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52화 (452/648)

452장: 두변과 태자

“하지만 냉정함을 되찾고 나니, 자네처럼 경성에 이토록 많은 곡식을 보내고, 은자를 상납하고, 주력 군대를 보내는 난신적자가 어딨소? 이 세상에 그런 난신적자가 어딨냔 말이오.

뭐든 나에게는 꿀이지만, 남에게는 독물일 수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소.

하지만 내가 보았을 땐, 내가 한 일은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소. 왕건속이 지나친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을 정도의 죄를 지은 건 아니잖소. 그런데 왜 왕건속을 죽여야만 했소? 왕건속은 폐하의 노신이고, 내각의 대신이자, 봉강 대리요. 난 당시에 도대체 자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른 건지 답을 알 수 없었소.

그러다 나중에 자네가 부황께 드린 ‘서남 신법 강령’을 읽게 되었는데, 그제서야 자네의 의중을 이해하겠더군. 자네가 하려는 신법이란 것은 천지를 뒤바꾸는 일이고, 원래 있던 들판을 전부 태워버리고, 무수히 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더군. 단 한 치의 양보나 타협이 있어선 안 되며, 아주 선명한, 적어도 이건 절대 넘으면 안 되는 선이란 게 존재하더군.

왕건속이 만약 서남의 권력만 빼앗았던 거라면, 자네는 그를 호남으로 내쫓아서 거기서 총독을 하라고 했겠지. 하지만 왕건속은 신법을 파괴하려고 했기에 죽임을 당한 거지. 신법이란 건, 번복이 한 번이라도 일어나면 여태 힘들게 공들여온 모든 게 무너지고, 심지어 기존보다 퇴보할 테니까. 강대한 구세력이 언제든 다시 서남으로 돌아와서 횡포를 부릴 테니까.

이번에 왕건속이 수백 명의 관리를 데리고 서남으로 가서, 광서의 권력을 빼앗은 지 채 두 달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수십 사대부 가문이 서남으로 돌아왔소. 만약 그들을 막지 않는다면, 백성에게 나눠준 농토와 토지가 얼마 안 지나서 다시 사대부와 부호들에게 빼앗길 것이오. 그때가 되면 신법이 난관에 봉착할 것이고, 백성에게 신뢰를 잃는 지경에 이르겠지.

신임과 명예를 잃은 변혁은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소. 그래서 자네가 왕건속 등을 죽인 것이지.”

태자가 다시 한번 두변을 향해 허리 숙여 예를 올렸다.

“두변, 내가 잘못했소. 나를 용서해주시오.”

두변이 서둘러 태자를 일으켰다.

“당치도 않으신 말씀입니다. 전하.”

태자가 차를 한 모금 들이킨 뒤에 말했다.

“나라는 사람이 때론 총명해 보이지만, 군왕으로서는 그저 잔머리가 많을 뿐이오. 나는 부황만큼 큰 도량을 가진 사람이 아니야. 그래도 난 부황을 보고 많이 배우려고 하오.”

두변이 예를 올리면서 말했다.

“전하께서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니, 소신은 너무도 기쁩니다.”

“나는 앞으로 자네가 서남에서 펼치는 신법을 절대 건드리지 않겠소. 하지만 자네가 매달 나에게 신법과 관련한 자료를 보내줬으면 하오. 성공한 점, 실패한 점, 그리고 관련 숫자까지 전부 다 기록해서 내게 잘 보여주길 바라오.”

“신, 전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최근에 온 천하에서 두변이 역모를 저지를 것이라고, 경성에서 두변을 체포하라는 성지를 내릴 거라는 유언비어가 떠돌고 있소. 내가 이런 유언비어를 들었을 때, 부황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오르더군. 이 세상에 내 사람도 고통스럽고 원수도 고통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냐고.

두변, 사실 나는 자네의 신법에 대해서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고, 어떤 점들에 대해선 이견도 있소. 하지만 기다릴 수 있소. 신법이 꽃이 피어 열매를 맺을 때까지, 신법이 정말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결과를 볼 수 있을 때까지 말이오. 자네는 내 매부이니 가족이나 다름없소. 우리가 한마음으로 제국의 중흥을 위해 노력한다면, 부황의 평생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오. 내 도량과 그릇이 부황만큼 넓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으니,개선해보도록 노력할 것이오. 하지만 내가 가끔 자네가 화날 만한 일을 저지른다고 해도, 부디 나를 좀 봐줬으면 하오. 내가 마음은 넓지 않지만, 시시비비는 가릴 줄 아는 사람이니, 우리 같이 마음을 열고, 진실된 대화를 하면 좋겠소.”

마지막으로 태자가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내가 왕건속을 서남으로 보내서 자네를 화나게 했소. 그런데 자네가 왕건속 등을 죽인 일로 나도 화가 많이 났지. 우리가 비긴 것이니, 그만 화해하면 좋겠소.”

비겼으니 화해하자는 말이 어쩐지 어린애 같기만 했지만, 두변은 태자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이어서 두변과 태자는 지금 가장 중대한 사안인 대녕 제국과 여진 제국의 운명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전투 상황은 두변이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뭔가 다르기도 했다.

비슷한 점은, 여진 제국은 다른 지구 역사의 청나라보다 훨씬 더 강대하다는 점이었다.

35만 대군이 남쪽으로 내려왔다.

대전 초기에는 여진 대군이 파죽지세로 대녕 제국을 공격했다. 대녕 제국은 연달아 몇 번을 패배한 탓에 심양, 요양이 함락당했다. 제국 요동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두 성이 순식간에 함락된 것이다.

이 소식이 제국의 경성까지 전해졌을 때, 제국 전체가 뒤흔들렸고, 태자는 거의 심신이 무너져내렸다.

황제가 중풍으로 쓰러졌으니, 태자가 바로 대녕 제국의 최고 통솔자였다.

매우 위급한 상황이던 이때, 태자의 유능한 외교술이 빛을 발했다.

태자는 준격이간국과의 협상을 해냈다. 준격이간국은 몇백만 은자를 대가로 와나간국과의 전쟁을 잠정중단하고, 여진 제국과의 맹약을 배신했다.

와나간국은 대녕 제국 덕에 잠시 숨을 고를 시간이 주어졌고, 대녕 제국과 일시적인 맹약을 맺고 대규모 병력을 동쪽으로 배치해서 여진 제국과 대치했다.

요동 전장에서는 진북 공작 원등, 선화 공작 난오, 동강 총병, 영설 공주 등 몇 개 군대가 힘을 합쳐서 연패의 기록을 깨고 제2 방어선을 지켜냈다.

준격이간국 등의 배신으로 단숨에 세 명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 여진 제국은 요동 전선 군력이 감소하자, 파죽지세의 전술을 수비로 바꾸었다.

보름 전, 요동 전장에서 엄청난 희보가 들려왔다.

대녕 제국의 군대가 다시 요양의 요충지를 되찾았고, 그 전투에서 일등 공신이었던 사람이 바로 두변의 의형 이원, 그러니까 이연정 의손자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화포까지 생겨서 그런지, 대녕 제국 군대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여진 제국과의 전투에서 수차례 승리를 거뒀다.

“이원이 괜히 자네의 의형이 아니더군. 이원이 자네만큼 출중하고 무수히 많은 공훈을 세웠소. 요양을 수복한 뒤에 또 연달아 몇 번이나 대승을 거뒀네. 내가 이미 이원을 요양 총병에 봉했지. 부황께서 인재를 선발할 땐 격식에 얽매이지 않지 않으신가. 나도 부황께 배워야지. 그리고 내가 이미 이원에게 약속을 하나 했네. 만약 심양 대전에서도 대승을 거두고 일등 공로를 세운다면, 그를 자네처럼 작위에 봉해주겠다고 말일세.”

“그러니까, 심양 대전이 곧 시작된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도적 주제에 감히 제위를 넘봐? 심지어 심양을 수도로 삼고, 성도(盛都)라는 이름을 짓겠다고 하네. 우리 대녕 제국은 건로와 여진 제국이 배복수적(背腹受敵: 적이 앞뒤로 공격하다)한다고 해도, 기필코 심양을 수복하고, 치명적인 한 방을 날릴 것일세. 우리 병사들은 맹호와도 같은 기세로 달려드는데, 그쪽은 이미 지쳐버렸어. 이번 심양 대전으로 운명을 가릴 수 있을지도 몰라.”

정리하자면, 대녕 제국과 여진 제국의 운명의 대전이 심양에서 발발될 것이란 뜻이었다.

두변이 말했다.

“이번 대전에 참여하는 우리쪽 병사는 얼마나 됩니까? 여진 제국은 병력이 얼마나 되고요?”

“원등 공작, 난오 공작, 동강 총병, 요양 총병, 영설 공주의 사대 연합군이 40만 가까이 되고, 심양에 주둔한 건로 수위군이 약 20만 명이지. 그리고 우리에겐 화포까지 있으니, 이번 대전에서 엄청난 우위를 점하고 있지.”

대녕 제국의 40만 대군 중, 대부분은 원등 공작과 난오 공작의 병사들이었다.

이 둘은 방계 세력에게 버림을 받은 만큼, 전장에 직접 나서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녕 제국 40만 대군, 여진 제국 20만 제군.

하지만 여진 제국은 수비측이고, 군대 전투력만 본다면 여진 제국의 전투력이 대녕 제국의 전투력보다 더 강했다.

그래서 이번 대전의 승패는 아직 단언하긴 어려웠다.

여진 제국이 이번 전투에서 지게 되면 원기를 크게 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것이고, 엄청난 재난을 겪는 셈이었다.

만약 대녕 제국이 지게 된다면, 요동 전체, 심지어 북방 전체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

두변이 말했다.

“신, 심양으로 가서 대결전에 참여하길 자원합니다.”

태자가 두변을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자네까지 갈 필요 없소. 자네의 서남이 더 중요하니, 서남으로 돌아가시오.”

순간 두변은 경악하면서 손끝에서부터 온몸이 점점 더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두변은 이제야 이해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더 많은 공을 세우기 바라지 않는 것이다.

이미 후작인 데다 서남 세 성까지 가지고 있는데, 자신이 이번 심양에서 펼쳐질 운명의 결전에서 공을 세우고 승리까지 거둔다면, 자신의 세력이 요동 지역까지 뻗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대녕 제국이 요동 대전에서 이길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두변이 여진 제국과의 대결전에서 또다시 엄청난 공로를 나누지 않길 바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죽을 힘을 다해 두변 같은 인물을 배출해야 내야 했다. 그 공신이 바로 줄곧 큰 공로를 세워온 이원인 것이다.

지금 이원은 총병이지만, 심양 대전이 끝나면 그에게도 작위가 내려질 것이다. 이원은 그대로 태자의 직속 수하가 될 것이고, 대녕 제국의 또다른 두변이 될 것이다.

태자가 진지한 눈빛으로 두변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두변, 지금 더욱 자네가 필요한 곳은 서남이오. 요동 쪽 전투는 원등 공작과 이원에게 맡기시오. 우리는 그들이 승전보를 전해주길 기다리기만 하면 되네.”

뭔가 잘못됐어!

뭔가 심상치 않아!

두변은 정확히 무엇 때문에 이런 불길한 기분이 드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위험한 기운을 감지했다.

태자뿐만 아니라, 진북 공작 원등, 선화 공작 난오, 심지어 두변의 의형 이원도 두변이 이 대전에 참여하지 않길 바랄 것이다.

두변은 이미 분량을 충분히 챙겼으니까.

두변은 제국의 삼대 군부 거물 중 한 명이고, 한 지역의 제후이니까.

만약 두변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 전장으로 가겠다고 한다면, 태자와 원등 공작이 쌍수 들고 환영할 것이다.

특히 태자는 이번 대전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만큼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만약 두변이 혼자서 요동 전장으로 가겠다고 한다면, 그건 됐다는 의미였다. 만약 혼자 간다면, 그건 원등 공작과 난오 공작의 권력을 뺏는 것밖에 안 되니까.

그렇다고 해서 두변이 이미 망전에 가까운 대전을 승리로 이끌 신묘한 지휘능력이 있는가?

그건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두변이 여여해를 격파할 수 있던 건, 세 가지 물건 덕분이라는 걸 알았다. 첫째는 절세 지하성의 군대, 둘째는 전쟁의 신 화포, 셋째는 파멸의 화살.

두변이 이미 파멸의 화살을 다 썼으니, 뭔 수로 역전극을 연출할 방법이 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요동 전시 상황이 한창 좋을 때이니, 굳이 두변 후작까지 가서 끼어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번 대전의 공로를 원등 공작, 난오 공작, 이원 세 사람이 나눌 수 있도록, 특히 최대 공로는 이원 혼자서 독차지하게 물러서라는 뜻이기도 했다.

두변이 말했다.

“전하, 군보(軍報)가 있다면 제가 한 번 봐도 되겠습니까?”

태자가 두꺼운 군보를 찾아서 두변에게 건넸다.

군보에는 요동 전장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었다.

두변은 태자가 이번 대전에서 필승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어디서 온 건지 마침내 알게 되었다.

화포!

전쟁의 신 화포!

부홍빙이 5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 전장에 지원을 갔는데, 그중 2만 명이 절세 지하성 군대이고, 나머지 3만 명은 제3군단의 병사들이었다.

부홍빙은 5만 대군 외에, 20방짜리 화포 30대를 끌고 갔다.

그런데 지금 요동 지역의 대녕 제국 군대에는 족히 230대의 화포가 있었다.

두변이 잘못 본 게 아니라, 정말로 화포 230대가 요동 지역에 있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200대 화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바로 성화교였다. 이건 성화교 세계가 동방 연합 왕국에 대한 보복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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