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장: 결과가 있어야지
이문회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잘 모른다. 난 성지를 연달아 몇 통 받았고, 전부 경성으로 돌아가서 동창 대도독에 부임하라는 내용이었다.”
“의부, 제게 몹시 묻고 싶으신 질문이 하나 있으시겠지요. 정말로 경성과 갈라질 것이냐는 질문이요.”
이문회가 침묵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제가 묻고 싶은 건, 경성이 저와 갈라지려는 걸까요?”
이문회는 그 질문의 답을 생각하기 힘든 듯,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만약 두변과 경성이 갈라진다면, 의부인 자기가 어느 쪽에 서야 할지 무척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대녕 제국과 여진 제국의 운명의 대전 말입니다. 제가 그 대전을 위해서 경성에 얼마나 많은 은자를 보냈습니까. 300만 냥이 넘습니다. 얼마나 많은 곡식을 보냈을까요? 30만 석이요. 심지어 부홍빙 장군과 5만 대군까지 보냈습니다. 이 세상에 저 같은 난신적자가 있습니까?”
이문회가 감동한 눈빛으로 두변을 바라보았다.
두변이 분개하면서 말했다.
“제가 북방 전투에 보낸 군대는 제가 제일 아끼는, 제 직속 주력 군대입니다. 정말 저 같은 난신적자가 있답니까?”
십여 일 동안, 호광 총독 왕건속이 데려온 수백 명 관리가 전부 체포되었다.
두변은 그중 수십 명 정도는 아직 교화할 수 있고, 어쩌면 신법의 유능한 관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서 학습을 시키기로 했다.
큰 잘못을 하지 않았지만, 사상이 완고한 관리 백여 명은 서남에서 내쫓았다.
그리고 남은 백여 명 관리는 신법에 반항하고 신법을 훼손하고, 뇌물을 받거나 법을 어기고, 두변에 관한 안 좋은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자들이었다.
그 마지막 백여 명 관리가 구 호광 총독부 앞에 질서정연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죽여라.”
명령이 끝나기 무섭게 백여 명 관리의 머리가 잘려 떨어졌다.
구 총독부 앞은 피가 강이 되어 흘렀고, 백여 개의 사람 머리가 바닥에서 뒹굴었다.
서남의 신법 정치가 다시 한번 본 궤도로 진입했다.
남은 시간 동안, 두변은 계속해서 십여 곳의 공장과 공방을 순시했다.
특히 신식 화약, 신식 화포의 연구 진도도 직접 확인했고, 매일 진서 서원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두변은 시간을 따로 들여서 여담과 긴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의외로 마음 맞는 대화를 나눴고, 두변과 여담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일치하는 관점들이 많았다.
아무튼, 두변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반년 동안 자리를 비워서 생긴 사건 사고들을 전부 수습했고, 다시 서남 전체가 합심하여 발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두변이 복귀하자마자 호광 총독 왕건속과 백여 명 관리를 죽이고, 또 백여 명 관리를 내쫓았다는 소식은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엄청난 파장이 일은 곳은 서남이 아닌 방계 진영이었다.
방계 진영에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여론을 형성했다.
두변이 이미 반역을 해서 스스로를 왕이라고 칭한다고, 황제가 이미 동창 고수를 서남으로 보내서 두변을 체포하라는 성지를 내렸다고.
두변이 이미 대군을 준비해서 북상하여 사천을 공격할 것이라고, 미친 듯이 자신의 영토를 넓힐 것이라고.
심지어는 두변이 두씨 가문에 복귀하고, 동방 연합 왕국에 투항할 것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어쨌든 모든 유언비어는 두변이 이미 황제와 갈라섰다는 게 전제되어있었다.
대녕 제국 전체가 방계가 만들어낸 여론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경성에서는 두변의 대살육 소식을 듣고도 무척이나 평온했다. 마치 두변의 대살육이 경성에 아무런 충격을 주지 않은 것처럼.
그러다 어느 날, 두변은 경성에서 온 성지를 받게 되었다.
“황제가 명하노라. 진서 변진 총독, 진서 후작 두변은 경성으로 와서 황제 폐하를 알현하라.”
두변이 절을 올리면서 대답했다.
“신, 명 받들겠나이다.”
“주군, 정말로 경성에 가려는 겁니까? 신의 생각엔, 주군이 경성에 가시면 안 됩니다.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여담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난 황제 폐하께서 어떻게 이런 결정들을 내리신 건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찌 됐든, 내가 원하는 결과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길을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한 결정도 필요합니다. 의부, 옥진 군주를 위해서라도 이번 일에 대해서 분명한 결과를 얻어내야 해요.
호광 총독 왕건속이 죽었으니, 이대로 조용히 끝낼 리 없겠죠.
이번 일은 큰일이 될 수도 있고, 작은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입장이죠. 의부께서 지금 갈피를 못 잡고 계시니, 내가 없을 땐 당신이 서남의 국면을 책임져줘야겠습니다.”
여담이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
“소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문회는 사람이 엄청 야위어서 거의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의자 두변과 경성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그러다 두변을 경성으로 부른다는 성지가 도착하자, 두변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두변, 아니면, 내가 먼저 경성에 들어가 보고, 별일이 없으면 경성으로 들어오는 건 어떠하냐?”
이문회가 묻자, 두변이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의부, 지금 굉장히 고통스러우시다는 걸 압니다. 어쩌면 저를 탓하시는 마음도, 혹은 의부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도 있겠지요. 저와 경성 사이에서 고민이 많으시다는 것도 잘 압니다. 제가 이번에 경성에 가는 건, 이번 사건의 마침표를 찍고자 하는 겁니다. 어찌 됐든, 이렇다 할 결과는 있어야 하니까요.”
이문회가 말없이 두변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탄식했다.
“알겠다.”
다음 날, 두변은 수백 명 기마병을 이끌고 경성으로 향했다.
두변은 자신이 공명정대하고 떳떳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손에 쥔 패를 보여주기 위해 기마병 수백 명만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번 일은 확실히 맺음을 지어야 했다.
두변은 보름 내내 제대로 쉬지 않고 경성을 향해 달렸다.
드디어, 두변은 다시 대녕 제국의 국도에 도착했다.
두변은 북쪽으로 올라오면 올라올수록 전쟁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특히 경성에 도착했을 땐 공기가 얼어붙은 것처럼 삭막했다.
대녕 제국과 여진 제국의 결전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 가까이 지난 상태였다.
이번 대전은 대녕 제국의 국운이 달린지라, 경성 전체가 전시 상태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성문도 전체를 열지 않고, 동굴 같은 문 하나만 작게 열어놓았다.
성문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무척 적었고, 성벽 위에는 병사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었으며, 성문 앞에도 백 명이 넘는 병사가 주위를 경계하면서 성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을 매의 눈으로 검사하고 있었다.
이들은 행여나 여진 제국의 밀정이 들어올까 봐 그 어느 때보다 경계 수위를 높인 상태였다.
두변은 높디높은 성문을 올려다본 뒤,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 경성에 와서 내가 가진 패를 다 보여줬을 때, 어떤 결과를 마주하게 될지 모르겠군.’
두변은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가 내각 대신 왕건속을 서남으로 보낸 의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실종되었었나?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만약 내가 황족과 완전히 갈라지게 되면, 대녕 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때, 두변의 머릿속에서 천윤제의 얼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천윤제의 진실된 눈빛, 그의 다정한 목소리, 그의 눈물과 웃음까지.
그리고 영설 공주.
영설 공주는 이미 두변과 정식으로 혼례를 맺은 정실 부인이었다.
만약 내가 경성 황족과 결렬한다면, 영설 공주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지만 두변은 왕건속을 죽인 걸 후회하지 않았다.
신법을 파괴하려고 한다면, 그자가 누구이든 죽어야 한다는 게 그의 심지였다.
시간과 타협할 여유가 없었다. 적이 너무 강대하기도 하고, 그 적이 벌써 문턱 앞까지 왔기 때문이다.
대녕 제국이 곧 마주해야 할 것은 온 백성의 멸족에 가까운 전쟁과 재난이고, 누구든 이런 중요한 시기에 내란을 일으킨다면 전부 죽어야 했다.
아무도 두변의 이런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두변은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밝힌 뒤, 누구보다 떳떳하다는 태도를 보일 생각이었다. 자신의 패를 모두 보여준 뒤, 황궁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는 황궁에 달린 일이었다.
두변이 심호흡을 한 뒤, 성문을 열어달라고 고개를 들던 찰나!.
쿠구구구궁.
포화 소리가 아홉 번 울리고, 성문 안에서 흥겨운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끼이이익.
거대한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성문 위를 지키고 섰던 병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두변에게 예를 올렸다.
“두변 후작을 뵙습니다.”
이어서 환관 한 명이 큰소리로 외쳤다.
“태자 전하께서 진서 후작, 진서 변진 총독 두변 대인을 맞이하러 오셨습니다.”
야위었지만 얼굴이 준수한 태자가 문무백관을 이끌고 성문 밖으로 나왔다.
태자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기쁜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두변 후작, 영설은 지금 군대를 이끌고 여진 제국과 격전을 펼치고 있소. 그래서 내가 대신 나와서 맞이하는 것이니, 너무 실망하진 마시오.”
두변이 흠칫 놀랐다가 서둘러 말에서 내려서는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신, 두변. 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그런데 두변이 완전히 무릎을 꿇기도 전에 태자가 다급하게 그의 팔을 잡고 일으켰다. 눈가가 촉촉해진 태자가 두변의 손을 잡았다.
“두변, 그대가 돌아오게 되어서 참 좋소. 너무 좋아.”
태자가 두변의 손을 점점 더 세게 쥐었다.
“이제 갑시다. 궁으로 들어가서 부황을 뵈어야지.”
태자가 두변의 손을 잡고 경성 안, 황궁으로 향해 걸어갔다.
경성 안으로 들어간 두변은 경성이 지난번 떠났을 때보다 번영의 기운이 가득함을 눈치챘다.
요동 지역에서 운명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터라, 경성도 전시 상황인 건 맞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경성은 적막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정서도 몹시 안정적이고 좋아 보였으며, 그들의 표정에서 절망이나 슬픔이 보이지 않았다.
경성은 두변이 걱정했던 것과 완전 딴판이었다.
“태자 전하 천세, 천세.”
“두변 후작, 영설 공주와 일찍 귀한 아이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순찰하는 병사들이 두변과 태자를 볼 때마다 대열을 정리하고 깍듯이 인사를 올렸고, 몹시 존경하는 눈빛으로 태자를 바라보았다.
저잣거리에 있던 사람들도 태자와 두변을 볼 때마다 환호했다.
모든 게 예전과 비슷했다.
경성의 병사와 백성이 두변을 대하는 태도는 예전보다 더 열정적이었고, 두변이 호광 총독 왕건속을 죽인 사건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았고, 두변이 경성에서 서남으로 보낸 관리들을 대살육한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만 같았다.
게다가 태자도 예전보다 좋아 보였고 더 자신감 있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고, 넓은 보폭으로 용맹한 모습으로 길을 걸었다.
태자가 호광 총독 왕건속 얘기를 꺼내지 않으니, 두변도 굳이 먼저 꺼내지 않았다.
“태자 전하, 요동 전쟁 상황은 어떠합니까?”
아무래도 대녕 제국의 운명이 걸린 대전인지라, 두변이 먼저 태자에게 물었다. 태자가 두변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두변, 그 일은 아주 중대하니 부황을 먼저 뵌 뒤에 천천히 얘기 나눕시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태자는 두변의 손을 잡고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황궁 안으로 들어선 그 순간, 태자의 자신감과 여유 있는 미소는 사라지고 표정은 진중해졌다.
황궁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태자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황궁은 경계가 무척 삼엄하다는 묘사로도 부족했다. 세 걸음에 시위 한 명이 서 있었고, 다섯 걸음에 무사가 있었다.
황궁의 모든 문 앞에는 완전무장한 무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황궁 안의 모든 길목을 대내시위군이 순찰했다.
황궁 안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억압되어있고 스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