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장: 매마의 속셈
지옥 같은 장면, 파멸적인 장면이 펼쳐지려고 할 때, 두변은 눈을 지그시 감으면서 길게 한숨을 뱉었다.
“이게 바로 죽어야만 살아날 수 있다는 뜻인가.”
두변은 지금 무수히 많은 요괴에게 포위당한 상태였다.
괴물들이 듣기 역겨운 웃음소리와 날카로운 비명을 쉬지 않고 내는 터라, 고막이 찢어질 듯했다.
매마 다섯 마리가 그의 몸에 있는 힘을 완전히 빨아들이려고 두변을 향해 덮쳐왔다. 힘을 다시 회수할 수 없다고 해도, 매마들은 두변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작정이다.
“잠깐. 지금 나를 죽인다고 해도, 내가 죽는 이유나 좀 알고 죽자.”
두변이 외쳤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요괴들의 모습이 무척 다양했지만, 진정한 매마는 눈앞의 다섯 마리가 전부라는 걸 눈치챘다.
매마는 희귀한 요괴인 게 틀림없었다.
“북명검파의 다섯 종주는 어디 있지?”
“죽었지. 다 소멸했다.”
두변의 물음에 매마가 대답했다.
“어째서? 종주들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난데, 너희 다섯 명이 힘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한데, 어떻게 죽었다는 거지?”
“낄낄낄. 네 말이 맞지. 그들의 무공이 뛰어나긴 하지만, 너와 달리 신체까지 이 갈라진 균열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거든. 그들은 빛 형태의 기운으로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는데,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단조로운 곳이야. 이곳에서는 무공 수련을 할 수도 없고 영면할 수도 없어. 그저 고독한 세월을 견뎌야 할 뿐이지.”
“그렇다고 해도 종주들께서는 모두 의지력이 강한 분들이다. 그분들은 수십 년이 지나도, 수백 년이 지나도 버티실 분들이야.”
“그렇긴 하지. 하지만 네 생각에 인간에게 가장 큰 적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자기 자신이겠지.”
“흐흐. 인간에게 가장 큰 적수는 바로 자기 자신이야. 대단한 사람일수록 이 끝없는 고독에 갇히게 되면 무아지경의 고통스러움에 허덕이게 되거든. 그리고 그때 우리 매마들이 살짝 인도해주기만 하면, 그들의 정신 세계를 완전한 암흑으로 만들 수 있다고. 절망하게 하고, 모든 걸 의심하게 하고, 세상 그 어떤 것도 무미건조하게 되거든.”
“우울해진다고?”
“그래. 우린 우울함을 이용했다. 우리의 수십 년의 인도 끝에, 그들은 수십 년, 수백 년의 우울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무너져 버렸다. 스스로 생을 끊고 소멸했지.”
“그분들은 북명 선조의 예언을 따르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중대한 사명을 짊어지고 오신 거라고.”
“우울함이란 건, 세상 그 무엇에도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거야. 선조의 사명이든 뭐든, 아무 의미가 없어진 거지. 강한 사람이면 강한 사람일수록 마음이 극단적이기 쉽거든. 덕분에 우리가 쉽게 그들을 무찔렀지. 그리고 그들의 속마음까지 전부 다 읽을 수 있어서 아주 쉽게 그들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이고. 사명의 주인, 북명 선조의 예언, 우리가 모르는 게 없다 보니 이 연극을 이렇게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던 게 아니겠어? 우리의 연극에 속아 넘어가서 네가 우리의 뜻대로 지옥의 문을 부숴준 거야.”
“지옥의 문은 이계로 통하는 문인가?”
“에이, 지옥의 문이니까 당연히 지옥으로 통하는 문이지. 세계의 균열만이 이계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다. 하지만 지금 그 틈이 완전히 닫혀있어서 너희 세계와 이계는 차단되어 있는 거지.”
“그럼 너희 같은 매마는 뭐고?”
“지상으로 올라올 수도 있고, 지옥으로도 들어갈 수 있는 마물이지. 엄격히 말하면, 우리는 하나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이계의 생물은 세계의 균열을 통해서 우리 세계로 침입할 수 없고, 세계의 균열로 들어올 수 있는 존재는 너희 매마인데, 너희가 지옥의 문을 통해서 세계의 균열로 왔고, 우리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건가?”
“똑똑하군. 아주 똑똑해. 하지만 지옥과 세계의 균열 사이에는 지옥의 문이 있지. 너는 그게 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지옥불이 바로 지옥의 문이다. 그 어떤 귀혼도 그 문을 넘을 수 없어. 지옥불은 모든 걸 불태워버리거든. 우리 같은 귀혼마저도 말이야. 그런데 두 세계의 기운이 균형을 잃어서 지옥의 문에 틈이 생겼지. 우리 매마들은 머리카락처럼 얇은 그림자가 되어서 그 틈 사이를 비집고 이곳으로 올 수 있었어. 물론 모두가 무사했던건 아니다. 구사일생이었지. 매마 백 마리 중 한 마리가 그 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통과하는 건 속도가 너무 더뎌. 천 년이 지나도록 매마 열 마리가 겨우 그 틈을 통과했으니까.”
두변은 매마의 말에서 중요한 정보를 짚어냈다.
‘지옥의 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 매마가 열 마리나 되는데, 지금 내 앞에는 다섯 마리밖에 없어!’
두변이 물었다.
“그럼 다른 매마들은 어디 있고? 적어도 네댓 마리는 더 있다는 뜻인데, 지금 어디 있는데?”
매마가 웃었다.
“네가 생각하기엔 어디 있을 것 같은데? 당연히 너희 세계에 잠입해서 치명적인 첩자가 되었지.”
두변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적어도 매마 네다섯 마리가 인간 세계에 침투했다고? 독심술을 할 줄 아는 데다가 무척 교활하고, 사람의 형상으로 변할 수 있는 놈이 네 마리나 된다고?
“너희들의 목적이 뭐지?”
매마가 웃음기를 거두고 말했다.
“당연히 너희 인간 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우리가 이 별의 주인이 되는 것이지.”
“너희 매마들이?”
두변이 되묻자, 매마가 냉소를 지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거든. 우리들도 사실은 제물에 불과하니까.”
두변이 뭐라고 더 말하려던 찰나, 매마가 더는 틈을 주지 않고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냈다.
“낄낄낄. 여담은 여기까지 하지. 이제 그만 죽어줘야겠다.
우리를 위해서 지옥의 문을 열어줘서 고맙다. 앞으로 매마들이 막힘없이 너희 세계에 침투할 것이다.”
매마들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손톱을 두변의 머리 위에 올렸다. 힘을 살짝이라도 주면 두변의 머리통이 그대로 으깨질 게 분명했다.
“죽어라!”
“낄낄낄. 멍청한 인간. 우스꽝스러운 사명의 주인!”
이때, 두변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아니, 죽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지.”
바로 다음 순간, 두변의 몸이 갑자기 폭발했다.
쾅!
끔찍한 지옥불이 두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수십 미터, 수백 미터 높이의 지옥불이 활활 불타올랐다.
두변을 둘러싸고 있던 무수히 많은 요괴들이 순식간에 소멸했고, 다섯 마리 매마 중 네 마리도 지옥불에 집어삼켜졌다.
오애지를 연기하던 매마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는데, 그놈은 지옥불이 폭발하던 찰나에 미친 듯이 뒷걸음질 쳐서 100미터 가까이 후퇴했다.
화르르륵!
지옥불이 무섭게 불타오르고, 거대한 지옥불이 새로운 지옥의 문이 되었다.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 생겨난 지옥의 문에는 그 어떤 빈틈도 없이 완벽하다는 것이었다.
살아남은 매마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네놈이 지옥의 문을 이미 닫았잖아? 지옥불을 네놈이 삼켰다고.”
“내가 지옥불을 단전 안에까지 삼켰다면 정말 끝장났겠지. 지옥불을 단전 안에까지 들였다면, 다시 단전에서 지옥불을 개방하려고 할 때 내 내력 현기를 불태워야만 지옥불을 꺼낼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럼 그 자그마한 지옥불로는 지옥의 문을 다시 불태우기엔 턱없이 부족했겠지.
하지만 나는 내 탐욕을 애써 누르고 지옥불을 내 단전에까지 들이지 않았어. 그 대신 지옥불을 내 근맥과 체내에서 미친 듯이 돌렸지. 내가 다시 지옥불을 개방했을 때, 불이 원래 위력의 8, 9할밖에 되지 않지만, 지옥의 문을 다시 불태우고, 네놈들을 죽이기에 충분하거든.”
“우리의 연극은 완벽했다고! 네놈이 눈치챘을 리가 없다고! 우리가 네게 힘을 전수할 때, 네 정신은 아무런 방비가 없었어. 만약 네놈이 우리의 속셈을 눈치챘다면, 어떻게 정신 방비를 다 내려놓을 수가 있었겠어? 마음속에 의심이 있는 한, 정신이 무방비한 상태가 될 수 없는데? 그리고 당시에 내가 네놈의 정신 영역을 확인해봤는데, 네놈의 정신 영역은 완전한 공백이었고, 우리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단 말이야.”
“그래. 네 말이 맞지. 내가 그땐 네놈들의 정체를 눈치채진 못했지만, 직감적으로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 하늘에서 갑자기 떡이 떨어지는 경우가 어디 있어? 심지어 내 입에 정확히 떨어지는 떡이 말이야. 하지만 그때 난 내 몸에 난 구멍을 채워야 했거든.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테니까.
그때 내 마음속에 의심이 이미 자리 잡은 터라, 정신이 완전히 무방비할 수가 없었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너희가 주는 힘을 순조롭게 흡수할 수도 없었을 거고, 내가 다시 살아날 가망도 없었겠지. 그런데 너희가 까먹은 게 하나 있더라고. 내 몸에는 두 개의 혼백이 있다는 걸 말이야. 내가 아닌 다른 혼백은 이 세계의 두헌이라는 사람이야. 이 몸의 주인이지. 내가 몸을 빼앗아 버려서 두헌은 살아있는 송장이 되었고, 그의 혼백도 공백 그 자체, 아무런 방비가 없거든.”
매마가 포효하면서 소리쳤다.
“이제야 알겠군. 넌 비어 있는 혼백에 네 몸을 맡겼고, 그래서 우리가 네놈의 정신 영역을 확인했음에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한 거야. 그리고 우리 힘을 빨아들여서 다시 되살아 난 것이고!”
“너희 힘을 빨아들인 뒤에도 나는 종주 네 분이 소멸했다는 사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지. 하지만 사소한 한 가지 때문에 내 의심이 더욱 깊어졌다는 것 알아? 내 머리에 난 뿔이 교룡의 뿔이 아니라, 악마의 뿔에 가까웠다는 점 말이야. 뿔이 난 시간이 찰나였지만, 난 그걸 눈여겨봤거든.
그리고 내가 네놈들의 정체를 파악한 시점은 우리가 지옥의 문을 향해 달려갈 때였어. 그때 난 네 심장 박동 소리를 들었거든. 오애지 어르신은 혼백의 형태로 이곳에 존재하시는 거니까 신체가 없어. 그런데 어디서 온 심장 박동 소리야? 당시에 나도 굉장히 의아했어. 너희 매마들은 그림자에 불과한데, 어떻게 심장이 있을까 하고 말이야.”
매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생물이니까 당연히 심장이 있지. 무려 천 년을 기다렸어. 드디어 지옥의 문을 열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 그래서 네놈이 내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은 거야. 이 미세한 허점을 잡아내다니. 인간, 참으로 교활하구나!”
“내가 나약한 탓에 너희가 나를 얕잡아 볼 수 있었어. 참 고마워. 북명검파의 다섯 종주를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너희 힘을 흡수해서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된 것도 고맙고.
너희 매마는 이 세계에서 제일 똑똑하고 교활한 생물이라며? 그런데 어쩌다 나한테 졌대?”
“으아아아아!”
매마가 미친 듯이 소리치면서 포효했다.
매마는 자신들이 세상에서 제일 교활한 생물이라는 점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런데 일개 인간에게 교활함으로 졌으니, 얼마나 충격이 클까.
“네놈은 우리의 속셈을 눈치채고, 우리를 이용했어.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다고. 나는 그래도 네놈보다 훨씬 더 강해. 나는 손쉽게 네놈을 죽일 수 있다고.”
매마가 두변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소리치더니, 매마의 몸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매마는 순식간에 몇 미터 높이가 되었고, 다섯 손가락이 칼처럼 커다랗고 날카로워졌다.
“재주가 있으면 평생 지옥불에 갇혀서 나오지 말든가.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널 죽일 수 있다!”
매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매마가 딱 한 마리가 남아 있다고 해도, 그 매마는 두변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했다.
하지만 두변은 지옥의 문인 지옥불 속으로 걸음을 옮기지 않고, 냉랭한 눈빛으로 거대한 매마를 노려보았다.
“죽어라.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주마.”
매마가 굉음을 내면서 두변을 향해 돌진했다.
“아니. 안타깝게도 이젠 네겐 기회가 없어.”
두변의 담담한 말에 매마가 흠칫 놀랐다.
“오애지 어르신, 이 매마가 제 수에 걸려들었습니다. 이 매마의 의지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금이 매마의 정신력이 제일 약할 때니, 이제 매마를 떨쳐낼 수 있으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