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장: 황금대제의 비밀 군단 一
두변은 또다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산해관으로 돌아왔다.
그의 몸은 용린으로 뒤덮여있긴 했지만, 남의 눈에는 그저 헐벗은 모습이었다.
‘주군께서 이제는 옷 입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나?’
두변을 본 부홍빙이 속으로 생각했다.
영설 공주의 부끄럼 많은 시녀가 새빨개진 얼굴로 두변에게 달려와서 옷을 건네면서 투덜거렸다.
“부마, 자꾸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공주 남편이신데, 자꾸 그렇게 헐벗은 몸을 남에게 보여주시면 우리 공주께서 곤란해지십니다.”
두변이 옷을 갈아입은 뒤, 지도를 바라보았다.
“주군,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부홍빙이 물었다.
“북명검파의 추살을 당했지만, 나를 죽이러 온 자들은 전부 죽었습니다.”
두변이 대답한 뒤, 이어서 말했다.
“폐하께서 붕어하셨습니다. 산해관 전군의 투구에 하얀 두건을 묶고, 폐하께 조의를 표하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부홍빙이 대답했다.
이릉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성이 있는 방향으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부홍빙은 천윤제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지만, 이릉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미 경성의 수십만 백성에게, 선황께, 이미 돌아가신 이연정 어르신께 맹세했습니다. 산해관 대전에서 꼭 승리를 거두겠다고, 산해관을 지켜내겠다고 말입니다.”
두변의 말에 부홍빙이 대답했다.
“정찰병 말에 따르면, 여진 제국 군영에 주술사가 많이 왔다고 합니다.”
“저번에 내가 멸용결을 시전해서 여진 제국 병사들이 무척 겁먹었을 겁니다. 그래서 주술사를 통해 병사들의 정신을 개조하고, 나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려는 거죠.”
“소용이 있을까요?”
“있을 겁니다. 그들은 실력이 뛰어난 정신술사라서, 다음번에 여진 제국의 병사들이 나를 보게 될 때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뿐더러, 나를 악의 근원이라고 여기면서 죽을힘을 다해 나를 죽이려 하겠죠.”
“지금 영원성에 집결한 여진 대군이 벌써 25만이 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더 많은 병마가 그리로 집결하고 있다고 하고요. 직경이 큰 화포 200대도 이미 운송되었다고 합니다.”
두변이 흠칫 놀랐다.
“벌써요?”
당시에 서남에서 12방 화포 수십 대를 옮길 때, 몇백 리 거리를 운송하는 데도 십여 일이 걸렸다.
영원성에서 심양까지의 거리가 1천 리가 넘는데, 십여 일만에 200대 화포를 다 옮겼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땅에 눈이 두껍게 쌓였고, 강물도 다 얼어서 썰매를 이용해서 화포를 옮겼다고 합니다. 썰매면 속도가 빠를 만도 하죠.”
‘하긴. 요동 지역은 땅덩이가 넓고 평탄해서 운송 조건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좋으니까.’
적군의 200대 화포도 도착했고, 집결한 군대도 25만에 달하고, 더 많은 병마가 이곳으로 집결하고 있었다. 예외가 없는 한, 적군은 집결한 병마가 30만에 달할 때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산해관 전투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두변의 4만 군대와 화포 30대로 여진 제국 30만 대군과 화포 200대를 막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산해관의 성벽이 20리에 달할 정도로 무척 길어서, 성벽 중 한 곳만 무너져도 수십만 적군이 경성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하지만 두변은 산해관을 지켜낼 것이라고 모두에게 맹세했다. 이번 대결전에서 필승을 거둬야 했다.
두변의 필살기는 황금대제 태무친의 무덤 속에 숨겨져 있는 막강한 군대로, 황금대제의 정신 기억을 살펴보면 그 군대가 실존하긴 했다.
비록 그 기억이 벌써 300년 전의 기억이지만, 그 군대가 아직 살아있다면 두변은 순식간에 엄청난 전투력을 얻게 된다.
정확히 무덤 속에 있는 군대가 어떤 군대일까.
사실 이건 두변도 설명할 수 없었다.
황금대제의 잔류한 기억은 전부 조각난 터라, 모든 과정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지금 두변이 알고 있는 건, 황금대제가 생전에 세계를 3분의 1을 지배했을 때도 이 군대를 이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두변은 황금대제의 무덤 속에 있는 신비한 군대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산해관 대전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확신했다.
“북쪽에 있는 영원히 얼어붙은 땅에 잠시 다녀와야겠습니다. 대전이 시작되기 전에 돌아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없는 며칠 동안, 부홍빙 장군과 이릉 장군은 전력을 다해 전투를 준비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부홍빙과 이릉이 동시에 대답했다.
두변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자리를 떠나 밤길을 재촉했다.
그는 황금대제가 무덤에 남겨둔 강대한 군대를 찾기 위해 북쪽으로 향했다.
황금대제의 무덤은 어디 있을까?
이건 몇백 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였다.
그의 무덤을 찾는 수많은 사람 중, 집착에 가깝게 황금대제의 무덤을 찾던 사람은 지금의 와나간국 국왕, 준격이간국 국왕, 그리고 대금 제국의 황제 금태극이었다.
금태극이 황금대제의 무덤을 찾기 시작한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났다.
그에게는 수백 명 몽골 주술사가 있었는데, 그 주술사들의 선조가 바로 황금대제를 따르던 주술사 제사장이었다.
성도(심양)성 안.
금태극이 아직 즉위식을 치르지 않았지만, 이미 심양의 총독부를 성도성 황궁으로 바꿔놓은 상태였다.
금태극은 간소하게 총독부의 편액만 바꾸고, 건물 외관을 금색으로 칠했다.
그가 성도성에서 즉위식을 치르겠지만, 이곳에다 휘황찬란한 황궁을 지을 생각이 없었다. 금태극이 원하는 진정한 황궁은 경성에 있는 자금성이었다. 그는 그곳이야말로 천자가 묵을 곳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자금성까지 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굳이 이곳에 황궁을 다시 지을 필요는 없었다.
금태극이 연로한 주술사 한 명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이 노인은 너무 늙어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했고, 나이가 몇 살인지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 주술사의 나이는 올해 150이었다.
금태극이 말했다.
“두변이 멸용결을 익혀서 구풍과 눈사태를 일으켰더군. 그것 때문에 짐의 10만 병사가 잔뜩 겁을 먹어서 퇴각했소.”
고령의 주술사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폐하의 대군이 다음에 두변을 만날 땐, 그를 사악한 사람으로만 인식할 것입니다. 병사들은 등불에 달려드는 나방 떼처럼 두변을 죽이려고 할 것이지, 그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강력한 정신술을 쓸 줄 아는 이 연로한 주술사는 수백 명 주술사를 데리고 수십만 여진 병사들에게 정신 환각을 심어주었다.
덕분에 여진 병사들에게 금태극은 창공을 휩쓰는 거대한 금룡이요, 두변은 금태극의 손바닥보다 작고, 초라한 생김새의 사악한 흑룡이었다.
금태극이 말했다.
“두변의 멸용결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긴 하지만, 전장에서는 한 번만 쓸 수 있고, 사상력도 그리 치명적이진 않아. 짐이 걱정스러운 것은 두변 그놈이 황금대제 무덤 속에 있는 비밀스러운 군대를 찾아내는 것이오.”
노 주술사 제사장이 타오르는 화로 위로 한 줌 가루를 뿌리자, 화로의 불꽃이 허공에 모여서 신비로운 성이 환영으로 나타났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황금대제의 묘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제 조부께서 황금대제의 묘를 짓는 데 참여하셨던 적이 있지요. 저는 80년의 세월을 쏟아서 무덤의 위치를 알아냈고, 그 지도를 폐하께 바쳤습니다.”
“대금 제국은 국사의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오.”
노 주술사의 말에 금태극이 대답했다.
“우리가 이미 몇 년 전에 황금대제 무덤의 입구를 찾아냈지만, 무슨 방법을 써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지요. 참으로 아쉬운 일입니다.”
“만약 두변이 황금대제의 정신 계승을 받는다면, 황금대제의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네.”
“폐하, 염려치 마십시오. 제가 이미 수십 명 주술사 고수를 황금대제 묘로 보냈습니다. 두변이 제 발로 걸어와서 황금대제 무덤의 입구를 열게 된다면, 우리가 두변 그놈을 죽이고, 편하게 무덤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주술사가 웃으면서 이어서 말했다.
“그때가 되면, 황금대제 무덤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폐하의 것이 될 겁니다.”
금태극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 모든 게 다 국사 덕분이오.”
두변은 계속해서 북상했다.
주위의 온도가 점점 더 낮아지더니, 지금은 영하 6, 70도까지 떨어졌고 주위 모든 것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있었다.
두변은 태무친의 기억의 조각을 뒤져서 이 무인 지대까지 오게 되었다.
이곳은 서백리아(시베리아)였다.
두변은 서백리아의 육지를 벗어나 바다로 향했다.
이곳의 바다는 아주 두껍게 얼어 있었고, 빙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두변은 시스템이 보여주는 지도를 따라, 능파미보를 이용해 빙판 위를 날 듯이 달려갔다.
‘도착했다. 황금대제 무덤의 입구가 바로 이곳 아래에 있다.’
시스템이 말했다.
대금 제국의 수십 명 주술사 고수가 해저에서 잠복하고 있었고, 내공을 이용해서 기척을 숨기고 있었다.
두변은 두꺼운 얼음을 녹여서 수면 아래로 잠수했다.
깊숙이, 더 깊숙이 내려가던 두변의 눈앞에 드디어 황금대제 태무친의 무덤 입구가 나타났다.
황금대제의 무덤은 무척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었고, 인적이 아예 없는, 항상 꽁꽁 얼어붙은 서백리아의 해저에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무덤치고는 무덤의 입구가 무척 눈에 띄었고, 아예 빙판 아래서부터 무덤의 입구까지는 제왕의 길이 이어져 있었다.
왜 제왕의 길이라고 불리냐면, 길 자체가 거대한 용의 조각상이었고, 조각상에는 황금까지 칠해져 있었다.
이렇게만 보면, 황금대제의 무덤은 꼭 누군가가 발견하지 못할까 봐 광고라도 할 기세였다.
사실 이 제왕의 길은 수백 년 동안 암석에 파묻혀 있었다.
주술사 집단이 금태극에게 이 무덤의 행방을 알리자, 금태극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제왕의 길을 복원했다.
제왕의 길은 끊임없이 지하로 이어지면서 무려 300미터가 넘었다.
제왕의 길 끝에는 입을 벌리고 있는 거대한 용 머리가 있었다. 제왕의 묘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바로 이곳일 것이다.
하지만 금태극과 주술사들이 갖은 방법을 썼음에도 이곳에 들어가지 못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용의 입 사이에 세워진 이 거대한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변은 제왕의 길을 따라 용의 입까지 걸어왔다.
두변도 용의 입이 곧 황금대제 무덤의 입구라는 걸 눈치챘지만, 주위에는 그 어떤 장치도,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어서 문 위에 손을 얹어보았지만, 문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두변은 황금대제의 정신을 모아서 방출하면서 말했다.
“문을 열어라. 짐이 왔도다.”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주위는 죽은 듯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여러 차례 다른 방법을 써보았지만, 대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황금대제의 조각난 기억 속에는 이 대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두변은 포기하지 않고 또 수십 번 다른 방법을 써가며 문을 열려고 했다. 마지막에는 비금 검을 뽑아 들고 대문을 향해 검을 힘껏 내리쳤다.
비금 검의 검날이 휘었지만, 문짝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두변은 경악했다.
문을 한 번 내리쳤다고 막천남의 무덤에서 찾아낸 초특급 검의 검날이 휘다니.
두변은 바닥에 털썩 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어떻게 이 문을 열어야 하지? 황금대제의 무덤 안으로 어떻게 들어가냔 말이야.’
잠시 뒤, 두변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냈다.
‘화룡점정! 황금대제의 혈맥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황금 혈맥이다. 그러니, 황금 혈맥의 피를 이 용의 눈에 칠하면 문이 열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