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장: 여진 제국의 멸망 二
원래대로라면, 두변과 마랑 군단은 심양성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대살육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성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은 포위되고 말았다. 4천 5백여 마리의 변이 마랑이 전부 다 포위됐다.
정면에 있는 성벽 위로 현대식 군복을 입은 병사들 1천 명이 서 있었다. 손에는 화총을 들고 조준한 채.
두변은 그들이 든 총이 후장 수발총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진짜 이러겠다고? 동방 연합 왕국이 후장 수발총을 전장에서 쓸 정도로 대규모로 제작할 수 있다고?
이래서 무슨 싸움을 해? 서방 성로마 제국이나, 성화교 세계도 동방 연합 왕국의 적수가 되지 않을 텐데!
두변이 이를 부득 갈았다.
1천 개의 총구가 두변과 변이 마랑을 조준하고 있었다.
게다가 성벽 위에 있던 수십 대의 화포가 어느새 그들을 조준하고 있었다.
금태극은 이 구역에 있던 건물 등을 전부 없애버리고, 은폐할 곳이 전혀 없는 평지로 밀어버렸다.
‘역시 독 안으로 제 발로 들어오게 해서, 독 안에 든 쥐처럼 잡으려는 것이었군.’
금태극은 두변이 성문을 부수고, 제 발로 마랑 군단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게 다 금태극의 의도로, 성안에서 두변을 기다리고 있던 건, 빈틈없는 포위망이며 지옥의 함정이 맞았다.
쿠르르르륵.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유탄포 수십 대가 다른 쪽 성벽에서 나타났다. 일찍이 준비하고 있던 포병들은 금세 진을 치고 발포 준비를 했다.
성벽, 성안 건물의 창가에 무수히 많은 여진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심양성 안에는 평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여진 제국의 20만 대군이 전투를 대기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척, 척, 척, 척.
대지가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전무후무의 강철 부대가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 부대의 무사는 전부 2미터가 넘는 신장에 동공이 핏빛이고 웅장하기 짝이 없었다. 무사들은 바람도 새어 들어갈 수 없는 갑옷을 입고 있었고, 눈가까지도 완전무장 되어있었다.
무사들은 100근이 넘는 거대한 검을 들고 있었는데, 꼭 깃털이라도 들고 있는 것처럼 가벼워 보이고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마혈 무사로구나!’
두변은 단번에 이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황금대제의 무덤에서 봤던 것과 다른 건 그들의 투구와 갑옷뿐, 나머지 모든 게 다 똑같았다.
특히 마혈 무사의 눈동자는 무덤에서 봤던 죽은 무사들과 완전히 똑같았다.
황금대제 태무친이 천하를 휩쓸려고 만든 무적 군단을 금태극이 결국 만들어냈다.
금태극이 마혈 군단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여진 무사의 목숨을 희생시켰는지 궁금했지만,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무적 군단이라 할 만했다.
5천 명 마혈 무사가 사방으로 진을 갖추고 두변과 변이 마랑 군단을 포위했다. 두변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성문 앞을 막아 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변은 지금 정말 물샐틈없이 포위되었다.
그러자 대금 제국 황제 금태극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천천히 말했다.
“두변, 결국 독에 들어왔군.”
드디어 대금 제국 패주의 실물을 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진짜 엄청 크네. 마액 같은 걸 따로 주사하지 않아도 거의 마혈 무사와 똑같이 보일 정도로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군.’
금태극의 온몸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대종사 강자였다. 보통 대종사도 아닌, 정상급 대종사였다.
무공만 보면 여여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했다.
두변은 금태극이 어떻게 이렇게 막강한 무공을 가지게 되었는지, 어떤 기연이 있었을지 알지 못했다.
금태극의 나이는 올해 마흔으로 꽤 젊은 편이지만, 여여해보다 훨씬 더 패주 분위기가 풍겼다.
금태극이 두변을 바라보면서 감탄했다.
“준수한 용모에 교룡의 기세가 보이는군.”
두변이 마랑왕 등 위에서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예를 갖췄다.
“대한을 뵙습니다.”
대녕 제국의 진서 공작인 두변으로서는 금태극을 대금 제국의 황제로 인정하진 않았지만, 여진의 대한으로는 기꺼이 인정했다.
금태극이 말했다.
“두변 공작,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난 투항을 권했을 걸세. 하지만 자네라면 투항은 곧 치욕이겠지. 내가 자네에게 약조를 하나 하지. 자네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겠네.”
“대한도 세상을 압도할 영웅이니, 저 또한 대한께서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금태극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데, 그 웃음소리가 심양성 전체를 흔들리게 할 정도였다.
“두변, 죽기 전까지도 주둥이는 살아있구나. 허풍도 정도껏 떨어야지!”
이원이 비아냥거렸지만, 금태극이 이원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두변 공작, 자네의 4천여 마리 변이 마랑은 이제 내 것이네. 자네 눈에도 보이다시피, 내 마혈 무사들이 변이 마랑을 타야만 무적 기병이 될 수 있거든. 내게 변이 마랑을 데려와 주려고 이 먼 길을 달려오다니, 참으로 고맙네.”
순간, 금태극의 눈빛이 바뀌었다.
“변이 마랑을 빼앗아라.”
그러자 수백 명의 주술사 사제가 기이한 주문을 읊으면서 대열에서 떼 지어 앞으로 나왔다.
공기에 특수한 기운이 넘실거리는데, 이건 변이 마랑에게만 작용하는 약의 기운이었다.
붉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4천 5백여 마리 변이 마랑의 눈빛이 흐리멍덩해지더니, 거대한 몸집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랑들이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쳤지만, 마약의 힘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듯했다.
결국 변이 마랑들의 눈의 초점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땅에 무릎을 꿇었다.
“가라!”
금태극의 명령에 5천 명 마혈 무사가 대열을 갖추고 변이 마랑에게 접근하더니, 곧장 한 사람씩 변이 마랑의 등 위로 올라타기 시작했다.
일각의 시간이 흐른 후, 4천 5백여 명의 마혈 무사가 4천 5백여 마리 마랑의 등 위에 모두 올라탔다.
변이 마랑들이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지르고, 미친 듯이 발버둥쳤지만, 마약에 중독된 상태였다.
마혈 무사의 힘도 보통이 아닌지라, 마랑들을 전부 손으로 제압해서 땅바닥에 바짝 눌러버리기도 했다.
이 세상에 변이 마랑을 길들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마혈 무사뿐이었다.
변이 마랑들이 입에 침까지 흘리면서 미친 듯이 저항했다. 마랑들이 발로 얼마나 바닥을 긁었는지, 바닥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길 정도였다.
많은 변이 마랑이 피를 흘리면서도 저항했지만, 일각의 시간이 지난 뒤, 마혈 무사들은 모든 마랑을 철저히 길들여 버렸다.
이때, 또 다른 마약 연기가 피어올랐다.
모든 변이 마랑이 정신을 차리면서 전투력을 회복했고, 눈동자가 다시 혈색으로 바뀌었다.
놀랍게도 마랑들은 더 이상 마혈 무사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다.
이원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
“폐하, 경축드리옵니다. 무적 기병을 얻으셨으니, 폐하께서 천하를 호령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이어서 다마곤, 완안영도, 원등 공작, 난오 공작, 대금 제국의 고위 장수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경축드리옵니다, 폐하. 무적 기병을 얻으시고, 천하를 휩쓰시옵소서.”
이원이 웃음을 터트렸다.
“두변 이놈, 산해관 전투에서 네놈이 이겼다 한들, 뭐가 바뀌었느냐?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우리다. 네 승리는 대금 폐하께 마랑 군단을 바치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네놈이 드디어 죽게 되는구나. 대녕 제국도 멸망도 곧이겠군.”
이원이 금태극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폐하, 신, 목숨 잃은 여진 용사들의 복수를 위해, 두변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습니다.”
대금 황제 금태극이 두변을 바라보다가 명령을 내렸다.
“완안영도, 다마곤, 두변 공작을 참수형에 처하라.”
다마곤 친왕이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명 받들겠습니다.”
다마곤, 완안영도가 대종사 고수 두 명을 데리고 두변에게 다가갔다.
이원이 목청을 높여서 외쳤다.
“두변놈이 죽었다. 대녕 제국도 망국이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자리에 있던 모든 대금 제국의 고관, 귀족, 장수들이 다시 한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외쳤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병사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
그런데 지금, 대금 제국의 황제 금태극은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모두가 무릎을 꿇고 외치는 와중에, 주술사 국사와 수백 명의 주술사 사제들만 무릎을 꿇지 않았고 만세를 외치지 않고 있었다.
‘왜 저들은 무릎을 꿇지 않는 거지?’
금태극이 의아함을 느끼던 찰나, 연로한 주술사 국사가 무릎을 꿇었다.
국사가 무릎을 꿇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수백 명 주술사도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금태극이 그제야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주술사 국사와 수백 명 주술사 사제들은 금태극이 아닌 두변을 향해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황금대제 두변, 만세, 만세, 만만세.”
마혈 무사들도 일제히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황금대제, 만세, 만세, 만만세!”
대금 제국 황제 금태극은 태산이 무너져 내려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을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광경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패왕조차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자리에 있던 다마곤 친왕, 완안영도, 이원 등도 자신의 눈이 믿기지 않았다.
금태극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주술사 국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국사, 어째서 나를 배반한 것이오?”
“대한 폐하, 저는 한 번도 폐하를 배반한 적이 없습니다.”
금태극이 호통쳤다.
“지금 이런 짓을 저지르고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오?”
주술사 국사가 차분하게 말했다.
“진심으로 충성을 바친 적이 없으니 배반했다고 볼 수는 없지요.”
“내가 당신들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
“맞습니다. 이보다 더 잘해주실 수 없을 정도지요. 저를 처음 봤을 때도 한쪽 무릎을 꿇고 저를 사존이라 불렀고, 그 뒤로도 저를 스승으로 대해주셨지요.”
“그런데 어째서!”
“대한 폐하, 당신은 황금대제도, 몽골 대한도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폐하께서는 여진의 대한이시니, 우리 몽골 주술사들에게는 당신은 정복자일 뿐입니다.”
금태극이 두변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두변도 몽골 대한이 아니지 않소. 심지어 저자는 대녕의 공작이오!”
“하지만 두변 대인께서는 황금대제의 계승을 받았고, 황금 혈맥을 가진 사람이지요. 우리 주술사들은 태생부터 대대로 황금대제 폐하께만 충성을 바칩니다. 폐하는 정말 제 증조부가 도망쳤다고 믿으시는 겁니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증조부께서는 황금대제 폐하의 유지(遺旨)를 따르기 위해 황금대제의 무덤에 순장될 자격을 잃고 살아남으셨습니다. ‘훗날 황금대제가 돌아올지니, 몽골 주술사들은 세계 어디 있든 돌아온 황금대제에게 충성을 다하라.’라는 유지였지요.”
이어서 주술사 국사가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드디어, 황금대제 폐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금태극이 물었다.
“그럼 왜 내게 황금대제 무덤의 비밀을 말해준 것이오? 왜?”
“대한 폐하, 제 나이가 벌써 150입니다. 폐하를 처음 뵈었을 때는 130세였지요. 우리는 이미 300년을 기다렸고, 몇 세대를 기다렸습니다. 그땐 우리도 자신감을 잃었지요. 목표와 자신감을 잃게 되면, 우리 주술사 사제들의 힘은 사라지게 됩니다. 살아있다고 해도, 그저 걸어 다니는 고깃덩이에 불과하지요. 폐하께서 저를 찾으셨을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제가 모든 희망을 다 내려놓았을 무렵 말입니다.”
주술사 국사가 탄식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당시에 폐하께서 얼마나 많은 기적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폐하께서는 건장하고 우람하신 외형을 가지고 있고, 기개와 위세도 황금대제 폐하가 연상될 정도였습니다. 당시 제가 폐하께서 새로운 황금대제이길 얼마나 바랐는지 아십니까? 저는 제 모든 희망을 폐하께 걸었습니다. 그래야 우리 주술사들이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되니까요. 황금대제 무덤의 비밀을 폐하께 알려드렸던 건, 폐하께서 정말 우리가 기다리던 황금대제가 맞나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선 황금대제가 아니셨지요. 황금대제 무덤의 문조차 열지 못하셨으니까요.”
주술사 국사가 다시 길게 한숨을 내뱉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모두 절망하던 때, 진정한 황금대제의 계승자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두변 대인이죠. 드디어 우리에게 진정한 주인이 생겼습니다. 황금대제께서는 우리를 이끌고 전 세계를 휩쓸고 세계의 왕이 되실 분입니다. 하지만 폐하께선 그분이 아니시고, 우리의 원대한 꿈을 이뤄주지 못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