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74화 (474/648)

474장: 산해관 대결전 二

산해관 성 안.

방 안에서 숯불이 타고 있었고, 실내는 봄이 온 듯 따뜻했다.

영설이 벗은 몸으로 두변의 품에 안긴 채 크게 호흡을 들이마시면서 말했다.

“정말 덥네요.”

격렬하게 운동을 했으니 방 안이 후끈한 건 당연했다. 게다가 두변의 몸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엄청난 양기가 뿜어져 나왔다.

우우웅. 우우웅!

문득 밖에서 호각 소리가 울려 퍼지고, 탁자 위에 놓인 물잔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장면이지 않은가.

하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은 숨 막힐 듯한 압박감이 없었다.

“여진 대군이 드디어 도착했군. 정말 기다리다 몸에 사리가 날 지경이었어요.”

두 사람은 함께 목욕을 끝낸 뒤 함께 갑옷을 챙겨 입었다.

“부군, 몸조심해요.”

영설 공주가 두변에게 다정하게 입맞춤을 한 후 막사를 먼저 나섰다.

영설 공주 역시 이 전투에서 방어할 곳이 있었다.

두변은 산해관의 성벽 위에 서서 먼 곳을 내다보았다.

여진 대군의 30만 대군이 새까맣게 땅을 메우고 있었고, 계속해서 산해관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이런 광경을 본 지도 이미 꽤 오래 전이었다. 당시에 여여해의 30만 대군도 이렇게 위풍당당하게 끝도 없이 자신을 향해 몰려왔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여진 제국의 30만 대군이 여여해의 30만 대군보다 훨씬 더 막강하다 할 만했다.

쿵, 쿵, 쿵, 쿵.

30만 대군이 끊임없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 시진 뒤, 30만 여진 대군이 모두 산해관 앞에 도착했다. 대군은 세 진영으로 나뉘어 산해관 20여 리 성벽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군의 모습은 마치 검은 바다가 일렁이는 듯했다.

대금 제국의 친왕 다마곤이 멸시의 눈빛으로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두변을 보자마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심양에서 들었을 땐, 두변이 죽었다고 했는데? 어째서 저놈이 멀쩡하게 저기에 서 있는 거지? 설마 대역인가?

아니지. 두변이 살아있다고 한들, 산해관이 쑥대밭이 되는 건 변함없지.’

여진 대군의 수만 병사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화포 200대를 진열했고, 산해관을 향해 조준했다.

“친왕 전하, 모든 화포가 준비되었습니다. 언제든 발포 명령을 내리셔도 됩니다.”

수하가 말하자, 다마곤 친왕이 곧바로 소리쳤다.

“발포하라!”

콰과과과광!

화포 200대가 일제히 발포되면서 경천동지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포탄 200개가 산해관의 옹성 성벽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쿠궁쿵쿵!

산해관 성벽 전체가 흔들렸다.

대녕 제국과 여진 제국의 진정한 운명의 전투, 산해관 전투가 시작되었다.

여진 제국의 발포가 시작됨과 동시에, 두변은 멸용결을 맹렬하게 펼쳤다.

사방 몇 리 이내의 모든 천지 현기가 응축되기 시작하더니, 주위 온도가 급상승하고, 곧이어 무시무시한 구풍 거룡이 하늘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슈아아아아악!

수많은 여진 병사들이 구풍에 휩쓸려서 하늘로 올라가 온몸의 뼈가 부스러졌다.

거대한 용은 여진 진영을 휩쓸며 거침없이 끊임없이 도륙했다.

이때, 여진 병사들이 일제히 큰소리로 외쳤다.

“악룡이 나타났다! 우리 폐하는 금룡이니, 저깟 놈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

여진 대군에 있던 수백 명 주술사 사제가 손을 모으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을 읊기 시작했다.

여진 대군은 지난번과 달리 두려움에 떨지 않았으며, 구풍에 휩쓸려가는 건 운이 안 좋아서라고 생각했다. 구풍에 휩쓸려 간다고 해도 그 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뒤이어 여진 제국의 화포 200대가 미친 듯이 2차 발포를 시작했다. 산해관 옹성 성벽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었고, 성벽 위 병사들은 맹렬한 포화 공격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거의 10분이 지나자, 멸용결의 구풍은 수천 명 여진 병사의 목숨을 앗아간 뒤 소멸하였다.

이 광경을 처음 본 여진 제국의 병장들과 다마곤 친왕은 두변의 능력이 감탄스러웠고 부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30만 대군에게 수천 명의 사상자는 티끌 수준이었다.

다마곤 친왕이 이원에게 눈짓했다.

이원이 대열을 벗어나 발포하는 틈을 타서 목청을 높였다.

“하하하, 두변 아우, 천신이 인간계에 내려온 행세 좀 그만하게. 멸용결이 천지의 힘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네. 아주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이 무공은 오직 한 번만 쓸 수 있지 않나? 네 눈에도 보이다시피, 멸용결은 우리에게 아무런 타격이 되지 않아.

두변 아우, 이제 뭘로 산해관을 지킬 건가? 듣자 하니 자네가 경성에서 산해관을 지킬 수 있다고 허풍을 떨었던데. 뭐라더라? 두변이 있는 한, 산해관도, 경성도 절대로 함락하지 않을 것이고, 대녕 제국도 망하지 않는다고? 참나. 웃기지도 않아. 정말 황당하다고.

역시 무식한 놈이 겁도 없지. 우리 대금 제국의 군대는 여여해의 보잘것없는 군대와 비할 바가 못 돼. 네가 서남에서 여여해를 죽일 수 있던 건, 그쪽에 영웅이 없어서 개나 소나 영웅 행세를 해서이지.

두변 아우, 네가 대녕 제국에서는 떵떵거릴 수 있겠지만, 우리 대금 제국에서, 우리 친왕 전하 두 분 앞에서 네놈은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면 네가 스스로 네 아랫도리를 자르고, 다시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우리 대금 황제의 수발을 드는 태감이 되는 건 어떠한가? 그럼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텐데? 네 아름다운 부인 영설 공주는 숙친왕께 첩으로 선물해드리면 되겠는데?”

말이 끝난 뒤, 이원은 다마곤 친왕이 만족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를 슬쩍 쳐다보았다.

“위세가 부족하다!”

다마곤 친왕이 냉랭하게 말했다.

이원이 이번엔 수만 명 투항한 한군(漢軍)을 지휘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두변 이놈! 스스로 거세하고, 본업을 살려서 폐하의 수발을 들고, 부인을 바치고 목숨을 빌어라!”

수만 명의 투항한 한군이 일제히 외쳤다.

“두변 이놈! 스스로 거세하고, 본업을 살려서 폐하의 수발을 들고, 부인을 바치고 목숨을 빌어라.”

투항한 한군이 수십 번 외치다가 드디어 목이 쉬었을 때쯤, 다마곤 친왕이 그제야 만족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을 공격하라.”

다마곤 친왕이 명령했다.

일순간, 여진 대군 세 개 진영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산해관을 향해 진격했다.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산해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두변의 사지를 찢고, 영설 공주를 생포하라!”

피비린내 나는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이와 동시에, 산해관 북익성 안에 있던 5천 마리 변이 마랑에게 무시무시한 변화가 생겼다.

성 밖에서 고함과 병사들의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5천 마리 마랑들의 눈알이 새빨갛게 충혈되면서 목 부분에서 날카로운 돌기가 촘촘하게 돋아났다.

원래 새까맣던 마랑의 비늘이 전부 암홍색으로 변하더니, 군단의 살기가 하늘을 찔렀다.

마랑들은 도살에 대한 욕망과 오랜만에 피 맛을 볼 거라는 기대에 피가 끓었다.

마랑왕도 흥분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몸 절반에는 이수의 피가 흐르고 있는 데다, 오늘의 일전을 위해서 욕망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어제 종일 굶었다.

완전무장한 두변이 마랑 군단 앞에 나타났다.

5천 마리 마랑이 일제히 두변에게 무릎을 꿇었다.

두변이 거대한 마랑왕에 올라탄 뒤 웃음을 터트렸다.

“다들 굶주려서 참을 수 없을 지경이지? 가자. 나와 함께 살육의 향연을 펼치자!”

두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랑왕은 5천 마리 마랑과 함께 천지를 뒤흔들 기세로 북익성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적의 변이 마랑 군단은 여진 대군의 뒤를 공격해서 산해관 수위군과 함께 앞뒤로 협공을 하게 될 것이다.

여진 대군은 검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산해관 성벽을 향해 밀려들었다.

800미터.

500미터.

300미터.

산해관 성벽 위에 있던 영설 공주, 부홍빙 장군, 이릉이 동시에 명령을 내렸다.

“발포!”

콰과과과광!

화포 30대가 일제 발포하였다.

이들이 발포한 건 역시 산탄이었다.

솨아악.

솨아악.

탄알이 허공에서 폭우처럼 쏟아져 나오고, 여진 대군의 병사들은 마치 비에 맞은 파초처럼 우수수 쓰러졌다. 산탄의 살상력은 언제 보아도 대단했다.

이 시대의 화포는 공성전을 치르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이들이 쓰는 탄환은 폭발하는 개화탄이 아닌지라, 탄환은 발포될 뿐이지 터지지 않는다.

하지만 성을 수비할 때는 탄환만큼 살상력이 강한 무기가 없다.

다만, 이번 전투에서 두변 군대의 화포는 지난번 대룡보에서 여여해 대군을 향해 발포할 때만큼의 살상력을 자랑하지는 못했다.

그때는 화포가 70대 있었고, 지금은 고작 30대였다. 그리고 대룡보의 보벽은 기껏해야 7, 8리였는데, 산해관은 족히 20리가 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여여해의 군대보다 여진 제국의 군대가 훨씬 더 용맹했다.

“죽여라!”

“죽여라!”

여진 제국의 병사들은 산탄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엄청난 기세로 성벽을 향해 밀려들었다.

200미터.

두변의 4만 대군이 여진 대군을 향해 화살을 겨눴다.

슉, 슉, 슉, 슉.

화살이 비처럼 여진 대군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산해관 성벽이 너무 길어서 돌진하는 여진 대군의 진열 간격이 넓었고, 화살의 명중률이 현저히 낮았다.

쿵, 쿵, 쿵.

공성 사다리들이 순식간에 성벽에 걸쳐졌다.

수십 개, 수백 개의 사다리가 성벽에 걸쳐졌고, 여진 제국의 병사들은 개미 떼처럼 성벽 위를 기어올랐다.

두변의 병사들이 성벽 위에서 연석을 아래로 떨구고, 기름칠이 된 길고 굵은 통나무에 불을 붙여서 성벽 아래로 굴리고, 뜨겁게 달군 기름을 솥째로 부었다.

공성전은 아주 빠르게 과열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여진 병사 중 대부분은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원래 야수의 심장을 가졌다는 통고사(通古斯: 퉁구스족)였던 터라, 죽음에 대해 별다른 두려움이 없었다.

어떤 병사들은 몸에 불이 붙거나, 뜨거운 기름에 온몸에 화상을 입었는데도 미친 듯이 사다리를 올랐다.

여진 제국과 처음으로 교전하던 부홍빙은 사력을 다해 성벽을 기어오르는 병사들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여진족 만 명이 모이면 무적이라는 말을 들어보긴 했지만, 그 말을 믿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보아하니, 여진 병사들은 정말로 강했고, 여완완이 통솔하던 성화 군단만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들이었다.

쾅, 쾅, 쾅.

성벽 위의 병사들은 통나무를 끊임없이 떨궜고, 뜨거운 기름을 쉴새 없이 퍼부었다.

궁수들이 화살촉에 불이 붙는 대로 아래를 향해 쏘았고, 여진 병사들은 그야말로 온몸이 불타오르면서도 성벽을 기어올라왔다. 20리가 넘는 성벽 곳곳에 불이 붙었고, 사방에서 새카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죽여라. 죽여라!”

“산해관을 쑥대밭으로 만들자!”

“영씨 주구놈들을 몰살하자!”

여진 제국의 병사들은 지옥과도 같은 광경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더욱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한 명이 나가떨어지면, 곧바로 다른 병사가 뒤를 채우면서, 한참을 미친 듯이 엎치락뒤치락하던 여진 병사들이 드디어 성벽 위를 올랐다.

여진 병사들은 등불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미친 듯이 돌격했다.

“하하하, 대녕 놈들아. 이 몸이 성벽을 올랐으니, 너희는 다 뒈진 것이다. 네놈들의 고환을 내 손으로 터트려서 두변과 똑같은 처지로 만들어주마. 하하하.”

성벽 위를 올라간 여진 병사들은 이미 승리의 서광이 보이는 듯했다.

그들은 자신의 전투력에 자신감이 넘쳤고, 근거리 격투에서는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칼을 뽑아 들고 포효하는 야수같이 달려드는 여진 병사들을 상대했다.

카앙!

절세 지하성의 무사와 여진 제국 병사의 칼이 부딪치면서 고막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구의 절세 지하성 무사는 몸을 움찔했고, 여진 무사는 뒤로 두어 걸음 밀려났다.

쌍방 모두 경악했다.

여진 무사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그는 대녕 제국의 병사들이 힘이 약하고, 죽는 걸 무서워하고, 뭐만 하면 도망친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무시해왔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이 대녕 제국의 주구놈은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어서 죽는 걸 두려워할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체격도 좋고 전투력도 강했다.

여진 병사는 이렇게 강한 대녕 제국 군대를 마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절세 지하성의 무사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계의 기운이 가득한 절세 지하성에서 자란 터라, 기본적인 신체 소질이 지상에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뛰어났고, 지상의 어떤 군대와 맞서 싸워도 전투력 면에서 월등히 우월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여진 무사는 힘 면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았다.

일순간, 쌍방의 전투욕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촤악. 촤악.

두 사람은 간결하지만 힘이 가득 실린 검법으로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로는 지금 완전히 힘과 속도, 전투 경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서걱!

검을 다섯 번째로 휘둘렀을 때, 절세 지하성 무사의 가슴팍 갑옷이 찢어지고, 그 사이로 피가 새어 나왔다.

절세 지하성 무사가 경상을 입은 반면, 여진 무사는 허리째로 몸통이 잘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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