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72화 (472/648)

472장: 마랑 군단

“마랑왕, 너희들은 평소에 무얼 먹지?”

두변이 물었다.

휴면 기간일 때는 뭔가를 섭취할 필요가 없겠지만, 깨어난 뒤에는 평소처럼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지 않나?

마랑왕이 두변을 데리고 관 앞으로 가서 앞발로 관을 들추자, 관 안에는 작은 상자들이 수없이 많이 놓여 있었다.

상자 하나를 열어보자, 그 안에는 붉고 투명한 정석이 들어있었다. 모든 상자에 이런 붉은 정석이 담겨 있었고, 관마다 이런 상자가 수십 개씩 있었다.

두변은 변이 마랑이 육식도 하지만, 먹이를 먹을 때 붉은 정석 가루를 뿌려서 먹어야만 그들의 힘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이들은 이수 마랑의 후예이기도 해서 이런 특수한 기운을 함께 섭취해야만 할 것이다.

두변이 마랑왕의 거대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너무 오래 잠들어 있었구나. 이제 나와 함께 밖으로 사방을 휘어잡는 게 어떻겠냐?”

아우우우우!

마랑왕이 고개를 젖히고 포효하자, 자리에 있던 5천 마리 변이 마랑이 함께 포효했다.

변이 마랑이 전부 무릎을 꿇고 두변에게 철저한 굴복을 표했다.

변이 마랑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오직 황금대제, 황금 혈맥에게 충성을 다하는 존재들이었다.

두변은 이어서 펼쳐진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랑들이 자신의 관에 있던 상자를 꺼내서 동료의 등에 상자를 얹었다.

서로 협력할 줄도 아는구나.

이 마랑들은 엄청난 전투력과 더불어 지능이 있는 이수들이었다.

“가자. 다른 묘실로 가서 황금을 전부 들고 나가야겠다.”

두변이 말했다.

두변은 첫 번째 묘실에서 돈이 되는 모든 것을 털었다.

황금대제는 묘실에 일부러 황금을 모아두진 않았지만, 이곳에 있는 거대한 거울들이 전부 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마랑들은 아주 손쉽게 거대한 거울들을 떼어냈고, 겹겹이 쌓아올려서 큼지막한 금덩이로 만들었다.

게다가 황금 거울 하나하나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마랑들은 직접 발톱을 사용해 몇 조각으로 나누고 다시 500근을 한 덩어리로 해서 말 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러면 등에 직접 싣고 다녀도 쉽게 떨어지지 않게 된다.

이제 남은 건 두변이 앉았던 피라미드 꼭대기의 황금 옥좌였다.

황금 옥좌는 등에 지고 가기엔 힘든 부피와 무게인지라, 마랑왕이 두변을 향해 동의를 구하는 눈짓을 보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랑왕의 날카로운 발톱이 황금 옥좌를 순식간에 몇 조각으로 만들었다.

결국 두변은 황금대제의 무덤에서 20만 근 이상의 황금을 얻게 되었고, 이를 은자로 환산하면 2천만 냥의 가치가 있었다.

동방 연합 왕국에 비하면 비렁뱅이에 불과한 액수지만, 서남 전체의 금융을 유지하고, 서남의 경제를 활성화하기엔 충분한 액수였다.

“가자.”

두변이 명령하자, 5천 마리 마랑이 정석이 가득한 상자와 황금을 짊어지고 황금대제 무덤의 다른 출구로 향했다.

이들은 어둠 속에서 반 시진 넘게 달려서 드디어 출구에 도착했다.

출구는 거대하고 견고한 대문이었다.

두변이 앞으로 나아가자, 조금 전처럼 작은 뱀 두 마리가 기어 나와서 두변과 눈을 마주친 뒤, 그의 이마를 살짝 물었다.

두변이 황금 혈맥이라는 게 확인되자, 두 뱀은 스스로 열쇠가 되어서 대문을 열었다.

쿠르르릉.

대문이 활짝 열렸다.

대문의 밖은 바다가 아니라 황량한 육지였다.

두변은 마랑왕을 올라탄 뒤, 5천 마리 마랑 군단을 이끌고 남쪽으로 달려갔다.

이곳에서 산해관까지는 3천 리가 넘었다.

변이 마랑은 기본 시속이 백 리가 넘을 정도로 놀라운 속도를 자랑하는데, 단거리 돌진이 아니라 장거리 내내 이 속도를 유지했다.

1천 리를 달렸을 때, 마랑 군단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마랑들은 등에서 화물을 내린 뒤, 각자 수령의 명령에 따라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수 군단이긴 했지만, 꼭 인간 정예 부대처럼 지휘 계통이 원활했다.

5천 마리 중 1천 마리 마랑이 대열에서 나오더니, 원시 산림을 향해 달려갔다. 사냥을 하러 간 것이다.

잠시 뒤, 거대한 원시 산림 내에서 동물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이 원시 산림에는 인적이 아예 없는 터라, 각종 야생 동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었다.

한 시진 뒤, 사냥을 나갔던 마랑들이 사슴, 호랑이, 늑대 등 다양한 사냥감을 가득 물고 돌아왔다. 사냥감은 총 천 마리가 넘었고, 족히 십여만 근은 되었다.

변이 마랑들은 무척 능숙하게 가죽을 벗기고 살을 도려냈다. 어떤 종류의 사냥감이든, 마랑들은 고기를 정갈하게 한 덩이씩 잘라냈다.

두변이 한 덩이를 손에 들어 보니, 평균 한 덩이당 한 근이었다.

발골을 끝낸 변이 마랑들은 질서정연하게 고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마랑병은 마리당 10근, 수령은 15근, 마랑왕은 30근.

그리곤 상자에서 붉은 정석을 꺼내서 가루로 으깬 뒤에 고기에 발랐다.

이들은 이 모든 과정을 마친 뒤에 바로 식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마랑왕이 두변에게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사슴 갈빗살을 바쳤다.

두변은 불을 지피고 사슴 갈비를 불에 구웠다. 그는 잠시 고민한 뒤, 붉은 정석 작은 조각을 으깨서 마랑들처럼 익힌 고기에 발랐다.

두변이 사슴 고기를 크게 한 입 베어 먹었다.

붉은 정석 가루를 바른 고기의 맛은 조금 이상했지만, 맛이 없지도, 맛이 있지도 않았다.

두변이 첫입을 먹자, 마랑왕이 두 번째로 고기를 먹었고, 마지막으로 마랑 군단이 먹기 시작했다.

마랑들이 음식을 먹는 속도가 무척 빨랐지만, 놀랍게도 전혀 야만스럽지 않았다.

포크와 나이프만 없었을 뿐이지, 이들은 무척 우아한 신사들처럼 식사를 했다.

변이 마랑은 매일 한 번의 식사를 하고, 한 번 먹을 때 10근 가량의 고기를 먹으니, 육중한 체급에 비해 식사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두변은 이들의 주요 에너지원이 고기가 아니라 대지 균열이 일어난 땅굴에서 파낸 붉은 정석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식사가 끝나자, 5천 마리 마랑이 설원 위에서 반 시진 정도 휴식을 취했다.

휴식이 끝나자, 마랑들이 다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상자와 황금을 등에 짊어졌다.

두변은 화물을 짊어지는 마랑들이 교대하는 걸 깨닫고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물을 짊어지는 데 필요한 마랑의 수는 총 1천 마리인데, 1천 마리 마랑은 진열의 중앙에 있고, 나머지 4천 마리가 방어진을 쳐서 그들을 중앙에 두고 보호했다.

다른 지구에 있는 늑대 무리도 무척 영리하고 협력할 줄 알겠지만, 지금 두변의 눈앞에 있는 마랑 무리는 똑똑해도 너무 똑똑했다.

이들은 항상 신속하고 질서정연하게 움직였으며, 기본적으로 두변이 따로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강력한 변이 마랑 군단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한 두변은 3천 리가 넘는 거리를 3일 만에 완주했다.

오는 길 동안, 마랑 군단은 식량 축적을 위해서 총 여섯 번의 사냥을 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산해관 북쪽의 장성에서 모든 병사는 막사 안으로 들어가서 반 시진 동안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명령을 하달받았다.

진서 공작, 요동 총독 두변의 명령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긴 장성이 철저히 텅텅 비었고, 장성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두변이 명령하자, 5천 마리 변이 마랑이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장성 안으로 들어갔다.

산해관의 수비 장군 부홍빙은 어제 산해관의 북익성을 완전히 비우라는 두변의 명령을 전달받았다.

그 덕에 5천 마리 마랑 군단은 새벽 시간에 조용히 북익성에 들어갈 수 있었다.

두변을 기다리고 있던 부홍빙과 이릉은 거대한 늑대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이것들은 늑대인 건가? 늑대가 아닌 것 같은데? 몸에 털 대신 비늘이 나 있잖아?’

‘몸집이 정말 크군. 근육도 전부 폭발할 지경이야. 발톱은 또 엄청나게 날카로운데?.’

두변이 변이 마랑 한 마리를 데려와서 그 비늘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석궁 하나를 가져와서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마랑을 향해 화살을 조준했다.

변이 마랑은 두변의 화살을 피하기는커녕, 그가 뭘 하려는 건지 알고 있다는 듯이 인간처럼 앞발을 들고 똑바로 섰다. 변이 마랑이 몸을 일으키자, 순식간에 4미터가 넘는 거대한 과녁이 되었다.

변이 마랑은 배 쪽에도 새까만 비늘이 빽빽하게 뒤덮여있었다.

슈웅.

두변이 활시위를 놓자, 화살이 마랑의 배를 향해 날아갔다.

쨍.

화살은 마랑의 배를 명중했지만, 배에 닿자마자 튕겨 나갔다.

두변은 마랑에게 다가가서 상처를 살펴보았다. 마랑의 배에 작은 상처가 났고 피도 살짝 났지만, 상처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의 찰과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릉과 부홍빙이 놀라서 두변과 변이 마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엄청난 몸집, 놀라운 속도, 괴력에 가까운 힘, 이토록 단단한 비늘.

전장에서는 거의 무적 수준이겠구나!

“이건 사실 황금대제 태무친이 부활한 뒤에 세계 정복을 할 때 쓸려고 보관했던 무적의 기병입니다. 안타깝게도 4만 마혈 무사는 전부 죽었고, 이 5천 마리 탈것만 남았습니다.”

부홍빙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변이 마랑들은 우리 절세 지하성의 거대한 늑대보다 훨씬 더 강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300마리를 만들어 낸 거지만, 이런 마랑이 5천 마리나 있다니요.”

이릉이 말했다.

“변이 마랑의 전투력은 아마 5만 기마병보다 더 강력할 겁니다. 아니, 어쩌면 10만 기마병보다 더 강력할지도요.”

부홍빙이 말했다.

“이 변이 마랑 군단이 전장에 나가게 되면,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상상조차 안 됩니다. 아마 학살 수준 아닐까요?”

“주군, 여기 변이 마랑들이 탈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우리 군대에는 이들을 탈 수 있는 무사들이 없을 겁니다.”

두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지금은 탈것에 불과합니다. 여기다 마혈 무사까지 더해져야 천하무적 기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에겐 마혈 무사가 없지만, 앞으로 생기길 바라야지요.”

부홍빙이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산해관 전투에서 기필코 승리할 것입니다.”

이릉도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이길 것입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필승할 겁니다.”

부홍빙과 이릉은 산해관 전투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여진 제국에는 30만 대군과 화포 200대 포화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견고한 성벽이 없어서 황량한 대지 위에서 무적의 마랑 군단의 돌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광활한 평지는 원래 기병 작전에 적합했다.

5천 마리나 되는 변이 마랑 군단은 비록 지금은 탈것에 불과하긴 하지만, 적어도 이런 황량한 평지에서는 무적이었다.

부홍빙이 말했다.

“주군, 만약 언젠가 마혈 기마병이 정말로 만들어진다면, 그들의 적은 동방 연합 왕국의 곤륜 군단이 될 겁니다. 여진 제국의 기마병은 마혈 기마병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이릉도 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는 영원성에 여진 대군이 얼마나 집결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손에 땀이 쥐어졌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흐르길 바라면서요.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어느 때보다 빨리 흘렀으면 좋겠군요.”

부홍빙이 말했다.

“맞아요. 산해관 전투가 하루빨리 시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진 제국의 30만 대군을 얼른 상대하고 싶습니다.”

이틀 뒤.

영원성에 대금 제국의 30만 대군이 집결되었다.

금태극의 아우, 다마곤 친왕이 대군의 주장군으로, 숙친왕 완안영도가 부장군으로 정해졌다.

30만 대군, 대구경 화포 200대.

다마곤 친왕이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

“우리는 산해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고, 대녕 제국의 경성을 향해 갈 것이다!

대녕 제국의 몹쓸 황제 놈의 머리를 자르고, 주구 두변의 머리를 자를 것이다!

대금 제국의 철발굽이 중원 전체를 짓밟을 것이고,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곧 대금 제국의 영지가 될 것이다!

대금 제국 만세!

대금 황제 만세, 만세, 만만세!

출발하라!”

30만 여진 대군이 하늘과 땅을 뒤덮을 기세로 산해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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