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34화 (434/648)

434장: 국왕을 구하라 一

여선장이 밖을 향해 명령했다.

“노예의 몸을 검사해라.”

여자 노예 한 명이 선실 안으로 들어오더니, 두변의 이, 손, 가슴, 다리 사이까지 샅샅이 검사했다.

“얼굴은 곱상하고 피부도 좋고, 치아도 새하얗습니다.

몸매는 야위어 보이지만, 근육이 탄탄하네요.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한 노예입니다. 많은 귀부인이나 귀족들이 좋아할 상이라 좋은 값을 치를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영어도 할 줄 아니, 아마 몇백 금화, 아니면 그 이상의 값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보고를 다 들은 여선장이 두변에게 물었다.

“동방인, 이름이 무엇이냐.”

“줄리앙입니다.”

“동방인 줄리앙. 네 앞에 서 있는 나는 유경 왕국의 리아나 군주, 천랑호 군함의 선장, 유경 왕국 해군 상교(上校)이다. 지금부터 너는 내 노예다.”

이때, 선실 밖에서 애교 섞인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주 전하. 아직 볼일이 안 끝나셨나요? 전하의 고양이가 무척 굶주려 있다고요.”

곧이어 선실 문이 열리고, 붉은 머리의 아름다운 여인이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

그 여인은 자연스럽게 여선장 리아나의 몸에 팔을 두르면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탁자 위에 맛있는 음식과 술을 올려놓았다.

두변이 흠칫 놀랐다.

이렇게 고고하고 아름다운 여선장이 백합이었어? 진짜 진귀한 광경이네.

“동방인 줄리앙, 그만 나가봐.”

여선장이 냉랭하게 말했다.

두변은 다른 선원들과 달리 단독 선실에 배정되었고, 선실 안에는 비교적 정갈한 음식이 놓여있었다. 여선장의 눈에 두변이 몇백 금화의 값어치를 하는 물건이니 그를 챙겨주는 모양이었다.

하찮게 대했다가는 괜히 나중에 제값을 못 받을 수도 있을 것 아닌가.

두변이 선실에서 쉬는 동안, 독특한 취향을 가진 건장한 남자 해적이 그의 선실에 쳐들어오려고 했지만, 두변이 무슨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여선장이 그 사내를 붙잡아서 두 다리를 부러트렸다.

‘시스템, 양기 점수가 100까지 상승해서, 내가 남자 구실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얘깁니까?’

두변이 물었다.

‘급할 것 없다. 유경 왕성에 도착하면 알게 될 테니. 거기서 며칠 정도 시간을 보내야 한다. 네게는 얻기 힘든 기회야.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 네가 정상적인 남자가 되고 싶을 땐, 정말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시스템이 대답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뒤, 꿈속 시스템이 갑자기 두변에게 말했다.

‘어서 갑판 위로 올라가 봐라. 전투함이 마귀 해역에 진입하고 있다.’

두변은 곧바로 선실에서 나와서 갑판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 어디서도 보지 못한 기이한 광경에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았다.

주위에 있는 암초가 전부 마귀의 뿔처럼 끔찍하게 생겨서는 전부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있었다.

게다가 해역 전체에 귀신이나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몇 개의 커다란 암초에는 보루와 포화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네가 온 다른 지구에는 유경 왕국도 없고, 이 해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는 이 구역도 이계의 에너지가 많이 침투된 곳이다. 유경 왕국 전체가 마귀 해역에 둘러싸여서 보호되고 있는 셈이지. 그래서 서방 세계의 군함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 해역을 뚫지 못한 것이다.’

시스템의 말처럼 이곳 전체가 끔찍하게 생긴 암초에 둘러싸여 있었고, 마치 미궁이라도 되는 것처럼 방향이나 길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운항 노선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이 해역에 들어온다면, 얼마 가지도 못해서 배는 반파되어 침몰하고, 선원은 전원 사망할 수도 있었다.

마귀 해역의 암초가 너무 복잡하고 위험해서, 대규모 해상전을 펼칠 수도 없었다.

심지어 거대한 암초에 유경 왕국의 보루와 포화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일부당관, 만부막개(一夫當關, 萬夫莫開: 한 사람이 관문을 지키면 만 사람이 달려들어도 열지 못한다)인 셈이었다.

몇백 리 마귀 해역을 뚫고 지나고서 다시 몇백 리 길을 더 항해하고 나고서야 저 멀리 유경 해적 왕국을 볼 수 있었다.

애초에 존재해선 안 됐을 성이자, 대륙인 유경 왕국.

두변은 머릿속에 그려진 지도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유경 왕국이라고 불리는 이 대륙은 다른 지구에선 존재하지 않는 대륙으로, 수십 개의 군도로 이루어졌으며 총인구는 30만 명 정도였다.

지금 두변의 눈앞에 들어온 가장 큰 섬이 바로 유경 왕성이었다.

유경 왕성은 대녕 제국의 그 어떤 성보다 번영한 곳이었다. 성이 크진 않았지만, 두변은 멀리 있음에도 진하게 풍기는 금화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유경 해적 왕국은 무척 강력한 함대를 가지고 있다. 유경 해적은 바다에 군림하는 하늘의 채찍인 데다 이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암시장이다.’

‘암시장이요?’

‘그렇다. 여기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도 거래할 수 있다. 사람이든 비금이든 음모든 왕위도, 그 어떤 것도 말이지. 그 덕분에 이곳이 작지만 강력한 해적 왕국이 된 것이지.’

‘유경 해적 왕국의 철갑전함도요?’

‘아니. 그건 비매품이다. 그 어떤 대가로도 살 수 없어.’

‘유경 왕국의 철갑전함은 돛을 쓰지도 않고, 증기 동력을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으로 동력을 얻는 겁니까? 게다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항해할 수 있고, 다른 나라의 군함보다 최소 몇십 년이나 앞서갈 수 있는 이유가 뭐냐고요.’

‘그건 유경 왕국의 핵심 비밀이자, 이들이 이렇게 막강해진 근간이기도 하다. 그 비밀이 유출된다면, 유경 왕국은 즉시 망국을 맞이할 것이다.’

강력한 철갑전함이 없었다면, 유경 왕국은 내세울 것 하나 없는 국가가 된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 해상 보호비,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암시장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꿈속 시스템이 이어서 말했다.

‘유경 왕국의 철갑전함 동력의 핵심 비밀은 유경 왕국의 국왕만이 알고 있다. 그 비밀이 곧 유경 왕국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절대로 유출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지. 만에 하나 세상에 그 비밀이 공개된다면, 유경 왕국은 망국의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야.’

‘국왕 한 사람만이 전함 동력의 핵심 비밀을 알고 있다고요? 그렇다면, 그 동력이 이계의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이때, 무언가를 발견한 두변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유경 왕성의 항구에 십여 척의 철갑전함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데 철갑전함 한 대마다 수십 개의 포화구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두변은 다시 한 번 침을 꿀꺽 삼켰다.

철갑전함 부대라니.

다른 나라보다 수십 년이나 앞서간 기술로 만들어진 철갑전함을 한 척만 가지고 있어도 바다를 제패할 수 있는데, 그런 철갑전함을 지금 십여 척이나 갖고 있다니.

유경 왕성에는 항구가 두 곳으로, 한 항구에는 철갑전함만 정박할 수 있고, 다른 항구에는 각종 상선이 정박할 수 있었다.

상선들은 크기가 전부 크지 않았고 대수도 많지 않았다.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품은 전부 무척 값비싼 보물인지라, 굳이 커다란 상선이 필요하지 않다. 대량 화물 거래가 필요할 땐, 이곳에서 금전적인 거래만 하고, 다른 지역에서 화물을 인계하지. 유경 해적 왕국의 전함 부대가 유경 왕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를 보호하고 보장해주기 때문에 누구도 거래를 번복하지 못한다. 만약 이곳에서 한 거래를 번복할 시에는 엄청난 뒷감당을 해야만 해.’

서서히 해가 지자, 호각 소리가 왕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직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는데도 유경 왕성 전체가 등불로 환하게 밝혀졌다.

이곳은 잠들지 않는 왕성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번영한 암시장답게, 이곳의 밤은 낮보다 밝았다.

돈이 많은 사람에겐 이 성이 천국이나 다름없는 법. 술, 음식, 미녀, 포화, 전함, 작위, 심지어 왕위까지, 이곳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없었다.

물론, 유경 해적의 철갑전함만 논외였다.

두변이 유경 왕국의 철갑전함을 한 척이라도 가진다는 건, 사실상 태양이 서쪽에서 떠오르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숙주, 전함이 곧 항구에 정박할 것이다. 너는 전함이 정박하는 대로 노예 시장에 보내질 테니, 지금 당장 선장과 거래를 해야 한다.’

천랑호 철갑군함의 선장 선실 안.

“동방인 줄리앙, 노예는 주인을 먼저 만나러 올 자격이 없다. 넌 내게 몇백 금화에 팔리는 물건에 불과해.”

냉랭하고 매혹적인 여선장 리아나가 말했다.

유경 왕국은 금전 지상주의인 곳으로, 오만한 군주 선장 리아나는 동방인 두변을 노골적으로 업신여겼다. 두변이 아무리 준수하게 생겼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내가 살다 살다 몇백 년 일찍 인종 차별을 당해보네.’

“여봐라. 이 동방인 노예를 노예 시장에 보내버려라.”

여선장이 성가시다는 듯이 손을 휘두르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군주 각하, 각하와 거래를 하나 하고자 합니다.”

“고귀한 유경 군주와 하찮은 동방인 노예 사이엔 거래라는 단어는 없다. 여봐라. 당장 이 노예를 내 눈앞에서 치워버려!”

리아나가 한쪽 눈썹을 치켜뜨면서 소리쳤지만, 두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각하의 국왕께선 이미 10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국왕만이 철갑전함의 동력 핵심 기밀을 알고 있죠. 만약 국왕께서 빨리 깨어나지 못하신다면, 유경 왕국의 모든 철갑전함의 동력 핵심이 실효될 겁니다. 그 신비한 동력 핵심은 10년에 한 번씩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죠. 만약 철갑전함의 동력 핵심이 전부 실효된다면, 철갑전함은 이대로 폐기될 것이고, 그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관에 불과하겠죠.”

리아나의 안색이 급변했다.

두변이 이어서 말했다.

“유경 왕국이 몇백 년 동안 바다 위에 군림하는 하늘의 채찍이 되었던 터라, 무수히 많은 국가와 세력에게 폐를 끼쳤겠죠. 만약 철갑전함들이 전부 동력을 잃게 된다면, 당신들은 막강한 전투력을 상실하게 되고, 망국만을 기다려야 할 겁니다.”

냉랭한 표정만 보이던 리아나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바뀌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이건 유경 왕국의 절대 기밀인데, 이 외부인이 이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거지?’

두변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나도 압니다. 유경 왕국에는 예방 장치가 하나 있죠. 국왕이 갑자기 붕어하게 될 경우에 대사제들이 새로운 국왕을 데리고 어딘가로 간 뒤, 9개의 열쇠로 신비한 밀실의 문을 열고, 그 안에 숨어있는 철갑전함 핵심 동력의 기밀을 보여주죠. 하지만 몇 년 전에 유경 왕성에 아주 끔찍한 대지 균열이 일어나서 신비한 밀실이 붕괴했죠? 그래서 핵심 기밀도 바닷속 깊은 곳에 침몰해버렸고요. 지금 유경 왕국에 남은 유일한 희망이 바로 혼수상태에 빠진 국왕이잖습니까.

그런데 국왕이 혼수상태에 빠지신 지 벌써 10년이 지나가고, 국왕 전하의 생명력이 점점 더 약해져서 곧 붕어하실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압니다. 콘스탄틴 국왕이 매일 건강한 모습으로 왕궁 안을 산책한다는 것을요. 그런데, 그 사람은 그저 대역이잖습니까.”

리아나 군주는 지그시 두 눈을 감고 두변이 한 말을 애써 이해하려 했다.

사실 그녀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비밀스러운 동방인 두변은 유경 왕실의 구성원인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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