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장: 사간(死間)
허인걸이 말했다.
“우리의 정보와 추론에 따르면 그 일은 영존 여여해를 죽인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대인께서도 그자의 무공이 몹시 낮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한데 도리어 눈 깜짝할 사이에 대인의 부친을 죽였습니다. 저희의 추론에 따르면, 그는 아마도 몹시 끔찍한 어떤 물질을 복용해서 순식간에 힘을 수없이 증폭시켰을 겁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의 모든 생기와 힘을 지불해야 했을 겁니다. 사실 영존께서 돌아가신 뒤로 그자는 이미 닭 모가지도 비틀 힘도 없었습니다. 단지 아무도 그걸 몰랐을 뿐입니다.
물론 그 일은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군대를 거느리고 백색성으로 돌아와서 선성후 육전을 없앨 때, 그는 직접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몸에 용린이 있고 육맥신검도 익혀서 전장에서 선보이기 참 좋습니다. 게다가 그자가 전장에 직접 나서길 좋아했는데 그때 이후로는 전투에 한 번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 정보를 알아낸 첩자는 등급이 몹시 높아서 많은 기밀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허인걸이 말을 이었다.
“우리 주인께서 이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대인께서 우리에게 협력한다면 장래에 왕에 책봉될 수 있습니다. 이건 소군 전하께서 직접 우리 주인께 허락한 일입니다. 만약 대인께서 방계에게 의탁하기를 원하시면 장래 여씨 가문은 운남을 제압하고 염서왕(炎西王)에 책봉됩니다. 계속 동방 연합 제국과 성화교 세계의 완충 역할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대인께서는 지금 아무런 답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바둑판에 당분간 서남쪽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인께서도 이 일을 마음속에 두고 계시다가, 나중에 우리에게 어떤 일들을 협조해주시면 됩니다.”
두변을 배반하고 방계에 의탁하면, 운남을 진압하고 영토를 분할 받아서 왕에 책봉될 수 있다?
확실히 사람을 전율하게 만들 조건이었다.
“안심하십시오. 지금의 제 신분은 몹시 깨끗합니다. 게다가 죽을 힘을 다해서 정장의 위치에 올라서, 상관도 저를 몹시 마음에 들어하십니다. 게다가 당신과 저는 예전의 교분이 있으니, 제가 당신께 찾아온 것도 몹시 정상적입니다. 게다가 당신은 지금 두변 휘하의 거물이 아닙니까? 제가 뒷배가 되어달라고 당신을 찾아온 것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허인걸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참장 대인, 앞으로 소관을 많이 발탁해주십시오.”
말을 마치고 그는 떠나려고 했다.
낚싯줄을 길게 늘여놓고 큰 고기를 낚을 때는 애초에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여담은 의자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허인걸의 말을 아직도 되뇌고 있었다.
두변이 죽었어?!
두변이 일전에 여담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모반을 꾀하고 싶다면 반드시 내가 확실히 죽은 뒤에야 모반을 꾀하라고 말이다.
허인걸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여담 집의 문밖으로 나가는 순간, 자신의 임무가 절반은 성공한 셈이니까.
하지만 1초 뒤.
여담의 몸이 엽표(猎豹: 치타)처럼 튕겨 나와서는 허인걸의 목덜미를 힘차게 움켜쥐고는 이문회의 저택을 향해 걸었다.
“감군, 이 사람은 방계의 첩자입니다.”
여담이 허인걸을 눌러서 바닥에 꿇게 했다.
이윽고 여담은 허인걸이 그에게 들여준 모든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했다.
여담이 말했다.
“감군, 방계가 우리 서남에 심어둔 첩자가 한 명뿐이 아닐 겁니다. 반드시 온갖 방법을 써서 이자의 입에서 그들을 끄집어낸 뒤, 방계의 첩자들을 일망타진해야 합니다. 가혹한 형벌이나 정신술을 사용하면 이자가 분명히 자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허인걸이 이문회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문회 대인, 저는 당신의 명령을 받들고 여담을 염탐했습니다. 여담은 충성스럽습니다. 이문회 대인께서는 저희 가족을 보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소인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어서 허인걸이 여담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여담 대인, 절대 이문회 대인을 탓하지 마십시오. 실로 너무 긴장된 형세가 펼쳐졌습니다. 두변 대인의 사망 소식이 곧 퍼져나갈 테니, 이문회 대인께서는 반드시 대인께서 충성스러운지 확신을 얻으셔야 했습니다. 소인이 대인을 탐색한 건 대인에 대한 모욕이니, 소인은 목숨으로 그 빚을 갚겠습니다.”
순간, 여담이 급히 앞으로 다가가 그의 목을 힘껏 움켜쥐었다. 이자가 이를 깨물지 못하도록.
하지만 이자는 이를 깨물 필요도 없었다. 1초 뒤, 허인걸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하더니 곧바로 독에 중독되어서 목숨을 잃었다.
이문회가 허인걸의 시체를 보며 말했다.
“대단한 사간(死間: 죽음을 무릅쓰며 거짓을 누설하는 첩자)이로군. 임무에 실패했으나 죽기 전에 도리어 나를 물어뜯다니 말이야. 그는 내가 당신을 탐색하라고 보낸 이가 아니오.”
“저도 당연히 압니다. 이자는 죽기 전까지 우리를 이간질하려고 했습니다.”
이문회가 여담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데 그의 말 중에 확실히 진실인 말도 있었소. 두변은 영설 공주와의 혼례 중에 토혈을 했고 겉으로 보기에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하오. 기란정이 그를 북명검파로 보냈다고 예상 선자가 알려주더군. 두변은 세상의 균열로 유배되었으니, 구사일생의 상황에 놓인 셈이오.”
여담은 완전히 경악했다. 이문회가 이토록 남김없이 자신에게 말할 줄은 몰랐다.
“여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보시오. 방계가 당신에게 운남을 주고 왕으로 책봉해준다고 했다는데, 설마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거요?”
이문회의 말에 여담은 한참이나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요.”
“그럼 어째서 이런 결정을 내렸소? 허인걸을 내 앞에 데려온 건 정말로 그가 당신을 탐색하러 보낸 내 첩자라고 생각한 거요?”
“그 가능성도 생각했습니다. 한데 내가 이 선택을 하게 만든 진정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세히 듣고 싶소.”
“첫째, 두변 대인께 겁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든 그분은 반드시 죽을 상황에서 결국 매번 돌아와서 반역자를 참살했습니다.”
“두 번째 원인은 무엇이오?”
“둘째, 방계는 제가 투항한다면 왕에 책봉한다고는 했습니다. 내심 그 장면을 상상해봤지만 여전히 우울하고 즐겁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저는 매일 고통으로 무너지는 곳에 서 있는데, 오직 아들의 웃음소리만이 제 고통을 조금이나마 완화시킬 수 있더군요.”
“알겠소.”
이윽고 이문회가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당신은 정신을 차려야 하오. 당신에겐 우울할 시간이 없소. 우리가 합심해야 대단한 위력을 발휘해서 놀라운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오. 주군이 귀환할 때까지 말이오.”
여담도 손을 뻗어서 이문회의 손을 쥐었다.
집에 돌아온 여담은 침상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그의 아내는 여전히 방 안에 많은 촛불을 밝혀서 환하게 밝혔다.
여담은 정신술을 써야만 잠이 들 수 있어서, 그가 완전히 잠이 든 후에야 아내는 모든 촛불을 끄고 그의 옆에 누워 잠을 잘 수 있었다.
침상에 누운 여담은 환하게 밝혀진 촛불 수십 개를 보며 말했다.
“모두 끄고 잠을 잡시다.”
끊임없이 앞으로, 앞으로 걸었다.
두변은 이곳의 기운이 변하고 있음을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온통 낯설고, 괴상하고, 사악하고, 두려운 기운으로 가득했다.
인간 세계 쪽에 가까운 균열은 평화의 빛과 같은 기운이 감도는 반면, 앞으로 갈수록 점점 더 어두워졌다.
12대 종주 오애지가 말했다.
“여긴 균열의 중간 지점이다. 암흑교를 건너면 바로 저쪽의 영지다.”
점점 더 어두워지더니 결국에는 어둠이 극에 달해서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아무것도 느낄 수조차 없었다.
이게 세상의 균열의 중간 지대였다.
계속 앞으로 걸을수록 점점 더 답답해지고 점점 더 공포스러웠다.
어둠속에서 오히려 점점 더 밝아지긴 하는데, 그건 붉은빛이었다. 앞으로 갈수록 점점 더 붉은빛으로 가득해서 하늘 가득 온통 핏빛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공간 전체가 다 뒤틀려서는 아래위도 없이 사방이 뒤틀린 채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세계의 균열에 가까운 곳이라기보다는 지옥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변이 더할 나위 없이 광활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또 더할 나위 없이 협소해 보이기도 했다. 이미 공간이란 개념이 없어서 사방이 다 핏빛이 용솟음쳤다.
사방이 다 공터 같기도 하면서, 심연 같기도 했다.
그런데 상상했던 적이 나타나지 않아서 다섯 종주는 몹시 당황했다.
이치대로라면 중간의 암흑교를 건너서 상대방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면 적이 즉시 출현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도리어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끊임없이 앞으로 걸어갈수록 다섯 종주의 힘은 점점 더 쇠약해져 갔다.
동시에 두변은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이곳은 너무 기이할뿐더러 정신적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충격적인 곳이었다.
그때 갑자기 주위의 뒤틀린 핏빛 광선이 들어갈 수도 없는 새카만 암흑이 찾아왔다.
12대 종주 오애지가 말했다.
“어서! 지옥불은 바로 앞에 있다.”
이윽고 다섯 사람은 두변을 둘러싸고 더 빨리 걸었다.
그 암흑의 영역 중앙에 거대한 지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변, 즉시 지옥불 속에 들어가서 네가 사명의 주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거라. 증명이 되는 순간 우리는 즉시 북명대법과 우리의 무도를 너에게 전수하겠다. 어서, 어서 가거라…….”
휙, 휙, 휙, 휙, 휙.
오애지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검은 그림자가 연달아 나타났다.
검은 그림자는 이세계의 괴물로, 암흑을 가르고 수십 마리가 나타나서는 두변과 종주 다섯 명을 겹겹이 포위했다.
“두변, 어서 가라!”
오애지가 미친 듯이 소리치자, 두변은 지옥불을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그와 동시에 악마처럼 생긴 괴물 수십 마리가 종주 다섯 명을 향해 돌진했다.
북명의 선대 종주 두 명이 달려와서 그 괴물들을 참살하면서 필사적으로 두변에게 길 하나를 내어줬다.
“어서!”
점점 더 많은 괴물들이 달려들어서 종주 다섯 명을 겹겹이 둘러쌌다.
두변이 거대한 지옥불로 힘차게 달려들었고, 괴물 한 마리가 그의 뒤를 따라 함께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펑.
순식간에 그 괴물은 곧바로 연기로 사라졌다.
그에 비해 두변은 거대한 지옥불 속에 완전히 집어 삼켜진 것처럼 보였다.
그 지옥불은 몹시 커서 무려 수십 미터 크기인데, 두변이 달려든 뒤에 두변의 형체가 완전히 흔적 없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다섯 종주는 저도 모르게 멍해져서는 더할 나위 없이 실망스럽고 고통스러워하는 눈빛을 드러냈다.
그런데 1초 뒤.
두변의 형체가 갑자기 거대한 지옥불 속에 나타나더니 지옥불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예전에도 두변이 지옥불을 집어삼키긴 했지만 이토록 빨리 줄어든 적은 없었다.
지금 그 거대한 지옥불이 쏜살같이 두변의 몸속으로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그리고 고작 몇 초만에 지옥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순간 다섯 종주는 놀라서 넋이 나가면서 동시에 얼굴에 끝없는 기쁨이 차올랐다.
“선조시여, 이날이 마침내 왔습니다!”
“선조시여, 당신의 예언은 역시나 진짜였습니다. 이날이 마침내 도래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해탈할 수 있습니다. 해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몹시 괴상한 건 두변이 그 거대한 지옥불을 집어삼킨 뒤, 모든 괴물들이 전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괴물 백여 마리가 북명검파의 다섯 종주를 포위해서 몹시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옥불이 두변의 체내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그 괴물들도 전부 도망치고 말았다. 아주 공포스러운 일이라도 겪은 듯이.
북명검파 종주 다섯 명은 감격한 나머지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북명 선조께서 예언한 사명의 주인이 마침내 왔구나!’
애써 마음속 감격을 진정한 12대 북명 종주 오애지가 입을 열었다.
“빨리 황금 집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네게 북명대법을 전수해주겠다. 그런 뒤 일신의 무도를 너에게 전수해서 네가 열반해서 다시 태어나게 해주겠다.”
이윽고 다섯 종주는 여전히 두변을 호위해서 왔던 길을 돌아갔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괴물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