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73화 (473/648)

473장: 산해관 대결전 一

경성.

선황의 장례가 끝났다.

선황의 장례는 거창하게 토목 공사를 크게 하지 않고 진행되었고, 대녕 역대 황제의 황릉에 조용히 안장되었다.

천윤제의 무덤은 황금대제의 무덤과 비교할 필요도 없이, 다른 소국의 군주와 비교해도 누추해 보일 지경이었다

천윤제와 함께 묻힌 물품은 불쌍하다 싶을 정도로 적었고,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물품 몇 가지만 천윤제와 함께 땅속에 묻혔다.

새로 즉위한 황제가 불효해서 이렇게 약소한 장례를 치른 건 아니고, 선황이 남긴 유지에 따라서 조용히 장례를 치른 것이었다.

이연정도 조용히 안장되었는데, 그의 묘는 천윤제의 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련되었다.

새 황제는 아주 간단하게 즉위식을 진행했다. 즉위식은 천조상국의 즉위식이라기엔 너무도 볼품없었고, 여여해의 즉위식보다 초라했다. 적어도 여여해의 즉위식에는 수십 개 국가의 사자가 참여하지 않았던가.

선제를 안장하는 것이든, 새로운 황제의 즉위식이든, 전부 찬바람이 쌩쌩 불 정도로 초라했다.

지금 대녕 제국의 위치는 거의 추풍낙엽처럼 곧 없어질 존재였다.

새로운 황제는 연호를 영덕(永德)으로 정했고, 올해부터 대녕 제국의 연호는 영덕 원년으로 불리게 되었다.

황제 일가족이 식사 중이었다.

황제는 선황 때처럼 반찬 대여섯 개로만 검소하게 식사를 하는데, 자리에는 태후, 영덕제, 황후, 황자 세 명, 영설 공주, 총 일곱 명이었다.

영덕제는 올해 서른셋으로, 슬하에 황자가 셋이 있었다.

황후는 몰락한 훈귀 가문의 적녀로 무척 현량하고 숙덕했다. 가족끼리 밥을 먹는다고 해서 그녀가 아이들을 직접 돌보고 있었다.

아이를 다루거나 생선 가시를 바르는 일들은 태감에게 맡겨도 됐지만, 황후는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줄곧 직접 하려고 했다.

이때, 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영덕제가 식사를 빨리 마무리한 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헹구고 밖으로 향했다.

“폐하, 여진 대군이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30만 대군이고, 다마곤이 주장군, 완안영도가 부장군으로 대군을 이끈다고 합니다.”

중년 태감이 말했다.

이 중년 태감은 이문회의 의자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의자이자, 현 동창 부도독 이연년이었다.

영덕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산해관에 있는 진서 공작은 무슨 움직임이 있는가?”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동창 부도독 이연년이 말했다.

영덕제가 물었다.

“자네가 생각하기에는 진서 공작이 이번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 같나?”

이연년이 고개를 숙였다.

“소인, 감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말해보라.”

“진서 공작이 경성 백성에게 맹세했습니다. 산해관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경성 또한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고요.”

“자네가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가 산해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나?”

“어렵습니다. 여진 병사들의 전투력이 무척 강한데, 병마의 수가 진서공 군대의 여덟 배입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는 우리가 승리할 수가 없는 전투지요. 하지만 진서공께서 이길 수 있다고 하셨으니, 경성에서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되옵니다.”

이연년의 말뜻은 백성들을 경성에서 대피시키거나, 황제가 경성을 버리고 떠나는 움직임을 해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알겠다.”

영덕 황제가 말했다.

“소인, 물러가겠습니다.”

이연년이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영설, 네게 부탁할 게 있다.”

“말씀하세요, 황형.”

영덕제의 말에 영설 공주가 대답했다.

“여진에서 30만 대군을 이끌고 산해관을 치러 온다고 하는구나. 그러니 네가 황자들을 데리고 서남으로 갔으면 한다. 너는 진서공의 부인이자, 서남의 주모이니, 그리로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

영설 공주의 더없이 아름다운 얼굴이 살짝 흔들렸다.

‘산해관 전투가 곧 시작되다니. 여진의 금태극은 대녕 제국에게 한숨을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구나.’

영설 공주가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황형, 두변이 이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했어요.”

“만일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대전이 곧 시작될 거예요. 산해관에 제 수비 영역도 있고, 두변은 제 부군이자 전우이니 함께 맞서 싸워야만 해요. 저는 떠날 수 없습니다. 두변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했다면, 분명히 이길 수 있을 거예요. 난 두변을 믿어요.”

영덕 황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설, 여진 제국의 군대는 여여해의 군대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그리고 두변 군대와 병력 차이가 열 배 가까이 나고, 그쪽엔 화포 200대까지 있어. 이번 전투는 절망적이다. 짐은 상관없다. 군주가 국가를 위해 사직하는 건 당연하니까. 하지만 우리 대녕 제국의 뿌리가 끊기면 안 되지 않으냐. 대녕 제국의 대국을 위해서라도 네가 조카 셋을 데리고 서남으로 가야 한다.”

비록 두변이 서남에서 수차례 기적을 만들어 냈고, 여여해도 죽였지만, 영덕제는 이번 전투만큼은 너무도 절망적이었고,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영설 공주가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결심을 내린 듯 영덕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미안해요, 황형. 나는 나의 남편과 함께 싸워야만 해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영설 공주는 태후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곧장 경성을 떠나 산해관으로 향했다.

이때 경성에 있는 백만 백성은 두 파로 나뉘었다.

절망파와 희망파.

대부분 사람이 느끼기엔 이번 전투는 가망이 없었다. 산해관은 금방 함락할 것이고, 경성도 뒤이어 함락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백성들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건 두변의 맹세였다.

“두변 공이 말씀하셨잖아요. 두변 공이 계시는 한, 산해관은 절대로 함락되지 않을 것이고, 경성도 잃지 않을 것이고, 대녕 제국도 망하지 않는다고 말이에요.”

“참나, 여진 제국의 병력은 두변 공작의 열 배라고요. 그런 괴물들을 무슨 수로 이긴단 말입니까?”

“두변 공이 한 말은 다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하신 말씀에 불과하지. 사실 공작도 이미 이 전투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겠지.”

“내가 솔직히 말하는데, 두변 공이 한 말은 다 백성들이 도망가지 않길 바라서 하신 말일 거요. 그래야 나중에 경성 전투를 치를 때, 우리 같은 사람을 데려다가 병사로 쓸 수 있을 테니까요.”

“두고 보시오. 사나흘도 가지 않아서 산해관이 함락됐다는 소식이 전해올 테니.”

“대녕 제국의 40만 대군이 여진 제국의 25만 대군을 상대할 때도 졌었는데, 두변 공작의 4만 대군이 30만 대군을 이길 수 있겠소? 어리석은 백일몽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아있군. 여진 병사 만 명이 모이면 무적이라는 말도 못 들어봤소?”

이런 침 튀기는 대화가 오고 갈 때면, 희망파 사람들은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들은 두변이 이길 수 있다는 걸 믿고 싶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이번 싸움에서 두변이 이길 확률은 0이었다.

“댁들은 마음대로 하시오. 나는 경성에서 죽기를 기다릴 바에, 오늘 밤에 당장 짐 싸서 떠날 것이니.”

“나는 두변 공이 진다고 해도 경성에 남아 있을 것이오. 차라리 나도 싸우다가 여진 놈들이랑 동귀어진하겠소.”

“옳소. 동귀어진해야지.”

이들은 비장하게 말했지만, 사실상 절망이었다.

영설 공주는 귓속을 파고드는 사람들의 말을 뒤로하고 더욱 빨리 산해관으로 달려갔다.

남경.

전 내각 수보 방탁이 밀서를 펼쳐 확인한 뒤, 곧장 화로에 던져서 불태웠다.

“여진 제국에서 30만 대군이 남하해서 산해관을 공격한다고 하오. 두변의 4만 대군이 산해관을 지키고 있는데, 아무런 후방 지원이 없다는군. 산해관이 함락되는 건 기정사실이고, 경성도 곧 함락될 것이오. 대녕 제국이 드디어 망하는군. 우리의 계획이 성공했소.”

두회가 말했다.

“대군을 준비할 때가 됐습니다. 여진 제국이 경성을 피로 물들이고, 북방 전체를 평지로 만들었을 때, 우리 군대가 북상해서 그놈들을 내쫓고 대녕 제국의 강산을 되찾으면 됩니다. 그때가 되면, 남경이 바로 대녕 제국의 정삭(正朔: 제왕이 나라를 세운 뒤 새로 반포하는 신력新曆)이 되겠지요.”

“산해관이 함락되면, 여진 대군은 경성으로 곧장 들이닥칠 것이오. 만에 하나 영덕제가 죽기 무섭다고 두변을 따라 서남으로 간다면 어떡하오?”

“영덕제가 죽기 싫다고 해서 안 죽을 순 없지요. 남경의 연왕이 즉위하려면, 우리가 대녕 제국의 정삭이 되려면, 영덕제는 꼭 죽어야만 합니다.”

“경성에 있는 사람들에게 준비하라고 소군께 지의를 청하시지요. 여진 대군이 경성을 공격하기 시작할 때, 경성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덕제를 황천길로 보내라고 말입니다. 그것도 나름대로 군주가 국가를 위해 사직한 셈이 되는 겁니다.”

대금 제국의 성도성(심양)의 임시 황궁, 지하 밀실 안.

금태극이 물었다.

“두변이 확실히 죽은 것이오?”

주술사 국사가 대답했다.

“제가 직접 두변을 검은 얼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정말 죽었습니다.”

“황금대제의 비밀 군단이 전부 죽은 것도 확실하고?”

“예, 전부 죽었습니다. 하지만 비밀 무사들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는 제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무사들이 전부 완전무장하고 있었는데, 거의 일 당 십의 기세였습니다.”

주술사 국사가 대답했다.

금태극이 바닥에 놓인 상자 두 개를 바라보았다.

홍마액과 흑마액이 가득 담긴 상자들이었다.

“국사, 황금대제의 무덤에서 죽은 비밀 무사들이 바로 국사의 조부께서 말씀하신 마혈 무사가 맞소? 황금대제가 부활하면, 천하를 휩쓸 때 쓸려고 했던 그 무적의 군단?”

“폐하께 아뢰옵니다. 아마 그럴 것입니다. 여기 놓인 두 상자가 바로 조부의 유언에 있던, 마혈 무사를 만드는 마약일 것입니다.”

“국사의 조부가 이 마약이 무슨 성분인지 말한 적 있소?”

“그해 수백 명 주술사가 마약 조제에 참여했는데, 황금대제와 아사라 대사께서만 완벽한 조제법을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 조부의 추측으로는 여러 이수의 피, 땅에서 솟아난 액체, 다양한 종류의 정석, 그리고 황금대제의 황금 혈맥까지 합해졌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있는 흑마액과 홍마액 두 상자가 이 세상에 남은 유일한 마약이라는 것이지? 세 번째 상자는 없다는 뜻 맞소?”

“예,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그럼 국사께서 주술사들을 데리고 마혈 무사를 만들어 내시오. 무사들을 얼마든지 데려가도 좋고,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 꼭 강력한 마혈 무사 군단을 만들어 내야 하오. 황금대제는 이미 죽었지만, 나는 이 무적 군단이 필요해. 내가 그들을 이끌고 천하를 휩쓸 터이니.”

금태극은 무적 군단만 손에 넣는다면, 자신이 천하를 군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동방 연합 왕국이 온다고 해도, 무적 군단만 있으면 육지에서 전혀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술사 국사가 대답했다.

“명 받들겠나이다.”

“두변이 죽었든 안 죽었든, 산해관이 쑥대밭이 될 운명을 바꿀 수는 없을 게요. 대녕 제국의 경성이 함락되는 운명도, 대녕 제국이 망하는 운명도 바꿀 수 없을 테지. 두변 그놈 혼자서 멸용결을 쓴다고 해도, 당랑거철(螳螂拒轍)에 불과해.

빠를수록 좋으니, 얼른 가서 진행하게. 짐은 최단 시간 내에 이 강력한 마혈 무사를 보고 싶으니.”

“알겠습니다.”

금태극이 명령을 내린 뒤, 밀실을 떠났다.

지상으로 돌아오자마자, 심복 태감이 금태극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폐하께 아뢰옵니다. 다마곤 친왕, 완안영도 친왕께서 이끈 30만 대군이 산해관까지 백 리가량 남았다고 합니다. 사흘 이내에 승전보를 들을 수 있을 듯하옵니다.”

금태극은 이 소식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심복 태감이 이어서 말했다.

“한 달 이내에 대녕 제국의 주인이 바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주인께서 자금성에 들어가실 수 있지요. 소인, 주인께서 중원으로 들어가 천고일제(千古一帝)가 되시는 걸 미리 축하드리옵니다.”

금태극이 중얼거렸다.

“천고 일제라?”

금태극은 탄식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산해관을 함락하는 것이나 경성을 함락하는 건 별일 아니지. 중요한 건 남방에 있는 그 소군이지. 내가 경성을 차지하는 즉시 우리는 적이 될 것이고, 소군이야말로 내 진정한 적수야. 함대가 육지에 상륙하지 못하는 게 천만다행이군.

두변은 뭐, 다마곤과 완안영도가 알아서 처리하겠지. 산해관 전투에서 이기는 건 사실 승리라고 할 것도 못 되지. 이 전투에서 이기는 건 손바닥 뒤집듯 쉽고, 당연한 거니까.

두변은 아무것도 아니야. 짐은 그를 적으로 생각한 적도 없거늘.’

심복 태감은 금태극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그는 그저 몸을 바짝 낮춘 채, 머리를 조아리면서 자신의 공경함을 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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