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44화 (444/648)

444장: 선물

쿠구구궁.

총 55개의 포화구에서 쏘아나간 첫 일제사격.

55발의 포탄이 번개처럼 빠르게 날아가고.

3초 뒤.

콰과과광.

십여 개의 포탄이 완천석의 왕권호 순양함을 명중했다.

일순간, 왕권호는 최고납후(嶊古拉朽: 마른 나무와 썩은 나무를 꺾는다는 뜻으로, 쉽사리 상대를 굴복하게 함을 이르는 말)의 꼴이라고 해야 할까. 뜨거운 포탄이 돛대를 꺾고, 갑판을 부수고, 거침없이 왕권호의 선체를 짓밟았다.

왕권호는 눈 깜빡할 사이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두변은 교룡호의 포탄이 현대 지구의 포탄이 아니라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현대 지구의 포탄이었다면, 포탄 2발만 명중해도 왕권호가 산산조각 되었을 텐데.

만약 두 전열함의 수준이 비슷하다면, 대전을 이틀 내내 치르고 서로 수천 발의 포탄을 쏘아도 서로를 침몰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엔 양쪽 다 영광의 상처를 가득 안은 채로 돌아가서 꼼꼼하게 수리한 뒤, 다음 전투를 준비해야 할 것이고.

그런데 교룡호는 처음으로 조준 발포한 것치고는 양측 모두 믿기지 않을 정도의 명중률을 보여줬다.

특히 완천석은 경악했다.

‘이, 이게 무슨 전함이 이래? 지옥에서 온 전함인가? 어떻게 첫 발포부터 이렇게 정확해?’

놀란 건 두변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놀란 눈으로 리아나 군주를 바라보면서 눈빛으로 물었다.

‘첫 발포부터 이렇게 정확하다고요? 진짜 대단한데요?’

리아나 군주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나도 사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두변 후작, 아무래도 당신은 행운의 여신이 선택한 남자인가 보네요.”

이어서 리아나 군주가 명령을 내렸다.

“연탄(鏈彈: 쇠사슬로 묶인 탄환)으로 바꿔라.”

콰과과광.

교룡호 전열함에서 두 번째 일제사격을 발포했다.

이번에는 소리가 무척 요란한 연탄이었다. 연탄은 직경이 좀더 작은 포탄 2개를 쇠사슬로 엮은 것으로, 원심력에 의해 포탄에 가속력이 붙어서 2개의 포탄이 빙빙 돌면서 더욱 강하게 날아간다.

수십 발의 연탄이 바다 위를 가르며 왕권호를 향해 날아갔다.

쇠사슬과 포탄이 부딪히는 소리는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귀를 찔렀다.

행운의 여신의 간택을 받은 교룡호는 첫 번째 일제사격에서 정확한 포탄 궤도를 파악하게 되었고, 아주 미세한 조정을 거친 뒤에 곧바로 두 번째 일제사격을 발포했다.

수십 개의 포탄 중, 3분의 1 정도가 왕권호를 명중했다.

파멸에 가까운 공격에 돛대가 전부 부러지고, 돛이 모두 찢어졌다.

갑판 위에 있던 적들은 연탄에 맞아서 몸이 찢겨 나갔고, 왕권호 순양함은 동력을 완전히 잃고 바다 위에서 힘없이 맴돌았다.

정해 공작 완천석은 하늘님을 불러보고 보살을 불러보고 온갖 신령을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그의 외침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인, 전함을 버려야 합니다!”

콰과과광.

교룡호 전열함의 세 번째 일제사격이 발포되고, 이어서 네 번째 일제사격까지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풍덩, 풍덩.

왕권호에 있던 완씨 반군들이 전함을 버리고 바닷속으로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정해 공작 완천석은 졸병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재빨리 구명선에 몸을 싣고 도망쳤다. 왕권호 순양함은 그렇게 순식간에 버려졌다.

두변은 아예 왕권호를 박살내려고 또 발포를 준비했지만, 곧이어 혈관음이 십여 명 선원과 함께 작은 배를 타고 왕권호를 향해 열심히 노를 저으면서 두변에게 깃발을 흔드는 것을 발견했다.

혈관음이 이 경순양함을 원하는구나!

두변이 보기엔 왕권호 경순양함은 배수량도 적고, 속도도 느리고, 포화구도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혈관음의 눈에는 이 정도 전함이 이대로 침몰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잘만 수리하기만 하면 대녕 제국의 쓸 만한 전함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관음 누이! 살림 한 번 기가 막히게 하네요!”

두변이 감탄하고는 선원들에게 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혈관음과 선원들은 왕권호 위에 올라탄 뒤, 조종을 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 사이, 두변은 교룡호 전열함을 이끌고 완씨 반왕의 나머지 전함을 인정사정없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소형 전함들은 전속력으로 도망쳤지만, 교룡호의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교룡호에는 인성(靭性)과 경도가 높은 뾰족한 금속이 선체 곳곳에 달려 있었다.

왕권호 같은 경순양함을 전면으로 부딪힌다면, 교룡호도 어느 정도 충돌로 인한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하지만 완씨 반왕의 나머지 전함, 그러니까 몇십 톤, 더 커야 2, 3백 톤 정도 되는 소형 전함은 두변이 눈 감고 부딪혀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덕분에 바다 위에서 아주 화려하고 잔인한 장면이 펼쳐졌다.

교룡호 철갑전함이 반왕의 소형 전함들을 코뿔소처럼 박아댔다. 적군의 전함을 엄청난 속도로 쫓아간 뒤, 가냘프고 작은 전함을 그대로 박아서 선체를 찢어버렸다.

그래도 철갑전함 선체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애초에 이 전투가 도망치기란 불가능한 일방적인 도살일 수밖에 없는 게, 교룡호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렇게 십여 시간이 지난 뒤, 대해전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완씨 반왕의 수군은 전멸하였고, 이십여 척의 각종 전함은 대부분 침몰하였으며, 일부는 혈관음이 포획했다.

그리고 적군의 전함 중 가장 큰 왕권호 경순양함도 혈관음의 손에 들어왔다.

철갑전함 한 척으로 수군 부대 하나를 통째로 씹어 삼키는 것, 이게 바로 문명의 격차였다.

완씨 반왕의 동생인 정해 공작 완천석은 결국 생포되어서 두변의 포로가 되었다.

혈관음이 두변에게 달려들자, 두변은 혈관음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고 격렬하고 진하게 입맞춤을 나눴다.

지금 두변의 양기 점수는 무려 200점이었다. 그는 진정한 남자가 된 수준이 아니라, 수컷 냄새가 폴폴 풍기는 초특급 상남자가 되어 있었고, 양기가 거의 폭발할 수준이었다.

4, 5개월의 항해 여정 동안, 전함에 있는 여자라곤 리아나 군주밖에 없었다. 두변이 하늘을 찌르는 양기를 가지게 되었다 해도 4, 5개월 내내 넘치는 성욕을 참은 것이다.

게다가 혈관음은 두변을 만나기 위해서 막간을 이용해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향기로운 향정까지 몸에 뿌렸다.

두변은 혈관음의 허리를 끌어안으면 안을수록 몸이 달아올라서 미칠 것만 같았다.

혈관음은 지금 느끼는 기쁨을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었다.

두변을 영영 잃은 줄만 알았다가 다시 만나게 된 건, 꼭 지옥과 천국을 오간 것만 같았고, 온 세상을 품에 안은 듯 행복했다.

혈관음은 두변의 혈기를 느낀 건지, 더욱 기뻐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이제 정상적인 남자가 된 거예요?”

두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상적이지 않아요. 정상적인 남자는 나만큼 강하지 못할 테니까요.”

두변이 혈관음을 안아 올리며 말을 이었다.

“관음 누이, 내가 몇 달 동안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요? 자, 우리 애나 가지러 갑시다.”

두변이 혈관음을 안아 올린 채 화려한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곧바로 서로를 껴안고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면서 금세 서로의 옷을 깨끗하게 벗겨버렸다.

이때, 혈과음이 갑자기 두변을 제지하면서 긴장한 기색으로 말했다.

“우, 우리 아직 이러면 안 돼요.”

“왜 안 돼요? 나 진짜 할 수 있어요.”

“영설 공주와 서신을 주고받았어요. 영설 공주가 당신의 정실부인이니까, 당신의 처음은 그녀의 것이에요.”

“그런 게 어딨어요. 누이가 내 첫 여인이니까, 내 처음은 당연히 누이가 가져야죠.”

혈관음이 재차 고개를 저었다.

“난 당신보다 더 당신을 원해요. 하지만 이 규칙은 내가 꼭 지켜야 해요. 걱정하지 말아요. 예전엔 항상 당신이 나를 기분 좋게 해줬으니, 이젠 내가 당신을 기분 좋게 해줄게요.”

한 시진 뒤.

두변은 이 세상에 온 뒤로 처음 느껴보는 편안함과 만족감에 온몸이 나른해졌다.

혈관음은 두변의 품에 안긴 채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관음, 지금 서남쪽의 국면은 어때요?”

“정말 놀라운 수준이에요. 반년 밖에 안 지났는데, 진짜 놀랍게 바뀌었어요. 당신이 직접 가서 보면 정말 깜짝 놀랄 거예요.”

혈관음이 말하다가 머뭇거렸다.

“하지만 안 좋은 일들도 있어요.”

“무슨 안 좋은 일이요?”

“경성에서 꽤 많은 수의 관리를 서남쪽으로 파견했는데, 내각 대신 왕건속이 광서로 들어와서 호광(湖廣) 총독이 됐어요.”

두변의 안색이 급변했다.

내각 대신 왕건속을 호광 총독으로 임명한 건 맞지만, 그 직위를 명목상으로 채운 것에 불과했다. 황제가 그자를 현지에 주둔하지 않는 호광 총독에 임명한 건, 그래야 두변이 호남, 광서, 운남, 귀주 4개 행성의 군정 대권을 안정적으로 관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명목상으로만 호광 총독인 내각 대신이 직접 광서에 왔고, 경성에서 많은 관리를 서남으로 파견했다는 건, 누가 봐도 이들이 두변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권력을 탈취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혈관음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경성에서 의부 이문회 대인께 경성으로 돌아와서 동창 대도독을 맡으라는 성지를 몇 개씩 내렸어요.”

두변이 없으면 이문회가 바로 서남의 수장이었다. 게다가 이문회는 내정 능력이 뛰어난 수장이었다. 서남을 통틀어서 누구든 서남에 없어도 그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문회만큼은 서남을 벗어나면 안 되었다.

이문회를 경성으로 부른다는 건, 부저추신(釜底抽薪: 솥 밑에 타고 있는 장작을 꺼내어 물이 끓어오르는 것을 막는다. 적의 계략을 근본적으로 부수어 버린다는 의미)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경성에서 마음대로 이럴 수 있나?

폐하께서는 왜 그걸 막지 않으신 거지?

당시에 황제는 서남이 두변의 것이라고 했었다.

두변이 이러다 제2의 여씨가 되겠다는 내각 대신들 앞에서, 그럼 두변을 제국의 제후에 봉하면 된다고 말하던 황제였다.

두변은 부아가 치밀어 올라서, 당장이라도 경성으로 달려가서 관련자들을 책문하고 싶었다.

그는 황제가 절대로 그런 성지를 내렸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대녕 제국은 여진 제국과 운명의 대전을 앞두고 있지 않아요? 경성에 있는 그 사람들은 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런 수작질이나 하고 있는 건데요? 이 와중에 내 권력을 빼앗을 궁리할 여유가 있나?”

두변이 이를 부득 갈면서 말을 이었다.

“갑시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요. 돌아가서 잡것들에게 물어봐야겠어요.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건지.”

“두변, 그나저나 당신과 같이 온 저 서양 여인 엄청 예쁘던데요.”

“아, 그렇죠? 소개해줄까요? 그 사람은 여자를 좋아해요.”

두변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혈관음의 볼이 발그레해지더니 풋 웃음을 터트렸다.

“어쩐지.”

혈관음은 다시 두변의 품에 안겨서는 그가 반년 동안 겪은 일들을 들었다.

두변은 혈관음에게 세계의 갈라진 균열에서 있었던 일과 매마 이야기는 하지 않고, 유경 왕국에서 겪었던 재밌는 일과 대항해 여정에 관해서 얘기했다.

“그럼 우리 교룡호가 세상에서 제일 선진적인 전함이라는 거예요?”

혈관음의 물음에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지금으로 봤을 땐 그래요.

지금 완씨 반왕의 수군이 전멸했으니까, 동방 연합 왕국의 함대도 한동안은 이 해역에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누이, 우리가 어렵게 얻은 이 귀한 시간을 잘 써야 해요. 누이와 누이의 선원들을 데리고 교룡호 철갑전함에 탄 뒤에, 리아나 군주에게 열심히 배워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철갑전함을 조종하는 방법을 완벽히 익혀야 해요.”

혈관음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나중에 이 전함을 나에게 주려고요?”

혈관음은 이 전열함의 선장이 되는 것이고, 두변을 위해 소명을 다하는 것인데, 그녀의 머릿속에는 두변이 그녀에게 주는 선물이 되어버렸다.

“맞아요. 누이에게 주는 거예요.”

두변의 말에 혈관음은 꼭 신난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사랑하는 두변이 멀쩡하게 살아왔고, 엄청난 양기를 내뿜으면서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가진 사내가 되었다.

그녀는 드디어 자신이 든든한 나무에 살포시 기댈 수 있는 작은 새가 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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