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장: 죽어야만 살 수 있다
세계의 균열, 황금 집 방 안.
엄청난 힘이 두변의 체내에서 뿜어져 나왔다.
두변이 입을 열고 기이한 포효를 토해내는데, 이전의 포효가 호랑이나 용의 포효와 같았다면, 지금의 포효는 두변조차도 자신이 내는 소리가 뭔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그의 머리에서 자라난 뿔도 무척 기이한 모양이었다. 뿔의 형상은 용의 뿔 같기도 했지만, 다른 무언가의 뿔 같기도 했다.
두변의 심장 박동이 힘있게 바뀌었고,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전부 평소와 같아졌다.
단전 안에 있는 지옥불, 교룡 혈맥의 황금 기운, 그리고 단혼영 기운까지 전부 회복되었다.
하지만 두변은 자신의 몸속에 또 다른 기운이 생겨났음을 깨달았다.
이 기운은 아주 낯설고도 기이하고, 강하고, 신비롭고 막연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한 기운인데, 지금 꿈속 시스템이 머릿속에 없으니 이게 뭔지 판별할 수도 없었다.
바로 이때, 제12대 북명종주 오애지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정말 다행이다. 하마터면 우리가 완전히 실패하는 줄 알았구나.”
후우우우.
지옥불이 두변의 몸속으로 사라지고, 그의 머리에 자랐던 뿔도 차츰 사라졌다.
두변은 북명검파의 나머지 네 종주가 사라졌음을 눈치챘다.
“다른 어르신들은 어디 계십니까?”
“다 소멸되었다. 우리는 네 몸에 기운이 흩어진 구멍이 그렇게 거대할 줄 몰랐다. 북명 종주 네 명의 힘으로도 그 구멍을 메울 수 없어서 모든 걸 다 내어주고 소멸해야 했다. 나도 내 모든 힘을 써도 너를 되살리지 못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하늘의 보살핌 덕분에 네가 되살아났고, 네 몸의 균형도 되찾았다.”
두변은 북명 종주들이 선조의 예언을 위해서, 자신들의 사명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마지막 혼백까지 바쳤다는 사실에 크게 감동했지만, 제 몸에서 북명대법을 느끼지 못한 것에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오애지가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북명대법은 학습 과정이 따로 없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그가 흡성대법을 익힐 때도 그러했다.
비급 두루마리가 수십 년 동안 충분히 기운을 흡수하게 되고, 누군가가 두루마리를 펼치고 만지게 되면, 두루마리에 새겨진 부호가 그 사람의 몸속으로 흡수되면서 직접적으로 단전과 근맥을 개조해서 무공이 몸에 새겨지는 것이다.
오애지가 말했다.
“내가 북명대법을 배운 적은 있지만 나도 피동적으로 배운 것이다 보니 부호나 원리가 어떻게 되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세계의 균열로 온 뒤에 시간이 무한하다 보니 매마가 침입하는 걸 막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북명대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근맥과 단전을 내시(內視)해서 완벽한 북명대법을 써냈다.”
두변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방 안에는 두루마리는커녕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두변의 모습을 본 오애지가 피식 웃었다.
“네가 단순한 구석이 있구나. 여기 세상의 균열에서는 기운으로만 존재할 수 있어서 두루마리에 직접 비급을 쓸 수는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내가 직접 두루마리로 변하는 것이지. 나 자체가 북명대법의 비급 두루마리라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왜 마지막으로 소멸해야겠나? 내가 제일 연로해서일까? 아니, 세계의 균열에 온 순간부터 모든 종주는 평등한 위치에 있게 되지. 내가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마치기 위해서지.”
“지옥의 문입니까.”
“그래. 지옥의 문. 지금 나머지 네 종주가 소멸했고, 잠시 뒤엔 나도 북명대법으로 바뀌어서 너에게 흡수되겠지. 그렇게 되면 오늘 이후로 아무도 세계의 균열을 수호하지 않을 것이고, 누구의 수호도 필요해지지 않게 되지. 네가 지옥의 문을 완전히 닫게 되면, 이계의 매마가 지옥의 문틈을 통해서 우리 세계에 침투하지 못할 테니까.”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직 저만이 지옥의 문을 닫을 수 있는 겁니까?”
“그래. 오직 너만이 지옥의 문을 닫을 수 있다.
이제 사명의 주인인 두변 네가 이곳으로 왔으니, 드디어 지옥의 문을 닫아서 이계와의 틈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사명이 완전히 끝나게 되는 것이고, 안심하고 소멸할 수 있게 된다.”
“어르신, 지금 종주 네 분이 이미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분들께서 통과하실 죽음의 길은 지금 아무도 안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이때 매마가 지옥의 동굴을 통과하게 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지금 당장 가서 지옥의 문을 닫아야겠습니다.”
“맞는 말이다. 지금 당장 가자. 나를 따라오거라.”
두변은 오애지의 뒤를 따라 황금 집을 떠나 지옥의 문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세계의 균열의 중간 지점인 완전한 암흑 구간을 지나서 공허하고 음산한 죽음의 길을 따라 계속 앞으로 향했다.
꽤 오래 걸었음에도 주위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적막뿐이었다.
이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오직 심장 박동 소리뿐이었다.
두변의 심장 소리, 그리고 오애지의 심장 소리.
얼마나 걸었을까.
두 사람의 앞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그 문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서 마치 하늘과 땅을 잇는 수준의 문이라 할 만했다.
지옥의 문 전체가 활활 타고 있었는데 불의 색은 창백한 하얀색이었다. 이곳은 아마 지옥불이 가장 크면서 끔찍할 정도로 강력한 곳일 것이다.
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거대한 지옥의 문에 아주 미세하게 갈라진 틈이 있었다. 틈은 약 2, 3밀리미터 정도로 굉장히 작았지만, 매마라면 이 작은 틈을 비집고 수십, 수백 마리가 나올 수 있을 듯했다.
쿠구구구궁.
지옥의 문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리더니 땅이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울렸다.
오애지의 안색이 급변했다.
오애지가 검을 치켜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서둘러라. 마귀들이 지옥의 문을 향해서 공격을 펼치려고 하고 있다. 마귀들이 공격하는 틈을 타서 매마들이 몰려올 테니, 어서 지옥의 문을 닫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힘으로 쏟아지는 매마들을 막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콰과과과광.
굉음이 계속해서 들려왔고, 하늘과 땅이 뒤집힐 정도로 강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오애지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장 가서 지옥의 문을 닫아라. 매마들이 저 틈을 통해 나올 수 없도록 막아야 해. 이번이 저들의 총공격이 될 테니, 어서 가서 문을 닫아!”
오애지의 목소리는 거의 피를 토하는 수준으로 절박했다.
“마귀들이 총공격을 시작했다! 어서 저 문을 닫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우리 세계가 파멸한다고!”
콰과과과광.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과 엄청난 진동이 계속되었다.
거대한 지옥의 문에서 끔찍한 지옥불이 화르륵 불타오르면서 미친 듯이 흔들렸다. 뒤이어 갈라진 틈새로 검은 그림자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매마가 머리카락만큼 가느다란 검은 그림자가 되어서 그 틈으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가끔 미친 듯이 흔들리는 지옥불이 검은 그림자를 살짝이라도 핥게 되면 매마들이 지옥불에 타서 순식간에 소멸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지옥의 문을 닫지 않으면 정말 엄청난 재앙이 들이닥칠 듯했다.
북명 종주 넷은 이미 소멸해서 오애지 한 명으로는 이 많은 매마를 상대할 방법이 없을 듯했다. 게다가 그는 절반 가까이 되는 힘을 이미 두변에게 전수해줬기에 더욱 약해진 상태였다.
두변은 능파미보를 이용해 더욱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예전보다 속도가 몇 배나 더 빨라진 두변은 뒤도 보지 않고 지옥의 문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지옥의 문을 당장, 더 빠른 속도로 닫아야 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이 끔찍한 재앙을 맞이하게 되니까.
그는 거대한 지옥의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때, 허공에 있던 기이한 불빛 네 개가 흔들렸다.
금색 불빛이 말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마음이 떨리는 것 같아.’
초록 불빛이 물었다.
‘네가 마음이 있어?’
붉은 불빛이 말했다.
‘숙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해. 세계의 균열은 무척 위험한 곳인데, 숙주는 이제 스물밖에 안 되었잖아.’
파란 불빛이 말했다.
‘두변 숙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해.’
쾅!
두변의 몸이 지옥의 문에 세게 부딪히는 순간, 그는 온 힘을 다해 문을 닫았다.
드디어 성공이다!
거대한 지옥의 문은 꼭 몇백만 근의 힘을 써야만 닫힐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문을 닫는 데 큰 힘을 들이지 않았다.
결국 2, 3밀리미터의 틈은 사라졌고, 지옥의 문 전체가 굳게 닫혔다. 동시에 계속해서 들려오던 굉음과 천지가 뒤흔들리는 진동이 멈췄다.
짝, 짝, 짝, 짝.
제12대 북명종주 오애지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잘했다. 드디어 해냈군. 네가 드디어 이 위대한 사명을 완수했다.”
‘그런데 좀 너무 과장된 것 같은데? 고작 2, 3밀리미터의 틈을 닫은 것뿐인데, 이렇게 천고의 위업이라도 달성한 것처럼 박수 받을 일인가?’
두변이 이런 생각을 하던 찰나, 지옥의 문에 붙어 있던 지옥불이 갑자기 사라지고 이어서 지옥의 문도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무수히 많은 괴물과 요괴들이 쏟아져 나와서 두변을 빽빽하게 에워쌌다.
“깔깔깔깔.”
“낄낄낄.”
그 수많은 요괴들이 무시무시하게 비명을 지르고 앙칼지게 웃고 으르렁거렸다.
제12대 북명종주 오애지가 이상하게도 계속해서 손뼉을 치면서 두변에게 다가갔다.
“두변, 사명의 주인. 정말 잘했다. 네가 정말 지옥의 문을 여는 천고의 위업을 완수했구나. 덕분에 매마들이 막힘없이 너희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하하하하!”
오애지가 두변에게 천천히 다가오면서 그의 얼굴과 몸이 계속해서 변화했다.
그의 모습은 제19대 종주 임유천이 되었다가, 제18대 종주 언불멸이 되었다가, 15대 종주 축천한이 되었다가, 제13대 종주 구양노가 되었다.
마지막엔 그의 본래 모습인 매마의 모습으로 두변 앞에 나타났다.
두변으로서는 처음으로 매마의 본 모습을 정확히 보는 순간이었다.
매마는 사람 그림자처럼 생겨서, 얼굴도 없고 눈도 없었다. 검은색 그림자처럼 생긴 매마의 몸에는 검은 불빛이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얼굴이 없는 그림자인 탓에 그 누구의 형상으로도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하하. 세계의 균열로 들어오자마자 북명검파의 전 종주를 마주치게 되고, 너를 사명의 주인으로 여기면서 평생 쌓아온 무공을 네게 전수해 준다? 세상에 그렇게 운 좋은 일이 있더냐!
심지어 한 명이 아니라, 종주 다섯 명이 네게 힘을 전부 전수해 준다고? 네가 사명의 주인이기 때문에? 네놈이 그렇게 대단한 놈이냐?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더라도, 그 떡에 독이 들어있는지는 제대로 봤어야지!
두변? 위대한 사명의 주인? 우리가 네놈을 이용한 것이다. 형제들, 이제 나와라!”
매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임유천, 언불멸, 축천한, 구양노가 나타났다.
소멸했다던 북명검파의 전 종주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두변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들의 몸이 불빛처럼 흔들리더니, 본래의 모습인 매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모든 게 다 음모였다. 두변, 이 바보 같은 놈아!”
“우리가 이렇게까지 감동적인 연기를 한 건, 네가 지옥의 문을 열어주길 바라서였다. 매마와 괴물들이 네놈의 세계로 쳐들어가서 너희의 세상을 파괴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하하.”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엄청난 힘을 쏟아부었고, 정말로 엄청난 힘을 네 몸에 주입했다. 그 힘은 실로 엄청난 힘이지!”
“네 단전의 구멍이 참 크더군. 우리 매마 다섯이서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 아느냐. 우리 덕분에 네가 몸의 균형을 찾았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는 걸 아느냐!”
“네가 지금 네 몸속에서 느끼는 그 낯선 기운은 북명검파의 다섯 종주에게서 온 게 아니라, 우리 매마의 기운이다. 네가 느끼는 그 힘은 악마의 힘이라는 뜻이지. 하하하.”
“네가 지옥의 문을 부수는 사명을 다했으니, 우린 다시 우리의 힘을 돌려받아야겠다. 우리가 기운을 다시 흡수하면, 너는 흔적도 없이 소멸한다.”
“하하하하!”
“깔깔깔깔!”
다섯 매마가 기이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두변을 향해 달려들었다.
매마들은 두변의 모든 힘을 흡수해서 그를 소멸할 생각이었다.
꿈속 시스템이 이 장면을 예상이나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