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관무제-490화 (490/648)

490장: 금태극의 죽음 三

이원, 금태극 등이 드디어 항구에 도착했고, 대형 화물선에서 이원 등을 데리러 작은 배들도 항구에 도착했다.

드디어 살았다. 이제 안전하구나!

항구 전체가 동방 연합 왕국의 공격 범위 내여서, 두변의 1천 5백 마혈 기병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어디 감히 바다에 들어올 수 있을까. 수영도 할 줄 모르는 것들이!

이원이 서두르지 않고 두변을 향해 외쳤다.

“두변 아우! 네가 또 대승을 거뒀지만 나는 또 네 손에서 도망쳤다.”

이원은 추격당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지, 분통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두변이 1천 5백 명 마혈 무사를 이끌고 항구에 도착했지만, 동방 연합 왕국의 화물선에서 1천여 미터 떨어진 곳, 화포의 공격 범위 밖에서 멈춰 섰다.

두쟁이 끌고 온 선박이 아무리 전함이 아니라 화물선이라지만, 갑판에 설치된 화포와 화총의 살상력은 어마어마했다.

이원이 큰소리로 외쳤다.

“두변 아우, 네가 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겠지만, 네놈이 무슨 수를 써도 난 죽지 않아. 딱 기다려라. 우리 동방 연합 왕국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네게 보복할 테니.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몇 개월 후면, 동방 연합 왕국이 바다를 뒤덮을 정도의 전함을 이끌고 네놈의 서남을 짓밟아줄 것이다. 네놈의 부인들은 수천수만 명에게 농락당하는 노예로 전락할 것이야!

하하하! 우린 이제 갈 테니, 우릴 너무 그리워하진 말아라.”

이원은 저주를 퍼붓는 자신의 모습을 금태극이 멸시할 걸 알지만, 두변에게 제일 악독한 말로 욕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이원, 금태극 등이 항구를 떠나기 위해 작은 배를 타기 시작했다.

두변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원, 뭐든 너무 일찍 기뻐하면 안 되지. 내게 무슨 능력이 있는지 까먹은 것 같은데?”

이 말이 나오자 금태극 등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두변에게 무슨 능력이 있었나?

두변에겐 멸용결(항룡십팔장)이 있지 않나!

이렇게 추운 지대에서 멸용결의 가장 무서운 위력이 무엇일까. 바로 엄청난 회오리!

“멸용결!”

갑자기 두변이 멸용결을 시전하자, 사방 몇 리 이내의 현기가 점점 더 응집하기 시작하면서 온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고온의 현기와 주위의 차가운 공기가 큰 격차를 만들어냈고, 곧이어 회오리가 나타났다.

거대한 용 모양의 구풍이 항구에서 바다로 미친 듯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두쟁은 이 광경을 보고 두피가 저릿해지고 가슴이 섬뜩해졌다.

“어, 어서 선박을 움직여라. 어서.”

하지만 지금 와서 도망치는 건 이미 늦었으리라.

쾅, 콰드득, 콰직.

끔찍한 구풍이 거대한 화물선을 집어삼키고, 선박 위의 돛이 찢어지고, 돛대가 무너져 내렸다.

화물선 전체가 균형을 잃으면서, 갑판 위에 있던 병사들이 회오리에 휩쓸려 날아갔다.

전함이 아닌 화물선인지라, 갑판 위에 있던 화포는 전부 간단하게 갑판에 고정시켰을 뿐이었다. 그러니 회오리가 몰아치는 순간 20대가 넘는 화포가 갑판의 나무와 함께 통째로 뜯겨 나갔다.

게다가 하필이면 조금 전에 유산탄을 장전한 상태라서 화포들은 회오리에 빨려 들어가면서 사방을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유산탄과 유탄의 절반이 화물선에 떨어져 박히고, 전열함처럼 철갑을 두르지 않은 화물선은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지고 말았다.

두변이 불러온 회오리는 곧 바다 깊은 곳을 향해 계속 휘몰아쳐 사라졌다.

하지만 이 큰 화물선은 통제력을 잃은 채 바다 위를 하염없이 맴돌았다.

콰과과광!

이어서 연쇄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물선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유탄이 전부 불에 닿아서 폭발한 것이 분명했다.

2천 톤이 넘는 대형 화물선은 바다 위의 거대한 횃불이 되어 순식간에 빠르게 침몰했다.

그 광경을 본 이원과 금태극 등은 완전히 절망하고 말았다.

항상 이랬다.

자신들에게 희망을 줬다가, 그 희망조차 산산조각 내버리는 방식!

배가 없어졌으니, 동방 연합 왕국으로 도망칠 방법도 사라졌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 이원이 이를 부득 갈면서 소리쳤다.

“폐하, 폐하께서는 정상급 대종사이시고, 폐하 곁에 또 한 명의 대종사가 있습니다. 다마곤 친왕과 완안영도 친왕께서도 전부 정상급 종사이니, 두변과 결판을 벌입시다. 죽을 각오를 하면 필시 살 수 있습니다!”

도망칠 길이 사라졌으니, 이젠 바다를 등지고 싸우는 수밖에!

이원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폐하, 두변은 멸용결을 한 번 시전할 때 내력을 전부 소진합니다. 게다가 그의 곁에 있는 무도 고수라고는 이도진 대종사 한 명뿐이고요. 폐하께서 두변을 빨리 인질로 잡으셔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이번은 두변을 죽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현기가 없는 두변은 이미 무척이나 약한 상태일 겁니다.”

금태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곧장 검을 휙 뽑아 들고 외쳤다.

“여진 제국의 강자들이여! 짐을 따라 결전을 치르자!”

“결전을 치르자!”

다마곤 친왕, 완안영도 친왕, 호과 등이 검을 뽑아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여진의 정상급 강자들이 모든 현기 내력을 끌어모아서 두변의 1천 5백 명 마혈 무사와 결전을 벌이려고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에선 이원의 말이 맞았다.

두변의 내력이 충분할 때도 그의 무도 수준은 5계 종사에 불과하지만, 잡는 건 할 수 있어도 죽이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내력이 소진되었으니, 두변이 제일 약할 때가 맞긴 했다. 두변 곁에 무도 고수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죽여라. 죽여라. 죽여라!”

금태극이 외치면서 대검을 휘둘렀다.

“죽여라! 죽을 각오를 해야만 살 수 있다. 두변을 죽여라!”

이원도 검을 뽑고 금태극 등의 뒤를 따라 달렸다.

금태극 등의 살기가 하늘을 찔렀다.

금태극은 정상급 대종사인지라, 여여해와 무공 수준이 비슷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결전에 임하는 자들의 기세는 어마어마했다.

이도진이 검을 뽑고 두변을 자신의 몸 뒤로 숨겼다.

금태극 등이 모든 것을 파괴할 기세로 두변에게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때, 주술사 국사가 수십 명 강력한 주술사들과 함께 경문을 읊기 시작했다. 이내 강력한 정신력과 강력한 음파가 다시 한 번 온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

푸악!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던 금태극이 돌연 피를 뿜어냈다. 그의 전신 근맥이 갑자기 터지더니, 그의 주위에 온통 피 안개가 피어올랐다.

금태극을 뒤따라오던 대종사들도 피를 내뿜기 시작하면서 전신의 근맥이 파열되었고, 그 뒤로 다마곤 친왕, 완안영도 친왕, 그리고 십여 명 종사급 강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전부 근맥이 파열되면서 피를 토했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무릎이 꺾이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금태극이 주술사 국사를 향해 삿대질하면서 소리쳤다.

“계속 내게 독을 썼던 것이냐!.”

“독이 아닙니다. 폐하께서는 정상급 대종사이시니, 독이었다면 바로 알아차리셨겠지요.”

주술사 국사가 대답했다.

“이건 일종의 정석의 기운입니다. 분향을 피울 때 함께 이 정석 가루를 태우게 되면, 정석의 기운이 공기와 함께 여러분의 체내에 들어가게 되지요. 기운을 보양할 수 있는 성분인지라, 평소에는 여러분의 몸을 해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기 내력을 응축해서 전투를 준비하게 될 때, 엄청난 기운이 터져 나와서 여러분의 근맥을 파열시킵니다. 기운을 증폭, 팽창시키는 물질이라고 보면 되지요.

폐하께서 너무 힘을 많이 모으셨나 봅니다. 좀 적당히 하셨다면 근맥이 파열되진 않았을 텐데요.”

역시 주술사 제사들이 사람을 해치는 방법은 수천수만 가지로구나!

“아아아! 너무도 분통하다. 너무도 분통해.”

금태극이 소리치면서 또 한 번 피를 토했다.

온몸이 피로 물든 금태극은 정말로 영웅의 말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금태극이 버둥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변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너무나 원통하구나. 내가 자금성의 옥좌에 그렇게 가까이 다가갔는데!

하늘이여! 어찌 이리도 불공평하십니까? 왜 이런 방식으로 내 패업을 망치는 겁니까.”

금태극이 절망하면서 피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짐은 누구에게도 죽지 않는다. 짐을 죽일 수 있는 건, 오직 짐뿐이다.”

금태극이 완안영도를 쳐다보면서 외쳤다.

“완안영도는 명을 들으라!”

완안영도가 머리를 조아렸다.

“신, 폐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짐이 명령한다. 우리 여진 일족의 멸족을 막기 위해 너는 두변 대인에게 투항하거라.”

금태극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검으로 자신의 목을 휙 그었다.

금태극의 힘이 어찌나 센지, 목을 벤 수준이 아니라 머리가 아예 잘려서 땅에 떨어졌다.

여진의 패주 금태극이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이원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이제는 정말로 절망의 순간이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다.

두변이 시선을 이원에게로 돌렸다.

두변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원, 지금 당장 죽지 않는 걸 축하해야겠지. 몇 날 며칠 동안 죽기보다 못한 시간을 보내다가 죽게 해줄 테니까.”

여진 제국의 고위층들은 금태극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믿기지가 않았다.

금태극의 장자 호과는 금태극의 시신을 바라보며 넋을 놓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모든 여진 전사들은 적과 함께 싸우다 죽는다. 한 명을 죽이면 제 몫을 다한 것이고, 두 명을 죽이면 업적을 이루는 것과 같다!”

호과는 비겁한 사람만이 자결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의 뒤에 있던 수십 명 여진 고수들도 호과를 따라 미친 듯이 돌격하려 했다. 그때, 다마곤 친왕이 갑자기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다마곤이 순식간에 십여 명 여진 고수들을 죽였다.

호과와 남은 십여 명 여진 고수들이 화들짝 놀랐다.

다마곤이 직접 아군을 죽여?

“숙부, 미쳤습니까? 설마 숙부도 배신하려는 겁니까!”

호과가 소리치자, 다마곤이 언성을 높였다.

“호과, 지금 너는 우리 여진 일족이 멸족하길 바라는 것이냐?”

호과가 흠칫 놀랐다.

다마곤 친왕이 야차같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소리쳤다.

“비겁한 사람만이 자결하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살고 싶다. 투항해서라도 살고 싶단 말이다.”

다마곤이 두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두변 공작, 자네는 내 투항을 받아들이지 않겠지. 나는 워낙 야망이 강하고 교활한 사람이니까 난 죽을 수밖에 없다.”

두변은 냉정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마곤 친왕이 호과를 향해 말했다.

“호과, 너도 나처럼 투항할 수 없다. 너는 성격이 거칠고 고집이 센 데다, 복수에 대한 열망이 네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다마곤 친왕이 마지막으로 완안영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영도, 여진 일족의 운명은 네게 맡기겠다.”

다마곤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자신의 검으로 심장을 깊이 찔러서 자결했다.

호과가 금태극의 시신과 다마곤의 시신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짐승같이 포효했다.

“아아, 왜 이래야 하는 겁니까. 왜요! 부황, 저를 기다려 주십시오!”

호과가 검을 들고 자신의 목을 베었다.

이어서 남아있던 여진 고수들도 전부 호과를 따라 자결했다.

이곳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은 숙친왕 완안영도뿐이었다.

그는 혼자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뒤, 완안영도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왜요, 왜냔 말입니다.

왜 다들 죽어도 되는데, 나만 안 됩니까? 왜 또 납니까? 나도 죽고 싶습니다. 나도 제발 죽게 해달라고요.

30년 전에는 나를 대녕 제국의 첩자로 보냈다가, 12년 뒤에는 또 나더러 돌아오라고 했다가, 이제는 나더러 다시 대녕 제국에 투항하라고요?”

완안영도가 통곡하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왜 또 접니까. 저도 죽고 싶단 말입니다.”

완안영도는 진심으로 죽고 싶었다.

그가 진심으로 죽고 싶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매번 그가 죽기를 결심했을 때 죽지 못할까?

저번에 그가 죽고자 했을 때, 그의 부인이 아들을 낳았다.

이번에도 죽고자 했지만, 이제 그는 여진 종족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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