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57화 (457/648)

457장: 황금대제의 혼백

소군 방진이 떠난 뒤, 신전 전체가 들썩였다.

모든 대장로와 장로들이 흥분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들은 북명 선조의 예언대로 두변을 다음 종주로 모실 생각이 없었다.

두변이 예언대로 북명검파를 멸할 것인데 어찌 종주로 모시나. 그러니 장로회에서는 두변을 대하는 태도가 줄곧 냉랭했고, 아예 사명의 주인을 죽여버리자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표출했었다.

그런데 지금, 동방 연합 왕국의 소군이 신비로운 비술을 통해서 두변이 매마라는 진상을 밝혀냈다?

드디어 두변을 죽일 명분을 찾았으니 무척 흥분할 수밖에.

“두변을 처형해야 하오!”

“주마대(誅魔臺)에 올리시오.”

“주마대에 올리시오!”

사실 북명검파에서 주마대를 사용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었다.

지난번 주마대를 사용했을 때가 수백 년 전 황금대제 태무진을 죽일 때였다.

태무진은 시스템이 한때 키웠던 자이면서, 당시 세계 최강자이자 사상 최강의 황금 제국을 건립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 세계에서 유능한 정신술사를 모아서 정신적 격리를 구현해냈고, 시스템과 완전히 단절했다.

시스템이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정신적 격리 때문에 그를 죽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결국 태무진은 막강한 서방 자객의 암살을 당해서 죽었다.

사실 서방 자객도 시스템이 키운 또 다른 숙주로, 자객은 태무진에게 이계의 기운을 최대치로 끌어모아 정신력 공격을 했고, 황금대제는 잠시 기절했다. 거의 불사의 육신인 황금대제를 한 번에 죽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방 세계와 동방 세계가 연합해서 세계의 갈라진 균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무수히 많은 수정을 모으고 그 부근의 이계 에너지를 모아서 주마대를 만들었다.

북명검파와 서방 세계의 몇백 명 절대 강자가 황금대제를 주마대에 올리고 동시에 살상력 최대치의 공격을 가했다.

한때 세계의 최강자였던 황금대제 태무진은 그렇게 죽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대장로와 장로들이 두변을 다시 주마대에 올리려고 하는 것이다.

두변의 신분과 무공 수준을 생각하면, 사실 주마대에 오를 자격도 없었다.

하지만 대장로들은 사안의 중요함과 북명검파의 사명을 고려해서 두변의 신분을 무시하고 그를 주마대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주마대에 올려야 합니다!”

북명검파 장로들이 외쳤다.

영도현이 두변을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나지막이 물었다.

“두변, 왜 돌아온 것이냐?”

“와야지요. 오지 않으면 방법이 있겠습니까? 종주 각하, 그래도 제가 후대를 남길 수 있도록 예상 선자를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도현이 북명검파의 대장로와 장로들을 둘러본 뒤, 천천히 말했다.

“그럼, 주마대에 올려라.”

오늘의 이 일은 영도현과 동방 연합 왕국 소군 방진이 연합해서 만든 화려한 한 편의 연극이었다.

반 시진 뒤.

사람들은 세계의 갈라진 균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도착했다.

이곳은 무시무시한 번개가 계속 내리치는 곳으로, 거대한 주마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두변은 당시 황금대제 태무진을 처형할 때와 똑같이 주마대의 중앙에 올려졌다.

북명검파 종주 영도현이 눈을 감고 말했다.

“선조, 제가 선조의 용서를 바라지는 않지만, 저는 다른 길을 가고자 합니다.”

영도현이 천천히 손을 올렸다.

“준비!”

북명검파의 최상급 고수 수백 명이 내력 현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두변은 긴장한 기색으로 꿈속 세계와 소통했다.

‘시스템, 주마대의 도안을 설계했던 건 당신이니까, 무슨 문제가 있진 않겠죠?’

그랬다.

황금대제 태무진을 죽인 배후에는 꿈속 시스템이 있었다.

당시에 태무진이 시스템의 조종 영역을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해서 그를 죽여야 했다. 즉, 이 주마대를 설계한 장인이 바로 꿈속 시스템이었다.

‘넌 정말 미친놈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군. 황금대제 태무진의 정신적 계승을 얻기 위해서, 항룡십팔장을 얻기 위해서, 대제의 강력한 대군을 얻기 위해서 이런 위험을 감수하다니.’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항룡십팔장은 김용의 작품과 상관이 없는 무공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항룡십팔장은 육맥신검보다 훨씬 더 사기스러운 공법이라 할 만한 것으로, 두변을 전쟁의 신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고, 천지의 힘을 이용해서 도살할 수 있는 공법이라 할 수 있었다.

두변이 말했다.

‘주마대라는 게 당신들이 만든 거니까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우리의 계획과 정보에는 아무 문제 없는 거 맞죠?’

‘없다. 이건 동방 연합 왕국 소군과 너의 첫 대결이다. 만약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미친놈인 네가 이 판을 이길 것이다.’

주마대 주위에 수백 명의 북명검파 절대 강자가 모여서 내력 현기를 모으고 있었다. 응집하는 내력이 극에 달하는 순간, 주마대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나왔다.

콰쾅!

두변이 흔적도 없이 소멸할 만큼의 응축된 내력 현기가 주마대를 강타했다.

이와 동시에, 두변이 주마대의 한 위치에 손을 올리고 지옥불을 피워냈다.

콰과과광!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태양광보다 몇 배는 더 밝은 빛이 주마대에서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은 너무 밝은 빛에 일시적인 실명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빛이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주마대 위의 두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같은 시각.

두변은 신비하고 기이한 공간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곳은 바로 주마대의 내부 공간으로, 끝도 없이 방대하기도 하면서 생각보다 좁은 공간이기도 했다.

두변과 꿈속 세계가 수도 없이 정밀하게 계산한 덕에 무사히 이곳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시공간을 왜곡한 곳이기에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오차가 있으면 안 되기도 했다.

수백 명 절대 강자의 기운으로 주마대 공간을 여는 것인지라, 아주 조금의 오차에도 두변 자체가 완전히 소멸할 수 있었다.

때문에 두변은 꿈속 세계에서 몇 번씩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수백 명 절대 강자의 응축된 기운이 주마대의 균열을 열어주길 기다렸다가, 지옥불을 이용해서 주마대 내부로 들어온 것이었다.

두변에게 지옥불이 없었다면, 이런 미친 계획은 아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변은 마침내 성공적으로 주마대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어서 두변이 해야 할 것은 황금대제 태무진의 혼백을 찾는 것이었다.

주마대 위에서 죽임을 당한 뒤, 태무진의 혼백은 주마대 안에 갇힌 채 지옥으로 가지 못했고 따라서 영원히 윤회할 수 없는 상태였다.

두변은 미궁처럼 구부러진 길을 따라 주마대 안쪽으로 깊숙이,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이때, 갑자기 어디선가 이 거대한 공간을 울릴 정도로 웅장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짐은 황금대제 태무진, 세계 제일강자, 세계의 주인, 만왕의 왕이다!”

“짐은 세상의 모든 토지를 짐의 목장으로 만들 것이다!”

“짐은 세상의 모든 미인을 내 아래에 둘 것이다!”

“감히 짐의 영지에 쳐들어오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두변은 목소리를 따라 걷는 방향을 살짝 틀었다.

그러자 멀지 않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해골과 뼈다귀로 쌓아 올려진 왕좌가 보였고, 그 왕좌에는 온몸에서 황금 불빛을 내뿜는 거구의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황금 불빛으로 이루어진 몸은 한때 세계 최강자였던 황금대제 태무진의 혼백이었다.

‘신규 임무 개시. 황금대제 태무진의 정신적 계승을 받고, 전쟁의 신이 될 수 있는 항룡십팔장을 전수 받아라.’

황금대제의 혼백은 족히 10미터가 넘는 높이에,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태무진의 혼백에게서 느껴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기세에, 두변은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저 혼백이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자신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용처럼 매서운 패왕의 두 눈이 두변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꿈쩍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짐은 황금대제 태무진, 세계 제일강자, 세계의 주인, 만왕의 왕이다!”

“짐은 세상의 모든 토지를 짐의 목장으로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태무진은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반복하고 있었다.

황금대제 태무진의 혼백은 계속 같은 동작과 같은 말을 반복했고, 꼭 영화의 필름이 고장 난 것처럼 같은 장면만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꼭 미친 사람이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꿈속 시스템이 말했다.

‘당시 몇백 명 북명검파 강자, 그리고 서방 세계의 강자가 태무진을 일제 공격해서 그의 육신과 힘을 폭파시켰다. 그래서 주마대 속에 갇힌 건 태무진의 잔혼뿐인 거지.”

잔혼이라, 혼백의 조각인 건가.

태무진의 잔혼은 그의 기억 속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구간만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었다.

두변은 태무진의 패기 넘치는 모습이 갑자기 애달프기만 했다.

태무진의 잔혼이 정신이 나간 것럼 했던 말을 계속 되뇌고 있을 때, 두변이 천천히 다가가서 말했다.

“황금대제!”

하지만 황금대제 태무진의 잔혼은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두변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잔혼에는 지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슈우욱.

두변이 태무진의 잔혼에게 아주 미세하게 단혼영 정신 공격을 가했다.

이 정도 정신 공격은 태무진의 잔혼에 상해를 입히진 않고 대신 그를 깨울 수는 있었다.

황금대제 태무진의 잔혼이 두변에게 초점을 맞추더니 그를 바라보았다.

두변을 바라보는 잔혼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그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잠시 뒤, 잔혼이 다시 위엄 가득한 모습을 되찾고는 소리쳤다.

“감히 짐의 영지에 쳐들어오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잔혼은 두변이 이곳에 있다는 걸 인지했지만, 반복하던 네 문장 외에 새로운 문장을 말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황금대제 태무진. 당신의 남은 잔혼을 제게 주시고, 제게 정신적 계승을 해주십시오.”

두변의 말에 황금대제의 잔혼이 대꾸했다.

“짐은 황금대제 태무진, 세계 제일강자, 세계의 주인, 만왕의 왕이다.”

이건 거절한다는 뜻이리라.

정신적 계승은 한쪽이 강제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전수해주는 쪽의 완전한 의지가 있어야 가능했다.

“황금대제 태무진, 제게 정신적 계승을 해주시면, 당신을 위해 복수를 해주겠습니다.”

황금대제 잔혼이 여전히 같은 말을 하면서 거절했다.

“황금대제 태무진, 당신은 당시에 이미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생전 십수 년 전에 자신의 거대한 무덤을 만들었죠. 그 무덤 안에 항룡십팔장이 있고, 엄청난 군단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부활하는 날에 무덤에 있는 천군만마를 이끌고 다시 세계를 정복하려고요.”

황금대제 태무진은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고 잠시 고민하는 듯했다.

잔혼은 두변의 말에 흔들리기는 했지만,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두변이 이어서 말했다.

“황금대제, 제가 당신을 부활시키고, 다시 이 세상을 휩쓸고, 전 세계를 당신의 목장으로 만들고, 온 세상의 미인을 당신의 아래에 무릎 꿇리게 하겠습니다.”

황금대제 태무진의 눈빛이 갑자기 번쩍였다.

쾅!

마치 암호가 딱 맞아떨어진 것처럼, 황금대제의 거대한 몸집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해골로 만들어진 왕좌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슈슈슉.

황금대제의 잔혼이 한 줄기 빛이 되어서 두변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으아악!”

두변의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무궁무진한 정보, 무궁무진한 기억이 두변의 머릿속으로 미친 듯이 입력되었다.

두변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금빛이 터지듯 폭발하더니, 컴퓨터가 일시적으로 다운이라도 된 것처럼 두변의 뇌가 암전되었다.

두변은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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