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80화 (480/648)

480장: 소군 전하

“신, 두회. 전하를 뵙습니다.”

양강 총독 두회가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올렸다.

“말하라.”

방진이 겉치레 없이 말했다.

“산해관 전투가 끝났습니다. 두변이 대승을 거뒀고, 여진 제국의 20만 대군을 학살했습니다. 동방 연합 왕국에서 실험 전함을 출정시켜서 최신 화포로 산해관을 공격했는데, 문어 괴수에 의해서 전함이 파괴되었고, 최신 화포가 전부 두변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소군 방진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찻잔을 쥐고 있던 그의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는데, 찻잔이 그대로 산산조각 부서졌다.

두회가 이어서 말했다.

“두변이 방검지를 거세하고, 그의 머리를 잘라서 방탁 대인께 보냈습니다.”

소군 방진이 한참이 지난 뒤에야 물었다.

“당신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지?”

“방탁 대인은 전하께 대녕 제국의 서남에 군대를 상륙시키고, 두변이 없는 틈을 타서 서남 3성을 완전히 파괴해주시길 바랍니다.”

“내가 지금 찰스 왕세자와 무슨 담판을 하는 줄 알고 있는 거냐?”

“신, 알고 있습니다. 신대륙 식민지의 소유권 담판을 하고 계시지요.”

두회가 말을 하다가, 머뭇거리면서 입을 닫았다.

“말하라.”

방진이 눈치채고 말했다.

“이 세계에는 3대 패주가 있습니다. 서방 세계, 성화교 세계, 그리고 동방 연합 왕국이지요. 이미 성화교와 해상 충돌이 있었는데, 곧바로 서방 세계와 큰 충돌을 일으키는 건 좀 현명하지 않습니다. 그건 2대 패주를 동시에 적으로 만드는 결정이니까요.”

“계속 말해라.”

“그리고 외적을 물리치기 전엔, 안쪽의 안정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소군 전하께서 전략의 중심을 대녕 제국에 두시는 게 더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녕 제국을 처리하면, 동방 연합 왕국은 동방 세계 전체를 통일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제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동방 연합 왕국의 군사력이라면, 대녕 제국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왜 정치적 수단을 이용해서 무능한 황제를 남겨두려는 겁니까? 대녕 제국을 직접적으로 없애지 않으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두회는 줄곧 이 점이 이해되지 않았다.

방진이 두회를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시야가 좁고, 아둔하고, 교조주의(敎條主義)로 가득 찬 말이로군. 동시에 2대 패주를 적으로 둬선 안 된다니? 참으로 황당하고 우스운 말이지. 세계의 안정을 위해서 3명의 패주가 있는 것이고, 서로 충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성화교 세계와 서방 세계는 서로 맞닿아있으니, 갈등과 충돌이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동방 연합 왕국이 오늘은 성화교를 한 번 쳤다가, 내일 서방 세계를 한 번 쳐야 세계가 더욱 균형을 맞추고 안정될 수 있지.

그리고, 왜 직접 상륙해서 대녕 제국을 멸하지 않고, 대녕 제국을 대체하지 않냐고?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한 가지 이유는 너에게 말해줄 수 없고, 다른 이유는 대녕 제국이 우리의 원자재 생산국이기도 하고, 큰 매출을 발생시키는 경제지이기 때문이지. 대전이 일어난다면, 경제활동이 얼마나 정체되겠나? 얼마나 많은 은자를 손실하겠냔 말이다. 군사는 정치를 위해서 있는 것이고, 정치는 경제를 위해 있는 것이다.”

두회가 이마를 대리석에 박으면서 말했다.

“신의 아둔함을 용서해주십시오.”

물론 소군 방진은 두회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아주 강력하고, 유일무이한 중요한 것이 있는 미주의 어느 식민지를 꼭 점령해야 한다는 것 등은 말하지 않았다.

방진은 이 비밀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협상은 소용없다. 어차피 우리는 서방 세계와 격렬한 충돌이 일어날 테니. 그때가 되면, 해상전도 육상전도 치르게 될 것이야. 그리고 나는 성화교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서 인도양의 새로운 식민지에 병력을 배치해야 한다. 그러니 내 군대가 대녕 제국에 상륙해서 두변의 서남을 공격하는 건 불가능하다. 군대를 움직일 땐 항상 최고 효율을 생각해야 하지. 두변의 서남 3성은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곳이고, 두변 또한 내가 20만 대군을 움직일 만한 인물이 아니다.”

두회는 속에 천불이 났지만, 고분고분 절을 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두변을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언젠가 우리에게 큰 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저 멀리 뒤처져 있는 놈을 신경 쓸 필요 없다. 그놈은 내게 야만인과도 같은 존재다. 영원히 내 뒤만 따라올 놈이지. 북명검파에게 최고 무공자를 보내서 그놈을 죽이라고 해라.”

“지난번에 북명검파가 이미 대종사 네 명을 보냈는데, 전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그야 문어 괴수 때문이겠지. 문어 괴수가 북명검파 대종사들을 죽였을 것이다. 그러니 두변을 문어 괴수의 범위 밖으로 유인한 뒤에 죽이면 된다. 내가 굳이 이런 걸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필요는 없겠지?”

“예. 신, 명 받들겠습니다.”

산해관 전투가 끝나고 25일째 되는 날.

두변의 제2군단(성화군단)의 부장군이 2만 대군을 이끌고 2개월 반의 행군 끝에 산해관에 도착했다.

원래 이들은 산해관 대결전에 참여하려고 먼 길을 서둘렀던 건데, 생각했던 것보다 대전이 너무 빨리 끝나버린 셈이었다.

산해관 대전은 놓쳤지만, 이들은 두변의 북벌을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산해관에 있던 두변의 대군은 원래 4만 2천이었는데, 전투가 끝나고 지금은 3만 6천 명이 남았다.

두변은 1만 6천 명을 산해관에 남겨두고, 4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과 싸우기로 결심했다. 이번 전투의 목표는 요동 땅을 탈환하고, 여진 제국을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두변은 최단 시간 내에 북방 전쟁을 마무리하고, 서남으로 돌아가서 기술 개발과 도약에 몰두할 생각이었다.

차근차근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동방 연합 왕국이 이미 증기기관과 강선 유탄포까지 만들어 냈으니, 그들이 해내지 못한 이계 에너지를 활용한 기술을 찾아내야 했다.

예를 들면, 유경 왕국 철갑 전함의 핵심 동력이나, 두변이 이전에 사용했던 어둠의 물질로 만들어진 파멸의 화살 같은 것 말이다. 그것만이 동방 연합 왕국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중요한 건, 두변에게는 세계의 갈라진 균열에서 얻은 매마의 피가 있다는 것이다. 천재 연금술사이자 난쟁이 선지자 사공엽이 이 매마의 피를 열심히 연구해서 기술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설 공주는 낙담하고 말았다.

이번 달에도 그녀는 어김없이 회임을 하지 못했다.

“왜죠? 우리가 함께 하지 않는 날을 빼고는 매일 했는데, 왜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거죠? 내 배에 문제가 있는 걸까?”

영설 공주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나는 내 문제가 아닐까 고민했어요.”

두변의 말에 영설 공주가 버럭 화를 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당신이 이렇게 용감하고 밤마다 나를 정신 못 차리게 하는데, 당신이 안 될 리가 없어요.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강한 남자라고요!”

두변은 순간 대꾸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걸 잘하는 거랑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거랑은 전혀 별개인데요…….’

“부군, 아니면 소각(小珏)을 한 번 품어보는 건 어때요? 소각이 회임할 수 있는지 한 번 보는 거예요.”

두변은 깜짝 놀랐다.

공주 전하, 너무 개방적인 것 아닙니까?

소각은 공주의 시중을 드는 그 예쁘장한 시녀였다.

영설 공주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시녀와 하룻밤을 보내 보라고 말한 것이다.

차를 준비해서 내오던 소각은 영설 공주의 말을 듣고는 귀까지 새빨개져서는, 재빨리 도망쳤다.

이때, 밖에서 수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북명검파의 사자가 주군을 뵙기를 청합니다.”

두변이 흠칫 놀랐다.

북명검파의 사람이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지?

대청 안.

북명검파의 사자는, 어딘가 눈에 익은 대은구도에서 온 중년의 여인이었다.

“두변, 축하드려요. 이제 아버지가 되겠네요.”

북명검파의 사자가 제일 먼저 한 말이었다.

두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가 아버지가 된다고?’

최근엔 영설 공주와 매일 다정하게 운동을 하고 있음에도 영설 공주가 회임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상적인 남자가 된 지 얼마 안 됐으니, 자신의 정자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고민하기도 했었다.

“예상 선자가 회임했어요. 벌써 두 달이 넘었죠. 그리고 예상을 품은 사내는 당신밖에 없고요.”

북명검파의 사자가 이어서 말했다.

두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게 사실인가? 아니면, 북명검파에서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지?’

“종주께서는 이미 예상이 초심을 버렸다는 이유로 북명검파에서 내쫓았습니다. 우리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예상과 예상 배 속의 아이를 두변 각하에게 돌려주고자 합니다.”

‘웃기지도 않는군. 초심을 배반한 사람은 영도현이지. 반대로 예상 선자는 자신의 초심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고. 예상 선자가 북명 선조의 예언에 따라 사명의 주인을 수호한 탓에 북명검파 전체의 적이 된 거지.’

두변이 속으로 생각했다.

북명검파의 사자가 말했다.

“예상을 제남부의 표돌천(趵突泉: 산동성 제남부의 유명한 샘물. 건륭황제가 샘물의 맛이 순수하고 감미롭다 해서 천하제일천으로 책봉했다는 일화기 있다.)으로 보내놓을 테니, 당신은 그곳에서 예상을 데려가면 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딱 사흘 동안만 기다릴 거예요. 당신이 마지막 날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도착하지 않는다면, 우린 예상을 죽일 겁니다. 그럼 당신은 예상과 아직 보지도 못한 혈육을 잃는 것이죠.”

두변은 북명검파가 일부러 자신을 문어 괴수의 영역 밖으로 불렀다는 걸 눈치챘다. 북명검파는 예상 선자와 두변의 자식을 미끼 삼아서 두변을 문어 괴수의 보호 범위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제남부는 산해관에서 1천 8백 리나 떨어진 곳에 있는 만큼, 문어 괴수의 영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다.

즉, 두변이 제남부로 간다는 건 거의 죽으러 가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만약 그가 가지 않는다면, 북명검파가 정말로 예상 선자와 예상 선자 배 속의 아이를 죽일까?

문득, 비열함은 비열한 사람의 통행증이요, 고상은 고상한 사람의 묘지명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북명 사자가 말했다.

“물론, 친생 혈육을 원치 않는다면, 내가 한 말은 모두 잊으세요. 당신이 그리로 안 가도 되니까요. 하지만 당신이 평생 문어 괴수의 영역 안에서 숨어 살 수 있을까요?”

허를 찌르는 한 마디였다.

북명검파와 반목한 후부터, 끊임없이 북명검파의 추살을 당해야 했다. 이렇게 계속 갈 수는 없으니, 매듭을 지어야 했다.

두변이 물었다.

“제남부에서 나를 죽이려고 기다리는 사람은 누굽니까?”

북명 사자가 대답했다.

“북명검파의 대장로 기천구예요. 대염 왕국의 국왕 여여해에 버금가는 무도 수준의 소유자죠.”

‘에라이, 진짜 날 죽이려고 작정했군.’

여여해의 무도 수준은 이도진, 기란정, 예상 선자 등 대종사 세 명을 전부 패배할 정도로 막강했다.

기란정과 예상 선자는 고급 대종사인데도 여여해를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기천구 대장로의 무공이 여여해만큼 뛰어나다니.

북명 사자가 말했다.

“기천구 대장로는 은포(銀袍) 집행자 몇 명과 함께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죽는 게 두렵다면, 그냥 우리가 예상 선자를 처형하게 내버려 둬요. 그녀의 배 속에 있는 아이도 들은 적도 없다고 치고요.”

두변이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각종 계산을 했다.

북명 사자가 말했다.

“대은구도에 당신을 어미로 아는 천년사요가 한 마리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천년사요가 당신을 구해줄 일은 없을 거예요. 천년사요는 이미 끝났으니까.”

두변의 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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