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8장: 슬픔 해소
세 시진 반 뒤.
산해관까지 아직 30리가 남았을 때, 질주하던 두변은 속도를 늦추더니 말에서 내려왔다.
바다 위에 배 한 척이 떠 있는데, 그 배에는 두변을 죽이러 온 북명검파 대종사 네 명이 타고 있었다.
슉, 슉, 슉, 슉!
눈 깜빡할 사이, 쾌속선 위는 비어 있었고, 대종사 네 명이 두변을 동서남북으로 포위했다.
“북명 종주의 지령을 받아 매마 두변을 죽이러 왔다!”
북명검파 대종사 네 명이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시간을 계산해보니까 당신들이 올 때가 됐더라고. 잘됐네. 당신들이 내 슬픔을 좀 해소해줘야겠어.”
두변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을 뽑아 들더니, 한 줄기 금빛이 되어 적을 향해 달려갔다.
두변은 2계 종사로, 그가 상대해야 할 적은 네 명 모두 대종사였다.
무도 수준으로만 본다면, 두변은 한 번 겨뤄보기도 전에 죽임을 당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이 세상에 온 뒤로, 누군가와 단독으로 제대로 맞서 싸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유일하게 한 번이 있다면, 그건 아마 당엄과 무예를 겨뤘을 때가 아닐까.
두변은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이들과 한번 겨뤄보고 싶었다.
단혼영!
두변이 북명 대종사 한 명을 향해 단혼영 공격을 했지만, 상대방이 특수한 모자를 쓰고 있어서인지 정신 공격이 아예 먹히지 않았다.
두변이 정신 공격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두변을 죽이러 오는 사람마다 죄다 저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지옥불!
두변이 손바닥에 지옥불을 피워내서는 북명 대종사를 향해 지옥불을 던졌지만, 대종사급 강자는 그 지옥불을 가볍게 피했다.
화르륵!
대신 지옥불이 지면에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거대한 불이 타오르고 구멍이 생겼다.
슉! 슉! 슉! 슉!
두변이 지옥불을 던지는 순간, 대종사 네 명의 검기가 맹렬하게 날아와 두변의 몸을 베었다.
일순간, 두변의 몸에 한 자 남짓한 상처가 네 곳이 생기고, 뼈마디가 부러지고, 오장육부가 찢어졌다.
두변의 온몸이 용린으로 뒤덮여서 창과 칼이 들지 않더라도, 북명 대종사의 검기를 막진 못했다.
두변이 이 정도 강해지지 않았다면 바로 검기에 사지가 잘려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슉, 슉, 슉, 슉, 슉.
두변이 육맥신검을 재빨리 쏘아냈다.
육맥신검이 꼭 기관총처럼 북명 대종사들을 향해 날아갔지만, 대종사들은 검으로 빠르고 가볍게 두변의 공격을 막아냈다.
북명 대종사 한 명이 말했다.
“두변, 자네가 대단한 건 인정하네. 다른 사람이었다면 우리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즉사했겠지. 그런데 몸에 상처 몇 개 난 게 전부라니, 대단하군.”
두변이 고개를 숙여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오장육부는 다 잘려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두변, 무도의 수준이라는 건 건널 수 없는 강이나 같지. 자네의 무도 수준은 우리와 견줄 바가 못 돼. 우리 검을 맞고도 살아남은 게 신기하지만, 우리의 두 번째 공격까지 막아낼 수 있을까?”
북명 대종사 네 명이 또다시 동시에 현기 내력을 모아서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두변이 이들의 두 번째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두변은 이미 첫 번째 공격에 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고, 여기서 또 공격을 당한다면 죽는 방법밖에 없었다.
두변의 몸에는 교룡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한 번에 몸이 잘리진 않았지만, 그가 죽지 않는다는 걸 뜻하지 않았다.
“두변, 차라리 태감의 모습이었을 때가 더 보기 편했거든. 지금 자네는 우리 같은 정상적인 사내들이 질투할 만한 아랫도리야.”
대종사 중 한 명의 말에 두변이 능청스럽게 물었다.
“북명검파 대종사도 질투라는 걸 합니까?”
“당연하지. 우리도 칠정육욕이 있는 사람들이니까. 영도현 종주께서 이끄는 북명검파가 이미 속세와 많이 가까워졌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나?
내 다음 검으로 자네를 완전한 고자로 만들어주지. 다시 태감의 신분으로 지옥으로 떨어지게 해줄 테니, 너무 개의치 말게.”
두변이 피식 웃었다.
“개의치 않을 수가 없겠는데요.”
대종사 네 명이 끊임없이 현기 내력을 모으고 있었다. 이들은 두변을 단번에 죽일 생각이었고, 그의 온몸을 일거에 산산조각내기 위해 현기 내력을 있는 힘껏 끌어모았다.
푸화아악.
이때, 두변의 갈라진 상처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는데, 피가 액체가 아닌 자욱한 혈무(血霧)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지옥불이 혈무에 불을 붙이면서, 순식간에 두변의 몸 전체가 활활 타올랐다. 불의 색깔은 붉은색이 아닌 지옥불의 하얀색이었다.
이와 동시에, 북명 대종사 네 명이 동시에 두변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원래대로라면, 두변은 대종사들의 공격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치명적인 검기더라도 활활 타오르는 지옥불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옥불은 검기든 뭐든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애 버리니까.
화르르륵!
지옥의 화마(火魔)가 된 두변은 흡사 지옥에서 온 악마 같아서,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모든 생명이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렸다.
북명검파의 대종사들은 이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두변이 이렇게 놀랍도록 변태스러운 무공을 할 줄이야.
대종사 네 명이 능파미보를 이용해서 두변을 포위했지만,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도 그를 공격할 수도 없었다.
이들도 지옥불이 모든 걸 소멸시킨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갑자기 두변이 바다를 향해 달려가더니, 바다 깊은 곳을 향해 돌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변이 지나가는 곳마다 바닷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북명 대종사들도 계속해서 미친 듯이 능파미보를 이용해 무중력상태로 바다 위를 달리며 두변을 놓치지 않았다.
두변은 족히 수십 리를 달려서는 드디어 멈춰 섰다.
대종사 네 명이 두변을 가운데에 두고 포위했다.
“두변, 정말 놀랍군. 화마가 되어서 우리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우리가 자네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다니.
하지만 두변, 자네가 지금까지 무엇으로 지옥불을 지핀 줄 아나? 자네의 피, 자네의 현기 내력을 이용해서 지핀 것이지. 자네의 피와 현기 내력이 기름이 되어서 지옥불을 유지한 것이거든. 하지만 자네가 언제까지 이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나?”
북명 대종사가 정곡을 찔렀다.
“자네의 피와 현기를 이용해서 지옥불을 지피는 모습은 정말로 장관이야. 하지만 우리는 자네의 피와 현기 내력이 소진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때가 되면 지옥불은 꺼질 것이고, 우리가 굳이 자네를 죽이지 않아도 자네가 죽어버릴 테니까.”
북명 대종사가 맞는 말만 골라 하고 있었다.
두변은 자신의 피와 현기를 소진하면서 지옥불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기껏해야 일각 정도 버틸 수 있을 것이고, 그의 몸에 있는 피가 다 방출되면 누가 죽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스스로 말라 죽을 것이다.
두변이 입꼬리를 올렸다.
“대종사님들, 제게는 지금 당신들을 죽일 방법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요란스럽게 죽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죽이는 것이지요. 요란하게 당신들을 죽이면 이 해역의 생태계에 너무 큰 타격을 줍니다. 그러니 저는 당신들을 조용히 죽일 수밖에 없겠네요.”
북명 대종사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군. 곧 죽을 사람이 이렇게 웃겨도 되는 건가? 우린 자네의 내력이 소진되기만을 기다렸다가, 손쉽게 마디마디 토막 내서 죽일 건데?”
“그래요? 당신들의 뒤에 뭐가 있는지부터 봐야 할 텐데요.”
북명 대종사가 두변에게서 시선을 옮기지 않고 냉소를 지었다.
“지금 와서 그런 수작이 통할 것 같나? 웃기지도 않는군.”
그런데 네 명 중 유일하게 고개를 돌려서 뒤를 돌아보던 대종사 한 명이 섬뜩한 장면에 모골이 송연해지고 말았다.
무수히 많은 눈알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지 않은가.
바다 위에서 북명 대종사 네 명이 두변을 포위하는 동안, 무언가가 소리 없이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눈동자가 대종사 네 명을 노려보았다.
문어 괴수였다.
초특급 대형 문어 괴수의 촉수는 100미터 이상으로 무척 길었고, 100미터 전체에 무수히 많은 입과 눈알이 달려있었다.
이곳은 바로 문어 괴수의 영역이었다. 두변의 애완동물이기도 하고.
북명 대종사들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들은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이를 부득 갈면서 말했다.
“해저 괴수인가? 끔찍하게 생기긴 했어도 우리를 어쩌진 못할 것이네.”
두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래요?”
두변은 이내 지옥불을 끄고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여전히 커다란 상처가 남아 있었다.
북명 대종사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어 괴수가 있으니, 무서울 게 없다 이건가? 그럼 죽어야겠군.”
대종사 네 명이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면서 두변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
치명적인 두 번째 공격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몸이 굳고 말았다.
문어 괴수의 가장 강력한 공격은 사실 촉수가 아니라, 신경 독소 공격이었다.
대종사들은 지금 문어 괴수의 영역 안에 있는 터라, 문어 괴수가 뿜어내는 무색무취의 독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문어 괴수가 내뿜은 신경 독소에 대종사 네 명이 순식간에 중독되고 신경이 전부 마비되어 버렸다.
두변이 한 대종사의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다는 것 빼고는 당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요.”
두변이 그의 허벅지 사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북명 대종사 한 명이 거세당했다.
서걱, 서걱, 서걱.
곧이어 나머지 세 명도 거세당했다.
이들은 소리를 지를 수 없었지만, 속으로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절규했다.
이들 모두 아름다운 부인과 첩을 수도 없이 많이 거느리고 있었지만, 지금부터 그게 무슨 소용일까.
두변이 또 말했다.
“당신들이 내 몸을 가르는 바람에 내 피를 너무 소진했습니다. 정말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말인데, 미안하게도 당신들 몸에서 내가 잃어버린 걸 가져가야겠습니다.”
두변이 양손을 두 명의 대종사 몸에 갖다 대고 혈성대법을 시전했다.
‘끄아아악. 안 돼!’
두 명의 대종사가 속으로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두변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이들의 현기 내력을 미친 듯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두변이 조금 전 이들에게서 빼앗아간 건 남자로서의 쾌락이지만, 지금 빼앗아가고 있는 건 이들의 내력이요 생기요 혈기였다.
두변이 이들의 혈기까지 빨아들이고 있는 터라, 두 대종사의 외형이 급속도로 쪼그라들면서 피부가 말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반대로 두변의 근맥과 단전으로 이들의 내력이 흡수되었고, 혈기가 두변의 체내로 들어가면서 그의 몸에 났던 끔찍한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고, 창백했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일각의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두 대종사는 말라비틀어진 시체가 되었다.
푸악!
두 대종사의 단전이 피 주머니처럼 터져버렸다.
두변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남은 두 대종사에게 다시 양손을 갖다 댔다.
그리고 또다시 두 사람의 현기 내력과 혈기를 미친 듯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두변의 피부에 남아 있던 흉터까지 말끔하게 사라졌다.
대종사 네 명에게 흡성대법을 시전한 두변은 조금 전에 소진한 혈기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혈기가 이전보다 더욱 충만해졌다.
쾅, 쾅, 쾅.
두변의 단전이 폭발하면서 그의 무도 수준이 2계 종사에서 3계 종사로 올라갔다.
두변은 이 두 대종사가 너무 일찍 죽어버려서 단전의 내력을 더 많이 흡수하지 못할까 싶어 이들의 혈기를 빨아들이는 건 멈추었다. 대신 두 대종사의 현기를 집중적으로 빨아들였다.
드디어, 그 익숙한 느낌이 또 왔다.
쾅.
두변의 단전이 또 한 번 폭발하면서 그의 무도 수준이 4계 종사로 올라갔다.
이때, 두 대종사의 약해진 단전이 두변의 흡성대법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흡성대법이 끝나자, 두변이 손을 거뒀다.
거대한 문어 괴수가 두 눈을 귀엽게 뜨고 두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종사들을 대할 땐 흉폭하기만 하던 문어 괴수가 두변이 볼일을 끝낼 때까지 얌전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이자, 문어 괴수가 수많은 입을 벌리고 북명 대종사 네 명의 시신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북명 대종사 네 명은 이 세상에서 소리소문없이 증발하게 되었다.
두변이 문어 괴수의 촉수 하나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오늘 정말 고마웠다. 네 영역에서 너무 멀어지면 안 되니까, 이제 집으로 돌아가거라. 내가 나중에 또 너를 보러 오마.”
문어 괴수가 촉수로 두변을 한 바퀴 휘감더니, 이내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으로 촉수를 풀고 대지 균열이 있는 바닷속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