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77화 (477/648)

“미안하지만, 나는 주인의 전투 괴수가 아니라 주인의 애완 동물이다.”477장: 소문

방검지는 질투심이 극에 달해서 피를 토하고 싶은 지경이었다.

“죽여라. 저놈을 죽여. 어떤 수단을 써도 좋으니, 저놈을 죽이라고.”

방검지가 미친 듯이 외치면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무공은 1품 고수 수준이었지만, 그의 곁에는 항상 종사급 강자가 몇 명씩 있었다.

‘십여 명 고수가 최선을 다한다면, 저 문어 괴수를 무찌를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그건 그들의 헛된 희망이었다.

문어 괴수의 치명적인 무기는 촉수가 아닌 신경 독소로, 대종사급 고수들조차 감당해내지 못했던 걸 이들이 감당할 리 만무했다.

문어 괴수는 방검지의 눈앞에서 전신이 마비된 병사들을 검까지 함께 차례로 먹어치웠다.

정말 끔찍한 광경이었다.

죽는 건 그렇다 쳐도, 무수히 많은 이빨이 아직 의식이 있는 사람을 통째로 으적으적 집어삼키는 광경은 몹시나 잔인했다.

문어 괴수는 십여 명 고수를 맛있게 먹은 뒤, 방검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방검지도 신경 독소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지만,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의 공포감에 온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방검지가 공포에 떨면서 아랫도리를 적시기 직전, 문어 괴수가 신이 난 듯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보아하니 너는 내 주인의 적이고, 여기서 우두머리인 것 같으니까 너를 죽이지 않고 주인께 바치마.

어쩌면 주인께서 너를 단단히 혼내준 뒤에 죽일지도 모르겠다. 주인을 기쁘게 해드리면, 나를 몇 번 더 보러 오실지도 몰라.”

문어 괴수가 방검지를 촉수로 말아 올렸다.

동방 연합 왕국 전함의 포격이 사라지자, 두변의 군대와 변이 마랑 군단은 해변 인근의 성벽을 무사히 지켜낼 수 있었다.

그리고 변이 마랑은 다시 미친 듯이 대살육을 시작했다.

보이는 대로 밟고, 닥치는 대로 뜯고, 말 그대로 마랑들의 성연이 열리고, 여진 병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여진 제국의 사상자는 육안으로 가늠할 정도로 몇 배수로 증가했다.

이 세계에서 제일 잔인한 게 바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뒤에, 살짝 희망을 품게 했다가 완전히 절망케 하는 경험일 것이다.

동방 연합 왕국의 전함이 나타났을 때, 특히 산해관의 성벽이 유탄에 의해 부서졌을 때, 다마곤 친왕은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비록 대금 제국이 대녕 제국의 경성과 북방을 점령하면, 동방 연합 왕국과는 즉시 적대적인 관계가 되지만, 적어도 두변을 죽이는 건 공통적인 목표이니 임시 협력 관계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다에서 갑자기 거대한 식인 문어 괴수가 나타나서 전함 하나를 통째로 파괴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다마곤 친왕은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자칫하면 뒤로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다마곤 친왕이 눈을 감은 채 한참을 서 있다가, 천천히 눈을 뜨면서 읊조렸다.

“우리가 졌다.”

완안영도도 말문이 막혔다.

이원은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었고, 광기에 가까운 질투심이 샘솟았다.

무려 30만 대군인데!

대금 제국 전체 병력의 절반에 달하는 숫자인데!

이렇게 패배한다고?

다마곤 친왕이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퇴각하라!”

퇴각을 알리는 징 소리가 천지를 뒤흔드는 병사들의 울부짖음과 함성에 묻혀버리자, 병사가 징을 내팽개치고 호각을 가져와서 있는 힘껏 불었다.

1천여 명 여진 고수가 다마곤, 완안영도, 이원 등을 이끌고 서둘러 퇴각했다.

성벽 아래에 있던 여진 병사들도 황급히 후퇴했다.

성벽 아래에 있던 여진 병사들은 그나마 후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성벽 위에 있는 병사들은 도망칠 수도 없어서 마랑 군단에게 몸이 뜯기거나, 두변의 병사들의 칼에 찔려 죽었다.

패전한 병사들은 산이 무너지듯 패퇴했다.

여진 병사와 투항한 한군이 대열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도망치면서, 산해관 북쪽에는 여진 패잔병이 가득했다.

두변은 다마곤 등을 추격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현기가 전부 소진된 상태였다.

변이 마랑의 전투력이 무시무시한 건 맞지만, 다마곤, 완안영도 같은 정상급 종사 앞에서는 지금으로서는 대처할 수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한 시진 뒤, 해가 저물고 대전이 끝났다.

산해관 전장은 여진 병사들의 시신으로 산을 쌓았고, 그들의 피로 강을 이뤘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여진 병사는 한 명도 없었다.

이번 전투로 여진 대국이 잃은 병사는 몇 명일까?

정확히 파악할 순 없지만, 대략 추측해보면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고, 최대 10만 명이 도망쳤을 것이다.

두변 군대의 사상자 집계가 끝났다.

총 4만 1천 대군 중에서 4천 명이 전사하였고, 3천 명은 중상, 1만여 명은 경상을 입었다.

5천 변이 마랑 군단에서 4백여 마리가 죽었고, 다친 마랑이 천 마리 가까이 됐다.

전사한 4백 마리 변이 마랑 중, 절반이 동방 연합 왕국의 유탄에 맞아 죽었다.

두변은 그 숫자를 듣고 마음이 저며왔다.

특히 변이 마랑은 한 마리가 죽으면 다시 보완할 방법이 없으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문어 괴수는 두변에게 예쁨을 받기 위해서 만신창이가 된 동방 연합 왕국의 신식 전함을 해안까지 끌고 왔다.

두변은 전함에 설치된 화포를 모두 철거하고, 탄약까지 전부 다 육지로 운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함은 이미 문어 괴수에게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고, 북쪽에는 선박 수리 공장이 없으니 아예 폐기하기로 했다.

문어 괴수가 촉수에 힘을 풀자 방검지가 땅으로 철퍼덕 떨어졌다.

“방검지?”

두변은 한참 뒤에야 방검지를 알아보았다.

방검지는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날 못 알아봐? 방계의 자랑스러운 후손인 나를 한 번에 못 알아본다고?’

이건 두변 탓이 아니었다.

두변은 방검지와 딱 한 번 대면했고, 두변에게 방검지는 그리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두변, 당장 나를 놔주어라. 그렇지 않으면 동방 연합 왕국의 보복을 피치 못할 것이다.”

두변이 방검지를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이게 동방 연합 왕국의 최신 전함이고, 저것들은 최신 화포냐?”

방검지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문어 괴수 팔조가 있어서 다행이지, 팔조가 아니었다면 두변의 군대가 얼마나 더 힘든 싸움을 치렀을지 안 봐도 뻔했다.

동방 연합 왕국의 소군은 공들여 만든 신식 전함이 출정하자마자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심정일까?

“두변, 당장 나를 풀어줘라. 조건이 있다면 뭐든 말해라. 내가 다시 경고하는데. 네놈은 동방 연합 왕국의 보복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두변이 피식 웃었다.

“그래?”

두변이 검을 뽑아서 방검지의 아랫도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제 아랫도리가 차가워지는 게 느껴지는 순간, 방검지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제 아랫도리는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으아아악!”

방계의 기린아 방검지가 처량하게 비명을 질렀다.

“두변, 네놈이 감히. 감히.”

방검지는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두변을 엄당의 주구놈이라고 욕하던 자신이 순식간에 고자가 되다니!

“두변, 딱 기다려라! 우리 동방 연합 왕국이 보복하러 달려올 것이다. 너는 우물 안에 든 개구리고, 우리 앞에서는 개미만도 못한 존재다. 우리가 네놈에게 파멸적인 힘이 뭔지 똑똑히 보여주마. 모조리 다 죽여버릴 것이다. 싹 다 죽여버릴 거라고.”

방검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두변은 담담하기만 했다.

“잘됐네. 돌아가서 네 아비 방탁, 그리고 두회에게도 알려라. 내가 곧 군대를 이끌고 남경으로 갈 테니, 목을 깨끗하게 잘 씻어 두라고. 내 검이 더러워지면 곤란하잖아?”

방검지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이지 마라. 네놈은 동방 연합 왕국이 얼마나 강대한지 몰라서 그런 허풍을 떠는 것이지. 네놈은 우물 안에 든 개구리니까.”

두변이 말했다.

“내가 한 말 잘 기억했지? 남경에 돌아가면 내 말을 꼭 전해라.”

방검지는 살았다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거세당한 게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죽이지 않는 걸 보니 두변은 자신을 죽일 배짱이 없는 것이구나 싶었다.

“알겠다. 내가 친히 전해주마. 두변, 동방 연합 왕국의 보복을 기다려라.”

방검지가 냉소를 지었다.

이때, 두변의 검이 방검지의 목을 겨눴다.

방검지가 경악하면서 소리쳤다.

“나한테 말을 전하라고 했잖으냐.”

두변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랬지. 네놈의 머리와 거기를 잘라서 남경에 계신 네 아비에게 전해주려고 했지.”

“내 머리를 잘라버리면, 어떻게 말을 전하라는 것이냐!”

“그거야 그쪽 사정이고.”

두변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검지의 목을 잘랐다.

“두변, 날 죽이지…….”

방검지는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상자를 하나 가져오너라.”

두변의 말에 수하 하나가 상자를 건넸고, 두변은 바닥에 떨어진 방검지의 머리통과 남근을 상자 안에 담았다.

“남쪽은 벌써 많이 따뜻해졌을 것이다, 가는 길에 썩지 않게 석회로 잘 처리해라. 이걸 남경, 방탁에게 전달할 방법을 찾아서 보내라.”

두변이 명령했다.

대녕 제국 경성.

영덕제가 황자 세 명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영종오, 짐의 황자들을 대종사에게 맡기겠습니다. 이들을 데리고 서남으로 조심히 가세요.”

“폐하, 아직 산해관이 함락되지 않았습니다. 두변이 이길 수 있다고 했으니 분명 이길 것입니다.”

영덕제의 말에 영종오 대종사가 대답했다.

“대종사, 이길 수 없습니다. 여진 제국의 병력은 두변 공작이 가진 병력의 열 배입니다. 거기다 대직경 화포도 200대나 있다고 하잖습니다. 게다가 동방 연합 왕국까지 참전할 수도 있으니, 이 전투에서 이기는 건 불가능합니다.”

영종오는 황제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논리적으로 두변이 이길 수 있다는 변론을 할 수 없었다.

“산해관이 함락되면 이곳에서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짐은 군주이니 이곳에서 사직하는 게 당연하지만, 대녕 제국의 후계자까지 죽어선 안 됩니다. 우리 영씨의 뿌리가 없어지면 안 되지 않습니까. 황자들을 꼭 서남으로 데려가 주세요.”

“신, 명 받들겠나이다.”

영종오 대종사가 큰절을 올리면서 대답했다.

지금의 경성은 아비규환이었다.

경성에 남아 있는 방계 세력이 온갖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있었다.

“산해관이 이미 함락됐다고 하던데!”

“두변은 이미 죽었고, 다마곤이 그자를 오마분시(五馬分尸)했대.”

두변이 이길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던 사람이 꽤 많았지만, 방계가 퍼트리는 유언비어는 점점 더 많아지기도 하고 상세해지기도 했다.

게다가 양측의 병력 차이가 워낙 큰지라, 두변을 믿었던 백성들도 하나둘씩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유언비어는 날이 갈수록 더욱 다양해졌다.

“두변이 죽지는 않고 투항했다고 하네. 자기 자신을 완전히 거세하니까, 여진 제국의 다마곤 친왕이 그의 투항을 받아들였다고 말이야. 두변이 벌써 여진 황제의 환관이 됐대. 그리고 두변이 영설 공주를 여진 황제에게 바쳐서, 영설 공주는 여진 황제의 귀빈이 됐다고 하더군.”

“말도 안 되는 소리! 두변 공작은 절대로 투항하지 않으실 분이지!”

“두변이 투항하진 않았는데, 이미 머리가 잘렸다는데? 그의 군대도 전멸했고, 산해관이 함락되어서 여진 제국의 수십만 대군이 이리로 오고 있다는 말도 있어.”

“산해관에서 도망쳐 나온 사촌 형님이 있는데, 산해관이 함락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대. 두변 공작이 패배했고, 군대도 전멸했다고. 여진 병사가 대녕 제국의 산천을 새까맣게 뒤덮으면서 경성으로 오고 있대.”

점점 더 많은 백성이 경성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방계의 밀정이 경성의 무뢰배들을 모아서 경성을 혼란에 빠트리면서, 망국의 그림자와 끝없는 절망이 경성의 하늘을 뒤덮었다.

바로 그때, 기마병 한 명이 동북 방향에서 경성으로 질주해 들어왔다.

기마병이 말에 박차를 가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긴급 군보! 긴급 군보! 산해관 대첩! 두변 공작께서 적군 20만을 무찌르셨고, 여진 제국이 대패했습니다!”

기마병은 성문 앞에서 멈추지 않고 곧장 경성 안으로 질주해 들어갔고, 대첩 소식을 목이 터지라 외쳤다.

두변 공작이 대승을 거둬?

공포와 혼란에 빠졌던 경성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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