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79화 (479/648)

479장: 피를 토한 금태극 二

악착같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던 노인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내 아들아, 내가 제일 사랑하고 아끼는 내 아들, 내 후계자야.

네가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다니. 아직 빛도 발하지 못한 나이에 가버리다니!

두변, 네놈이 감히 내 아들을 죽여? 내 아들을 죽였어?”

방탁이 목이 쉬어라 외쳤다.

“두회, 자네가 낳은 잘난 아들 좀 보게. 아주 대단하군, 아주 대단해!”

대녕 제국 방계의 지도자 방탁은 결국 참을 수가 없어서 입에서 피를 뿜어내고 말았다.

두회가 조용히 방탁에게 손수건을 건네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탁 옹, 내가 이미 백 번도 넘게 말했잖소. 내가 이번 생에 가장 후회되는 것이 바로 두변 그놈을 낳자마자 익사시키지 못한 것이오.”

방탁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북명검파는? 북명검파에서 그놈을 죽이러 사람을 보냈다고 하던데, 왜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오?”

“대종사 네 명이 두변을 추살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전부 행방불명되었다는군요. 그래서 두변이 아직 살아있는 게지요.”

“가만두지 않아! 보복해야 해! 내가 기필코 복수하고 말 테다.”

방탁이 이를 부득 갈면서 외쳤다.

방탁은 찻물을 한 입 들이킨 뒤, 거칠게 입을 헹구고 피가 섞인 찻물을 바닥에 뱉었다.

방탁은 지금 예의고 체통이고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두변이 지금 서남에 있지 않고, 제일 강한 군대도 산해관에 있소. 대군은 즉시 서남으로 상륙해야 해. 10만, 15만, 20만을 그리로 보내서 서남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려야 한다고!”

“탁 옹, 우리에게는 개전권이 없다는 걸 알고 계시잖소. 그리고 광동, 복건, 양강에 있는 동방 연합 왕국의 군대를 다 합해도 15만뿐이오. 그들도 본토를 방어해야지요. 강남 전체가 동방 연합 왕국의 경제 요충지니까요. 매년 이곳에서 운반되어 나가는 비단, 자기, 찻잎의 값이 무려 수천만 백은이오.”

두회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두회, 당신은 배 멀미를 하지 않으니, 당신이 직접 소군 전하를 한 번 뵙고 오시오. 우리 의견을 강력하게 말해야 하오. 두변이 이렇게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게 해선 안 된다고. 지금이라도 우리가 움직여서 그놈의 서남을 파괴해야 한다고. 소군 전하께 즉시 군대를 상륙시켜서 그놈의 근거지를 없애 달라고 전하시오.”

양강 총독 두회와 민월(閩粵: 복건성과 광동성) 총독 고정은 남방의 2대 거물인데, 고정은 정무가 너무 바빠서 시간을 따로내기가 힘들었다.

방탁이 이어서 말했다.

“소군께서 나서주신다면, 두변 그놈은 분명히 죽을 것이오. 그리고 동방 연합 왕국의 최신 실험 전함도 두변 그놈이 파괴했고, 화포도 두변의 수중에 들어갔으니, 동방 연합 왕국이 두변을 칠 구실은 충분하오. 소군께 모든 걸 보고하시오. 당장 대녕 제국에 대한 전략 방향을 수정하고, 두변이라는 놈을 제거해야 한다고.”

“소군께서는 지금 여송성(呂宋城)에서 대영 왕국의 왕세자와 담판을 진행하고 있소. 지금 배를 타고 떠나면, 열흘 정도면 그곳에 도착할 것이오.”

“만약 소군께서 서방 세계와의 담판에 실패하신다면, 미주(美洲) 대전이 발발된다는 걸 뜻하겠지요?”

“그러지 않길 바라야지요. 소군 전하의 시선이 서방 세계에만 집중되어버리면, 두변이라는 악룡은 끊임없이 강해지기만 할 뿐이오.”

두회의 물음에 방탁이 대답했다.

며칠 전, 대금 제국 성도.

대금 제국 황제 금태극은 산해관 전투에 무척 무관심했고, 나중엔 심복 환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산해관을 점령했을 때 나한테 한 번 알리고, 경성을 공격할 때 한 번 알리거라. 성가시니까 그쪽 일로 짐을 방해하지 말거라.”

금태극의 기준으로는 다마곤과 완안영도가 산해관을 점령하고, 경성을 점령하는 건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었고, 당연한 일이었다.

여진 제국에는 30만 대군과 200대 화포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여진 제국의 무사가 어디 보통 무사인가?

여진 무사 한 명이 대녕 제국의 병사 두 명, 세 명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을.

다마곤과 완안영도는 초일류 장군들이니, 그들이 산해관을 접수하는 것도, 경성을 함락시키는 것도 이변이 생기지 않을 일이었다.

대신 금태극은 지금 마혈 무사를 개조하는 데에 온 정신을 쏟고 있었다.

주술사 국사가 벌써 수백 개의 방안을 시도했고, 수백 명의 여진 무사가 목숨을 잃었지만, 실험에는 아무런 진전이 보이지 않았다.

금태극은 자신이 경성을 점령할 때가 바로 동방 연합 왕국과 적이 되는 순간임을 잘 알고 있었다.

동방 연합 왕국은 남경에 있는 연왕이 대녕 제국의 정통 황제가 될 수 있도록 금태극을 이용해서 대녕 제국을 망하게 할 뿐이었다.

금태극은 두변을 한 번도 적수로 생각한 적 없었다.

그에게 유일한 적은 동방 연합 왕국이었고, 자신의 관심을 끌려면 두변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뿐이었다.

금태극이 거대한 지도 앞에 서서 강남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곳이야말로 대녕 제국의 진정한 중심지요 번화가였다. 강남 일대는 셀 수 없이 많은 인구, 금은보화, 곡식, 비단과 자기가 있는 곳이었다.

이때, 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대환관 덕주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왜? 산해관을 점령했다고? 다마곤과 완안영도의 속도가 꽤 빠르군.”

금태극은 덕주의 표정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대로라면 덕주는 뛸 듯이 기뻐하면서 과장된 아첨을 떨었을 텐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무척 황공한 모양이었다.

“매를 통해 소식을 전해왔는데, 산해관 전투에서 우리가 패했다고 합니다. 30만 대군의 사상자가 과반이 넘었다고 합니다.”

덕주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금태극이 흠칫 놀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디서 그딴 요언을 들은 게냐. 다마곤과 완안영도가 등신도 아니고, 이런 전투에서 진다는 게 말이 되느냐? 가서 그 소식을 전한 매를 죽여버리고, 매를 훈련시킨 놈도 죽여버려라.”

덕주가 머리를 조아렸다.

“예, 알겠습니다.”

‘패배라니? 30만 대 4만인데, 우리가 질 리가 있나.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지!’

금태극은 덕주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이 무척 조급하고 불안해졌다.

수많은 군보가 끊임없이 전달되었다.

비둘기 전서이든 매 전서이든 내용은 전부 다 똑같았다.

산해관 전투 대패.

결정적으로, 금태극의 아들인 대패륵호과가 미친 듯이 말을 바꿔 타면서 산해관에서 심양성까지 이틀 만에 달려왔다.

“황아마(皇阿瑪: 자식들이 아버지인 황제를 부르는 호칭. 阿瑪는 만주어로 아버지를 뜻함)! 우리가 패배했습니다.

두변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자의 군대는 너무도 강력합니다. 그자의 군대는 여진 무사들보다 강하고, 무시무시한 괴수 군단까지 있습니다.

우리 30만 대군 중, 20만이 죽었고, 도망쳐서 살아남은 병사 중 복귀한 자가 10만도 안 됩니다.

동방 연합 왕국이 최신 전함으로 산해관을 공격했는데, 엄청 커다란 문어 괴수가 그 전함을 파괴했고, 우리의 마지막 희망마저 부숴버렸습니다.”

금태극의 모든 환상이 깨져버렸다.

금태극 가슴에서 불덩어리가 타오르는 듯하고 현기 내력이 오장육부를 사정없이 긁어내렸다.

‘패배했다고? 정말로 패배했어? 어찌 그럴 수가 있지? 무려 30만 대군인데? 그중 절반이 여진 제국의 주력 군대인데?’

가슴 전체를 칼에 맞은 듯 흉통을 느끼던 여진 패주, 대금 제국의 황제 금태극은 몸에서 솟구치는 불덩이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피를 토하고 말았다.

푸아악!

십여 일의 항해 끝에, 두회는 여송성에 도착했다.

동방 연합 왕국의 소군은 아직도 대영 왕국의 왕세자와 격렬한 담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두회는 총독부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나무와 잔디가 푸르렀고, 건축 양식도 대녕 제국과 완전히 달랐다.

두변이 이곳에 있었다면, 아마 이 건물들의 건축 양식이 서양적이고, 현대적이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두회가 소목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소 대인, 소군 전하께 대녕 제국 양강 총독 두회가 뵈러 왔다고 통고해주시오. 무척 긴박한 군사 보고가 있소이다.”

다른 지구의 역사에 따르면, 지금의 영국은 스튜어트 왕조 말기이고, 찰스 1세가 스코틀랜드를 정복하려고 시도할 때였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찰스 1세는 의회와의 내전을 시작하고, 십여 년 후에는 작두대에 올라 공개 처형되는 최초의 유럽 군주가 된다.

하지만 이 지구에서는 모든 역사가 바뀌었다.

대영 왕국은 이미 부상하기 시작했고, 이미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를 통치하고 있으며 미주 대륙에 상륙하여 식민지화를 시작했다.

아직 18, 19세기의,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만큼 강대해지진 않았지만, 이미 세력을 많이 확장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 지구의 유럽은 17세기의 유럽보다 더욱 통일되어 있었고, 많은 왕국과 공국이 성로마 제국 동맹 아래에 있었다.

이 지구의 성로마 제국도 다른 지구의 신성 로마 제국보다 훨씬 더 강대했다.

“방 전하, 전하께서 동방 세계를 이끌고 전 세계의 선두로 이끌려는 소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전하께서 이미 잘하고 계시지요. 이미 동방 연합 왕국을 세계의 3대 패주 중 하나로 만드셨으니까요.”

대영 왕국의 왕세자 찰스 캐논이 말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왕세자 찰스 캐논은 다른 지구 역사상의 찰스 2세가 아닙니다. 찰스 2세의 현재 나이는 3, 4살에 불과하여 아시아를 방문할 수도 없고, 동방 연합 왕국의 담판에 참여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존경하는 방 전하, 미주는 우리의 식민지고, 개발된 곳이든, 되지 않은 곳이든, 발견된 곳이든, 되지 않은 곳이든, 전부 성로마 제국 연맹의 식민지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군대가 미주에 상륙한다는 건, 서방 세계 전체에 대한 도발이지요. 원래 우리는 방 전하가 우리의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약혼녀 에인젤 양도 얼마 전에 우리 궁전에 와서 담소를 나누다 가셨고요. 심지어 몇 개월 전만 해도 우리의 무역 액수가 역대 최대를찍었습니다.”

동방 연합 왕국 소군 방진이 말했다.

“왕세자 각하, 저는 성로마 제국의 위엄에 도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각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친구이기에 제 약혼녀가 서방 세계에 상주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 대영 왕국과 다른 성로마 제국 연맹의 존귀한 구성원들이 개발한 곳은 미주의 북쪽뿐입니다. 제 군대가 상륙한 곳은 처녀지로, 성로마 제국의 식민지 범위를 침범하지도 않았어요.”

“방 전하, 이미 제가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요. 신대륙 전체가 우리 성로마 제국의 식민지 범위입니다. 개발됐든, 개발되지 않았든요. 사실 당신의 군대가 오스트레일리아와 주위 육지를 관장하고 있는 것도 몹시 불쾌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우정을 위해서 분노를 참았지요. 그런데 이번에 당신이 미주 대륙에 상륙한 건, 이미 전쟁을 반쯤 시작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왕세자 찰스 캐논이 홍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어갔다.

“방 전하, 이렇게 맛있는 찻잎은 정말 하느님이 당신에게 내린 은총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매년 당신에게서 찻잎을 얼마나 많이 사들입니까? 거래액이 아마 1천만 은자, 아니, 더 많지요? 잊지 마십시오. 만에 하나 전쟁이 발발되면, 당신은 서방에서 얻어가는 많은 이득을 전부 잃게 됩니다. 그리고 반년 전에 성화교 세계와 썩 유쾌하지 않은 인도양 해전을 치르지 않았습니까? 내가 기억한 게 맞다면, 그때 해전이 끝났던 것도 성로마 제국의 태자 전하께서 중재해주신 덕분이지요. 이 세상에 패주가 딱 세 명인데, 한 번에 두 명에게 폐를 끼치실 겁니까?”

이때, 소목지가 밖에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전하, 대녕 제국의 양강 총독 두회가 급한 군사 보고가 있다면서 전하를 뵙길 청합니다.”

동방 연합 왕국 소군 방진이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왕세자 전하, 오늘의 담판은 여기까지 하지요. 전하를 위해서 편안한 연회와 즐거운 무도회를 준비했으니, 제가 전하께 잘 보일 기회를 한 번 주십시오.”

대영 왕국의 왕세자가 대답했다.

“영광입니다. 사실 잘 보여야 하는 쪽은 나인데 말이죠. 전하는 이 세계에서 3대 강자 중 한 명이고, 나는 아직 배우는 단계에 불과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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