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88화 (488/648)

488장: 금태극의 죽음 一

금태극이 분노했다.

“그래서 두변과 작당해서 나를 모함한 것이오? 황금대제의 무덤에서 두변을 죽였다고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그리고 황금대제의 무덤에 두 번째 묘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변이 마랑 군단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게 말하지 않았소. 덕분에 두변이 마랑 군단을 전부 데려가서 산해관 전투에서 여진 대군의 주력을 처치했소. 게다가 홍마약과 흑마약을 찾은 뒤에 내게 가져온 것도 마혈 무사를 만들기 위한 강한 실험체가 필요해서겠군. 당신은 나를 두변을 위해 알을 낳는 닭으로 만든 것이오.”

주술사 국사가 담담하게 말했다.

“대한 폐하, 폐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게 다 사실입니다. 딱 한 가지만 빼고요. 우린 두변 대인과 그 어떤 작당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린 두변 대인과 말 한마디 섞은 적 없고, 밀신도 주고받은 적 없습니다. 사실상 두변 대인과 우리가 제대로 대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요.”

믿기지 않겠지만, 주술사 국사의 말은 전부 진실이었다.

두변은 주술사들과 그 어떤 교류도 한 적 없지만, 딱 한 번 눈빛 교환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두변은 황금대제 무덤 입구에서 이미 수십 명 주술사들이 잠복해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황금대제의 무덤에 먼저 들어간 뒤, 주술사들도 무덤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들이 들어오는 걸 원치 않았다면,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혼자 들어간 뒤에 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당시 연로한 주술사 사제 하나가 흑마약을 묻힌 검으로 두변의 가슴을 찌른 뒤, 그를 검은 얼음덩어리로 만들긴 했지만 그 얼음을 부숴서 두변을 죽이진 않았다.

그 모든 건 묵약이었다.

두변과 주술사들은 그 어떤 대화도, 협상이나 교류도 없이 정신적인 묵약만으로 이 모든 걸 해냈다.

두변이 황금대제 무덤의 입구를 연 그때 순간, 연로한 주술사가 두변에게 충성의 정신 신호를 보냈었다. 두변도 황금대제의 고유한 정신 신호로 회답했다.

그렇게 쌍방은 그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고 이 엄청난 계략을 성공시킨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아니한가.

주술사 국사가 말했다.

“저는 이런 군주를 섬긴다는 게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대화나 밀신 없이도 군주께서 뭘 하실지 알 수 있고, 군주께서도 우리가 뭘 할지 알고 계신다는 것이요.”

주술사 국사가 호기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런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에 두변 대인께서 구사일생의 위험을 무릅쓰고, 4천 6백 마리 변이 마랑을 이끌고 심양성으로 돌진하신 것이지요. 대한 폐하,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지요? 이런 말이 필요 없는 정신 묵약은 폐하께서 저를 스승으로 대우해주시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집니다.”

황금대제 금태극이 화를 누그러트리고 길게 한숨을 뱉었다.

“정말 감탄을 금치 못하겠소. 참으로 무섭고 존경스럽고 탄복스럽군.”

금태극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빛에 살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금태극이 큰소리로 외쳤다.

“마혈 무사들이여! 너희들은 여진의 형제이고, 백산흑수에서 나고 자란 통고사 무사들이다! 너희들은 나 금태극의 형제이고, 너희들의 몸에는 여진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너희들이 충효를 바쳐야 할 사람은 황금대제라고 말하는 두변이 아니라, 우리의 여진 선조들이다!

여진의 마혈 무사들이여! 당장 검을 뽑아 들고 저 파렴치한 주술사들을 죽여라!”

금태극이 비장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마혈 무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금태극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주술사 국사가 천천히 말했다.

“시간 낭비하실 필요 없습니다. 대한 폐하, 저들의 몸에는 이미 황금대제의 혈맥이 흐르고 있습니다. 단 한 방울의 마약으로도 저들의 혈맥과 정신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금태극이 분개했다.

‘왜? 두변 저놈이 황금대제의 정신 계승을 받았다고 내 마혈 무사들이 저놈에게 충성을 맹세해? 오랜 기간 나를 따랐던 주술사들조차도?’

금태극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냉소를 지었다.

“이 세계는 역시 불공평하군. 하지만 그런들 바뀌는 게 있나?

네놈들이 마혈 무사 5천을 얻은 게 뭐 어때서! 짐에게는 수십만 대군이 있고, 화포 200대가 있다. 그리고 동방 연합 왕국의 화총 신군까지 있지. 네놈들은 내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두변의 마혈 기병과 주술사들은 금태극의 촘촘한 포위망에 갇혀있는 모양새였다.

대금 제국의 200대 화포 중 절반이 두변 등을 조준하고 있었다. 만약 발포 명령이 떨어진다면, 마혈 무사와 변이 마랑 군단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발포하라. 당장 발포해!”

금태극이 침을 튀기면서 명령을 내렸다.

일순간, 화포 100대가 두변의 군대를 향해 일제히 발포되었다.

두변이 주술사 국사를 쳐다보면서 눈빛을 한 번 주고받더니, 당황하는 기색 없이 제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두변이 별다른 명령을 내리지 않자, 변이 마랑과 마혈 무사들 또한 제자리에 그대로 서 있기만 했다.

콰과과과광! 굉음이 울려 퍼지고, 참혹한 장면이 펼쳐졌다.

두변의 군대는 그 어떤 타격도 받지 않았다. 모든 포탄이 화포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화포 내부에서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굵직한 포관이 곧장 하늘로 치솟으면서 폭발하였고, 포관 덩어리들과 갈 곳을 잃은 포탄이 주위의 병사들을 그대로 덮치고 말았다.

“으아악!”

성벽의 화포 진지에서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여진 제국의 화포 100대가 모두 완전무결하게 파괴되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주술사 사제들이 이미 유탄에 손을 썼던 것이다.

이 광경을 목격한 금태극은 눈가가 찢어질 정도가 되었고 머리 전체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 파렴치한 놈들! 이런 배은망덕한 놈들!’

여진 무사들을 빼돌려서 두변을 위해 알을 낳아준 것도 모자라서, 내 화포까지 부숴버려?

변이 마랑과 마혈 무사가 얼마나 강한지는 금태극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갑옷을 두르지 않은 마혈 무사도 일 당 십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튼튼한 갑옷까지 착용했으니 칼과 창으로도 뚫리지 않는 몸이 되었다.

마혈 무사와 변이 마랑으로 이루어진 마혈 기병은 진정한 무적의 기병이었다.

숫자가 비록 5천에 불과하지만, 이 5천 마혈 기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금태극은 천천히 성벽 위로 올라가서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대금의 용사들이여! 생사존망의 시간이 왔다!

용감한 여진 형제들이여! 대지 균열에서 태어나고, 백산흑수에서 자란 용자들이여. 너희들의 존엄을 지킬 시간이 되었다.

우리의 적은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놈들이다. 저들의 수는 고작 5천이지만, 우리는 무려 30만 대군이다.

우리는 이 치욕을 씻어내기 위해 10만 명의 목숨, 20만 명의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다. 저 비열한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려라!

저들을 포위하고, 싹 다 죽여버려라!

비열한 주술사 놈들을 죽여라!”

무수히 많은 여진 무사가 두변 등을 향해 달려온 뒤, 그들을 더 가까이서 포위했다.

“죽여라!”

대금 황제의 명령에 여진 무사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두변의 5천 마혈 기병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했다.

금태극의 장자 호과(豪戈)가 1천 기마병을 이끌고 수백 명 주술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주술사를 보호하라!”

두변이 명령했다.

1천 마혈 기병이 즉시 대열에서 뛰어나와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주술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금태극의 장자 호과가 이끈 선두 기마병들이 주술사들의 진열에 가까워졌다.

주술사 사제 중 제일 젊은 사람이 예순이 넘을 정도로 전부 다 연로하고 바람 한 번에 쓰러질 것 같은 왜소한 체구였다.

호과의 기마병들은 자신들이 손쉽게 이 주술사들을 처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수백 명 주술사들이 갑자기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기이한 소리가 허공을 가득 채우자, 호과의 기마병 군마들이 비참하게 울부짖었다. 군마들은 꼭 무언가에 다리가 꽁꽁 묶인 채 던져지는 것처럼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이어서 수백 명 주술사들이 동시에 어떤 경문을 읊기 시작했다. 주술사들의 목소리는 곧이어 무시무시한 음파로 변했다.

쾅, 쾅, 쾅.

호과의 기마병들은 주술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혔다.

군마 전체가 코와 입에서 피를 흘렸고, 기마병들의 눈코입 등 칠규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기마병들은 그렇게 튕겨 나가거나 피를 흘리면서 죽어버렸다.

이게 바로 수백 명 주술사의 음파 공격이었다.

이어서 가장 앞서 나와 있던 주술사 국사가 지팡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고, 수백 명 주술사가 그를 따라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그러자 주술사들의 주위에서 녹색 연무가 피어올랐다.

주술사 부대는 녹색 연무에 감싸진 채로 두변에게 다가갔다.

여진 무사들은 쉴 새 없이 주술사들에게 돌진했지만, 주술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녹색 연무에 몸이 닿아서 전신이 썩어버렸다.

주술사들의 살인 수법은 너무도 다양했고, 아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두변이 보낸 마혈 기병은 눈 깜빡할 사이에 주술사들의 근처에 도착했고, 마혈 무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손을 뻗어서 주술사들을 마랑의 등에 태웠다.

마혈 기병 부대는 순식간에 수백 명의 주술사들을 태우고 무사히 대열로 돌아왔다.

“주술사를 보호하라.”

두변이 명령을 내렸다.

5천 명 마혈 기병이 진열을 바꾸더니, 주술사들을 중앙에 두고 방어진을 겹겹이 쌓았다.

“죽여라!”

“죽여라!”

여진 무사들은 꼭 불을 향해 달려드는 나방처럼 미친 듯이 마혈 기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마혈 기병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마혈 무사들은 동방 연합 왕국의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칼이나 창이 들지 않는 몸이었다.

백 근이 넘는 거대한 검을 장난감 칼처럼 가볍게 휘두르는 순간.

서걱, 서걱, 푸슉.

여진 무사들의 허리가 거침없이 반토막났다.

탕, 탕, 탕, 탕.

이때, 성벽에서 콩을 볶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동방 연합 왕국의 1천 화총병들이 사격을 시작한 것이다.

변이 마랑들이 총알에 맞고 쓰러졌지만, 다시 힘차게 일어났다.

총알이 화살보다야 몇 배는 더 강력해서 마랑의 몸속으로 최소 2, 3촌 깊이까지는 들어갔다.

탕, 탕, 탕, 탕.

또 한 번 화총이 발사되고, 수많은 마혈 무사와 마랑이 휘청였다.

견고한 갑옷이 칼이나 화살을 막을 순 있지만, 총알을 막을 수는 없었다.

총알은 갑옷을 단번에 관통해서 몸에 그대로 박혔다.

총알 한두 발로 마혈 무사를 죽이진 못하지만, 상처가 작지는 않았다.

“화총병들을 먼저 죽여라!”

두변이 명령을 내리자, 수백 명 마혈 기병이 쏜살같이 성벽 위로 올라갔다.

여진 제국의 병사들이 마혈 기병을 막으려 달려들었지만, 변이 마랑을 탄 마혈 무사들은 거의 무적이었다.

마혈 기병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성벽 위에 도착했다.

“사격하라. 어서!”

동방 연합 왕국의 병사들이 마혈 기병을 조준하고 사격했다.

탕, 탕, 탕.

수십 마리 변이 마랑이 총알에 맞아서 쓰러졌다.

화총병들이 변이 마랑의 적수일 줄이야.

변이 마랑이 쓰러지자, 주위에 있던 여진 병사들이 변이 마랑을 죽이려고 잽싸게 달려들었지만, 마랑을 타고 있던 마혈 무사가 곧바로 내려와서 자신의 탈 것을 보호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동방 연합 왕국의 화총병들이 매우 강력한 건 맞지만, 그들은 다시 사격할 기회가 없었다.

쾅!

수백 명 마혈 기병이 화총 대열을 향해 그대로 정면으로 돌진하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분노한 변이 마랑들이 화총병들을 물어뜯고 찢어버렸고, 마혈 무사는 그들의 몸을 거침없이 반으로 갈랐다.

동방 연합 왕국에서 지원 온 1천 화총병이 불과 몇 분 만에 전멸했다.

화총병은 이 전투에서 몇 분 정도만 출현했지만, 두변과 금태극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화약의 시대가 고미산 탄약의 시대까지 발전한다면, 활과 화살의 시대는 완전히 끝나리라.

이 세계의 궁수들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총과 화포가 미래의 전장을 지배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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