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37화 (437/648)

437장: 국왕을 구하라 四

‘이 시대에 벌써 이런 말이 있다고?’

두변이 놀란 사이, 표령 도주가 두변에게 말했다.

“줄리앙 선생, 우리 둘 다 유경 국왕을 살리고자 하고, 철갑전함을 얻고자 하니, 한 사람만 살아남는 게 어떻겠소? 한 사람이 국왕 폐하의 목숨을 살린다면, 다른 사람은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오.”

“좋습니다. 이긴 사람이 철갑전함을 얻고, 진 사람은 이곳에서 죽는 겁니다.”

왕태자 콘스탄틴 2세가 말했다.

“내가 공평한 심판이 되어줄 테니, 둘이서 누가 먼저 할지 결정하시오. 부왕을 살린 자는 철갑전함 한 척과 유경 왕국의 우애를 얻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자는 이곳에서 죽는 것이오.”

“누가 먼저 하는 게 좋겠습니까?”

두변의 물음에 표령 도주가 말했다.

“제일 간단한 방법으로 하지.”

표령 도주가 주먹을 내밀면서 물었다.

“내 손에는 보석이 있소. 하나, 혹은 두 개가 있지. 줄리앙, 내 손에 있는 보석의 수를 맞힌다면 줄리앙이 먼저 국왕을 구하러 들어가는 것이고, 맞히지 못하면 내가 먼저 가는 것이오.”

먼저 국왕을 구하러 가는 건, 엄청난 우위를 가지는 것이다.

표령 도주는 자신이 국왕을 살릴 수 있다고 무척 자신만만한 모습이기에, 그가 국왕을 살리면 두변에게는 시도할 기회조차 생기지 않게 된다.

두변이 대답했다.

“두 개입니까?”

두변이 대답한 순간, 표령 도주의 손 안에 있던 보석 두 개가 하나로 합체되면서 보석 한 개가 되었다.

“정말 미안하게 되었구려. 줄리앙, 틀렸소.”

표령 도주가 손바닥을 펼치면서 보석이 한 개만 있다는 걸 보여줬다.

두변이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들썩했다.

“어쩔 수 없네요. 어르신 먼저 하시죠.”

표령 도주가 두변을 향해 가볍게 인사한 뒤, 이미 죽은 사람을 보듯이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그 사이 왕태자 콘스탄틴 2세가 열쇠를 꺼내서 두꺼운 문을 열었다.

쿠르르릉.

문이 열리자 방 안에 몇백 개의 촛불이 밝혀있는 게 보이고, 귀티가 흐르는 온화한 노인이 침상에 누워있었다.

노인은 호흡과 맥박이 무척 미약했고, 안색이 잿빛이 된 채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국왕은 아직 살아있지만, 곧 죽을 것이다. 그는 이런 혼수상태로 벌써 10년 가까이 누워있었다.

철갑전함 부대가 유경 왕국의 전부인 만큼, 대사제 아홉 명이 국왕을 둘러싸고 온갖 힘을 쓰면서 국왕의 마지막 생명을 유지시키고 있었다.

표령 도주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대사제들이 그를 향해 예를 표한 뒤 물러났다.

문이 다시 굳게 닫히고, 두변의 시야도 완전히 가려졌다.

만약 표령 도주가 저 방 안에서 국왕을 살려낸다면, 저 대사제 아홉 명이 자신을 곧바로 처형할 것이다.

방 안으로 들어간 표령 도주는 가장 먼저 법진을 펼쳤다.

그는 각종 수정, 해골을 놓아서 국왕을 중심으로 오성(五星) 모양으로 법진을 만들었다.

그리고 잿빛이 된 국왕의 얼굴을 보더니, 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냉소가 떠올랐다.

‘10년 전에 뿌린 씨앗을 드디어 수확하는군.’

표령 도주가 자신만만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10년 전, 국왕의 몸에 귀신을 심은 게 바로 동방 연합 왕국이었다. 바로 유경 왕국의 철갑전함을 얻기 위한 음모였었다.

표령 도주는 자신의 경쟁자인 젊은이가 누군지 모르지만, 그가 필시 죽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표령 도주에게는 죽어가는 국왕을 살리는 건 무척 간단하고 단순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 씨앗을 뿌린 사람이 자신들이니까.

표령 도주가 품에서 휘장(徽章) 하나를 꺼내는데, 휘장에서 기이하고 신비한 힘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두변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 휘장에서 내뿜는 기운이 악마의 힘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악마 휘장은 이 세계의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방 연합 왕국이 어떻게 이 물건을 손에 넣었는지, 어째서 표령 도주가 이걸 갖고 있는지 누가 알까.

표령 도주가 악마 휘장을 국왕의 이마에 올려놓은 뒤, 목청을 높였다.

“진귀진, 토귀토(塵歸塵,土歸土: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돌아가라). 지옥의 악령이여, 국왕의 몸에서 떠나고 너의 지옥으로 돌아가라.”

일순간, 방 안에 음산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하더니 수백 개의 촛불이 순식간에 기이한 초록불로 바뀌었다.

표령 도주 손에 있던 악마 휘장에서도 기이한 초록빛이 뿜어져 나왔다.

악마의 음산한 기운이 방 전체를 가득 메웠다.

“으아악. 으악!”

방 안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악귀의 그림자가 국왕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하면 표령 도주가 악령 퇴치를 성공할 수 있을 듯했다.

만약 그가 성공하면, 동방 연합 왕국의 뜻대로 음모가 마무리되는 것이고, 두변이 철갑전함을 가질 일도 없게 된다.

국왕의 몸에 붙어 있던 악귀는 표령 도주 손에 있던 악마 휘장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악귀는 공포에 질려서 포효하면서 국왕의 몸에 붙어 있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모든 게 표령 도주의 뜻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밖에 있던 두변이 눈을 감으면서 속으로 냉소했다.

‘날 이기는 게 그렇게 쉬울 것 같냐?’

눈을 감은 두변의 두 눈이 초록빛으로 변했고, 표령 도주 휘장에 새겨진 악마의 기운은 두변의 힘에 바로 진압되고 말았다.

국왕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던 악령이 순식간에 다시 국왕의 몸으로 되돌아갔다.

‘아, 안 돼!’

표령 도주가 속으로 외쳤다.

표령 도주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악마의 휘장에 자신의 내력을 불어넣었다.

으아악! 안 돼!

방 안에 귀혼과 표령 도주가 처절하게 울부짖고 아우성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표령 도주가 모든 힘을 쏟아부었음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표령 도주는 악마의 휘장만 가지고 있지만, 두변의 몸 안에는 진정한 매마의 힘이 있는데 어쩌랴.

표령 도주의 무공 수준이 두변보다 훨씬 더 높지만, 단순히 악마의 힘을 논하자면 악마의 휘장으로는 두변의 진정한 악마의 힘에 견줄 바가 아니었다.

표령 도주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면서 노력했지만, 역시나 소용이 없었다.

악귀는 유경 국왕의 몸속에 꼭꼭 숨어버렸다.

표령 도주는 경악했다.

원래대로라면 이 모든 게 무척 단순하고 순조로워야 했다.

악귀를 국왕의 몸에 심은 게 10년 전 동방 연합 왕국의 짓이기 때문에, 악귀를 몰아내는 것도 식은 죽 먹기여야 했다.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

‘왜 이렇게 된 거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표령 도주는 정말로 자신만만했고, 손가락 까딱하는 수준으로도 유경 국왕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빠지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표령 도주의 손에 들고 있던 휘장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모든 게 끝났다.

방 안에 휘몰아치던 음산한 바람, 귀화(鬼火)가 전부 사라지고, 모든 게 평온하던 모습으로 돌아갔다.

유경 왕국의 왕태자와 대사제들이 방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왕태자 콘스탄틴 2세가 말했다.

“실패했나 보오.”

표령 도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조금 전까지 여유롭고 신선도인 같던 모습의 그는 몇 분 동안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했다.

표령 도주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가 실패했으니,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당신들의 국왕을 살릴 수 없을 것이오.”

표령 도주는 영어나 켈트어를 할 줄 몰라서 통역사가 그가 하는 모든 말을 통역해야만 했다.

이어서 표령 도주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젊은이, 포기하게나. 자네가 어디서 온 누구인지는 몰라도, 자네가 감당할 수 있는 놀이가 아니야. 자네가 콘스탄틴 국왕을 살린다는 건, 태양이 서쪽에서 떠오르거나, 바닷물이 마를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야.”

두변이 표령 도주의 말을 무시하고 왕태자에게 말했다.

“태자 전하, 이 노선생은 이미 실패했는데, 왜 죽이지 않는 겁니까?”

표령 도주가 품에서 금패 하나를 꺼내서 유경 왕태자 콘스탄틴 2세의 손에 올려놓았다.

콘스탄틴 2세가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군. 이 노선생은 우리 왕국의 왕권 금패가 있어서 처형을 면할 수 있지.”

두변이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역시 노림수가 있었군.’

사실 어차피 표령 도주가 실패했대도 처형당하지 않을 것임은 알고 있었다. 무려 동방 연합 왕국 전하의 정인이 데려온 사람이 아닌가.

두변이 물었다.

“제겐 왕권 금패가 없으니까, 실패하게 되면 바로 처형되는 겁니까?”

콘스탄틴 2세가 침묵으로 그렇다고 인정했다.

표령 도주가 다시 신선도인 같은 모습을 되찾고는, 두변을 이미 죽은 사람 쳐다보듯 바라보았다.

‘국왕을 살리겠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두변은 방 안으로 들어간 뒤 문을 굳게 닫았다.

유경 국왕의 침상 옆으로 다가간 그는 손을 국왕의 이마에 가져다 댄 후 악마의 힘을 내뿜었다.

“나오너라.”

으아아. 으아아악!

악귀가 미친 듯이 발버둥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두변 몸속에 있는 기운은 매마에게서 받은 가장 순수한 악마의 힘인지라, 악마의 휘장보다 순수하고도 응축된 기운이었다. 일개 악귀로서는 절대로 이 힘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악귀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자, 방 안에 또 한 번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몇백 개 촛불이 일제히 초록색으로 변했다.

두변이 악귀의 목을 가볍게 움켜쥐더니 그대로 국왕의 몸에서 생으로 잡아떼냈다.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워낙 소름 끼친 터라, 왕태자, 리아나 군주, 그리고 대사제들이 방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방 안으로 뛰어 들어온 그들은 엄청나게 놀랍고 진귀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손에서 붉은빛이 나오는 두변이 악귀의 목을 움켜쥐고 국왕의 몸에서 찢어내듯 악귀를 떼어내는 광경을!

30초 뒤, 악귀가 국왕의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나왔다.

두변이 옆으로 살짝 몸을 비틀어 사람들의 시야를 가린 뒤, 손바닥에서 아주 자그마한 지옥불을 지펴냈다.

화아악!

악귀가 일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와 동시에, 국왕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던 잿빛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침상에 누워있던 국왕은 정상인의 피부색을 점차 회복했지만, 유난히 창백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난 뒤, 국왕이 눈을 뜨고 긴 숨을 내뱉었다.

“오우, 하느님. 내가 얼마나 잠들어있었던 것이냐?”

국왕이 내뱉은 첫마디였다.

모든 사람이 경악해서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국왕과 두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유경 국왕이 혼수상태에 빠진 게 벌써 10년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신비한 동방인 줄리앙이 국왕을 단번에 살려내다니 정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 아닌가.

사람들 중, 리아나 군주가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그녀는 1할의 희망을 품고 두변을 데려왔는데, 두변이 정말로 국왕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국왕이 깨어났다는 건, 철갑전함의 동력 핵심 기밀이 계속해서 유지된다는 뜻이고, 유경 왕국은 멸망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했다.

표령 도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조차도 실패한 일을 저 젊은이가 해냈다고?’

“당,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가면을 벗으시오.”

표령 도주가 바람처럼 빠르게 두변의 앞으로 다가와서 두변의 가면을 강제로 벗기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대사제들이 두변을 엄호하면서 말했다.

“선생, 줄리앙 선생께서는 우리 왕국의 귀빈이십니다. 부디 무례를 범하지 마십시오.”

표령 도주가 이를 부득 갈면서 두변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일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구나!

표령 도주는 서둘러 돌아가서 이 사실을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방 연합 왕국이 10년 동안 공들였던 음모가 수포가 되었으니까.

“줄리앙,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이오!”

표령 도주는 그 말만 남긴 채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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