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53화 (453/648)

453장: 시간이 증명할 것

성화교는 인도양 해전에서 극심한 손해를 입은 반면, 동방 연합 왕국은 해전을 통해 인도양 연안 한 행성의 식민권을 얻었다.

인도양 해전에서 어느 한쪽이 극명한 차이로 승패를 가린 건 아니었지만, 동방 연합 왕국이 그 해전을 통해 얻은 것이 더 많았다.

성화교는 배가 아팠는지, 동방 연합 왕국에게 복수한다는 의미로 대녕 제국에게 화포 200대를 보내주고, 상당한 규모의 포병, 포탄, 화약을 보내주었다.

준격이간국과 와나간국이 잠정 휴전한 이유가 무엇일까?

와나간국에게 전력으로 여진 제국을 상대하라고 배려해준 것일까?

아니다. 이것 또한 성화교의 압력이 있을 것이다.

적의 적은 벗이니까.

대녕 제국이 동방 연합 왕국의 적이니, 성화교 세계의 벗인 셈이다.

물론, 대녕 제국과 성화교도 적대적인 관계이지만, 여여해가 멸망한 뒤로는 이런 적대적인 관계도 끝나게 되었다.

1년 전, 성화교 세계에서 5만 원정군을 보내서 여여해를 지원하면서, 그때 대녕 제국에 화포 200대를 같이 보냈었다.

그 일 때문에 동방 연합 왕국이 무척 화가 났고, 사실 그 일 때문에 성화교와의 인도양 해전이 벌어진 것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지금은 성화교가 그때의 보복을 위해서 대녕 제국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다만, 성화교는 두변의 세력이 아닌 태자 세력을 밀어주기로 결정했다.

두변의 의형 이원이 어떻게 요양성을 수복할 수 있었을까.

태자가 이원을 직속 수하로 양성하고 싶어서 화포 200대를 전부 그의 부대에 보내줬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화포 200대로부터 쉴새 없이 공격당한 여진 제국은 며칠 만에 요양성을 이원에게 내어주었다. 그 공을 세운 이원은 자연스럽게 요양 총병으로 승급되었고.

그리고 지금 남은 건 대녕 제국의 40만 대군이 여진 제국의 심양 방어선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이원의 대군이 주력으로 공격할 것이다.

이원에게 얼마나 많은 대군이 있을까?

자그마치 6만이었다.

그중 일부는 이원이 심양위에 있을 때부터 데리고 있던 부대이고, 1만 명은 이연정의 직속 시위군, 그리고 나머지는 태자가 통주진(通州鎭), 경성 수위군에서 보내준 병사들이었다.

아무튼, 태자와 이연정 두 사람은 이원의 기세를 제대로 키우고자 했다.

6만 대군, 200대 화포, 2천여 명 성화교 포병까지 있으니, 이원은 요동 전투에서 파죽지세로 승세를 이어갔다.

요양성을 수복한 뒤, 이원은 연달아 몇 번의 대승을 거뒀다.

결국 요동 전투가 시작된 두 달 만에, 이원은 북방의 새로운 전신(戰神)이 되었다.

이원이 200대 화포를 등에 업고 심양 방어선 대전에서 또 한 번 엄청난 공로를 세울 것이라는 건, 모두가 예측하는 사실이었다.

심양성을 수복하게 되면, 이원은 작위에 봉해질 것이고, 두변처럼 남작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자작(子爵)부터 시작할 확률이 높았다.

그때가 되면, 태자의 손에는 자신의 직속 세력이 생기게 된다. 태자는 이원을 이용해서 원등 공작 같은 대군벌을 제압할 수 있고, 두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태자는 두변이 구세주라는 틀을 완전히 없애고자 한다는 점이었다. 꼭 모든 사람이 대녕 제국에는 구세주가 두변 한 명뿐이라는 오해를 할까 봐서였다.

태자는 두변과 소원해지거나, 그를 내치거나, 혹은 토사구팽해서 죽일 생각도 없었다. 그는 단지 두변의 위세를 조금 눌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변 너 없이도 국운 대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으니, 젊은 후작이라고 너무 나대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제왕의 계략(이라고 쓰고 심보라 읽는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천윤제는 복잡한 눈치싸움 같은 계략을 싫어해서 그런 심리전을 따로 쓰지 않았다. 사실 황제로서 제왕의 계략을 쓰지 않는다는 건, 비정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고, 성공한 황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군보를 계속해서 보던 두변은 태자의 노골적인 수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부홍빙이 이끄는 5만 대군은 전방 전선에 배치되지 않고, 후방의 광녕위(廣寧衛)와 산해관 방어선을 지키기로 되어 있었다.

이 얼마나 솔직한 행동인가.

태자는 여진 제국과의 결전에서 두변에게 티끌만큼의 이득도 주지 않을 것이고, 심양전에서는 그의 부대를 전방에 세우지도 않겠다는 뜻이었다.

40만 대군, 화포 200대가 있으니 심양 대전이 필승할 것이 믿어 의심치 않는데 괜히 공로를 나눠 가지려고 성가시게 굴 것이 무엇인가.

사람이 정도라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나?

두변이 말했다.

“신, 잘 알겠습니다. 요동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시길 기원합니다. 의형 이원, 원등 공작, 난오 공작께서 심양을 수복하고, 건로, 여진에게 파멸적인 타격을 주길 바랍니다.”

태자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두변, 만약 서남쪽의 일이 그렇게 바쁜 게 아니라면, 경성에서 얼마든지 머물러도 되네. 요동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는 희소식이 곧 도착할 테니 말이야. 그때가 되면 자네와 영설도 오랜만에 만날 수 있고, 자네의 의형 이원도 볼 수 있을 것이야. 이원이 자네를 무척 그리워하더군. 의형제 둘이 전부 귀족이 되었으니, 이연정이 가르치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칭송받겠어.”

“과찬이십니다. 신은 의조부께 문안 인사를 드려야 해서, 만약 전하께서 다른 분부가 없으시다면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두변이 웃으면서 예를 갖추자, 태자가 흔쾌히 대답했다.

“가게.”

태자가 두변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그를 문앞까지 배웅했다.

“손자, 어르신을 뵙습니다.”

“괜찮네.”

두변이 예를 올리자, 이연정이 다소 어색한 말투로 두변을 일으켰다.

이연정은 두변이 왕건속을 죽인 사건에 대해 아주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고, 두변이 황권을 불경스럽게 여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변이 성지를 받고는 일부러 백 명이 채 안 되는 기마병을 이끌고 떳떳하게 경성에 들어온 것을 보고서야 그제야 조금이나마 그를 용서하면서 기분이 풀렸다.

두변은 신법과 왕건속을 죽인 사건에 대해서 의부 이문회에겐 있는 그대로 설명할 수 있었다. 의부 이문회가 전략적인 정치가는 아니더라도 내정에 통달했고, 정사에 대해서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연정은 순수한 무인이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그 무엇보다 황권이 지존이었다.

황제가 있을 땐 황제에게 충성을 다 바치고, 황제가 쓰러졌을 땐 태자에게 충효를 다하는 것. 이연정에겐 이 모든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이연정의 눈엔 두변이 왕건속을 죽인 건 대역무도한 짓이었다.

하지만 두변은 이문회의 의자이고 제국의 은인이기도 하니, 웃어른으로서 자만하여 길을 잃은 젊은이를 따끔하게 혼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연정이 물었다.

“두변 후작, 내가 아직 의조부이긴 한 게냐?”

“당연합니다. 제 마음속엔 의부는 제 친부이고, 어르신은 바로 저의 친조부십니다.”

“아직 나를 조부로 생각한다고 하니, 꾸지람을 좀 해야겠다. 첫째, 군주는 군주이고, 신하는 신하다. 신하로서 본분을 지키는 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야. 둘째, 태자도 군주다. 네가 아무리 큰 공로를 세웠다고 해도, 폐하께서 아무리 너를 총애한다고 해도, 너는 신하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해.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느냐?”

“이해했습니다.”

“아니, 내가 보기엔 너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왕건속은 태자 전하께서 보내신 신하다. 그가 무슨 일을 잘못했다고 해도, 칙명을 주청해서 죄를 물었어야지. 설마 태자 전하께서 시시비비를 가릴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냐? 꼭 그렇게 네가 네 손으로 죽였어야 해? 네가 그렇게 위풍당당하고 무서울 게 없어?”

두변은 침묵했다.

두변은 후세의 누군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두 사람의 거리를 결정하는 건, 삼관(三觀: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이다.

삼관이 일치하지 않은 사람은, 이전에 얼마나 친밀하게 지냈든 서서히 멀어지게 되어있다.

이연정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후배를 살뜰하게 챙기며, 주인에게 충성하는 늙은 개일 뿐이었다.

이연정은 아주 좋은 사람이지만, 아쉽게도 두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각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두변이 물었다.

“어르신, 이원 의형을 몇 살 때부터 데리고 계신 겁니까?”

“아홉 살. 무슨 뜻으로 물어보는 것이냐?”

두변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어르신, 어떤 말들은 제가 태자 전하께 직접 전하긴 어렵다 보니, 어르신께서 태자 전하께 말씀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말해보아라.”

“첫째, 저를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요동 전장에 지원한 화포 30대도 마음 편히 쓰시고요. 둘째는 화포 200대를 한 장군에게만 집중적으로 주지 않는 게 좋습니다. 절반을 영설 공주 군대에게 나눠주시는 것도 좋고요.”

두변은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화포 200대가 전투 승패의 열쇠가 될 텐데, 한 사람의 손에만 있는 건 너무 위험 부담이 컸다.

두변의 말을 듣는 순간, 이연정의 안색이 급변했다.

“두변, 너는 그렇게 네 의형 이원이 공로를 세우는 게 싫은 거냐? 대녕 제국에 너 혼자만 공로를 세울 수 있고, 작위에 봉해질 수 있고, 위험한 국면을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네 생사가 불분명하던 시간 동안, 네 의형 이원은 매일 너를 그리워했다. 네가 혼례를 올릴 때, 이원은 혼례의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직접 확인하기까지 했다. 최근에도 격전이 한창일 텐데, 서신에서 아직도 네 행방과 안위를 묻더구나.”

이연정은 정말로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두변, 정말로 양심이란 게 있는 것이냐? 이원이 너를 친형제처럼 대하는데, 너는 이원을 뭘로 보는 것이냐? 네 앞길을 막는 사람? 네 몫을 빼앗는 사람?

두변, 마음을 좀 넓게 가지면 안 되겠느냐?

이원은 내 손자다. 너 두변도 내 손자였지. 내겐 두 사람이 손등과 손바닥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보아하니, 너와 이원, 너와 우리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구나.

두변 후작, 제국이 당신에게 은혜를 입은 건 사실이지만, 오늘부로 다신 나를 찾아올 필요 없고, 나를 의조부라고 부르지도 마십시오. 제가 감히 당신의 의조부가 될 수 없겠습니다.”

이연정이 두변을 향해 허리를 숙여 예를 올린 뒤, 오랫동안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두변은 이연정의 고집스러운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나랑 절교하겠다는 건가? 결국엔 결렬이로군.

두변은 손을 뻗어서 먼저 이연정을 일으켜 세우지도 않았고,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이연정보다 더욱 깊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올렸다.

“시간이 모든 걸 증명해줄 겁니다. 어르신, 건강하십시오.”

두변은 이 말을 남기고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두변은 다시 황제의 방 안으로 돌아와서 황제의 손을 힘껏 잡았다. 불현듯 황제가 자신에게 베풀었던 따뜻함이 더 절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무조건적인 신임과 다정함은 너무도 귀하고 따뜻한 것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지금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그 어떤 방식으로도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두변의 기분이 저조하다는 걸 느꼈는지, 황후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얘야, 무슨 일 있는 거냐? 태자와 싸운 게야? 두 사람은 형제나 마찬가지니 잘 얘기해 보거라. 내가 편들지 않고 공평하게 봐주고, 너를 대신해서 태자를 욕해주마.”

천윤제의 황후는 여창 국왕의 부인 영신 왕후와 달리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황후의 눈에 두변은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고, 태자도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다.

두변이 영설 공주와 혼례를 올린 뒤부터 황후는 두변을 한 가족이라고 생각했고, 두변과 태자를 형제처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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