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75화 (475/648)

475장: 산해관 대결전 三

“나보다 강한 건 사실이군. 아주 조금 말이야.”

여진 무사는 이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이와 같은 상황은 20리 넘는 성벽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성벽 아래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다마곤 친왕, 완안영도, 이원은 깜짝 놀랐다.

다마곤 친왕은 여진 무사가 지구 최강의 무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네다섯 살 때부터 전투를 배웠고, 열 살 남짓이 되면 야생 산림에서 사냥을 하며, 야수들과 맨손으로 싸웠다.

여진 무사에 비하면, 대녕 제국의 군대는 전부 겁쟁이였고, 두변의 군대도 결국 대녕 제국의 사람이니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는 두변의 군대가 여진 무사보다 강할 줄이야.

“이러니 두변 저놈이 서남에서 여여해의 수십만 대군을 무찌르고 날뛸 수 있었던 거로군. 두변의 군대는 정말 강해. 우리 여진 무사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군.”

다마곤 친왕이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 여진은 천하의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을 결코 얕봐서는 안 됩니다.”

완안영도가 말했다.

“친왕 전하, 두변의 군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고작해야 3, 4만 명이 다입니다. 우리에겐 30만 대군이 있으니, 저들은 필시 전멸할 것입니다.”

옆에 있던 이원이 말했다.

만약 5천 마리 무적 마랑 군단이 없다면, 이원의 말이 맞을 것이다. 그만큼 여진 무사들의 전투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이를 미리 파악한 두변은 제3군단의 병사들을 단독으로 성벽의 한 구간에 두지 않고, 절세 지하성 무사 세 명과 제3군단 무사 한 명을 함께 배치했다.

제3군단 무사들도 충분히 용감하고 투지가 넘쳤지만, 여진 무사와 1대1로 싸우기에는 실력과 체력이 부족했다. 만약 제3군단에게 한 구간을 단독으로 맡겼다면, 그곳은 인간 지옥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죽여라!”

“죽여라!”

산해관 성벽을 기어오른 여진 무사가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투항한 한군까지 합세해서 성벽을 올랐다.

20리가 넘는 산해관 성벽 곳곳이 병사들의 함성과 고통스러운 신음, 그리고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영설 공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보호하는 십여 명의 고수들과 함께 검을 휘두르며 싸웠다.

이 순간, 그녀의 뇌리에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어젯밤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힘을 빼지 말걸. 체력을 좀 아껴둘걸.’

대금 제국 성도(심양), 주술사 국사의 비밀 실험실.

150세가 넘은 주술사 국사는 벌써 백 번이 넘는 실험을 했지만, 전부 다 실패했다.

실험에 쓰인 백여 명의 여진 무사가 전부 목숨을 잃었고, 검은 얼음이 되어 죽은 사람, 온몸의 혈맥이 터져서 죽은 사람 등 정말 가지각색으로 참혹하게 죽었다.

주술사들은 그렇게 백여 명의 무사들을 죽인 후에야 완전히 깨달았다.

홍마액이 혈맥에 주입되면, 신체 개조가 진행되고, 어마어마한 힘을 얻을 수 있고, 근육이 야수처럼 팽창한다. 하지만 몇 초 뒤에 곧바로 혈맥이 팽창해서 말 그대로 사람이 터져서 죽어 버린다.

흑마액은 홍마액의 끔찍한 효과를 억제하는 데 쓰인다.

두 마약을 혼합하면 몸이 팽창하여 죽지 않는 마혈 무사를 만들 수 있는데, 두 마약의 적당한 조제 비율을 찾기가 무척 힘들었다.

단순하게 5:5의 비율로 맞추게 되면, 마약이 인체에 주입되어도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주술사 국사는 백 가지 이상의 비율로 조제해서 인체실험을 진행했지만, 실험에 참여한 무사 중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대금 제국의 황제 금태극은 국사를 질책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국사에게 괜찮다고, 마혈 무사는 동방 연합 왕국을 상대할 때 쓰일 것이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말해줬다.

산해관 전장.

여진 무사들이 성벽 위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벌써 3만, 4만, 5만 명의 무사들이 성벽 위를 기어올랐다. 이는 이미 두변의 군대보다 많은 숫자였고, 이미 수적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다.

두변의 군대는 완전무장을 한 터라 지금까지의 사상자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병력 균형을 잃게 되면 얘기가 달라지게 된다.

6만.

6만 적군이 병력의 균형점이었다.

두변의 4만 대군이 여진의 6만 대군을 상대하는 게 병력의 균형점이고, 이 균형점을 넘어버리면 두변 군대의 사상자가 속출할 것이다.

그리고 성벽 위로 올라온 여진 무사의 병력이 6만을 넘어가게 되면, 방어선 전체가 위태로워진다.

두변의 5천 변이 마랑 군단이 처음부터 돌격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효과를 최대까지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반도이격(半渡而擊: 적이 강을 다 건너기 전에 공격한다.) 전술이 바로 마랑 군단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

반도이격이란, 여진 제국의 무사들이 쉽게 성벽을 떠나지 못하게 성벽으로 최대한 끌어들인 뒤, 두변과 5천 마랑이 뒤를 급습해서 그들을 진퇴양난으로 만드는 것이다.

7만, 8만!

산해관 성벽을 기어오르는 여진 대군이 점점 더 많아졌고, 부홍빙, 이릉, 영설 공주 세 사람이 이끈 4만 수비군은 이미 너무나 위태로운 상태였다.

“이겼습니다!”

이원이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

다마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긴 싸움이지. 천칭이 이미 우리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으니.

저 4만 군대가 자신들의 2배에 달하는 여진 무사들을 어찌 감당할까.

이제 모든 건 시간에 맡길 뿐.

산해관 방비선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니, 극한에 달하면 방비선이 무너지게 되어있지. 그때가 되면, 여진 대군은 홍수처럼 산해관으로 밀려들어 가면 그뿐이고.

이원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젠 천신이 내려온다고 해도 두변의 패국을 어찌하지 못하겠지요. 산해관은 무조건 함락될 것입니다.

참나! 두변 저놈이 자기가 살아있는 한, 산해관도, 경성도 잃지 않고, 대녕 제국도 망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허풍을 떨다니요. 이제 전군 전멸을 앞둔 두변이 비겁하게 도망칠지, 전장에서 죽을지가 궁금합니다.”

이원이 다마곤 친왕에게 물었다.

“친왕 전하, 만약 두변이 투항한다면, 그를 받아들이실 건지요?”

다마곤 친왕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안 받는다. 그놈은 불길한 놈이야.”

이원이 신나게 대꾸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두변이 죽는 건 이미 정해진 것이고, 친왕 전하께서 직접 그놈의 목을 자르시는 것도 그놈의 영광이지요.”

다마곤 친왕이 장군기를 휘두르며 외쳤다.

“전군 돌격하라. 최선을 다하여 한 시진 내로 산해관을 점령한다.”

다마곤 친왕의 명령을 듣자, 진영에 서 있던 십여만 대군도 즉시 산해관을 향해 돌격했다.

이게 바로 다마곤 친왕의 전투 취향이었다.

처음엔 첩첩산중으로 끊임없이 병사들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적군이 지칠 때쯤 전력을 다해 총공격하고 속전속결로 전투를 끝내는 것.

산해관의 20리 넘는 성벽은 원래의 색깔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검은 개미떼, 아니 물결로 뒤덮였다.

성벽 아래에 있던 십여만 대군이 사다리를 타고 쉴 새 없이 성벽을 오르고 있었다.

성벽 위에는 8, 9만 대군이 두변의 4만 대군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여진 병사들의 함성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두변의 대군은 쌓아 올린 계란처럼 무척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드디어 산해관 성벽과 4만 대군을 이용해 적의 30만 대군을 성벽으로 모두 끌어당겼다. 이제 저들은 퇴각하고 싶어도 몸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마곤 친왕이 말했다.

“끝났군.”

이원이 말했다.

“두변 그놈도 끝장입니다. 지금 그놈의 면상을 한번 보고 싶군요. 안하무인이던 그놈이 이 처참한 패배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이때, 다마곤 친왕은 등 뒤에서 다시 한 번 구풍이 불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마곤과 완안영도도 모두 무공 고수인지라, 본능적으로 위험한 기운을 감지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고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저도 모르게 숨도 쉬지 못했다.

이 세상에 저렇게 빠른 기병이 있었나?

저 새까만 파도 같은 것들은 뭐지? 지옥의 파도인가?

두변이 이끈 5천 마리 마랑 군단이 여진 대군의 뒤쪽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했다.

마랑 군단의 속도는 정말 놀라웠다.

평범한 기병의 돌격 속도는 시속 3, 40킬로미터에 불과한데, 마랑 돌격 속도는 놀랍게도 시속 100킬로미터로 돌진하고 있었다.

번개처럼 빠르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이는 것이 아닐까.

다마곤과 완안영도는 숨을 쉬는 것도 까먹을 지경이었다.

저, 저 물건들은 뭐지?

늑대야?

세상에 저렇게 거대한 늑대가 어딨어? 7, 8척 높이에 14척은 넘는 신장이라니. 군마보다 훨씬 더 크잖아?

늑대인데 왜 몸에 털 한 가닥 보이지 않는 거지? 암홍색으로 보이는 저건 설마 비늘인가?

마랑 군단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고, 목에는 거꾸로 솟은 날카로운 돌기가 가득했다.

5천 마리 거구의 마랑이 돌격하면서 천지가 진동할 것 같은 소리가 날 것 같지만, 오히려 마랑 군단은 암살자처럼 소리 없이 빠르게 달렸다.

다마곤 친왕이 황급히 외쳤다.

“대군은 후방을 주시하고 대열을 재정비하라!”

여진 대군의 20만이 넘는 병력이 산해관 성벽에 붙어있는 터라, 후방에는 4만 병력만 남아 있었다.

다마곤 친왕의 명령을 들은 후방 병사들이 즉시 방패를 쥐고 창을 들었다.

방패로 만들어진 벽 사이로 뾰족한 창이 마랑 군단을 향했다.

변이 마랑 군단의 속도는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들은 가속도가 붙어서 점점 더 빨리 달렸고, 마지막에 돌격하는 속도는 초속 30미터에 이르렀다.

800미터!

500미터!

0미터!

무시무시한 마랑 군단은 4만 여진 대군이 경악할 틈도 주지 않고 그들의 눈앞에 들이닥쳤다.

여진 대군의 대열은 지푸라기처럼 힘없이 무너졌다. 고작 4만 명의 방패진으로 5천 마리 변이 마랑 군단의 돌격을 막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변이 마랑은 한 마리당 2톤에 달하는 무게였고, 초속 30미터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이 정도의 돌격은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정도였다.

게다가 변이 마랑의 골격과 비늘은 방패처럼 단단해서 어떤 충격에도 끄덕이 없었다.

쿵, 쿵, 쿵, 쿵.

마랑 군단이 여진 대군의 방패진을 손쉽게 깨트렸다.

여진 대군의 방패는 마랑 군단에 부딪히는 즉시 튕겨 나가는 게 아니라 산산조각이 났다.

거구의 변이 마랑들은 그대로 여진 대군을 지르밟고 달려나갔다.

마랑의 발길질에 튕겨 나가든, 동료들에게 밟혀 죽든, 여진 병사들은 사지 멀쩡하게 죽은 사람이 없었다.

전투욕으로 가득찬 변이 마랑은 발톱이 더욱 날카롭고 길어진 터라, 그냥 사람을 밟고 지나가도 그 사람의 몸이 찢어졌다.

몇 분 뒤, 여진 제국의 4만 대군이 완전히 무너졌다.

5천 변이 마랑은 4만 대군을 밟고 지나갔음에도 돌격을 멈추지 않고 산해관 성벽까지 돌진했다.

그리고 진짜로 살육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마랑들의 입, 발톱, 몸통 전체가 절대 무기였다. 마랑들은 엄청난 속도로 여진 병사들을 들이받았고 날카로운 이빨로 닥치는 대로 물어뜯었다.

날카로운 발톱은 여진 병사들의 가슴과 배를 거침없이 갈랐고, 그들의 오장육부를 뜯어냈다.

여진 무사들은 확실히 용감했다. 그들은 이런 공포스러운 광경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고, 칼을 휘두르며, 화살을 쏘며 마랑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변이 마랑의 비늘, 뼈, 근육의 경도는 그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단단했다.

마랑이 화살에 맞으면, 바늘로 찌른 듯한 작은 상처가 나고, 피를 아주 조금 흘릴 뿐이었다.

마랑을 칼로 공격하면, 칼날이 비늘을 뚫고 살을 벨 수야 있겠지만, 칼날이 닿을 수 있는 깊이는 반 촌 정도가 전부였다.

그리고 병사들이 변이 마랑을 향해 칼을 휘두를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었다. 마랑들은 병사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지 않고 곧장 그들을 찢어버리기 때문이다.

피투성이가 된 변이 마랑이 있긴 했지만, 마랑들은 피를 흘리면 흘릴수록 전투력이 상승했고, 더욱더 흉폭해진다.

성벽 아래에 있던 여진 병사들이 잘려나가는 벼처럼 순식간에 조각조각 쓰러져갔다.

더욱 무서운 건, 변이 마랑이 공성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너무 똑똑해서 대열을 나눌 줄도 알았다.

1천 마리 마랑이 산해관 성벽을 올랐다. 성벽 위에서 산해관을 지키던 두변의 군대는 고전을 치르고 있었다.

두변의 군대도 마랑들을 처음 봤을 때는 오금이 저려왔다.

마랑들이 성벽을 오르는 기세만 보았을 때는 꼭 아군과 적을 구분할 줄 모르는 난폭한 야수나 이수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절세 지하성의 무사들은 지하성에서 벌어졌던 이수 전투를 기억하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마랑들이 성벽을 오른 바로 다음 순간, 두변의 군대는 자신들이 과한 걱정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변이 마랑들은 성벽 위를 오르자마자 여진 병사들만 골라서 죽였고, 두변의 군대는 절대로 해치지 않았다.

심지어 공격당하고 있던 두변의 병사들을 보호하고 엄폐하며 그들과 협력했다.

두변의 군대는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들은 난폭한 야수처럼 보이는 변이 마랑이 이렇게 영특하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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