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33화 (433/648)

433장: 유경 왕국

정말 놀라운 기술 아닌가.

매마의 변용 기술은 가면과 질적으로 달라서 겉으로는 절대로 결점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꿈속 시스템이 이어서 설명했다.

‘물론, 네가 진정한 매마가 아니기에 마음대로 변용할 수는 없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오직 한 사람의 모습으로만 변용할 수 있지. 한 사람의 얼굴과 외형을 고르면, 그 얼굴과 두변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 또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는 건 어렵지. 그리고 또 하나. 어떤 사람의 외모로 변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정신과 기운을 베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변용이란 건 무척 신묘한 기술이라 할 것이다.

‘어쨌든. 일이 점점 더 미쳐 돌아가는군.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다.’

두변이 물었다.

‘시스템, 내 무도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향상됐는지 한 번 알아봐 줘요. 몇 급 정도 향상됐죠?’

꿈속 시스템이 두변의 단전을 살폈다.

다섯 매마는 무척 교활해서 두변의 몸과 단전을 부활시킬 정도로만 힘을 불어넣었다. 매마의 힘 덕분에 두변의 무공이 증진하진 않았지만, 두변의 몸에 악마 속성이 더해지면서 매마의 변용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두변의 무공 수준이 향상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북명검파 제12대 종주 오애지가 죽기 직전에 혼백과 기운을 전수해준 덕분이었다.

‘무, 무려 10급이나 돌파했다.’

꿈속 시스템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10급? 10급이나 돌파했다고?

두변은 자신이 강해졌다는 건 느낄 수 있었지만, 정확히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10급이나 돌파할 정도로 강해졌다니.

게다가 그 힘은 전부 제12대 북명 종주 오애지에게 받은 것인데. 매마와 함께 죽을 각오로 싸웠던 터라, 오애지는 힘을 거의 잃은 상태였을 텐데, 그 힘만으로 10급을 돌파할 수 있었다니.

‘그럼 지금 내 무도 수준이 어느 정도인 겁니까?’

‘2계 종사다.’

2계 종사? 2품 중등 무사에서 순식간에 2계 종사가 되다니.

영도현이나 기음음도 이런 속도로 무도 수준을 돌파하진 못했을 텐데.

‘2계 종사라면, 대종사까지 얼마나 남았죠?’

‘머지않았다고 할 수도 있고, 한참 멀었다고 할 수도 있다. 기음음, 영도현, 예상 선자는 종사에서 아주 쉽게 대종사까지 돌파했지. 영종오가 종사에서 대종사가 되기까지 불과 10년의 시간이 걸렸고, 계청주도 십수 년만에 대종사가 되었다.

하지만 대녕 제국에 종사가 몇 명이나 있는지 생각해보고, 대종사가 몇 명인지 생각해보아라. 내가 왜 가깝기도, 한참 멀기도 하다는 건지 알겠지?’

대녕 제국의 종사급 강자는 천 명이 넘지만, 대종사급 강자는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에 공개된 대종사의 수도 여섯 명이 전부다.

이도진이 천년사요의 구슬을 먹지 않았다면, 평생 대종사를 돌파하지 못했을 것이다.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숙주, 물론 네가 대종사까지 돌파하는 데에 들일 시간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짧을 것이다.’

‘알겠어요. 아, 그리고 여기가 북극해라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여기가 어딥니까? 대녕 제국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어요?’

‘너는 지금 유경(維京: 바이킹) 왕국에 와 있다. 대녕 제국까지 직선거리가 1만 5천 킬로미터고, 해로로 가면 5만 리가 넘는다.’

‘미, 미친. 세계의 균열로 갈 때는 그렇게 멀리 가지도 않았는데.’

‘세계의 균열 안에서의 공간은 바깥세상의 공간 법칙과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면, 제가 배를 한 척 구해서 대녕 제국으로 돌아가야 한단 말이군요. 대녕 제국은 지금 국면이 심각하잖습니까. 여진 제국과의 대전도 곧 시작될 테니, 빨리 돌아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상황이 더 위험해진다고요!’

그런데 배를 어디서 구하지?

잠깐, 조금 전에 시스템이 여기가 유경 왕국이라고 했지?

다른 지구의 역사에서 유경 해적이 엄청 유명하긴 했지만, 진짜로 유경 왕국이라는 곳이 존재하진 않았다. 서기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유경 해적은 유럽 해상을 제패한 패주였고, 유럽의 여러 국가가 유경 해적 때문에 바다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17세기인데 유경 해적이 아직 존재하고, 유경 왕국까지 세웠다는 말에 놀랄 수밖에.

‘유경 왕국이 유경 해적입니까?’

‘그렇다.’

‘유경족이 지금까지 생존했고, 왕국까지 건립했다고요? 뭘로 먹고 사는데요?’

‘늘 그렇듯이 해적질, 전투, 무역, 강도, 해상 보호비 등으로 먹고 살지. 서쪽 세계에서 유경 왕국을 바다 위에 있는 하늘의 채찍이라고 한다.’

‘지금 서쪽 세계는 궐기했고, 어마어마한 해상 군대가 있는데도 유경 왕국이 아직도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설치고 다닌다고요?’

‘기고만장한 건 맞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어찌 됐든 간에 배가 한 척 필요합니다. 아주 빠른 배로요. 당장이라도 출발해서 하루빨리 대녕 제국에 도착할 수 있는 배요.’

두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시야 안에 배 한 척이 들어왔다.

두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배를 보자마자 왜 유경 왕국이 아직도 이렇게 날뛸 수 있는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철갑선? 지금 내가 환각을 보고 있는 건가? 17세기인데 철갑선이 있다고?

게다가 속도가 이렇게나 빠른 철갑선?

두변이 눈으로 대충 철갑선의 항행 속도를 계산해보았더니, 무려 18절(節: 노트)은 되는 듯했다.

17세기에 배가 18절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시기의 배는 모두 돛을 이용해서 속력을 내는데, 일반적인 속도가 10절이고, 빨라야 13절이었다.

그런데 두변의 시야 안에 들어온 철갑선은 돛도 없이 18절의 속도를 내는데, 무엇으로 항해 동력을 얻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두변이 물었다.

‘시스템, 서쪽 세계의 전투함이 다 저렇게 엄청난 겁니까, 아니면 유경 왕국만 저런 겁니까?’

‘유경 왕국의 전투함만 대단한 것이다.’

꿈속 시스템이 대답했다.

역시. 그래서 서쪽 세계가 궐기하고, 강력한 해군이 있음에도 유경 해적을 막지 못하는 거였구나. 저렇게 사기인 전함 가지고 뭘 못하겠어? 돛을 쓰지 않는 데다, 철갑선인데 속력이 18절에 달하다니. 그러니까 서쪽 세계에서도 떵떵거리면서 살고, 해상 보호비를 받을 수 있는 거로군.

두변이 생각하는 동안, 유경 왕국의 철갑선이 그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배수량이 약 2천 톤에 달하는 철갑선은 나무로 만든 전투함 위에 철갑을 덧씌운 형태였다.

목재로 구조를 만든 전투함이라고 해도, 이 정도까지 만든 건 대단한 일이었다.

전투함에는 포화구가 80개 있었고, 선체에 돛도, 연통도 없는 걸 봐서는 바람이나 증기 동력을 사용하는 동력 방식은 아니었다.

두변은 철갑선을 바라보면서 침을 뚝뚝 흘릴 지경이었다.

당장 대녕 제국으로 돌아가야 해서 빠른 배 한 척이 절실했는데, 이 철갑선이 기적처럼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다니.

서남에서 미친 속도로 세력을 키우고 있다지만, 그에게 부족한 점이 바로 해군의 부재 아닌가.

백년 해군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두변도 돈이 모자라지는 않았다.

막씨의 구세력에게서 몇백만 냥 은자를 얻었고, 여씨의 충심 덕에 천문학적인 숫자의 재물을 얻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 두변은 천만 냥이 넘는 은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해군을 만들고 싶다고 해도, 해군의 기반인 조선소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엄청난 철갑 전투함이 나타난 것이다. 다른 전투함보다 속도가 1.5배나 빠르고, 돛이나 증력 동기를 사용하지 않는 철갑선!

이런 상황에선 두변이 철갑선을 보면서 침을 줄줄 흘리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이 철갑선을 가지게 된다면, 순식간에 해군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투함이 한 척만 있어도 안남 왕국에서 광서까지의 해상 통제권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대녕 제국, 두변의 서남, 그리고 안남 왕국은 방씨 세력의 해상 세력 때문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힘을 합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방계의 동방 연합 왕국은 바다에선 두변을 도발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를 아예 짓눌러버릴 정도의 해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전투함만 가질 수 있다면, 모든 국면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적어도 두변이 있는 서남 해역에서는 이것을 능가할 적이 없을 것이다.

‘시스템, 난 지금 당장 대녕 제국으로 돌아갈 때 필요한 배가 필요하니까, 저 철갑선을 가져야겠어요.

무슨 수단과 방법을 써도 상관없어요. 저 전투함은 물론이고, 저기 타 있는 사람까지 다 필요합니다.’

꿈속 시스템은 현존하는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고 가능성을 계산했다.

1분 뒤, 시스템이 말했다.

‘철갑전함 임무 개시.

임무 목표: 유경 해적 왕국의 온전한 철갑전함, 군함에 타 있는 모든 선원과 선장을 획득하라. 임무 성공률: 85%.’

바로 이때, 발가벗은 채 서 있는 두변을 해적들이 포위했다.

유경 해적 수십 명이 궁노와 포화구로 두변을 조준했다.

두변은 씨익 웃으면서 두 손을 높이 들고 항복 의사를 밝혔다.

유경 해적들과 철갑전함을 바라보는 두변의 눈빛은 꼭 굶주린 늑대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양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시스템이 또 한 번 말했다.

‘신규 임무: 인중지룡(人中之龍) 정식 개시.

임무 목표: 숙주 두변의 양기 100 폭증, 남자의 위풍당당함을 되찾기.’

두변이 화들짝 놀랐다.

뭐라고? 이게 무슨 말이야? 지금 난 발가벗은 채로 수십 명의 해적에게 둘러싸였고, 수십 개의 궁노와 포화구에 조준 당하고 있는데? 내가 원하는 건 이 철갑전함이 다인데, 또 신규 임무를 하나 더 준다고?

이 와중에?

두변이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체격이 건장하고 성격이 거칠어 보이는 해적이 두변을 흘깃 쳐다보면서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곱게 생긴 동방인! 우리의 포로가 되었군.”

해적들에게 포위된 두변은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해적들의 손에는 화창(火槍)이 들려 있었다. 이들은 정확히 말하자면 해적이 아니라, 유경 왕국의 해군 병사인 것이다.

화창은 후장총(後裝槍)으로, 다른 지구의 역사에서처럼 완전히 구식인 끈에 불을 붙이는 화승총은 아니었다.

두변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포로가 되었고, 포로의 신분으로 철갑전함에 오르게 되었다.

철갑전함은 보면 볼수록 군침이 돌 수밖에 없었다. 이런 철갑전함을 한 척 얻게 된다면, 그야말로 횡재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철갑전함을 이끌고 남부 해역을 휩쓸 생각에 침이 절로 삼켜졌다.

전함에 있는 선원과 병사들은 대부분 켈트어나 게일어를 사용했다.

똑같은 17세기인 다른 지구와 비교를 해본다면, 다른 지구에선 이미 영어와 불어가 유럽의 주 언어가 되었을 시기인데, 이곳의 유경족은 아직도 옛날에나 쓰던 켈트어나 게일어를 쓰고 있었다.

거칠어 보이는 해적 병사가 두변을 보더니 제복 한 벌을 주더니, 옷을 입은 두변을 데리고 선장 선실로 향했다.

두변의 앞에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화끈한 몸매의 여선장이 나타났다. 여인은 유별나게 아름다우면서도 더없이 매력적인 서양 말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세계로 온 뒤, 현대 여성에 가까운 여인은 처음 보는 셈이었다.

몸을 꽉 조이는 제복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 허리춤에는 날카로운 만도가 걸려 있었고, 머리에는 화려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 여인은 화려한 이목구비에 비해 냉철하고 고고한 눈빛, 탄력 있고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인이었다.

두변은 저 늘씬한 다리에 한 번 차이면 목숨이 반쪽이 되고, 저 탄탄한 허벅지에 사이에 한 번 끼이면 목숨을 잃을 것만 같았다.

두변이 잠시 넋을 놓은 사이, 아름다운 여선장이 영어로 물었다.

“동방인이라고? 동방 연합 왕국? 동영 제국?”

그녀의 태도는 무척 오만했고, 두변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곁눈질로 훑어보기만 했다.

두변이 영어로 대답했다.

“대녕 제국입니다.”

여선장이 더욱 같잖다는 눈빛으로 변하더니, 두변을 가축 쳐다보듯이 하찮게 바라보면서 되물었다.

“대녕 제국? 아, 그 우매하고 낙후한 나라?”

두변이 움찔했다.

그는 상대방의 눈에 대녕 제국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게 놀라웠다.

성화교만 해도 대녕 제국을 덜떨어지고 낙후한 노란 원숭이들의 집단이라 생각하니, 유경 왕국의 여선장이 대녕 제국을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여선장의 우월감은 성화교 군단의 통솔자인 아포사보다도 더 심각해 보였다.

여선장은 스스로가 고귀한 귀족임을 자부하기에 인종차별적인 노란 원숭이 같은 경솔한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을 뿐이다.

여선장이 두변을 냉랭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대녕 제국에서 온 동방인 들어라. 네가 해난 사고를 겪어서든, 하늘에서 똑 떨어진 것이든, 어떻게 유경 왕국의 해역까지 온 건지는 상관없다. 어쨌든 너는 지금부터 내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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