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86화 (486/648)

486장: 여진 제국의 멸망 一

동쪽에서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고, 남쪽 지평선 위로 새까만 선 하나가 나타났다.

두변의 4만 대군, 화포 100대, 4천 6백 마리 변이 마랑이 위풍당당하게 북상했다.

반 시진 뒤, 두변의 군대가 심양성 앞에 도착했다.

두변과 대금 제국의 운명을 결정할 마지막 결전이 곧 시작될 것이다.

“이원, 두변을 죽인 뒤에는 어쩔 것이오?”

완안영도가 갑자기 물었다.

금태극이 이원의 정체를 밝힌 뒤, 동방 연합 왕국의 첩자라는 그의 신분은 대금 제국 모두에게 알려졌다.

이원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지금은 그저 두변이 어떻게 죽는지 보고 싶습니다.”

완안영도가 의아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렇게 그자가 싫은 것이오?”

“네. 뼛속 깊이 증오합니다. 마음 같아선 그놈을 산 채로 피부를 뜯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놈의 사지를 찢어버리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테니, 폐하께 두변의 잔해 중 일부를 달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팔뼈도 괜찮고, 다리뼈도 괜찮고, 골반도 괜찮습니다. 그 정도면 술잔 하나를 만들기엔 충분할 테니까요.”

“사실상 두변은 이원 대인에게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지 않소? 도리어 그자를 배신한 건 이 대인이오. 대인은 한때 두변의 의형제였잖소.”

“그놈이 제게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서 더욱 증오하는 겁니다. 온갖 위선을 떨고, 공명정대한 척을 다 해대니, 제가 도리어 비열하고 치졸해 보이지요. 가서 원등 공작, 난오 공작께 물어보십시오. 그들도 두변의 사지를 찢어 버리고 싶어할 겁니다.”

완안영도는 그제야 이원이 왜 이렇게 두변을 증오하는 건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이연정에게는 감정이 있소?”

이원이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없겠죠? 적어도 이연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별로 속상하지도 않았거든요.”

완안영도는 다시 침묵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처자식 외에 다른 두 사람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었다.

한 명은 그의 사촌 형이자, 대금 제국의 황제인 금태극이었다.

금태극은 완안영도가 어렸을 때, 흉악한 늑대에게 잡아먹힐 뻔했던 그를 구해줬다.

뿐만 아니라 금태극은 완안영도의 인생 스승이었다. 금태극은 그에게 용감함과 단호함을 가르쳤고, 여진 부족의 진흥이라는 원대한 포부도 심어줬다.

그래서 그런지, 완안영도는 여진족이 다른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종족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들은 이계의 기운이 무척 활발한 곳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다른 부족보다 훨씬 더 힘이 셌고, 엄동설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금태극은 완안영도에게 줄곧 말했다. 300년 전의 황금대제 태무친은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고, 그의 부족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부족이라고, 그래서 태무친이 유래에 없는 방대한 황금제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라고.

여진 부족도 하늘의 선택을 받은 부족이기에, 장차 제2의 황금제국을 건립할 것이라고.

금태극과 같은 포부를 가지게 된 완안영도는 여진족이 위험에 처했을 때, 고아의 신분으로 결연히 대녕 제국에 잠입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십여 년이 지났을 때, 완안영도는 아주 중요한 대전에서 대녕 제국을 배신했고, 대전의 결과를 뒤바꿨다.

당시 그는 천윤제가 요동으로 보냈던 십여만 주력 군대를 전멸시켰고, 그때부터 요동 지역이 원등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오랜 시간 수비만 해오던 여진족은 그때 일을 계기로 주변 지역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완안영도가 여진으로 돌아왔을 때, 많은 사람이 그를 외면하고 배척했다.

사람들은 그를 외지인이라고 생각했고, 당시의 대한이던 노이적(怒尔赤)도 완안영도를 중용하지 못했다.

당시 대한 노이적은 여진 귀족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완안영도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만약 천윤제가 네 앞에 있다면, 그를 죽일 수 있겠나?”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던 완안영도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죽이진 않고, 그가 천수를 누릴 때까지 감금할 것입니다.”

노이적은 그의 대답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고, 사람들 앞에서 완안영도가 대녕 제국에 마음이 있다며, 더러운 세속에 물든 놈이라고 꾸짖었다.

완안영도는 노이적의 딸과 혼인을 맺긴 했지만, 여진으로 돌아온 뒤 몇 년 동안 중용되지 못한 채 눈에 띄지 않는 변두리 인물로만 지내야 했다.

그러다 노이적이 죽은 뒤, 새로 제위에 오른 금태극이 완안영도를 중용하기 시작했다.

완안영도는 대녕 제국, 와이단간국 등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예친왕 다마곤의 바로 아래 서열인 숙친왕에 봉해졌다.

그리고 완안영도가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두 번째 사람은 바로 놀랍게도 천윤제였다.

천윤제는 무척 인자했고, 한 사람을 신뢰하면 제왕의 술수에 연연해하지 않는,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내어주는 군주였다.

완안영도는 대녕 제국을 배신한 뒤로도 마음속으로는 수십 번 이렇게 고백했었다.

‘죄송합니다, 폐하. 저는 여진 사람입니다.’

홀로 남은 완안영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두변, 자네가 패배하더라도 내가 자네의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머리만 자르겠다. 이건 천윤제의 은혜에 대한 내 보답이다.’

두변의 4만 대군은 심양 성벽 1천 미터 앞에서 멈춰 섰다.

병사들이 대구경 화포 100대를 마랑들의 등에서 내린 뒤, 분주하게 포구를 조정해서 1천 미터 앞의 심양 성문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진 화포는 두변이 동방 연합 왕국의 신식 전함에서 떼어낸 강선 유탄포로, 이 포탄의 유효 발포 거리는 1천 미터가 넘었다.

“성문 조준 완료!”

포병이 보고했다.

“발포!”

두변의 명령에 화포 100대가 동시에 발포되면서 하늘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슉, 슉, 슉, 슉.

유탄포 100발이 심양 성문을 향해 날아갔다. 잠시 후, 그중 무려 6할의 포탄이 성문을 명중시켰다.

콰과과광!

대지가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포연이 걷힌 후, 그 한없이 견고하던 심양성의 성문은 원래의 모습을 잃고 말았다.

성문 여기저기 수없이 많은 구멍이 뚫렸지만 무너지진 않았다. 성문은 두꺼운 나무 위에 철판을 박아놓은 것으로, 유탄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망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발포!”

유탄포가 다시 한 번 포격을 쏟아부었다.

콰과과과광!

정말 경이로울 정도의 폭발력이었다.

결국 견고한 성문은 두 번째 발포를 견디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성문이 무너진 안쪽에는 또 하나의 성문이 더 있었다.

이렇게 큰 성은 성문이 있는 곳의 깊이가 보통 15미터가 넘게 되고, 앞뒤로 성문이 두 개 있는 구조이기는 했다.

“포구를 조정하고, 두 번째 성문을 포격한다.”

두변의 명령에 포병들이 포구를 조정해서 두 번째 문에 조준했다.

“발포!”

쾅, 쾅, 쾅, 쾅.

두변의 세 번째 발포 명령이었다.

수십 발의 유탄포가 안쪽 성문을 명중시켰다.

천지를 뒤흔들 굉음이 솟구쳤다. 안쪽 성문은 첫 번째 성문보다 약한 건지, 포격 당하자마자 뒤틀리면서 바로 종이처럼 찢기고 말았다.

성문에 맞지 않은 유탄포는 성문을 둘러싼 성벽에 명중했고, 성벽 위에 있던 수십 명의 병사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심양성 안에는 화포 230대와 수천 발 포탄이 있고, 전부 다 동방 연합 왕국의 신식 화포와 포탄이건만, 두변이 발포를 세 번이나 할 동안, 심양성 쪽에서는 아무런 발포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금태극은 두변이 자신의 성문을 날려버리는데도 아무런 공격이 없었다.

쾅, 쾅, 쾅, 쾅.

이어서 네 번째 발포가 시작되었다.

또 한 번 천지를 뒤흔들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심양성의 안쪽 문이 아예 폭파되어서 그대로 날아갔다.

동시에 두변의 유포탄도 전부 다 사용하고 말았다.

냉병기 시대 때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어야만 성문을 뚫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성문을 뚫었다는 건, 기본적으로 승리를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금태극은 아무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심양성 안은 여전히 끔찍할 정도로 조용했다.

성문이 부서진 뒤, 포연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다.

뻥 뚫린 성문은 승리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악마 같기도 했다.

지옥의 함정일까? 우리가 먼저 돌격을 해야 하나?

우리가 돌격하게 된다면, 대금 제국 성벽에 있는 화포가 우리를 향해 미친 듯이 발포할 텐데.

적들이 아직도 발포하지 않는 건, 최대 효율로 상대를 도살하기 위함일까.

포병 진영을 공격하지 않은 것도 일부러 내가 성문을 부수게 놔둔 건가? 독 안에 든 쥐를 잡듯이 나를 잡으려고?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두변의 뇌리를 스쳤다.

변이 마랑의 질주 속도는 초속 30미터 정도였다. 성문까지 1천 미터 거리가 있으니, 성문 안까지 30초면 돌격할 수 있었다.

30초면 여진 제국이 한 차례 포격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두변의 4만 대군이 1천 미터를 돌격하기엔 5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여진 제국은 그사이에 열세 차례 포격을 할 수 있게 된다.

열세 차례 포격과 800발 유탄이 발사되면, 얼마나 많은 사상자를 낼까?

만약 이들이 유산탄을 쓴다면?

게다가 강선포의 정확도는 활강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정확한데?

아무래도 많은 병사들이 한 번에 성문을 향해 돌진하게 되면, 분명히 사람이 몰릴 테고, 그 사이 열세 번이나 포격을 맞게 되면 사상자가 무시무시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동방 연합 왕국의 개입으로 이번 전쟁의 판국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냉병기 시대에서 갑자기 열병기 시대로 진화해버려서 그동안 사용하던 많은 전법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결국 두변이 직접 4천 6백 마리 변이 마랑만 이끌고 성안으로 쳐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심양성 성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었고,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고 보면 볼수록 지옥의 문처럼 펼쳐져 있었다.

성벽 위에 있던 여진 병사들은 포연 때문에 가끔 기침 소리를 낼 뿐,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두변은 길게 한숨을 내쉰 뒤, 마랑왕의 등 위로 훌쩍 올라탔다.

“마랑왕, 이제 우리는 가장 빠른 속도로 성문 안으로 뛰어들어야 해. 알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멈춰선 안 돼. 오직 미친 듯이 돌진만 한다.”

마랑왕이 대답하고는 고개를 젖히고 길게 울었다.

4천 6백 마리 변이 마랑들도 전부 고개를 치켜들고 길게 울었다.

마랑들의 눈동자가 점점 더 붉어져서, 얼핏 보면 피부에서 피가 왈칵 솟구칠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마랑들의 기운이 극한까지 오르면,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갈 것이다.

심양 성벽 위, 대금 제국의 예친왕 다마곤이 손을 치켜들었다.

“모든 화포, 발포 준비!”

성벽 위에 있던 화포 70대가 두변과 변이 마랑을 향해 조준했다.

두변이 명령을 내렸다.

“돌격!”

마랑왕의 뒤를 따라 4천 6백 마리 변이 마랑이 번개처럼 튀어나갔다.

슈우욱!

성벽 위에서 마랑들이 초속 30미터로 달리는 장면을 보게 되면, 검은 파도가 빠른 속도로 성벽을 향해 휘몰아쳐 오는 것만 같았다.

정말 번개처럼, 바람처럼 빠른 속도였다.

“발포! 어서 발포해!”

대금 제국의 예친왕 다마곤이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쾅, 쾅, 쾅, 쾅.

두변은 주위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변이 마랑 군단을 이끌고 미친 듯이 돌진했다.

수십 발 유탄이 땅에 박히면서 땅이 흔들리고 불길이 하늘로 솟구쳤다. 유탄에 맞은 변이 마랑들이 이리저리 튕겨 나갔다.

두변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돌격 중에 들어오는 포격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었다.

금태극도 지금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미 이 4천 6백 마리 마랑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많은 마랑이 죽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금태극은 주술사 국사의 말을 따랐다. 주술사 국사는 변이 마랑들을 길들이려면 반드시 피를 흘리게 해야 한다고 했었다.

폭격을 당해 날아간 변이 마랑들은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더니, 머리를 두어 번 털고는 온몸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달렸다.

그나마 금태극은 마랑들이 대규모로 죽는 게 마음 아파서 유산탄을 쓰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 포격으로 변이 마랑 수백 마리가 다치기는 했지만, 정작 폭사하거나 전투력을 상실한 마랑은 수십 마리에 불과했다.

남은 4천 5백여 마리의 마랑들이 광란의 돌격을 계속했다.

20초.

10초.

5초.

결국 4천 5백여 마리 마랑들이 전부 성문을 통과해서 심양성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믿기 힘든 속도라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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