시 야윈 데다가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없으며 눈도 한 줄기 틈이 난 것처럼 실눈을 뜨고 있었다.

언불멸 종주가 두변 앞에 서서 그를 위아래로 한참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참으로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이, 선조께서 예언한 사명의 주인인가?”

그 한숨에는 어딘지 실망감이 묻어났다.

이어서 언불멸이 말했다.

“임유천, 너는 두변을 데리고 황금 집으로 가라. 흙집, 얼음집에 있는 두 종주는 내가 모시러 가겠다.”

임유천이 말했다.

“삼가 사부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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